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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61화 (161/172)

161화

내가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레오네는 손바닥으로 감쌌던 내 주먹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그러면서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생글생글 웃는 미소를 지었다.

“…….”

뭐 하는 녀석일까.

이번까지 하면 벌써 세 번의 만남이다.

속내까지는 몰라도, 대충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목적으로 움직이는지는 충분히 알 만한 횟수였는데…….

나는 아직 이 녀석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러니 일단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적인가?’

그렇지는 않다.

올더슨 학장이 인형이란 걸 알게 된 것도 레오네의 조언 덕분이었고…….

방금도 기척을 깨닫지 못한 나를 충분히 기습할 수 있었다.

애초에 진짜 적이라면 훨씬 성가신 짓거리를 저지를 기회가 잔뜩 있었다.

‘아군인가?’

그렇다고 이 질문에도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가 어려웠다

어쩐지 이 녀석이 나를 돕는 이유에선 꿍꿍이가 느껴졌다. 적어도 선의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은 아닌 것이다.

즉 당장은 믿을 수 있는 녀석이다.

“어떻게 도와주려고?”

이 녀석에게 자신만의 계획이 있다면 오히려 좋다. 적어도 계획을 이루기 전까지 뒤통수를 때리지 않을 테니까.

적당한 협력, 적당한 경계심.

잠시간 손을 잡기엔 안성맞춤의 조건이다.

“학장을 구하려는 거지?”

“맞아.”

“흐음.”

레오네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작전을 짜는 듯한 모습에 잠깐 얼이 빠졌다.

이 녀석, 지금 즉석에서 작전을 짜는 걸까.

고개가 좌우로 갸웃갸웃하며, 먹물 같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나는 잠깐 그 머리카락의 색을 주목했다.

제국에서 흑발은 어떤 의미로 적발보다 더 희귀한 색이다.

글렌처럼 새빨갛게 타오르는 듯한 적발이 희귀한 것이지, 적갈색이나 주황빛 머리카락은 의외로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르잔과 팜 같은 경우.

반면 흑발은 찾아보기 힘들다.

배드니커야 선조가 흑요정이니 흑발이 발현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이외엔 대륙을 통틀어도 찾기 힘든 희귀한 색상이란 뜻이다.

‘거기에 토끼처럼 새빨간 눈깔까지.’

흑발에 적안.

레오네는 제국에서 가장 찾기 힘든 두 가지 색을 동시에 가진 녀석이다.

그러한 특징을 타고난 건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좋아.”

레오네의 입술이 달싹이며 생각을 끊었다.

“저건 지옥불의 군단장인 카짓타야. 악마 중에선 상당히 괴짜지.”

그리고 문득, 나는 이 녀석이 지난번과 말투가 다르단 걸 깨달았다.

그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지금이 본연의 말투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말투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괴짜?”

“천성 무인이랄까? 정정당당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일단 일대일 승부를 선호하긴 해.”

“악마가 무인이라고?”

헛소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비웃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러나 레오네는 딱히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대꾸했다.

“만약 둘이서 덤비면 말 그대로 ‘불같이’ 화를 낼 거야. 권능도 마음껏 쓸 테니 우리 둘 다 순식간에 잿더미가 될걸.”

“그럼 어쩌자고.”

“분담하자는 거야. 한 명이 카짓타를 맡을 동안, 나머지 한 명은 학장을 구하는 거지. 시간만 끌면 돼. 어차피 저 악마는 이 지하 감옥에 묶여 있으니까, 구출이 끝난 다음엔 부리나케 도망치면 돼.”

“…….”

괜찮은 작전이다.

이 녀석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말이다.

일단 속는 셈 치고 이 녀석 작전대로 진행한다고 쳐보자.

그럼 중요한 건 하나다.

“그래서 누가 저놈이랑 싸울 건데?”

당연히 군단장이라는 거물 악마를 상대로 시간을 버는 게 훨씬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레오네가 그 사실을 알 거다.

물론, 웬만하면 내가 악마와 싸울 생각이지만…….

별개로 레오네의 의중이 궁금하다.

“네가 정해.”

레오네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느 쪽이건 상관없거든. 다재다능한 몸인지라.”

“…….”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더 자신 있는 쪽은?”

“음. 아무래도 구출 쪽이겠지? 기척을 감추는 데 자신 있어서.”

스륵…….

