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건물 바깥만 배회한다는 놈들이 왜 갑자기 미친 듯이 달려오는 걸까?
생각을 이을 새도 없었다.
가장 선두에 돌진하던 인형과 눈이 마주쳤다. 어른 인형은 괴성을 터뜨리며 돌진에 더욱 박차를 가하더니, 이판사판 몸통 박치기로 창문을 부쉈다.
와장창!
시발, 저거 안 부서진다며.
그냥 아린이 한 말 전부를 반대로 생각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 찰나…….
건물 내부로 진입한 인형이 나를 노려봤다.
곰 인형처럼 생긴 녀석이었지만, 폭신하다는 인상은 쥐꼬리만큼도 없다.
들쑥날쑥 돋아난 이빨에선 걸쭉한 타액이 흘러내렸고, 눈동자는 핏빛으로 번뜩였다.
이리저리 헤지고 찢어진 인형 탈엔 꿰맨 자국도 있었는데, 어째 사람 피부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봉제 인형에 인간을 기워 붙인 듯한 끔찍한 모습이랄까.
탓.
일단 올더슨 학장을 업은 상태라, 정면에서 맞부딪치지 않고 도약해서 피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기파가 제법 강하다.
왜 이놈들을 [어른 인형]이라 불렀는지 조금은 알겠다. 건물 안에 있는 인형들과 비교하면 딱 어른과 아이의 차이였다.
…물론.
직전에 싸운 카짓타와 비교하면 벌레 수준이다.
학장 때문에 동작이 큰 기술은 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 순간, 방금 싸움에서 카짓타가 보였던 발경이 떠올랐다.
‘써볼까.’
발경의 묘리는 나 또한 어느 정도 꿰고 있다. 구사하는 데에 문제는 없을 거다.
턱.
곰 인형을 지나치며 머리카락에 손바닥을 얹은 다음, 진기를 운용했다.
파앙!
직후 곰 인형의 머리가 그대로 터졌다.
“우웩.”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악취만이 아니었다. 머리가 터지며 검은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찌꺼기도 섞여 있었다.
‘이래서 맨손이 싫다니까.’
나는 손에 묻은 검은 핏물을 올더슨 학장에게 닦으며 앞을 보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인형 놈들에게 후각이라도 있는 걸까.
다수의 어른 인형이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피를 봐서 그런지 눈이 훼까닥 뒤집어졌다.
그래도 이제 좀 악마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만족스러웠다. 조막만 한 인형들을 백일식으로 태울 때보단 심정적으로 낫다.
사실 몇 놈이 몰려들건, 완전히 포위당하지만 않으면 크게 위험하지 않은 상대들이지만…….
아무래도 기절한 올더슨 학장이 거추장스럽다.
나는 학장을 오른쪽 어깨로 둘러업은 다음, 복도를 내달렸다.
당연히 인형 놈들은 특유의 괴성을 내지르며 날 쫓아왔다.
‘우라지게도 많구만.’
뒤에 쫓아오는 놈들만 문제인 게 아니다.
곧 전방에서도 창문을 부수며 어른 인형 몇 마리가 난입하더니, 나를 덮쳐왔다.
스릉-.
빈손으로 음양도를 뽑는다.
지금은 이 무기가 가장 좋다.
동작이 큰 백일식은 사용하기 어렵고, 칠죄검은 강검强劍에 적합한 무기다.
저런 뭉친 솜덩어리가 상대라면 날카롭게 벼려진 음양도야말로 제격이다.
스가가가각!
대충 인형을 여덟 마리쯤 베었을 때 1층 식당에 도착했다.
콰당!
문을 열기엔 손이 부족해서 발로 걷어찼다. 우지끈, 입구 문이 나가떨어지며 내부 상황이 드러났다.
“오, 오지 마……!”
“테일러, 이 등신아! 엎드려!”
안쪽도 가관이었다.
이미 대형 인형 한 마리가 침입해 있었고, 작은 인형도 수가 제법 된다.
생도들은 길쭉한 식탁으로 방벽을 세운 채 필사적으로 응전하고 있었다.
다행히 죽거나 크게 다친 녀석은 없었다.
어른 인형과 싸우고 있는 건 4층에서 만났던 기사 생도, 지돈이었다.
지금 가장 위험해 보이는 녀석이기도 했다. 혼자서 어른 인형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등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마가 깨졌는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한쪽 팔도 격전 중에 부러졌는지 덜렁거렸다.
나는 비전투 인원, 구석진 곳에 숨어서 벌벌 떠는 생도들을 보았다.
