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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62화 (162/172)

162화

도발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눈앞의 존재는 악마다.

짐승을 상대로 욕지거리를 내뱉어 봤자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의 잣대로 이놈들의 속을 긁는 게 가능할까 싶다.

그러니 방금 꺼낸 말은 내 솔직한 심정의 토로였다.

[이해했다.]

카짓타가 말했다.

특유의 이글거리는 목소리는, 지척까지 접근한 나를 직시하면서도 오히려 차분한 빛을 띠고 있었다.

[태양의 열기를 그대로 담은 듯한 그 내력, 소유자에게 열에 대한 내성까지 보유하게 만들어 주는군.]

“…….”

[나의 오판을 인정하겠다.]

물론 그러한 목소리를 내뱉는 중에도 이 화마火魔의 불꽃은 포악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꼭 춤을 추는 것처럼 말이다.

스으으- 서서히 공기가 달궈진다.

내가 슬그머니 긴장감을 끌어올릴 때, 카짓타가 선고하듯 말했다.

[그대는 나와 겨룰 자격이 있다.]

쿠오오오오오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열풍이 휘몰아쳤다. 여태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친 기류, 카짓타를 중심으로 회오리가 일어났다.

끼기기기긱……!

쇠창살이 흔들리며 불협화음을 냈다. 소름 끼치는 소리였지만, 귀를 틀어막을 새도 없었다.

턱.

카짓타의 손바닥이 복부에 얹어졌다. 공격이 아니다. 자연스레 손을 가져다 댄 듯한 여상한 동작이었다.

그러나 빨랐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음에도 내가 반응하지 못했다. 닿기 직전 복부에 강기를 두른 게 고작이었다.

응축된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휘몰아치던 열기가 멎었다. 일순이었다.

푸화악!

뒤이어 사라졌던 불꽃이 손바닥에서 분출됐다.

발경發勁의 묘리였다.

꽈아아아아아앙!

복부에 둘렀던 강기가 유리처럼 박살 났다. 한발 늦게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과 함께 등에서도 격통이 느껴졌다.

‘염병…….’

순식간에 감옥의 끝까지. 수십 미터는 날아가서 처박혔단 걸 깨닫는다.

마시멜로처럼 휘어진 쇠창살이 보였다. 고온 때문에 흐물흐물해진 상태로 충돌했더니 변형된 모양이었다.

“쿨럭…….”

울컥 올라온 핏물을 억지로 삼켰다.

심대한 타격, 방금 일격으로 정신을 잃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칼자크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나.’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벨트, 사파이어 스네이크의 냉기를 지닌 장비가 어느 정도 불꽃을 흡수했다.

운이 좋았다.

만약 가슴, 혹은 머리에 맞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잇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이 진탕 뒤집힌 상태였지만, 사지를 움직이는 데에 무리는 없었다.

[일어설 줄이야.]

카짓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좀 튼튼해서…….”라는 말을 내뱉으려다 주둥이를 닫았다.

그딴 말을 내뱉을 여유까지 긁어모아 속을 안정시키는 게 먼저였다.

꽈앙!

물론 상대는 얼간이가 아니다.

겨룰 자격이 있단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카짓타가 지면을 걷어차며 내게 쇄도했다.

‘태세 전환이 너무 빠르잖아.’

방금까지만 해도 사람을 있는 대로 무시하더니, 지금은 숫제 숙적을 대하듯 빈틈없는 모습이다.

한참 떨어져 있던 카짓타는 눈 깜박할 사이 코앞까지 닿았다.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나를 압박했다.

진기를 끌어올렸다. 서늘한 불꽃이 전신 세맥을 곳곳이 훑은 순간, 나는 늦지 않게 출수할 수 있었다.

꽈아아아아아앙!

카짓타의 권拳과 나의 장掌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하하!]

이놈이 지금 웃은 건가?

표정이란 게 없는 놈이라, 내가 방금 헛들은 건지 긴가민가했다.

까가가강!

깊게 생각할 새도 없이, 그 상태로 빠르게 공방을 이어간다.

초근접한 거리에서 양팔은 물론이고 다리, 이마, 무릎, 팔꿈치,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공격 수단을 총동원했다.

