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55화 (155/172)

155화

나를 둘러싼 생도는 총 열한 명이었고, 의외로 그중에 인형은 한 명도 없었다.

‘의외가 아닌가?’

인형에게 있어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은 크게 다치는 것일 테니까.

괴짜가 아닌 이상에야 남이 숨을 제대로 쉬는지까지 신경 쓸 녀석은 드물겠지만…….

부서진 피부가 도자기 조각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면 누구나 의심을 할 거다.

그러니 아마 인형에겐 몇 가지 명령이 본능처럼 새겨져 있지 않을까 싶다.

가령 ‘다치는 상황은 반드시 피해라’라든가.

콰당탕!

탈리스가 엎어진 순간, 양쪽에 있는 생도 두 명이 동시에 덮쳐왔고.

나는 테이블을 밑에서부터 걷어찼다.

테이블 위에 있던 음식들이 허공으로 치솟은 순간, 나는 빈 맥주잔을 양손으로 낚아챈 다음 두 녀석의 머리를 후려쳤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녀석이 그대로 엎어졌다.

‘봐줬다.’

머리가 아니라 안면을 후려쳤다면, 면상이 유리 조각에 갈기갈기 찢겼을 거다.

“이 새끼가!”

유난히 덩치가 큰 놈이 내게 손을 뻗었다. 덩치에 비해 손속이 재빨랐지만 그게 전부다.

나는 뻗은 손을 역으로 붙잡은 다음, 허름한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내동댕이쳤다.

쿠당탕! 덩치가 큰 놈이라 테이블을 두 개나 부쉈지만, 시비는 이 자식들이 걸었으니 내 알 바는 아니다.

어쨌든 어중이떠중이 놈들이라 정리하는 게 귀찮긴 해도 어렵지는 않았다.

여덟 명인가, 아홉 명인가. 애송이 생도 놈들을 그쯤 쓰러뜨린 순간…….

스릉-!

서늘한 날붙이 소리가 들렸다.

유난히 뒤에 있던 녀석 한 명이 검을 뽑은 것이다.

“무기는 안 돼!”

글렌이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으나, 저놈의 눈깔은 이미 반쯤 뒤집혀 있었다.

이성을 상실한 건지 괴성을 내지르며 검을 찌른다.

나는 검지에 내공을 집중한 다음 손가락을 튕겼다.

까앙……!

“……!”

생도는 손목이 찌르르 울리는 고통에 검을 놓쳤다. 그사이 뺨을 후려쳤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말이다.

뻐억! 소리도, 고통도 주먹으로 얻어맞은 것과 비슷할 거다. 이 녀석도 아까 덤벼든 덩치처럼 유난히 요란한 기세로 날아갔다.

“…배드니커의 막냇자식은 철부지라고 들었는데, 철혈공의 허풍이었나.”

다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게의 주인이다.

사실 나도 다른 애송이들을 정리하며, 신경은 내내 이 녀석에게 쏟고 있었다.

나이도 그렇지만, 느껴지는 기도 또한 생도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댁도 술집 주인으론 아까운 실력 같아 보이는데.”

남자가 코웃음을 치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주먹에 깃든 마나의 기세가 유난히 강하고, 또렷하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다듬은 기氣, 고수의 증거.

‘좋은데?’

나도 씩 웃으며 내공을 끌어올린 다음 일권을 뻗었다.

꽈아앙!

보란 듯이 허공에서 주먹이 맞부딪쳤다.

“……!”

당연하지만, 검과 달리 주먹이 허공에서 부딪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애초에 합을 맞춘 게 아니라면 후공했던 이가 타점을 정확히 꿰뚫었다는 뜻인데, 이건 상대보다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날 얕보는 거냐?”

예상대로 이 남자도 그 정도 사실을 깨달을 만큼의 실력은 갖춘 듯하다.

남자가 으르렁거리듯 위협하더니, 공세에 박차를 가한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 공격을 피하며 생각했다.

대인전 경험이 풍부한 사내라고.

기본적으로 맨몸 무술을 경원시하는 제국에서, 이 정도 박투술을 익힌 인재는 흔치 않다.

나는 남자와 전투를 이어 가면서도 여러 가능성을 떠올렸다.

비교적 젊은 나이.

술집 주인에 어울리지 않는 얼굴과 낯짝.

직전까지 기도를 감추고 있던 은밀함.

