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
1. 국민망겜 최종장 업데이트
전 국민이 알 정도로 흥한 게임을 국민 게임, 망한 게임을 국민망겜이라 부른다.
대한민국에는 국민 게임은 없어도 국민망겜은 존재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한 게임이 공개되었다.
모바일RPG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교’, 약칭 ‘플마고’.
이계 충돌로 인해 격변한 현대.
이능을 지닌 플레이어를 양성하는 마이스터 고교.
그 학교를 배경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조작하여 스토리를 진행하거나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내용의 모바일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오픈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플마고의 시작은 창대했다.
게임계 역사상 최고액의 개발 비용과 마케팅 비용.
음원 차트 강자로 이름난 실력파 가수가 부른 오프닝곡.
공중파, 케이블, 종편 방송의 황금 시간대에 방송되는 CM.
버스 차체, 정류장, 지하철 벽, 스크린 도어에 가득한 포스터.
포털 사이트 곳곳에 배치된 배너 광고와 동영상 광고.
전 국민의 반이 플마고의 광고를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생 게임을 찾았다!’
사전 등록자 300만 중 하나였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플마고의 서비스 개시 날짜는 수능이 끝난 다음 날.
마침 수능이 끝나 한가해진 나는 300만의 유저와 함께 서비스 첫날부터 달렸다.
그러나 플마고는 수많은 게이머들의 인생망겜이 되었다.
캐릭터, 스킬, 아이템 가릴 것 없이 엉망인 게임 밸런스.
매일 늘어나기만 할 뿐 고쳐지지 않는 버그.
하라고 만든 건지 기분이 개 같아지라고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조작 난이도.
오토 기능 따윈 없는 과도한 반복 노가다 요소에 적은 보상.
‘다른 플레이어에게 도움 요청하기’ 커맨드를 제외하면 싱글 플레이뿐, 부재한 멀티 요소.
스토어에는 별점 테러가 이어졌고, 댓글에는 하차 선언과 쌍욕이 넘쳐 났다.
하지만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는 팬들은 버텼다.
단점이 넘쳤지만 이 게임에 장점도 존재하긴 했다.
미려한 고퀄리티 일러스트.
일러스트에 가깝게 구현된 캐릭터 렌더링과 인게임 그래픽.
세밀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
콘크리트 팬층은 이 게임을 놓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꿈도 희망도 없는 스토리 전개는 콘크리트의 멘탈마저 갈아 버렸다.
[오픈 첫날부터 달린 썩기 시작한 물 스토어 환불런 가즈아]
[키우던 캐릭터들, 가족, 은사 친구 다 죽어서 런합니다. 환불런 성공하신 분 정보 공유 부탁드려요. 사례합니다.]
[용쌤 적호횽 끔살당해서 꼬접각 섬. 니들도 빨리 탈출해라. 마음은 이해하지만 환불충은 좀 뒤졌으면.]
[접으려고 하니까 병무청에서 입영 통지서 알림톡 왔다. 개이득인 부분?]
[스토리 전개 핵고구마, 답답해서 뒤질 것 같네요. 하차!]
[길게 말 안 한다. 접는다. 이 게임 안 한 뇌 산다.]
[카페 운영 스태프직 양도합니다. 3일 동안 신청 댓글 없으면 랜덤하게 양도 후 탈퇴할 예정입니다.]
캐릭터가 대량 학살당하는 스토리가 전개된 후.
플마고 비공식 정보 공유 카페는 망해 버렸고, 콘크리트층 유저는 대거 이탈했다.
이후 이 사건은 게임계에서 ‘플마고 콘크리트층 붕괴 사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게임 커뮤니티에는 이런 말이 돌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마이스터고교 고인물과는 상종도 하면 안 된다.’
플마고는 게임사에 새겨질 희대의 망겜이다.
그걸 한다는 건 게임 제작자나 변태밖에 없는데 둘 다 위험한 종자들이니 상종해선 안 된다고.
한편, 나는 변태 소리를 들으며 복귀와 하차를 반복했다.
스토리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들과 그 주변 인물들은 처참하게 죽어 갔다.
살아남은 캐릭터들도 정신적으로 무너져 갔다.
그래도 다음 스토리를 읽기 위해 계속 버텼다.
‘한 명이라도 더 죽으면 진짜 접는다!’
그 순간에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두 자리 수의 캐릭터가 더 죽었지만 난 접지 못했다.
언제부턴가는 가끔 하던 하차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입대한 이후에도 생활관에서 3시간가량 허용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이용해 계속 플레이해댔다.
“막내야.”
“네, 이병 조의신. 부르셨습니까!”
“무슨 게임 하냐?”
“……플레이어마이스터고교입니다.”
생활관이 순식간에 싸해졌다.
한 손엔 스마트폰, 다른 한 손엔 TV리모컨을 쥐고 있던 최 병장이 입을 떡 벌렸다.
