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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66화 (166/172)

166화

기갑병 이백오십 대라면 내가 자염을 쓰건, 백화를 발동하건, 무슨 지랄을 떨어도 이길 수 없다.

올더슨 학장이 도와주고 다른 영도 녀석들이 합류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황당한 시선으로 올더슨을 보았다.

“아니 뭔 전투 골렘을 그만큼이나 만든 겁니까? 설마 반역이라도 꿈꾸고 있었어요?”

“말했잖은가. 나는 백기사단을 동경하고 있었다고. 전설 속 백기사단의 수가 총 이백오십 명이었네.”

“그러니까 왜 그렇게 많이 뽑았느냐고요. 한두 대, 넉넉잡아 열 대만 만들어 장식해도 충분히 만족할 만하잖습니까.”

“그건…….”

내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노려보니, 학장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고증은 반드시 지켜야 하니까…….”

“…….”

순간 달려들어서 수염 다 뽑을 뻔했다.

“자네 지금 뭐 하나?”

“…음.”

정신이 드니 수염을 움켜쥐고 있어서, 나는 살짝 물러났다.

그리고 새삼 올더슨 학장이 괴짜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비록 내가 만난 건 인형이었지만, 어쨌든 원본의 성격을 그대로 베껴온 거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왕이 이미 강림했고, 모습까지 드러난 상태라면 이 세상 대부분이 악기에 침식당했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 말이 맞네. 건물 바깥은 특히 그 농도가 짙어. 평범한 생도라면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걸세. 즉…….”

“지금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건 [위대한 가문]의 가호 소유자들뿐.”

“그렇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

“혹시 인형도 악기에 영향을 받습니까?”

“무슨 뜻인가?”

“마왕 강림의 전조 현상 그 첫 번째, 악기에 영향을 받은 생물체가 변이한다.”

나는 창문 바깥에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광견병 걸린 짐승처럼 장원을 달리고 있는 인형들이 보였다.

“멀쩡하던 인형이 악기 때문에 악마로 변한 것이라면, 지금 저 꼴도 설명이 갈 것 같아서요.”

“음.”

잠깐 고민하던 학장이 말했다.

“영혼을 담은 인형이라면 가능할 것이야.”

“영혼이요?”

“흔히 말하는 사령술일세. [아브나함 마녀회]는 들어 봤겠지?”

“아, 거기.”

“…대륙의 신비 세력 중 하나일세.”

올더슨은 내 뻔한 연기를 즉시 간파한 다음 설명을 이었다.

“본거지는 물론이고, 그 구성원조차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조직일세. 그곳에 소속된 [인형의 마녀]와는 안면이 좀 있는데…….”

올더슨이 말을 이었다.

“인형에 영혼을 묶어 두면 [저주 인형]이란 게 탄생하지. 그것은 관점에 따라 생명이라 부를 수도 있을 걸세.”

“그럼 작은 인형은 변이한 생명체, 덩치가 큰 어른 인형은 소환된 악마라 보는 게 타당하겠네요.”

악마가 소환되는 것이 2단계다.

그리고 3단계는 일식 현상이지만…….

나는 핏빛 달을 보았다. 태양이 뜨지 않는 곳이니, 일식이 일어났는지 뭐니 알 방법이 없다.

사실 마왕이 이미 강림한 상태니, 전조 현상이나 분석할 때는 아니긴 하지만.

“악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음?”

“학장님, 이 건물은 안전합니까?”

올더슨이 말했다.

“방금 선포한 건 대마법일세. 대규모 전쟁에서나 사용하는 진지 구축용 결계지. 마왕의 악기라고 해도 당장은 침범할 순 없을 걸세.”

“언젠가 뚫린다는 말씀이군요.”

“…증폭 도구가 갖춰져 있고, 내 몸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최소 일주일은 버틸 수 있었겠지만…….”