‘백일식은… 쓰기 어렵겠어.’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제일초식, 작열조차 최소한의 준비 동작과 내력의 집중이 필요했다.

카짓타와의 근접전에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회귀하고 처음 경험하는 극한의 속도전, 단전에서 진기를 끌어올림과 동시에 소모한다.

주먹과 건틀릿.

발과 부츠가 수도 없이 교차한다.

당연하지만 점차 대미지가 쌓이는 건 나다.

파각-.

전신에 두른 강기에 서서히 금이 가는 게 느껴졌다.

수련회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내공의 총량에서 부족함을 느낀 적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카짓타와의 속도전, 소모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내공이 빠른 속도로 바닥을 드러냈다.

- 내공이란 무인의 기초이자 근본, 아무리 넉넉해도 부족하답니다.

- 그러니 루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앞으로 내공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다.’, 이런 오만한 생각은 결코 가지면 안 돼요.

‘멍청한 새끼.’

속으로 자책한다.

왜 이런 충고는 꼭 직접 겪은 다음에야 떠오른 걸까.

“하아아-…….”

뜨거운 숨을 토해낸다.

점차 쌓여 가는 육체 피로와 대미지, 바닥을 보이는 내력, 이제는 호흡까지 벅차다.

지쳐서인가? 조금 다른데.

‘아… 불길 때문이군.’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도 깨닫는다. 머리도 맛이 간 걸까?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

금이 간 강기 사이로 지옥불이 스며든다. 까무러칠 만한 열통이 전신의 피부에서 느껴진다.

인내하며.

동시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허세는 아니고, 미친 건 더욱 아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옥불을 피부로 직접적으로 느낀 순간, 뇌리에 영감이 번뜩거렸다. 다만 아직은 불분명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너울거리는 영감의 단락이 형체 없는 불꽃처럼 일렁거렸다.

나는 반쯤 무아지경이 된 상태로 공격한다. 막는다. 피한다. 막는다. 맞부딪친다. 다시 공격한다. 막는다. 이번엔 피하지 못한다.

빠악!

허벅지에 주먹이 꽂혔다. 순간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했다. 삐걱대는 무릎에 힘을 줘서 간신히 버틴다.

다시 주먹이 맞부딪친다.

뚜둑.

오른쪽 손목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꺾였다.

‘아…….’

격통 이상으로 아쉬움이 몰려왔다.

더.

좀 더 싸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빌어먹을 몸뚱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아직 발전 도중의, 미성숙한 육체가 거슬린다. 어리다. 아직, 너무나도 어리다.

오 년도 아니다.

하다못해 삼 년, 아니 일 년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도 훨씬 좋은 승부를 펼칠 수 있었을 텐데.

이 영감의 단락을 강하게 붙잡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제야 카짓타의 탄식도 이해했다.

이 무인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한 것이다.

결국 승부의 결말이 지닌 바 무공이나 내공, 기교, 순간적인 판단이 아닌…….

육체의 차이로 가려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퍼퍼퍽!

이마와 가슴, 다시 한번 복부를 동시에 가격당했다. 둔탁한 통증에 전신을 내달렸다.

컥, 하는 공기를 내뱉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훌륭하다.]

그리고 폭우처럼 쏟아지던 공격이 멎었다.

사방을 뒤덮었던 화염 또한 사라졌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짓무른 피부를 바라봤다. 흉한 모습이었다.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겠다. 루안 배드니커.]

“…….”

잔불 같은 목소리였다.

다 식어서, 꺼져 가는 듯한 목소리로 카짓타는 전투의 종막을 고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아쉬움만이 짙게 느껴졌다.

‘이곳인가.’

아카데미에서 위기를 마주한 순간부터 떠올렸지만, 일부러 외면했던 내 최후의 수단.

영산의 가호.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나는 회귀하게 되는 건가.

‘…아니.’

생각했고.

“아니야.”

일부러 목소리까지 냈다.

[……!]

그러고 싶지 않아서 일어났다.

내공은 이미 바닥을 보였지만, 아직 몸뚱이는 움직였다.

그렇다면 승률이 전무全無는 아닐 터다.

