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끈질기게 달라붙는 인형 무리를 뿌리치며 올더슨 학장이 있는 건물까지 돌아왔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족히 세 시간은 걸린 듯했다.
인형 놈들이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들러붙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지만, 정신적 피로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차라리 몬스터와 싸우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
인형 악마는 생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수련회에서 싸웠던 비스트는 물론이고, 영혼을 수거하던 그림 리퍼란 놈조차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상처는 물론이고 생사마저 도외시한 돌진은, 단순히 강함을 떠나 사람을 질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무사히 돌아왔군.”
만신창이로 돌아온 우리를 올더슨 학장이 반겼다.
안색이 떠날 때보단 조금 나아진 상태였다. 아직 숨을 헐떡이고 있는 바터가 대답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학장님. 제국 특무대의 제2단장인 바터 굿스프링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신분을 밝히게 되는 게 유감스럽군요.”
“음… 괜찮네.”
올더슨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터의 대외적인 신분은 아카데미 검술 학부의 교수였는데, 특무대 소속이란 건 그 또한 위장 신분이었다는 뜻.
아카데미 학장의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법도 했다.
어쨌든 그 두 명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등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그사이 건물 내부를 둘러봤다.
글렌과 함께 있었던 생도 녀석들이 보인다. 저놈들의 상태도 조금은 호전된 듯하다. 아까처럼 아예 인사불성은 아니었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악몽이야. 이건 다 악몽이라고…….”
“아으, 아, 으아…….”
“…….”
물론 제정신으로 돌아온 게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우울한 독백을 뱉어내는 생도들을 지나쳐, 그나마 제정신을 붙잡고 있는 녀석들에게로 닿았다.
영도들이었다.
“…루안.”
복도에 퍼질러져 있던 녀석들이 나를 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물론 이 녀석들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정신보단 육체 쪽이 지친 거니 대화는 가능하겠지.
“전부 무사해서 다행이구만. 다들 괜찮냐?”
“괜찮긴 한데…….”
“…이게 대체 뭔 상황인지 모르겠다.”
설명을 요구하는 낯짝들이라, 나는 대충 대꾸했다.
“얼타기는. 지난번에 말했잖아. 아카데미에 교인이 있고, 마왕 소환은 이미 일어났다고. 한마디로 우린 마왕의 이면 세계로 끌려온 거야.”
“즉 생도를 구해야 하는데, 졸지에 같은 신세가 됐다는 뜻인가요…….”
샤를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그렇겠지. 난 다르단다.”
“네?”
“난 내 발로 들어왔어. 잡혀 온 게 아니라 직접 사냥하러. 같은 취급하면 섭하지.”
“…이런 상황에도 농담이 나오다니. 당신도 정상은 아니에요.”
샤를이 고개를 저었다.
농담 아닌데.
상황을 이해한 것과 별개로 혼란이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영도 녀석들이 잠깐 진정할 때까지 놔두고, 대신 에반을 따로 불렀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봐.”
그나마 가장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에반이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네가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나는 어렵지 않게 연구 동을 벗어났지. 별다른 사건 없이 본관까지 도착하긴 했는데, 그 직후에 정신을 잃었어.”
“음…….”
“한 가지 기억나는 건 의식을 잃기 직전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쓰러지는 느낌을 받았단 거야.”
설명을 듣고 나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얼추 이해가 갔다.
“아카데미에 있는 사람 전원이 휘말렸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군.”
“내 생각도 같아. 지닌바 실력이나 정신력, 내성… 그딴 거랑 관계없어. 뭐 어떻게 대처할 여유도 없었으니까. 황녀가 무슨 행동을 저지를 건 예상했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그리고 과격하게 터뜨릴 줄은…….”
에반이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마 아카데미에 상주하고 있는 인원 전부가 이면 세계에 끌려왔겠지. 모두 납치당한 셈이니 하루 이틀은 조용해도 영영 이 일을 숨길 순 없을 거야. 제국에서 반드시 알아채게 될 텐데, 황녀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마지막 말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나도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하루 이틀 안으로 끝낼 생각일 수도 있겠지.”
“뭘 끝내는데?”
“전부 다.”
에반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본 순간이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익-.
건물 전체에 끔찍한 증폭음이 울렸다.