올더슨은 살짝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대마법사시다 보니,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가大家의 체면 존중해 주는 게 맞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이군요. 일단 이 건물로 확보한 생도들은 당분간 안전하다는 뜻이니까. 상황 또한 간단해졌어요. 황녀만 제압할 수 있다면 이쪽의 승리입니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는 것이지. 이백오십 기의 기갑병이 황녀를 지키고 있을 걸세. 군단장을 이긴 자네의 저력은 놀랍지만, 내 백기사단과 맞서려는 건 만용이야.”

“어떻게 제어할 방법은 없습니까? 강하다는 것, 달리 말하면 위험하단 뜻인데, 그 정도 성능을 지닌 전투 골렘이잖습니까. 유사시를 대비한 안전장치 한둘쯤은 달아 두셨을 것 같은데.”

“으음…….”

올더슨이 난감하다는 얼굴을 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있네. 모든 기갑병엔 내가 직접 가공한 마석이 박혀 있는데, 특정한 리듬으로 마나를 주입하면 동작을 정지하지.”

말만 들으면 지금 이 난항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듯 보이지만…….

저런 쉬운 방법이 있다면 올더슨이 난색을 표할 리도 없었다.

“조건이 있는 겁니까?”

“그렇네. 자네라면… 지금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걸 눈치챘겠지. 내부가 크게 엉켜 있는 상태라, 정상적으로 마나를 운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닐세. 내가 정한 리듬은 상당히 복잡해서, 감도를 맞추려면 최소 10분은 소모될 터.”

“10분.”

올더슨이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네. 불가능한 일이지.”

“아뇨. 10분 정도라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해요.”

“정말인가?”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내가 생각해도 긴가민가한 전법인 데다, 고려할 점도 많아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면-.”

반색한 올더슨이 말을 이으려던 순간이다.

으아아아아아아…….

창문 너머에서 들려온 비명이 올더슨 학장의 말을 끊었다.

나와 학장은 입을 닫은 채 창문으로 향했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아카데미의 장원이 보였고.

그 위를 질주하고 있는 일단의 무리도 보였다.

“저건…….”

아카데미 생도들이다.

학장이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쫓기고 있군. 당장 구해야 하네.”

“그 몸으로요?”

“멀쩡하지는 않지만, 저 정도 숫자의 인형은 문제가 되지 않네.”

“아뇨. 학장께선 조금이라도 힘을 아끼셔야 합니다. 제가 가도록 하지요.”

나는 그리 말하며 가장 앞에 있는 생도의 낯짝을 보았다.

커다란 빵모자를 쓰고 있는 녀석.

“마침 저도 볼일이 있는 녀석이 보여서요.”

* * *

옥상에서 뛰어내린 다음, 가볍게 착지를 마쳤다. 그리고 핏빛이 내려앉은 아카데미 장원을 내달렸다.

‘악기 농도가 수련회 때보다 훨씬 짙은 것 같은데.’

이미 마왕이 강림한 상태니 당연한가?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버틸 만했다. 아마 신수와 계약하며, 항마력이 꽤 오른 듯했다. 아카데미에 오면서도 틈틈이 수련한 보람이 있달까.

‘그 밖의 상태는…….’

레오네 덕분에 육체 상태는 거의 절호조에 가깝고……. 반면 내공은 거의 남지 않았다.

퍼센티지로 따지면 한 5퍼센트 남짓?

앞으로 치러야 할 전투를 고려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하다.

‘그거랑 별개로.’

내부에 희미하게 자리 잡은 악기가, 건물 바깥의 악기와 만나니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개방적으로 체내를 열어젖히면, 악기는 순식간에 육체 내부를 가득 채울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안 되지.’

악기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쳐도, 지금보다 덩치를 불리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어느 시점부터는 숨길 수 없어질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내공이 필요한데.’

단전을 내공이 가득 채운다면, 자연스레 악기의 존재감도 줄어들 터.

일반적으로 소모한 내공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운기조식이지만…….

나는 슬쩍 하늘을 보았다.

태양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핏빛 하늘이 보인다.

이런 곳에서 염화제일공을 백날 운용해 봤자 코빼기만 한 내공밖에 모이지 않을 거다.

물론 방법은 있다.

나는 품에서 영옥을 꺼냈다.

꾸준한 운공을 통해 제법 소모한 영옥은, 이제는 처음의 절반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조금 무식하고, 많이 비효율적인 방법이긴 해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까득.