한심한 모습이지만, 사실 저게 맞다. 괜히 전투에 끼어들어서 짐짝이 되기보단 숨는 게 맞는 것.
“학장님 좀 부탁한다.”
“어. 어……?”
일방적으로 학장을 맡긴 다음, 즉시 전장에 난입했다.
우선 가장 위험해 보이는 지돈에게.
싸우고 있는 어른 인형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퉁……!
인형이 머리째 떨어지다니, 공처럼 날아갔다.
“이, 일격에…….”
지돈이 경악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선배, 잘 버텼어.”
짤막하게 활약을 치하한다. 진심이었다. 지돈이 버티지 못했다면 여기 있는 생도들은 모두 죽었다.
어깨를 살짝 두드린 다음, 나머지 인형들을 정리했다.
“시발……! 물러서지 마! 여기서 지면 어차피 다 죽어!”
의외로 선두에서 싸우고 있는 건 루소와 그 따까리들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루소가 거친 목소리를 토해 내며 인형과 맞서고 있었는데, 얼마나 전투에 열중했는지 아직도 내 접근을 깨닫지 못했다.
스걱.
인형 놈들의 위치가 절묘해서 일 합에 모조리 베어낼 수 있었다.
“어……?”
순식간에 적의 전멸을 확인한 루소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신 차려.”
나는 나란히 서 있는 놈들의 뺨을 연속으로 후려쳤다.
그리고 멍한 눈빛에 빛이 돌아오는 걸 확인하며 말했다.
“모두 일어설 수 있지? 상황 파악은 했을 거라고 본다. 여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
이 지옥에서,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규칙이 붕괴했다.
바깥만 배회하던 어른 인형이 창문을 부순 채 난입했고… 안전이 보장됐던 방도 이제는 위험하다.
“그,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일동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사실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설픈 모습을 보이면 이놈들의 불안감만 가중시킬 것이다.
“옥상으로 가자.”
“오, 옥상?”
“하지만 옥상에선 자칫 잘못하면 갇힐 수도…….”
자칫 잘못하면 갇힐 수도 있겠지.
생도들이 서로 눈치를 보는 가운데, 지돈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오히려 갇히는 게 낫다. 적어도 포위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엔 어른 인형이 득실거리고, 건물 내부에 있는 방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옥상까지 대피한 다음, 하나뿐인 입구를 틀어박고 농성을 벌이는 게 낫다.
물론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이런 시급한 상황에선 올바른 판단을 늦게 내리는 것보다, 틀린 판단이라도 빨리 내리는 게 낫다.
생도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며 복도를 질주한다.
크아아아아아아-!
어른 인형과 작은 인형이 연이어 덮쳐왔지만, 음양도를 휘두르며 어렵지 않게 격파.
그리고 내심 내가 쓴 검법에 놀라고 말았다.
‘음…….’
군더더기 없는 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칼날이 쭉쭉 뻗어 나간다.
그 이유가 음양도가 보기 드문 신병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카짓타와의 일전.
전신 화상을 입으며 불꽃의 본질에 대해 한층 더 깊게 이해하게 됐고…….
내공 운용에 있어서도 깨달은 바가 적지 않았다.
물론 단전은 아직 허전한 상태였지만, 그러한 깨달음 덕분에 얼마 없는 내공만으로 검기를 두르고, 도풍을 날릴 수 있었다.
2층을 지나 3층에 이르고, 4층도 지나쳐 옥상에 당도했다.
계단을 부술 듯 짓밟으며 쫓아오는 인형 무리가 보인다.
“빠, 빨리 닫아!”
루소가 급히 문을 닫았다.
이걸로 막기엔 역부족인데, 문고리에 끼울 만한 게 없을까?
단단한 거, 아무튼 단단한 거.
나는 즉시 허리춤의 칠죄검을 뽑은 다음 문고리에 끼웠다.
[연자여?]
‘죄송.’
무신한테 짤막하게 사과한 직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떨렸다.
쿵……! 쿠웅……!
“…….”
문 너머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무식하게 머리를 찧기라도 하는 듯한 소리였다. 철문의 형태가 조금 우그러지고 있기는 하지만,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잠깐 부탁해.”
“맡겨 다오.”
그나마 가장 믿을 수 있는 지돈에게 말한 다음, 학장에게 갔다.
“상태는 어때?”
마침 학장을 돌보고 있는 게 아린이라서 그리 물었다.
“기, 깊게 잠드신 것 같아. 이거… 올더슨 학장님 맞지? 어디 계셨어?”
“지하 감옥.”
나는 짤막하게 대꾸한 다음, 올더슨의 복부에 손을 얹었다. 그런 다음 육체 내부를 관측한다.
