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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53화 (153/172)

153화

올더슨 학장은 언제부터 인형이었을까?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아니면 요 며칠 동안 무슨 변고가 생긴 걸까.

혹시 모른다.

내가 모르는 개인적 사정이 있을지도.

가령, 효율적인 분업을 위해 자신의 기억을 복제한 인형을 마련한 거라면, 지금 난 역대급 호들갑을 떨고 있는 셈이 되는-.

- 희망 회로 터져요옷!

‘…염병.’

갑자기 떠오른 셋째 사형의 일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다음 희망적 관측은 집어치운 다음 현실을 직시했다.

“자네, 괜찮은가?”

올더슨 학장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는데.

그 순간, 나는 내가 아카데미에서 얻은 정보 중 어떤 것도 밝혀선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핏빛 달의 마왕에 대해선 특히 말이다.

“루안 영도?”

올더슨 학장의 표정이 묘해진다.

인형은 원본의 사고력까지 그대로 베끼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시치미 떼야 할 상대는 대마법사다.

이미 약간 위화감을 느낀 것 같으니, 지금부턴 말을 잘 골라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다소 굼뜬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알렉 교수를 만났습니다.”

머릿속으로 정리한 다음 내뱉으면 늦는다.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러면서도 태도에 어색함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나는 머리에서 김이 날 만큼 뇌를 팽팽하게 돌리며, 겉으로만큼은 차분한 어조를 지켰다.

“그리고 영산에 대한 사진을 보았는데요.”

“호오……. 알렉 교수가 생각보다 순순히 나왔나 보군.”

“정신이 온전치는 않아 보였습니다. 태도와 어조는 차분했지만, 강의 내용엔 광기가 넘실거렸죠. 심지어 제국 멸망까지 입에 담았습니다. 교수란 자가 품기엔 위험한 사상인데, 어째서 면직시키지 않는 겁니까?”

나는 살짝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알렉 교수에겐 미안하지만, 달리 꺼낼 핑계가 없었다.

올더슨은 묘한 눈으로 날 보더니 말했다.

“그 말을 하려고 날 부른 겐가?”

“그렇습니다.”

“…흐음. 그럼 레오네는 왜 불러 달라고 했지?”

그렇게 물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직전에 떠오른 핑곗거리가 있었다.

“알렉 교수가 보여 준 사진엔 검은 태양이 있더군요. 일식은 마왕 강림의 전조 현상, 즉 그 마경 전부가 마왕의 영역이란 뜻입니다. 레오네라면 좀 더 자세히 알 것 같아서요.”

올더슨이 에반을 보았다.

“저 영도는?”

소교주로 의심돼서 데려온 게 아니었느냐. 그런 뒷말이 숨어 있는 듯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반은 믿을 수 있는 동료고, 친구입니다. 수련회에선 우수한 성적을 보였고,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이후엔 헤로스에 같이 입관할 예정이죠.”

“과연……. 미리 손발을 맞춰 보는 단계란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올더슨의 시선이 레오네와 에반을 훑는 게 느껴졌지만.

천만다행히도 이 두 녀석은 나조차 그 내심을 읽는 게 쉽지 않은 인재들이었다.

레오네는 웃는 낯을 유지했고, 에반은 시선이 마주치니 천연덕스럽게 고개까지 숙였다.

납득한 걸까.

일단은 넘어가기로 한 걸까.

올더슨이 모호한 태도로 말했다.

“자네가 말한 대로 알렉 교수의 사상은 다소 과격한 부분이 있네. 하지만 그는 미치지 않았고, 공상가는 더더욱 아니야. 아카데미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네.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편향된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니까.”

반면교사란 의미는 아닌 것 같고…….

다양한 군상을 보며 식견을 기르라는 뜻인 듯하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무례한 말씀이지만, 교단의 끄나풀일 수도 있잖습니까.”

쭉 언급하지 않는 건 이상할 것 같아서, 내 쪽에서 먼저 교단을 언급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세밀하게 올더슨의 표정을 관찰했지만, 딱히 변화는 없었다.

레오네의 말에 따르면…….

올더슨 학장은 ‘스스로가 인형인 걸 모르는 상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진짜 올더슨은 어디 있는 걸까?

설마하니 이미 죽은 걸까.

제국의 일곱 대마법사 중 하나인, 올더슨 마르브어가?

“그럴 리는 없네. 알렉은 교인이 아니야. 내 그것만큼은 확실히 보장하겠네.”

“…….”

원래라면 저 말을 듣는 순간 납득하거나, 최소한의 신뢰감은 느꼈을 거다.