그걸 입에 넣은 다음 씹는다.

당연하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우라지게도 단단하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끝까지 사탕을 녹여 먹어 본 적 없는 남자다.

반드시 도중에 이빨로 산산이 으깨야만 성미가 풀리는 사내로서, 여기선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상대를 잘못 만난 영옥을 어금니 사이에 끼운 다음 턱에 힘을 가했다.

무려 이빨엔 얼마 없는 내공까지 둘러서 말이다.

까드드득……!

마침내 영옥이 산산이 부서졌다.

박살이 난 영옥 내부에 응축되어 있던 막대한 양기가 봇물 터지듯 폭발했다.

순간 턱뼈에 힘이 풀리며 죄다 뱉어낼 뻔했다. 그럼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에 한 손으로 입을 급히 틀어막았다.

영옥 조각을 꼭꼭 씹어서 삼킨다.

부순 다음엔 형체가 흐물흐물해져서 삼키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목구멍이 타는 것처럼 뜨거웠지만, 어떻게든 견딜 만했다.

꿀꺽-.

영옥을 전부 삼킨 다음, 여전히 내달리며 양기를 체내로 받아들였다.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건 세맥을 멋대로 돌아다니게 놔두고, 당장은 텅 빈 단전을 채우는 데에 주력한 것이다.

물론 염화제일공 덕분에 가능한 기예였다. 평범한 무인이 이랬다간 전신이 잿더미가 돼서 주저앉을 것이다.

‘괜찮네.’

허전했던 단전에 내공이 꽉 차올랐을 때쯤,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글렌 스칼렛과 생도 무리가 보인다.

생도의 숫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얼추 봐도 오십 명은 되는 것 같다.

일단 인형한테 쫓기며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대다수가 눈이 풀려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는 녀석도 보였다.

아마도 악기 때문일 거다.

상태를 보니 한 시간만 더 방치해도 죽거나, 광증에 잡아먹힐 것 같다.

내가 음양도에 손을 얹은 순간이다.

왼쪽에 있는 수풀이 부스럭거리더니, 금색의 섬광 같은 게 번뜩거렸다.

‘빠르다.’

벼락처럼 등장한 인물의 얼굴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바터 굿스프링.

칼날에 맺힌 검기가 황금을 두른 것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콰직.

바터가 무릎에 힘을 준 순간 지면이 살짝 뒤집혔고, 뒤이어 그 신형은 눈 깜박할 사이 생도 무리가 있는 곳까지 치달았다.

스팟-!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른 순간, 어른 인형의 목이 베였다.

일검.

빠르고 깔끔하다.

바터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뒤에서 무기를 갖춘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모습을 드러냈는데, 연령대를 보니 생도는 아니었다.

바터의 부하들일까?

어쨌든 그놈들도 순식간에 전장에 합류하더니, 빠른 속도로 인형을 제압했다.

그중엔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루안.”

헥토르가 나를 보며 반색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인 다음, 일단 바터 일행과 합류해서 인형을 때려죽였다.

인형의 수가 제법 많았지만, 바터가 이끄는 부대의 실력도 대단해서 어렵지 않게 상황을 정리했다.

잠시 후, 모든 인형이 쓰러진 후 바터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리고 깔끔하게 납검하더니, 글렌을 보며 고개를 숙인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황자 전하.”

“…바터 경.”

구면인 걸까? 태도를 봐선 그런 듯하다. 사실 황실과 굿스프링이라면 안면이 없는 게 이상하다.

내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그 대화를 엿듣는 순간, 헥토르 말고도 낯익은 얼굴이 내게 다가왔다.

하얀색 대가리의 주인, 세렌이었다.

“무사했구나.”

“일단은.”

나는 세렌을 보며 물었다.

“너까지 여기 끌려왔을 줄은 몰랐다. 어떻게 된 거야?”

“본관에서 다례 수업을 듣고 있었어. 필기하던 것까지 생생히 기억나는데, 어느 순간 눈을 뜨니 이곳이더라.”

세렌의 대꾸에 내가 멈칫했다.