“…….”
난장판이다.
잔뜩 엉킨 기혈과 날뛰고 있는 마나. 속으로 혀를 찼다. 꼴을 보니 의식이 돌아와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깨어나면 얘기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나는 대마법사의 체내에 억지로 진기를 주입한 다음, 일단 날뛰고 있는 마나만이라도 진정시켰다.
“쿨럭……!”
잠시 후 올더슨이 거칠게 기침하며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잔뜩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자네는……?”
“루안 배드니커입니다.”
“배, 배드니커!?”
옆에 서 있던 아린이 오히려 더 놀랐다.
그러고 보니 저 선배한테는 내 성을 밝힌 적 없었던가?
“배드니커라면… 쿨럭. 그런가……. 본교에 오기로 했던… 수련회의 영도로군.”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이면 세계고, 붙잡혀 있던 학장님을 막 구출한 상황입니다.”
말을 내뱉는 도중, 학장의 상태가 상당히 안정됐다는 걸 느끼며 손을 거뒀다.
“…그렇군.”
올더슨 학장이 차분한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대마법사라는 위치를 허울로 딴 건 아닌 듯, 크게 당황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도 호들갑 떠는 기색은 없었다.
“계속 말해 주게.”
“이면 세계에 있는 인형, 아마 인형 탈을 쓴 악마 놈들이 갑자기 흉포해졌습니다. 여긴 어떤 건물의 옥상이고, 저 철문 너머엔 폭주한 악마가 득실대죠. 까놓고 말하면 위기입니다.”
“음. 이해했네. 그렇다면, 일단 지금 상황부터 해결해야겠군.”
올더슨 학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장님?”
“잠깐 기다리게.”
그 자리에 선 채로 심호흡한다.
그 순간 나는 올더슨을 중심으로 꿈틀거리는 마나의 격동을 느꼈다.
‘이건…….’
호흡을 고르듯, 몇 번이나 숨을 마시고 토해 내던 올더슨이 문득 입을 열었다.
“…선포하노니.”
“……!”
이제는 마나의 격동을 다른 생도 녀석들도 깨달은 듯하다.
올더슨 학장의 로브가 세차게 펄럭였다.
다섯, 여섯, 일곱 개나 되는 마법진이 중첩되며,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회전했다.
“이곳이 나의 왕성일지어다.”
화아아아아악-!
빛으로 된 분수대가 현현한 듯했다.
올더슨 학장을 중심으로 치솟은 거대한 빛무리는 하늘에 닿은 직후, 작은 입자로 나뉘어서 건물 전체로 쏟아졌다.
하늘하늘하게 떨어지는 모습은 빗물보단 눈송이 같았다.
까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들리며, 건물 전체가 떨렸다. 나는 무수히도 많은 사악한 기척이 소멸하는 걸 보았다.
“…모두 안심해도 좋네. 이제 이 건물은 안전할 것이야.”
올더슨이 빙긋 미소를 지은 순간, 생도들이 환성을 터뜨렸다.
몇몇 심약한 녀석은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엉엉 울음까지 터뜨렸다.
꼭 수십 일을 조난당했다가 겨우 구출받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지옥 같은 곳에 끌려와서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
불현듯 이면 세계에 끌려온 생도들.
하루하루 공포 속에서 살며, 언제 죽을지 떨다가 처음으로 믿을 수 있는 어른을 만났다.
심지어 아카데미 최강의 실력자인 올더슨 학장을 말이다.
긴장이 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괜찮으니 뚝 그치게. 자랑스러운 카르텔 아카데미의 생도가 이런 일로 울어서 되겠나?”
올더슨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그런 생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
그러니까 나밖에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올더슨의 안색이 깨어난 직후보다 훨씬 파리해졌다는 사실 말이다.
‘…이거 안 좋은데.’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올더슨 학장이 상당히 무리했단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물론 본래 힘의 일 할도 제대로 못 쓰는 상태에서 저 정도 마법을 부린 게 대단하긴 하지만…….
“루안 영도.”
그때 올더슨 학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쉽게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잠깐 둘이서 얘기할 수 있겠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후우…….”
올더슨이 의자에 힘겹게 엉덩이를 붙였다. 나는 대충 방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물통을 건넸다.
“드시죠.”
“고맙네.”
꿀꺽, 물통을 반 정도 비운 올더슨은 눈을 감은 채 잠깐 침묵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게 아니다.
진탕 흔들린 속을 다잡고 있었다.
물은 진작 마셨는데 뒤늦게 목울대가 꿀렁거린다.