그 말과 동시에 레오네의 기척이 희미해졌다.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그랬다.

‘꼭 허깨비 같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악마를 맡을게.”

“잘 생각했어.”

레오네의 눈가가 살짝 휘었다.

애매모호한 반응이다.

뜻밖의 반응에 즐거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예상했던 반응에 만족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녀석한테 궁금한 게 한두 개가 아니지만…….

질문은 올더슨 학장을 구한 다음에 해도 될 것이다.

“그럼 수고해.”

레오네가 손을 흔들더니, 곧 캄캄한 지하 감옥의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레오네가 있었던 곳을 보며, 일단 한 가지는 깨달았다.

저 녀석, 인형이 아니다.

‘…음.’

우선은 여기까지.

나는 머릿속을 비운 다음, 카짓타라는 이름의 군단장을 직시하며 일부러 기척을 드러냈다.

가까이 갈수록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저벅-.

[…….]

이목구비가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타오르는 화두火頭의 내부에선 청염靑炎이 일렁거렸고, 그것이 눈과 입 같은 모양이 돼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변상증이 아니다.

불꽃을 볼 때 시선이 마주쳤다는 감각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

그것과 별개로, 나는 악마의 불꽃에 잠깐 시선이 뺏기고 말았다.

어쩐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보석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대는…….]

심지어 이놈은 말도 할 줄 알았다.

[이 노인을 구하러 온 것인가?]

“…….”

넋 놓고 있던 나는 한 박자 늦게 멈칫했다.

‘그대? 노인?’

내가 지금 악마와 대화하고 있는 게 맞나?

“넌 뭐냐?”

[…나는 지옥불의 군단장 카짓타. 사정이 있어서 이 뇌옥의 수문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대는?]

“…루안 배드니커.”

반사적으로 대꾸한 순간, 카짓타의 불꽃이 묘한 기색으로 일렁거렸다.

화륵-.

전신이 훑어지는 듯한 느낌.

나는 살짝 등골이 서늘했다.

이 불꽃의 안구를 가진 존재에게서, 고수 특유의 탐색하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 수준을 가늠하고 있잖아.’

헛웃음이 나올 것 같다.

악마 무인.

개소리로 치부했던 레오네의 말이, 이제는 진실처럼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대에게서 나와 같은 기척이 느껴진다.]

“난 악마가 아닌데.”

[생명체 고유의 기척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인으로서 쌓은 내력, 그 속성을 말하는 것이지. 그대는 분명 나처럼 불꽃을 품고 있다. 아니, 굳이 따지면 태양에 좀 더 가까운가.]

“…….”

[하지만 그와 별개로 육체는 아직 발전 도중이다. 아쉽군. 인간의 삶은 찰나라고 들었다. 십 년……. 최소 오 년만 더 무르익었다면 좋은 승부가 됐을 것을.]

나는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네 상태도 정상은 아니잖아.”

[불완전한 현현이긴 하지. 그것까지 감안해서 말한 것이다.]

카짓타가 나를 보더니 선언하듯 말했다.

[어린 무인이여, 돌아가라.]

“뭐?”

[침입자는 모두 죽이는 것이 나의 임무지만, 현재 그대가 서 있는 위치는 아슬아슬하다. 지금이라면 못 본 체해 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

대체 이 악마는 얼마나 나를 놀랠 생각인 걸까.

한눈에 내 내력을 꿰뚫어 본 다음엔 자비를 입에 담는다.

불현듯 착한 악마 운운하던 올더슨 학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개체를 두 눈으로 봤으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

악마에게도 별종이란 게 있었음을 말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어. 됐으니까 빼지 말고 한번 싸워 보자고, 악마 무인 양반.”

[…우둔한 짓을.]

카짓타가 낮게 읊조린 순간이다.

푸화아악!

카짓타의 불꽃이 강풍을 맞은 것처럼 크게 번졌다. 촛불이 순식간에 산불만큼이나 불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공기 온도가 급격하게 달궈지며 열풍이 휘몰아쳤다.

“──.”

강력한 열기에 땀조차 바싹 마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안구에서도 거북한 열기가 느껴졌다. 열염熱炎을 방출하는 카짓타, 불꽃으로 된 육신이 두 배는 커진 듯했다.

[지옥불은 화염에 내성을 갖춘 악마조차 버티지 못하는 열기다. 어린 무인이여, 지금의 넌 나와 겨루기는커녕, 내게 닿을 수조차 없다.]