“본관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고? 확실해?”

“그래.”

연구 동으로 갔기 때문에 끌려온 게 아니었나?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머릿수가 너무 많다.

저만한 인원이 같이 연구 동으로 갈 일은 없을 거다.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연다.

“임시 거점이 있어. 연구 동 건물 중 하난데, 올더슨 학장이 대마법을 사용해서 다른 곳보단 안전해. 일단 거기로 대피하자고.”

“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좀 그래.”

세렌의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

뭔 반응이야?

내가 보니 세렌이 슬쩍 바터가 있는 쪽을 턱짓했다.

“말도 안 됩니다.”

살짝 높아진 언성이 들렸다.

헥토르의 목소리였다.

바터와 헥토르.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본 채 언쟁하고 있다. 의외로 사이가 나쁘지 않다고 했는데, 지금은 딱히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시선이 쏠리자 헥토르가 움찔하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속삭이듯 낮은 어조였지만, 내 귀엔 닿았다.

“…이곳에 있는 생도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죽을 겁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 어차피 마왕을 죽이지 못하면 모두 죽어.”

“그건 그렇지만…….”

헥토르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이 근처에, 비교적 안전한 곳까지만 데려다주는 건.”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황녀가 언제까지 같은 곳에 머무를 것이라곤 장담할 수 없어. 이 넓은 아카데미에서 그 행적을 놓치면 우리의 패배지.”

“그럼 잠시간 이탈을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저들을 인솔하겠습니다.”

“불허한다. 한 명 한 명의 전력이 소중한 상황이야. 지금도 승률이 희박한데, 자네라는 귀중한 인력을 쓸데없는 곳에 낭비할 수는 없어.”

바터가 스산한 어조로 말했다.

“헥토르 배드니커. 긴급 상황에서 제국 특무대의 권한은 황실 기사단조차 웃돈다.”

“…….”

“명령 위반은 중죄란 뜻이다. 알아들었나.”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

바터와 그를 따르는 부대는 황녀의 위치를 알게 된 듯하고…….

곧바로 추적할지, 도중에 만난 생도들을 보호할지 갈등이 생긴 모양이다.

‘황녀가 주모자란 걸 알게 됐나 보네.’

어쨌든 바터는 추적해야 한다는 의견이고… 헥토르는 생도들의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라 대립하는 중인 듯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하기 어렵다.

언뜻 무정해 보이는 바터의 말도 완전히 틀린 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헥토르의 이탈까지 허락하지 않는 건 너무 깐깐하긴 한데.’

어쨌든 저 언쟁엔 딱히 영양가가 없다.

저 녀석들은 모르지만, 학장 덕분에 안전한 장소는 이미 확보했고…….

헥토르 대신 내가 생도를 호위해서, 건물로 데려다주면 되기 때문이다.

슬슬 내가 끼어들려고 하는데, 바터가 빈정거렸다.

“아니면, 배드니커라서 굿스프링의 명령엔 따르기 싫은 건가?”

논지에서 벗어난 말에 내가 발끈했다.

“듣자 듣자 하니까… 이봐요, 버터 경. 말씀이 너무 심하시군요.”

바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버터가 아니라 바터일세. 자네는 루안 배드니커인가?”

픽 웃은 바터가 말했다.

“2차 가호식에서 가호를 하나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그렇다면 자네도 전력으론 그럭저럭 쓸 만할 것 같군. 이 시간부로 내 부대에 합류해서 명령에 따르도록.”

나는 잠깐 멍하니 바터를 보다가 되물었다.

“저는 그쪽 부하도 아닌데 명령을 따라야 합니까?”

“물론이네. 이런 상황일수록 나 같은 사람이 명령권자가 돼야 하니까.”

“댁 같은 사람이 뭐길래.”

“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 그걸 토대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 내린 판단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즉.”

바터의 눈빛이 나를 향했다.

“여기서 가장 강한 사람.”

“그렇군요.”

나는 바터의 담담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런데 저는 주도권을 잡을 생각이 없는데요.”

“…….”

잠깐 멈칫하던 바터가 묘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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