예상이지만, 핏물을 다시 삼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군단장이 나를 지키고 있었을 텐데.”
“강적이었습니다.”
올더슨이 내 말에 멈칫하더니 물었다.
“…자네가 쓰러뜨렸다는 겐가?”
“그렇습니다.”
“…….”
올더슨이 잠깐 진위를 가리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루안 배드니커. 철혈공의 막냇자식이자 배드니커의 천덕꾸러기……. 가문의 보검을 판 얼간이라고 들었는데, 모두 위장이었나.”
“…음, 뭐.”
이제는 많이 질리는 오해를 억지로 풀지 않았다.
그때 학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가로 걸어갔다.
깊게 침잠한 눈동자가 핏빛 달을 향했다.
“많이 가까워졌군.”
“가까워졌다니요?”
나는 무심코 물으며 학장을 따라서 달을 보았고…….
그 의미 모를 말을 살짝 이해했다.
정말로 처음 봤을 때부터 달의 모습이 크게 다가와 있었다.
“저 달, 뭔가 있는 겁니까?”
“뭔가 있는 정도가 아니지. 저 핏빛 달이야말로 하덴아이하르 그 자체니까.”
“네?”
나는 두 눈을 깜박였다.
핏빛 달이란 게 이명이 아닌, 진짜 생김새를 의미하던 거였나?
‘아니. 물론 탕타타도 진짜 혓바닥처럼 생기긴 했는데.’
올더슨이 말했다.
“계속 가까워지다, 이 지상과 완전히 맞닿게 되면 이면 세계에 있는 모든 이의 정신을 오염시킬 걸세. 그 여파는 현실 세계까지 번지겠지.”
“그렇다면 그 전에 주모자를 쓰러뜨리면 되겠네요.”
올더슨이 살짝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자네는 내 생각 이상으로 많은 걸 알고 있군. 그 말이 맞네. 하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까?”
학장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자네는 혹시 주모자가 누군지 알고 있나?”
“페리스트 황녀로 거의 확정 짓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네.”
태도를 보니 학장도 알고 있었던 듯했다.
내가 물었다.
“혹시 황족 시해를 염려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네. 제국의 법도는 교인에겐 적용되지 않으니까.”
그럼 뭐가 문젠데.
내가 시선으로 물으니 학장이 입을 열었다.
“부끄럽지만, 내가 이곳에 끌려오고 많은 시간이 지났네. 현실엔 내 흉내를 내는 인형 놈이 있었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수행의 탑]의 전권 또한 황녀가 확보했을 터. 문제는 바로 그 점일세.”
수행의 탑?
“혹 인형을 양산하는 게 문제입니까?”
“그건 아닐세. 루안 영도, 자네도 혹시 [수행의 탑]을 올랐는가?”
“그렇습니다.”
“몇 층까지 올랐나.”
“4층이요.”
“그랬군.”
올더슨이 무거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행의 탑 최상층에는 최종 시련을 담당하는 기갑병이 있네. 단언컨대 내 최고의 걸작품인 전투 골렘이지.”
“아.”
학장의 인형에게서 들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마 황녀는 기갑병의 지휘권을 확보했을 걸세.”
“그게 큰 문제가 됩니까? 혹 그 기갑병이란 게 악마 군단장보다 강하다면 몰라도.”
비꼬려는 의도가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다.
올더슨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지는 않네. 나를 감시하던 군단장은, 비록 약화된 상태라고 해도 막강한 악마였지. 지옥불의 군단장 카짓타……. 내 기갑병으로 맞서긴 힘든 악마일세.”
“…….”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패배하지는 않겠지. 기갑병은 뛰어난 내구성은 물론이고, 내수성, 내후성, 거기에 내열성까지 갖췄으니까. 전투 능력 또한 오러를 쓰는 상급 기사를 가볍게 상회하네. 최소 열 대, 넉넉하게 열다섯 대 정도를 붙이면 카짓타를 상대로도 압승하겠지.”
아직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올더슨이 슬쩍 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기갑병의 모티브는 백기사단일세. 알고 있는가? 삼백 년 전, 백금왕을 보필하던 전설적인 기사단 말일세.”
백금왕白金王.
사후 신으로 추앙받는, 제국의 다섯 왕 중 하나.
그러나 내가 반응한 건 백금왕이 아닌 다른 단어였다.
“…기사단이요?”
“그러하네. 백기사단 전설을 동경하던 나는 기갑병으로 기사단을 꾸리고 싶었기에 막대한 거금을 들여 전투 골렘을 양산했고… 그 수는 총 이백오십 대일세.”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