“…….”

[다시 권고하겠다. 물러나라. 그대에겐 아직 이른 시련이다.]

허언은 아니다.

웬만한 열기엔 꿈쩍도 하지 않는 나조차 일순 주춤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들이닥치는 열풍과 별개로 대단한 놈인 것도 맞다.

‘불꽃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고 있구만.’

그 덕분에 바로 뒤쪽에 묶여 있는 올더슨 학장은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쇠창살을 녹일 정도의 열기가 지속적으로 방출되고 있는데도 그랬다.

그럼 레오네는?

그 녀석은 저 열기의 흐름을 파악해서, 올더슨 학장의 근처까지 이동할 수 있을까?

‘…….’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나는 레오네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지우며, 홀린 듯 지옥불을 눈에 담았다.

어쩐지 정수리가 간지럽다.

뇌가 말랑말랑한 것 같기도,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불쾌하지는 않다.

살짝 애가 타긴 했지만, 그걸 빼면 오히려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닿으면 인정한다는 건가?”

어쩐지 부나방이 된 듯한 심정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왜 명을 재촉하는가…….]

저벅-.

카짓타의 읊조림을 한 귀로 흘리며 발을 내딛는다. 동시에 염화제일공을 운용했다.

화륵, 단전에서 일어난 내력의 감촉이 여느 때와 다르게 느껴졌다.

‘차갑다.’

카짓타의 지옥불 때문인 듯하다.

신선하고, 그 이상으로 재밌다.

당연하지만 내가 내부에서 차가움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쿵.

한 발자국씩.

바닥에 흔적을 남기듯 힘을 줘서 걷는다.

언뜻 보면 힘겨운 걸음으로 보일 테지만 그렇지는 않다.

굼뜬 발걸음의 이유는 내부에 있었다.

체내의 진기를 평소처럼 순환했고, 기분 좋은 서늘함이 혈도를 내달린 순간 불현듯 진기 운용의 보완점을 깨달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수십 년을 지났던 길.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풍경 속에서 새로운 요소를 발견한 듯했다.

[…이 무슨.]

다섯 발자국쯤 내디뎠을 때, 카짓타의 허망한 목소리가 다시 귓전에 닿았다.

이번에도 무시했다.

대신 지옥불의 열기를 온전히 받아들여 보았다.

열기 때문에 반쯤 떴던 눈을 부릅떴다.

반쯤 벌린 입술엔 불길이 스며든다.

불꽃을 마신 듯이 기도가 화끈 타올랐다.

그러나 열통 속에서 감각은 예리하게 곤두섰다.

사막 한가운데서 바싹 말라 죽어가는 사람이라면, 피부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의 감촉이 더없이 선명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야말로 체내에 스며드는 것처럼 말이다.

‘…아.’

내부에 꿈틀거리는 진기.

흐름만이 아닌, 그 구성 요소가 낱낱이 느껴졌다.

내게 있어 체내 진기란 불꽃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이에겐 액체 같은 느낌이라고 들었다.

애초에 진기- 즉 마나는 혈맥을 통해 흐르기 때문에 틀린 표현은 아닐 거다.

굳이 따지면 내 감각이 괴상한 편이겠지.

그러나 감각의 영역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직접 겪기 전까지는 그렇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나는 비로소 체내 진기를 물水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귀중하고, 각별한 경험이었다.

내가 줄곧 품고 있었던 진기는 불꽃이 아니었다.

무엇으로든 변하는 게 가능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에너지였다.

이 차가움, 서늘함.

‘차가운 불꽃.’

문득 떠오른 단상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불현듯 찾아온 영감의 단초였다.

염화제일공의 삼 단계. 아직 논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화아악-.

받아들인 지옥불이 내부를 시커멓게 짓태웠다.

[…….]

어느새 카짓타와의 거리는 한 발자국까지 좁혀졌다.

카짓타의 불길이 거세게 일렁이는 게 시야에 담겼다. 꼭 빗줄기를 맞은 모닥불 같았다.

열기의 근원지에 닿았지만, 반대로 격통은 사라졌다. 염화제일공이 지옥불을 흡수하여 어느 정도 적응을 마친 것이었다.

체내 진기의 서늘함이 다시금 열기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지옥불이라기엔 좀 미지근한데.”

[…….]

“좀 더 온도를 올릴 수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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