육체의 비명을 무시한 채 허리를 폈다.

척추와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강하게 맞은 왼쪽 허벅지는 감각이 없어서, 화살을 맞은 사람처럼 절뚝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일어서는가.]

“그래.”

[어째서.]

“아직 할 만하니까.”

[…그런가.]

카짓타의 청염이 다시 일렁거렸다.

[존중하겠다.]

푸화악, 다시 한번 열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그 모습에 픽 웃고 말았다.

정말 최후까지 방심이라곤 하지 않는 놈이다.

무인으로서 나를 인증했다는 방증이니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얄미운 행태다.

쿵.

발걸음을 내딛는 카짓타의 모습이 느릿하게 다가왔다.

찰나의 시간이 쭉 늘어났다.

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두뇌로 승산을 도모했다.

다행히 이번엔 백일식을 펼칠 정도의 여유가 있지만, 내부 진기는 이제 극소량밖에 남지 않았다.

기껏해야 앞으로 한 번이 한계일 터.

‘하지만.’

알고 있다.

지금 남은 진기로 백일식을 전개해 봤자 필패다.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뭐가 있지?

찌릿-.

전신에 입은 화상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집중력을 앗아가는 요소였다.

나는 고통에 대한 내성은 제법 갖춘 편이었지만, 확실히 이 열통은 성가시다. 꼭 전신에 불길이 들러붙은 것처럼 거슬린다.

‘…전신에 불길?’

문득 떠올린 감각이 뇌내에 아른거리던 영감과 맞닿았다.

나는 다시 한번 피부의 열통에 집중했다.

염화제일공의 운용이 끊긴 시점부터, 카짓타가 방출한 지옥불이 전신 피부에 맞닿았다.

덕분에 아주 진득하게 느꼈다.

지옥불의 열기란 놈을 말이다.

‘전혀 미적지근하지 않았어.’

나는 허세를 섞어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염화제일공.

이 심법은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화염을 흡수할 수 있다.

그러니 카짓타의 불길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건, 지옥이 나의 천하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럼 해결 방법은?

‘쉽지 뭐.’

생각의 영역을 늘리면 된다.

나의 천하天下를 확장하는 것이다.

콰가가가각-!

지금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 무인이란 작자들이 불현듯 들이닥친 영감에 목숨을 거는지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열통을 잊을 만큼의 쾌락이 등허리를 타고 질주했다.

나는 피부에 남은 지옥불의 열기를 온전히 체내로 흡수했다.

그리고 잠시간, 나의 육체 내부엔 두 종류의 불꽃이 동시에 휘몰아치게 됐다.

지옥불과 차가운 불꽃.

홍염紅焰과 청염靑焰.

‘이걸 어떡하지?’

가장 좋은 건 합치는 것일 테지만, 지금의 내겐 어려웠다.

놀랍게도 이 지옥불이란 녀석은 화염인데도 쉽게 내 내력과 섞이지 않았다.

‘따로 전개하는 수밖에.’

위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그게 가장 승산이 높다.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진 건 그때였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천장이 무너지며, 빛과 어둠을 두른 한 자루의 도검이 나와 카짓타 사이에 꽂혔다.

[이건……!]

카짓타의 경악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어쩐지 차분한 심정으로 그 도검을 눈동자에 담았다.

유려한 곡선을 지닌 한 자루의 도刀.

칼자루 끝에 새겨진 특유의 태극 무늬.

대사형의 무기인 음양도陰陽刀였다.

“…….”

이게 왜 여기에, 라는 생각도 하기 전에 칼자루를 잡았다.

분질러진 게 오른쪽 손목이라 다행이다.

검을 다루는 건 왼손이 더욱 익숙해서 그렇다.

‘음양도가 품은 내력.’

이 신비한 도는 서로 극에 위치한 모든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합치는 게 가능하다.

음陰과 양陽.

천하에서 가장 상반되는 두 가지 기운조차 온전하게 합칠 수 있는 신병이기.

그것이야말로 음양도의 진가다.

콰가가가가각!

즉 다른 종류의 화염을 합치는 것 따위, 음양도에겐 전혀 어려울 게 없다.