그리고 맨손 전투의 숙련도.

검은 훌륭한 무기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의 경계심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게 큰 단점이다.

그 때문에 잠입, 공작을 하는 자들은 숨길 수 있는 무기나 맨몸을 단련하는 훈련을 받는다.

“특무대인가?”

“……!”

바터를 떠올리며 넘겨짚어 본 건데, 남자의 호흡이 살짝 흐트러졌다.

‘김새는구만.’

나로선 오랜만의 싸움다운 싸움을 좀 더 오래 하고 싶었지만, 이토록 노골적인 빈틈이 나왔는데 못 본 척할 수도 없다.

즉시 손을 뻗어 상대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에도 이 남자는 반사적으로 내 손목을 잡았지만, 그 순간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직접 손바닥으로 잡은 순간, 나와의 수준 차이를 깨달은 거다.

빠악!

멱살로 끌어당긴 동시에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그런 다음 주방 너머로 남자를 집어 던졌다.

쿠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는 글렌을 보았다.

이 녀석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지 궁금해서였는데, 커다란 모자와 뺨까지 닿은 넓적한 안경 때문에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너…….”

그때 앓는 소리를 내며, 주방으로 던져진 남자가 일어났다.

부릅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분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댄다면…….”

“주둥이 닥치고 토마토 맥주나 더 갖고 와.”

“뭐……?”

“반 잔밖에 못 마셨단 말이야. 밥도 못 먹었고. 배고파.”

“…….”

그러자 침묵하고 있던 글렌이 입을 열었다.

“마르코, 루안 말대로 해.”

“…알겠습니다.”

마르코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시선은 느껴졌다.

그사이 나는 넘어진 테이블을 일으키고, 테이블 위에 있던 부스러기를 대충 치웠다.

“황자님… 도망치십시오…….”

탈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양아치가 아니라 충신이었네. 역시 강의실에서 그건 네가 명령한 거였나?”

글렌이 나를 잠깐 보더니 말했다.

“탈리스, 나가 있어.”

“예?”

“얼른.”

“…아, 알겠습니다.”

탈리스와 생도 놈들이 어기적어기적 일어나더니 가게를 떠났다.

몇몇 거동이 힘든 녀석은 다른 놈이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 나갔는데 그 모습이 꼭 패잔병 같았다.

‘그럼 그렇지.’

귀족 자제가 아무리 맛이 갔더라도, 황가의 피 앞에서 양아치 짓을 할 배짱은 없을 거다.

특히 탈리스 같은 권위주의자는 더욱 그렇다. 더 강한 권력자를 보면 움츠러들기 마련이니까.

글렌이 말했다.

“하나 조언해도 될까.”

“뭘?”

“여기서 나를 반쯤 죽여 놔도 문제 될 건 없을 거야.”

또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어 가만히 봤는데, 글렌이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만약 네가 황실이 두려워서 내게 손을 대지 않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

개소리인지 뭔지 모르겠다만.

나는 일단 글렌을 팰 생각이 없다.

저 말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그랬다.

내가 말없이 바라보니, 이 녀석도 입을 닫았다. 다만 턱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나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처맞는 취향이 있어?”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근데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하는데?”

“…….”

글렌이 입을 닫아서, 나는 말을 이었다.

“나에 대해 뒷조사를 하고, 패거리를 죄다 불러서 묻으려고까지 했는데. 이 정도 질문에도 대답하기 힘든가?”

“…….”

“말해 봐. 내가 생긴 건 이래도 친구 상담은 잘 들어주는 편이야.”

내 말에 글렌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독한 농담이라도 들은 듯한 반응이었다.

“네 말대로 뒷조사를 했어. 네 평판도 그때 알게 됐고. 철혈공의 유일한 오점이자 배드니커의 천덕꾸러기, 가호를 하나도 받지 못한 쓰레기라더라.”

“가문의 보검도 팔았지.”

내가 살짝 덧붙였다.

“…그런 너한테 형편없이 얻어맞은 채 땅바닥을 구른다면, 누구도 나를 황가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을 거야. 일단 황실의 권위는 바닥까지 처박히겠지.”

“음.”

“전에 말했지? 내 형제는 수백 명이라고.”

“그랬지.”

“그런데 지금 공식적으로 황자, 황녀라 불리는 건 전부 열 명도 되지 않아. 그럼 나머지 형제들은 어떻게 됐을까?”