다름 아닌 대마법사의 발언이니 말이다.

지금은, 좀 의미심장하다.

문득 생각했다.

만약 올더슨이 마왕에게 당했다면 그 시기는 언제일까.

‘…….’

문득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몰랐다.

마왕이 정확히 언제 강림했는지조차 말이다.

* * *

의심받지 않는 선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수행의 탑을 나섰다.

레오네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떠나기 직전 나를 보며 말했다.

- 다음엔 전부 마무리하고 보자꾸나.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생각할 게 많아서 잊기로 했다.

어차피 나도 당분간은 레오네와 만날 생각이 없었다.

지금 상황을 곰곰이 되새기고, 고민해 봤지만 결론은 딱히 변하지 않았다.

‘진짜 엿 됐네.’

생각할수록 아홉이 강림한 수련회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알겠지?”

군말 없이 뒤따라오던 에반이 인적이 좀 드물어진 시점에서 말했다.

“왜 아카데미가 이미 반쯤 끝장난 건지 말이야.”

“넌 알고 있었냐?”

“어느 정도는. 설마 올더슨 학장까지 당했을 줄은 몰랐지만.”

“…….”

“말했잖아? 아카데미를 벗어날 수는 없을 거라고.”

뭐라 대꾸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마침 가로등 아래에 있는 벤치가 보였다.

“좀 앉을까.”

“좋아.”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당연히 나란히 앉지는 않았고, 서로 벽을 친 것처럼 끝단에 나눠 앉았다.

그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웠지만…….

불현듯 지금 모습이야말로 지금 에반과 내 관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벤치에 앉아서 얘기는 나눌 수 있지만, 친구라고 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는 관계 말이다.

내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진짜 올더슨 학장은 죽은 건가.”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어. 그래도 거동이 가능한 상황은 아니겠지.”

“설마 칠색의 대마법사가 마왕에게 이미 당했을 줄은.”

“상대는 마왕이니까.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냐.”

“…제물.”

나는 그 단어를 뇌까렸다.

가장 컸던 의문, 어떻게 제물 없이 마왕이 소환됐는가.

그 의문 또한 풀렸다.

“제물로 바쳐진 인간의 부재를 인형으로 대체한 거였군.”

올더슨 학장의 인형은 사람과 구분하기 어렵다.

기억이나 습관, 행동은 물론이고 마나까지 다룰 수 있으니 어떤 의미에선 완전한 모방이다.

에반이 살짝 웃으며 대꾸했다.

“아카데미 재학생은 모두 [수행의 탑]을 오르게 돼. 이론상 올더슨 학장은 재학생 전원의 인형을 만들 수 있단 거지.”

물론 학장은 그러한 인형을 만드는 데엔 제법 시간이 소모된다고 했지만…….

아카데미에 3년 이상 재학 중인 상급생이라면 시간을 빠듯하게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야. 같이 방을 쓰는 사람도 있을 거고, 어쩔 수 없이 위화감을 느끼는 순간이 몇 번 있었을 텐데.”

“그걸 덮기 위해 괴담이 퍼진 걸지도 모르지. 너도 연구 동에서 도는 헛소리들은 들었을 거 아냐?”

살짝 소름이 끼쳤다.

한낱 소문까지 마음껏 일으킬 수 있다면, 마왕이 카르텔 아카데미 전체를 통제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마경에 대해 알아보러 왔는데, 여기가 마경이었다.

“고작 둘이서 타파하기엔 상황이 너무 시궁창이구만.”

“말 그대로 달걀로 바위 치기지. 그렇다고 협력자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 아카데미를 나가는 건 당연히 불가능할 테고, 내가 알기로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거나 연락하는 건 모두 교수진의 허락을 받아야 해.”

“학장이 인형이니 교수진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고?”

“맞아.”

에반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루안, 그냥 황자랑 황녀를 죽이자니까? 생각해 봐. 황가의 핏줄이 두 명이나 죽으면 우리가 굳이 부를 필요도 없이 황실이 개입하게 될 거야. 가장 확실히 지원군을 호출할 방법이라고. 그걸 빼도 상황이 난장판이 될 테니 몰래 움직이는 것도 쉬워지고.”

“…….”

나도 정신이 나가기 시작한 건가?

슬슬 에반이 우기는 황족 살해 계획이 그럴듯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안 돼.”

그렇다고 해도 고개를 저었다.

“일단 믿을 수 있는 녀석들을 하나씩 확보해 나가자고.”