최 병장은 맨 땅에 머리부터 다이빙하는 머저리를 보는 눈을 하고는 내게 말했다.
“허, 이거 불쌍한 놈이네.”
나는 전역하는 순간까지 불쌍한 놈으로 취급받았다.
최 병장이 전역할 때까지는 '불쌍한 놈 건드리지 말자'라는 취급 덕에 비교적 편한 군생활을 했다.
개상병, 아니 계 상병은 계 병장이 되고 전역하는 순간까지 한결같이 나를 갈궜지만.
몇 년 후 나는 진짜로 불쌍한 놈이 되었다.
“폐암 4기입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과금하느라 담배도 못 사는 게이머가 들을 소리가 아니었다.
“드물지만 폐암 4기까지 증상이 전혀 없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비흡연자 중에서도 폐암에 걸리시는 분 많습니다.’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그 뒤로 의사가 뭐라 더 말했다.
의사가 한 말의 절반 정도는 다시 귀 밖으로 빠져나갔다.
겨우 이해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빠르면 6개월 내로 사망할 수도 있다.
치료를 받고 예후가 좋다면 3년 이상의 생존도 기대할 수 있다.
의료 보험이 적용되어도 직업도 없이 장기간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한 후 다시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중학생 때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집에서 눈칫밥을 먹다 고등학교 졸업.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4년제 대학 졸업.
교수 추천으로 예정되었던 취직처를 낙하산에게 내어 주고 취업 준비생 생활 1년.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다 드디어 취직에 성공한 게 저번 달.
채용 건강 검진 서류가 필요해 검사를 받았더니 시한부 선언을 받아 버렸다.
힘든 일은 많았어도 살 만했던 인생은 그렇게 끝나게 생겼다.
나는 게임 폐인이 되었다.
이전까지는 그럭저럭 사회생활을 하는 흔한 게이머였다.
하지만 이제는 고시원에 처박혀 모든 생산적인 활동과 사교 행위를 멈추고 퀭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뿐.
변명할 길 없는 방구석 게임 폐인이 되었다.
‘내가 암 걸린 이유 중 하나는 이 게임일 거다.’
플마고를 하면서 몇 번이나 암 걸릴 것 같다고 한탄했었다.
그런데도 암에 걸려 죽어 가는 지금도 이 게임을 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기침이 심해졌다.
하루에 두세 번은 피가 섞인 기침을 뱉었다.
가끔 죽을 것 같이 온몸이 아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죽을 때가 됐나.’
게임을 하는 중에는 괜찮았지만 게임 점검 시간에는 죽음에 관한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딴생각을 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의 게임 뉴스 란을 새로 고침 할 때였다.
메인 기사가 바뀌어 있었다.
[대작 모바일RPG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교 금일 최종장 업데이트 예정!]
죽음이고 뭐고 욕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바로 기사를 눌러 댓글을 달았다.
[jo2god111: 왜 이런 망겜 업데이트 기사가 뉴스 메인이냐? 대작 좋아하네. 기자한테 뿌릴 돈이 있으면 밸런스 패치나 하고 버그나 잡아라.]
몇 분 만에 내 댓글 밑으로 답글이 달렸다.
[kye777ing: 이거 레알임. 플마고 부모 출타하신 개애애애마아앙겜 아직도 섭종 안 함? 난 이 게임하는 놈이랑 겸상 안 한다.]
플마고가 망겜인 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패륜 드립까지 당하니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까더라도 적어도 이 게임을 하는 사람이 까야 하지 않나?
까도 내가 깐다는 정신은 망겜을 하는 폐인의 썩은 근성이었다.
충동적으로 답을 달았다.
[jo2god111: 말이 좀 심하다. 직접 해 보고는 까는 거냐?]
그러자 내 답글 밑으로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zxYJ0008xz: jo2god111 뭐임, 병 있는 듯?]
[kye777ing: 돌았냐? 니가 쓴 댓글 다시 보고 와라.]
[dudtn90: ㅂㅅ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rkrehrl12: 각도기는 챙기자 (심한 욕) 읍읍읍 주어 없습니다.]
내가 쓴 댓글이지만 위아래로 놓고 보니 정말 뭐 같긴 했다.
곧 게임 욕 반, 내 욕 반으로 댓글 창이 채워졌다.
제대로 된 반박도 못하고, 댓글로 처맞던 나는 플마고 메인터넌스가 끝난 후에야 뉴스 페이지를 껐다.
‘……엔딩은 보고 죽겠구나.’
좁은 침대에 누워 플마고 앱을 켜니 업데이트가 진행되었다.
업데이트 파일을 다운받는 사이, 파일철과 설정집을 꺼냈다.
내가 정리한 공략법을 인쇄한 A4용지를 묶은 파일철.