“황자님.”

주방에서 제지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글렌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부분 죽거나 사라졌어. 살아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

“그렇다면 [스칼렛]의 이름을 받은 열 명의 핏줄, 그들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선별한 걸까? 나 같은 열등아가 어떻게 4황자라는 위치를 얻었을까.”

글렌이 툭툭 모자를 건드렸다.

“머리카락 색이야. 신분도, 성과도, 재능도 아니라, 그저 머리 색이 선명하고 강렬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꼭 도축장의 가축한테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푸하하……. 글렌이 폭소를 터뜨렸다.

“이게 이 나라 제국 황실의 실체야. 상징성 하나에 눈이 먼 늙은이, 빨간색에 정신이 나간 미친놈들이 가득한 오물 집합소라고.”

그때 토마토 맥주가 나왔다.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마르코를 보며 물었다.

“침은 안 뱉었겠지?”

“음식에 장난은 치지 않는다.”

“믿겠다.”

나는 엄숙히 말한 다음, 글렌과의 술잔을 바꿨다. 별말 없는 걸 보니 사실인 듯했다.

그리고 독특한 풍미의 토마토 맥주를 몇 모금 마신 다음 말했다.

“이제 보니까.”

“……?”

“너도 인형이었네.”

물론 그 인형을 말하는 게 아니지만.

내가 보기엔 인형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게 글렌이었다.

“뭐?”

그리고 난 글렌의 얼굴을 향해 남은 토마토 맥주를 퍼부었다.

“황……!”

마르코가 깜짝 놀라더니, 곧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앞선 공격과 달리 주먹에 살기가 짙게 담겨 있었다.

죽일 생각으로 휘둘렀다는 뜻이지만.

나는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을 휘둘렀다.

빠악!

마르코는 내 손등에 반응하지 못한 채 이마를 처맞고, 벽면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그리고 부릅뜬 눈으로 나를 보는 글렌에게 말했다.

“황실이 그렇게 증오스럽고 머리카락 색도 꼴보기 싫으면 삭발이라도 하든가. 아카데미에 있는 네 누나는 염색까지 하고 다니던데, 넌 뭐냐?”

“…그건.”

“나도 내게 흐르는 배드니커의 피가 거추장스럽다. 잘나신 우리 가주님 덕분에 이 성姓에 걸린 기대감이 장난 아니거든.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솔직히 말하면 글렌이 너무 한심스러워서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이 녀석의 나이를 감안하면 때려 팰 만큼의 한심함은 아닌지라 참았다.

“물론 네가 가진 증오는 나보다 무겁겠지. 황실이 가진 권위 또한 배드니커보다 크고. 근데 그게 꼭 나쁜 거냐?”

“뭐?”

“나는 내 핏줄을 이용하기로 했어. 배드니커의 이름만 들어도 땅바닥을 기는 녀석들이 산더미니, 일차적으로 이름값에 주눅이 든 한심한 놈들은 거를 수 있지. 어찌 됐든 잘나가는 가문이니 여차할 때 돈을 빌릴 수도 있고, 다방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 그딴 것보다 중요한 건.”

나는 글렌의 눈동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 이름에 긍지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지. 내게 배드니커란 낙인이 아닌 수단이다. 그런데 지금 네 꼴을 봐라.”

나는 토마토 맥주를 뒤집어쓴 황자를 보며 혀를 찼다.

“황실이 싫으니까 모자를 써서 머리카락을 감춰? 황자라는 말을 듣기 싫고, 그렇게 취급받는 건 더 싫다? 애새끼냐?”

글렌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지만, 나는 힐난을 멈추지 않았다.

“전에 내가 존댓말을 쓰니까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냐?”

“…….”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다. 결국 그게 네 본질이지. 조금이라도 감정이 격렬해지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을 한다고. 방금 가게를 나선 새끼들이나 저기 엎어져서 자는 놈한테 그랬던 것처럼.”

“…….”

“그런 주제에 황실의 핏줄이 증오스럽니, 교단이 악惡이니 어쩌니……. 우라질. 뭐 좀 있는 놈인가 싶었더니 그냥 질풍노도의 시기였잖아.”

“네가 뭘 안다고……!”

내겐 글렌의 말이 “반박할 말이 없군요.”로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밥은 네가 사는 거였지? 음식이랑 술은 괜찮은데 분위기가 영 별로네. 난 그만 가본다.”