금속의 비명처럼 귓전을 찢듯, 심히 거슬리는 소리다.
‘통신 수정?’
건물 내부에 그렇게 생긴 걸 몇 개 보기는 했는데, 작동이 되는 거였나.
가만히 서 있던 영도, 생도,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학장과 바터까지도 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음. 잘 들리려나 모르겠네. 아카데미 제군 여러분.]
뒤이어 황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책 도중에 내뱉은 것처럼 선선하고, 쾌활한 목소리였다.
[내 이름은 페리스트 스칼렛. 그대들을 이 세계로 초대한 장본인이지. 우선 내 게임에 참여해 준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부터 올리고 싶지만…….]
“…….”
[딱히 그런 걸 바라지는 않는 듯하니,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황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이 세계에 진입한 ‘인간’의 수는 총 613명이지. 인형에게 당해서 영혼이 저당 잡힌 자들은 일단 빼고 말이야. 반대로 아카데미 전역에 퍼져 있는 내 인형은… 총 삼천 하고도 육백.]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번졌다.
언뜻 본 생도들의 표정에서 두려움이 번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걸까.
황녀가 다시 웃더니 말했다.
[물론 올더슨 학장이 내게 선물해 준 기갑병은 더하지 않은 숫자란다.]
“…….”
[지금부터 하루 동안 유예를 줄게. 그 뒤엔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모든 인형이 너희들이 있는 연구 동 12호 건물을 총공격할 거야. 자. 간단하지?]
황녀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속삭이듯 낮게 와닿았다.
[그 전까지 내가 있는 13호 건물로 와서 나를 죽이면 너희의 승리란 뜻이야.]
“……!”
[그럼 진심으로 건투를 바랄게. 부디 룰을 지키면서 즐거운 게임을 하자.]
뚝, 하고 목소리가 끊겼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완전히 미쳤군.”
에반이 혀를 찬 순간, 주변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내, 내일 총공격을 할 거라고?”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나,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아직 하고 싶은 게 얼마나-.”
패닉이 이해가 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업에 집중하며, 청춘을 구가하던 생도들이 갑작스레 이면 세계에 끌려와서 죽음을 선고받았다.
냉정함을 요구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바터가 올더슨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학장님, 어떡하시겠습니까.”
다른 사람 의견은 들은 체도 안 하더니, 그래도 대마법사 정도 되는 양반이라 그런지 존중하는 태도가 엿보였다.
“음…….”
학장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니 바터가 다시 말했다.
“당장 떠오르시는 게 없으면 제 생각부터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한시라도 빨리 최대한의 전력을 끌어모아 황녀를 쳐야 합니다. 하루 내로 황녀를 죽이면 우리의 승리. 반대로 실패는 패배고 곧 전멸을 의미하겠죠.”
“…….”
“공격대 선별 및 지휘는 제가 맡겠습니다. 학장님도 여력이 되신다면 힘을 보태 주십시오.”
“잠깐 기다리게.”
그리고 올더슨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루안 영도, 자네의 의견도 듣고 싶군.”
바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런 상황에서 내 의견을 묻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학장으로선 당연한 태도였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내가 군단장을 쓰러뜨렸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생각하던 바를 천천히 말했다.
“황녀를 치는 건 찬성입니다. 그런데 인원이 많은 건 오히려 안 좋아요. 다섯 명으로 합시다.”
“무슨 헛소리를-.”
“기다리게, 바터 경.”
학장이 바터를 진정시키더니, 고적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당연히 이유가 있겠지?”
“물론입니다. 팜?”
“어, 어어?”
가만히 쉬고 있던 팜이 화들짝 놀랐다.
여기서 자신을 호명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태도다.
“나한테 연구 동과 관련된 괴담 얘기를 해줬었지?”
“그, 그랬지?”
“여기서 말해 봐.”
“지금? 여기서? 내가?”
“빨리.”
“아…….”
좌중의 시선이 모이니, 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뺨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는데, 거물들에게 주목받는 상황에 살짝 흥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널리스트가 꿈이라고 그랬지.’
그렇다면 사람의 관심을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 존재할 리 없는 13호 건물과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유령과의 술래잡기, 복도를 배회하는 하얀 여자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고…….”