나는 망설임 없이 남은 내력을 모조리 쏟아부었고, 음양도는 두 개의 불꽃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화아아아아악-!

그리고 홍염紅焰과 청염靑焰이 뒤섞인 순간, 있을 수 없는 색의 불길이 탄생했다.

[…자색 불꽃.]

카짓타가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칼자루에서부터 용솟음하는 화력을 느꼈다.

동시에 내가 알던 모든 검술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 어떤 검법도 이 불길을 다루는 데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오직 감각만으로.’

나는 몸이 움직이는 대로, 가장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어느새 도극은 카짓타를 겨냥하고 있었다.

“…2차전이다, 카짓타.”

체내에 받아들이니 알겠다.

지옥불이 가진 특징, 성질, 그 열기까지.

동시에 깨닫는다.

“좀 더 뜨거워져 보자고.”

이 자염紫焰은, 능히 지옥불을 삼킬 수 있을 것이다.

* * *

레오네는 기척을 감춘 채 올더슨 학장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지하 감옥의 구조는 충분히 알고 있다.

물론 길 따위 몰라도, 약화된 카짓타의 기감을 숨기는 건 레오네에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착실히 올더슨 학장과의 거리를 좁히던 레오네는…….

“…….”

문득 후끈 달아오른 열기에 뒤를 돌아보았다.

군단장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루안 배드니커의 모습이 보인다.

‘정면에서 붙으면 어떡하나.’

우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군단장이다. 일개 영도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뜻이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싸우다가, 학장의 구출이 성공하는 즉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어야 했다.

애초에 작전도 그리 짜지 않았나.

내심 혀를 찬 레오네였지만, 얼마 안 가 그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

루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안구가 익고, 피부가 녹고, 손목이 부서진 채로 군단장과 끈질기게 수를 교환했다.

지옥불이 주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저것은 단순히 육체만을 짓태우지 않고, 영혼 자체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 정신력이 어설픈 자라면 손끝에 스친 것만으로 주저앉을 것이다.

루안은 아니었다.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로 오히려 웃었다.

레오네는 잠깐 멍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았다. 고난을 앞에 두고 미소를 짓는 얼굴이 유난히 찬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곧 한계다.

정신은 결코 육체를 이길 수 없다.

힘줄이 끊긴 자는 검을 쥘 수 없고.

척추가 부서지면 일어설 수 없다.

육체가 한계에 다다른 루안은 곧 잿더미가 될 거다.

저 정도 수준의 무인이라면 아마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을 터.

그런데도 루안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

고통만으로는 꺾을 수 없는 인간이 있다.

레오네는 그러한 인간들을 좋아했다. 되도록 오래 살았으면 했다.

불현듯 치솟은 바람은 곧 강한 충동이 됐다.

이 자리에서, 예정에도 없던 무리한 짓을 저지를 충동이 말이다.

‘충동 또한 인간의 특권이지.’

큭큭큭……. 웃음을 흘린 레오네가, 급작스럽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어둡고 후끈거리는 지하, 캄캄한 천장 아래.

레오네는 오른손을 가슴 위에 얹은 채 기도했다.

“…거룩하신 여섯 심판자시여. 가장 공정한 신이시여. 기만하되 악의는 품지 않는 초월자시여. 당신의 대행자에게 시련이 닥쳤나이다. 바라건대 우리로 하여금 온갖 거짓과 눈속임을 간파하게 해주시고 적들을 징벌할 힘을 내려 주소서. 그럼으로써 당신과 우리 사이에 합당한 거래가 오갔음을 증명해 주소서.”

우웅-.

레오네의 전신에서 검붉은 기운이 홍염처럼 피어올랐다.

“무채색無彩色의 심판자시여, 물러설 수 없는 투쟁에 휘말린 당신의 사도를 굽어살피소서. 이것이 필요한 고난이라면 그에게 강대한 힘을, 힘이 불가하다면 한마디 조언을, 조언마저 불가하다면 한 줌의 축복이라도 내려 주시기를.”

캄캄한 지하 감옥에 소용돌이치는 불꽃.

그 불꽃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붉게, 레오네의 눈동자가 타올랐다.

“…감히 이 흑교주가 간청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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