“잠깐, 멈…….”

반쯤 열린 입이 닫혔다.

꼴을 보니 또 “멈춰라!”라거나 “여기 앉아!”라는 등의 명령을 하려던 것처럼 보였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가게를 나섰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글렌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뭐 어쩌란 말인가.

어쨌든 홧김에 또 설교 아닌 설교를 내뱉긴 했지만…….

아예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글렌 스칼렛은 교인이 아니다.

* * *

황색관으로 돌아간 다음 영도 놈들을 한 명씩 찾아가서 현재 상황을 공유했다.

수업 시간이 워낙 다양하게 퍼져 있어서, 다 끝나니 해가 이미 저물어 있었다.

나는 영도 녀석들을 이끌고 다시 아지트로 돌아왔다.

아지트엔 세렌을 비롯한 여자 영도 녀석들이 이미 와 있었다.

안에 있는 주방을 쓴 걸까?

빵 몇 개와 구운 고기, 소시지, 스튜가 테이블 위에 있었다.

나는 소시지 하나를 손으로 집어 먹으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

“백두 명 중에 스물한 명이 인형이었어. 오차가 좀 있겠지만 이 비율을 아카데미 전체 재학생에 그대로 적용하면, 재학생 중 이백 명은 인형이라고 봐야겠지.”

“…….”

주변이 침묵이 내려앉았다.

문득 두려운 목소리를 낸 건 샤를이었다.

“…당신들이 말하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저도 호흡하지 않는 생도를 직접 보았어요. 부정하는 건 현실 도피밖에 되지 않을 것 같군요.”

말투를 보니 샤를은 지금 상황을 받아들인 것 같다. 호들갑을 떨지 않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모든 녀석이 저런 태도를 보이긴 어렵다.

“뭐, 뭔가 이벤트 같은 거 아니야? 말이 안 되잖아. 여긴 카르텔 아카데미라고……. 제도에서 황실 다음으로 안전한 곳 아니야?”

카리스는 납득하지 못했고.

“다,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않을까?”

팜이 잔뜩 겁에 질린 것 같았다.

“황실 기사단이나 헤로스의 현역 영웅들을 호출하면…….”

“잊은 것 같은데 여긴 일단 섬이야. 강폭이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일단 육지랑 연결된 대교는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학장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겠지.”

“마도구를 사용한다면-.”

“통신 수정 같은 거? 글쎄……. 대마법사가 되는 양반이 그 정도 대비책도 마련 못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

나는 핼쑥해진 팜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정신 차려. 수련회에서 배웠잖아. 교단의 습격은 언제, 어디서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어. 물론 아카데미에서 이 사달이 일어난 건 정신 나간 일이긴 한데……. 이런 상정 밖의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수련회에 참가했던 거잖아.”

손뼉을 치며 말하니 영도 녀석들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도 책임감 없는 몇몇 낯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현실을 확실히 일깨워 주기로 했다.

“지금은 굳이 따지면 실험 단계야. 인형을 간파하는 방법도 여럿 있고…….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러진 않겠지.”

“무슨 뜻이야?”

“[호흡하는 인형], [피부 밑에 실제로 피와 혈관이 흐르는 인형]이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 것 같냐.”

“어떻게 되는데?”

멍청하게 묻는 카리스를 한심하게 쏘아본 다음, 나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아무도 그놈들의 정체를 깨달을 수 없게 돼. 그리고 그 인형 놈들이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더 재앙이지. 당연하지만 여기 재학생들은 모두 검증된 인재고, 대체적으로 우수한 편이야. 제국 요직에 오르기까지 빠르면 몇 개월밖에 안 걸리겠지? 생각해 봐라. 황실 기사단이나, 헤로스의 영웅, 귀족 가문의 후계자들, 그놈들 전부가 마왕의 하수인인 거야.”

“…….”

“웃기지도 않은 일이지. 제국 최대의 교육 기관이, 교인을 만드는 양성소가 되는 꼴이니까.”

그제야 영도 녀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부정론자인 게 아니다.

이대로 가면 실제로 내 말대로 전개되겠지.

10년 내로 시작하는 교단과의 전쟁.

성세하는 암흑 교단과 붕괴하는 제국.

무명 제국 멸망의 시발점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에서 만들어진 인형 군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