“어떻게? 한 명 한 명 인형인지 아닌지 다 확인하려는 건 아니겠지. 너무 오래 걸리고, 이쪽의 의도가 들킬 수도 있어.”

그 말엔 동의한다.

나는 에반을 힐끗 보며 말했다.

“올더슨 학장의 인형은 물론 대단한 수준이지만, 난 수행의 탑을 오를 때 이미 확인했단 말씀이지.”

“뭘?”

“그 대단한 인형조차 모방할 수 없는, 우리 [위대한 가문]만의 특기 말이야.”

“어…….”

에반이 말했다.

“가호?”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다른 영도 녀석들한테 지금 상황을 전부 공유하게?”

“너에 대한 건 감추고, 나머지는 다 말해야겠지. 한꺼번에 알리기보단 한 명씩 끌어들일 생각이지만.”

“꼬리를 밟힐 위험이 늘 거야.”

“알아. 그래도 지금 상황은 어차피 속도전이야.”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때마침 구름에 가려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달보단 조금 더 살이 찐 모습이다.

“만월까지 앞으로 여드레. 그 전에 승부를 내자고.”

* * *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여니 헥토르가 보였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낯짝도 전에 봤을 때보단 멀쩡한 상태.

나는 다짜고짜 얘기했다.

“형님, 잠깐 나 좀 볼까.”

“무슨 일이지?”

어찌 됐건 헥토르는 훌륭한 전력이다.

에반의 기준치엔 부합하지 못한 듯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헥토르와 카론 정도면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손색이 없는 인재다.

“형님 가호가 총 몇 개였더라?”

“8개인데……. 그건 갑자기 왜?”

“아무거나 하나 보여 줄 수 있어?”

“상관은 없다.”

“다행이네.”

거절하면 대련을 핑계로 끌어낸 다음, 좀 쥐어패면서 가호를 보려고 했는데.

“……?”

몸을 부르르 떤 헥토르였지만, 곧 나를 보며 말했다.

“내 가호는 대부분 육체 단련에 치중돼서 지금 상황에서 보여 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다.”

헥토르가 검을 살짝 뽑더니, 칼자루를 쥔 손바닥에 힘을 줬다.

채앵!

그 순간 칼날의 수가 잠깐 늘어났다.

“멋진데? 어떤 가호야?”

“복제의 가호다. 거창한 건 아니고, 사물을 잠시간 복제할 수 있지.”

“충분히 거창한 것 같은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지속 시간도 짧고, 내구성도 본체보다 훨씬 못하니까……. 전투 중에 응용하기도 까다롭고.”

“그래도 형님의 잔영검이랑은 상성이 좋아 보여.”

헥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래서 최근엔 그 방향으로 자연스레 접목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지.”

“아하.”

대충 맞장구를 치며 생각했다.

최소한의 확인 작업은 끝났다고.

가호를 쓸 수 있고, 숨을 쉬는 기색도 느껴졌으니 눈앞의 헥토르는 확실히 인형이 아니다.

“할 얘기가 있어.”

“뭐지?”

“형님은 혹시 이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어?”

“…….”

헥토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는데, 그 얼굴을 보니 나도 살짝 당황스러웠다.

표정에서 느껴지는 기색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가 아닌, “네가 그걸 어떻게…….” 같은 느낌이라서 그렇다.

“혹시 형님도 뭔가 아는 거야?”

“그렇긴 한데… 일단 네 얘기부터 듣고 싶군.”

나는 일단 그러기로 했다.

아카데미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의심스러운 거동의 두 황족, 연구 동에 관한 소문, 올더슨 학장의 정체까지 모두 밝힌 것이다.

말하지 않은 건 에반의 정체뿐이었고, 자연스레 그 녀석이 줬던 정보- 이미 마왕이 소환됐다는 사실도 숨기게 됐다.

“…음.”

예상대로 헥토르는 놀라지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단 상황이 심각한 걸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설마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됐을 줄은…….”

“설마 형님도 알고 있었어?”

“…지금의 아카데미가 위험한 장소란 것쯤은.”

헥토르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루안, 넌 내게 도움을 바라기 위해 이 얘기를 꺼낸 거겠지?”

“맞아.”

“그럼 지금 당장 나랑 같이 누구를 좀 만나러 가줄 수 있겠나? 내 이름을 걸고 장담하겠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이 일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누군데?”

당장 영도를 제하면 확실히 믿을 수 있고, 도움까지 줄 만한 인재는 없을 텐데.

나는 헥토르의 말에 회의적이었지만, 이 녀석이 꺼낸 이름을 듣는 순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바터 굿스프링. 그 사내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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