권당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누가 저걸 읽냐는 악평이 자자한 설정집 여덟 권.
바로 찾아 읽을 수 있도록 침대 밑에 던져 뒀다.
내가 남긴 공략 메모로 여기저기 필기되어 있는 설정집을 들추며 읽다 보니 업데이트가 완료되었다.
‘이제 끝나나.’
의사가 말한 6개월은 끝난 지 오래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과 체력은 금보다 귀했다.
그걸 게임에 전부 써 버리고 있었지만.
* * *
몇십 시간에 걸친 사투가 끝났다.
‘끝났다.’
설마 이 정도로 꿈도 희망도 자비도 없는 배드엔딩일 줄이야.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고,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다.
최종 보스전까지 함께한 내 최고 주력 캐릭터였던 ‘백호군’.
그도 시나리오 라이터의 악랄한 손 속에 모든 것을 잃고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시나리오 라이터, 개자식들.’
어떤 배드엔딩을 맞이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곧 죽을 나를 내버려두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걸 보면 배알이 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해피엔딩을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읽기 고통스러운 스토리 탓에 몇 번이고 하차하면서도 결국 복귀했던 건 내가 고통을 즐기는 변태여서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처참한 기분이 될 리가 없었다.
‘해피엔딩을 기대했으니까 이 게임을 놓지 못했구나.’
시한부 인생이 되고, 이 게임을 전부 클리어하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다.
하지만 게임은 끝났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은 전부 비참하게 죽어 버렸다.
그리고 나도 곧 죽는다.
게임을 강제 종료하고 스마트폰을 침대 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땡!
그러자 마치 항의라도 하듯 알람음이 들렸다.
플마고 게임 앱에서 온 알람이었다.
‹최종장 클리어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선물함을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최종장 클리어 보상?’
게임 운영도 발로 한다고 욕을 먹던 플마고다.
광고 푸쉬는커녕 업데이트 알람조차 보내지 않았는데 갑자기 왜?
‘보나 마나 허접한 보상이겠지.’
기대되지 않았지만 궁금했다.
봐야 했다.
게임 회사의 손 속에 놀아나는 게임 폐인의 사고 회로다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죽은 눈으로 게임 앱을 켰다.
하지만 게임 메인 화면에서 선물함을 열자 화면이 멈췄다.
아무리 기다려도 화면이 움직이질 않았다.
강제 종료도 안 먹혔다.
스마트폰 전원을 끄려 해도 꺼지질 않았다.
배터리 일체형 타입인 탓에 바로 배터리를 분리할 수도 없다.
“아오, 여기서 버그냐! 켁, 우웩.”
입을 열자 기침이 터져 나왔다.
10년 가까이 플레이해 온 게임의 끝.
그로 인한 허무감.
풀려 버린 긴장.
긴 플레이 시간과 투병으로 깎여 있는 체력.
내 몸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켁, 웩, 콜록, 켁…….
점점 기침 소리가 아니라 비명에 가까워졌다.
최후에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같았다.
침이 튀었다 생각하고 입가를 닦았는데 손이 시뻘겠다.
‹초상(超象)우주와의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접속한 플레이어의 적합성을 심사합니다.›
초…… 뭐?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진짜 죽을 때가 됐나 보다.
‹심사가 종료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조의신’을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로 선정합니다.›
“의신이 형, 저 성헌인데요. 괜찮으세요?”
고시원 총무 천성헌이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침 소리 때문에 다른 입소자가 항의를 한 건지도 모른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나는 건 다음 주였다.
오늘 죽지 않으면 병동 앞에 드러누워서라도 들어가야겠다.
천성헌에게도 내 방 주변의 입소자들에게도 민폐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조의신'의 정보 개변과 차원 동기화 및 전이를 진행합니다. 완료까지 앞으로 10초.›
과 후배인 천성헌은 대학 시절 나를 잘 따랐다.
고시원 총무와 입소자로 만난 이후에도 천성헌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이전에 사 준 밥값 대신이라며 간식과 기침약을 내밀곤 했다.
곧 죽을 놈에게는 과분한 후배였다.
고시원 방에서 급사할 때를 대비해서 준비는 해 뒀다.
장례를 치르면 조금은 남을 현금과 유서.
봉투 위에는 천성헌의 이름을 써 뒀다.
‹8…… 7…….›
일단 괜찮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귀에는 환청이 들리고 입에선 피를 토하고 엉망이었다.
적어도 입을 막아 기침 소리를 작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침은 더 심해진 탓에 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큽, 쿨럭, 쿨럭, 웩, 커억!
천성헌이 얇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형, 문 열어요!”
천성헌이 열쇠를 찾는 듯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몇 번 들리다 곧 철컥하고 자물쇠가 열렸다.
‹2……1……0 .›
문이 열린 것과 거의 동시에 새하얀 빛이 시야를 덮어썼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