“그 정도면 됐어. 고맙다.”
“으, 으응.”
나는 심호흡하는 팜의 어깨를 두드린 다음, 다시 학장을 보았다.
“팜이 말한 괴담 말인데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이곳 이면 세계에선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황녀가 말했죠. 룰을 지키면서 즐거운 게임을 하자고. 바람이 곧 법칙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 법칙, 룰을 정하는 건 페리스트 황녀고.”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아리송한 얼굴들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또 저는 이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황녀는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고, 그 부원을 다섯 명까지 확보하고 싶어 한다.”
세렌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게 그 얘기를 전한 게 저 녀석이었다.
“우리는 다섯이란 숫자에 주목해야 해요. 아마 공격대를 다섯만 꾸린다면, 큰 방해 없이 황녀와 대면할 수 있을 테죠.”
“들을 가치도 없군.”
바터가 냉소하며 말했다.
“논리도 근거도 없는 궤변이야. 지금 그딴 헛소문에 우리의 목숨을 걸자는 것인가?”
“논리는 빈약하지만, 근거는 있습니다. 벌써 잊었어요? 황녀가 있는 13호 건물로 갈 때 우리는 어쩐 일인지 단 한 번도 습격당하지 않았습니다.”
“…….”
“그때 우리의 인원이 다섯 명이었습니다.”
“…….”
바터가 주둥이를 닫았다.
“이러한 법칙엔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황녀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
“방금 들었던 것처럼 황녀는 이 모든 상황을 단순히 게임으로 여기고 있어요. 논리. 중요한 요소죠. 여기선 다릅니다. 미친년한테 논리를 왜 따집니까.”
샤를이 숨을 들이켰다.
천성 귀족이다 보니 내 발언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올더슨 학장이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네만……. 함정일 확률도 있지 않은가? 다섯 명으로 인원을 꾸리게끔 계략을 짠 것이라든가.”
“계략은 약자나 짜는 겁니다. 현재 전력 차이는 명백하죠. 황녀가 진심으로 우리를 죽이려고 하면, 그냥 바로 짓밟으면 끝이에요. 인형 수천 마리에 학장님의 그 염병할 백기사단이 더해지면… 무슨 하루씩이나? 한 시간이면 이 13호 건물 따위는 주춧돌 하나 남기지 못하고 소멸할걸요.”
“…….”
학장도 입을 닫았다.
“당장 그러지 않는 이유는 하나, 황녀는 일방적인 게임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패배할 가능성도 있는 상태에서 스릴을 느끼고 싶어 해요.”
대놓고 얕보이는 상태라 기분이 엿 같기는 했지만, 상황이 워낙 절망적이니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오히려 황녀의 그러한 점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줄곧 침묵하던 샤를이 입을 열었다.
“13호 건물 내부에서도 카리스와 미르가 합류하기 전까진 별일 없었어요. 둘이 나타난 다음에 악마가 갑자기 나타났죠. 그전까지 건물 내부에 있었던 건 다섯 명이었어요.”
샤를이 내 추측에 힘을 실어 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네요? 아무튼 공격대 선별도 제가 합니다. 지금부터 차례대로 말하지요. 저와 세렌, 에반, 카론. 마지막으로 미르까지, 이렇게 다섯 명.”
“…….”
멍하니 앉아 있던 미르가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말했다.
“나, 나 말인가?!”
“너 말이야.”
나는 미르에게 대꾸해 준 다음, 미소를 짓고 있는 바터를 보았다.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충고 정도는 받을게요.”
바터는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즐거워서 웃는 건 아니었다.
“…선을 넘는군, 루안 배드니커. 내 쪽에선 자네를 최대한 예우해 줬는데 말이야.”
저 말엔 나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권위주의자들의 말투란 왜 저렇게 다 비슷한 걸까.
아마 모르기 때문일 거다.
저런 말투 자체가 상대를 무시하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가 불만이에요? 버터 경 지론대로 하자는 건데.”
“바터라고 했다. 무슨 뜻이지?”
“이런 때에 누가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가.”
“…….”
“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 그걸 토대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 내린 판단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여기서 가장 강한 사람……. 헉.”
나는 스스로를 가리켰다.
“나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