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화 (2/925)

2. 이름 없는 조연의 튜토리얼 (1)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

한때는 꿈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엔 꿈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자아가 형성될 쯤에는 꿈을 꾸지 않게 된 걸까.

나는 꿈을 본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교복이다······!’

나는 지금 교복을 입고 있었다.

왼쪽 가슴에 박혀 있는 샛노란 바탕에 자수가 새겨진 이름표.

어정쩡한 폭의 재킷에 붉은 넥타이.

이 촌스러운 디자인의 교복은 내가 졸업한 중학교의 교복이었다.

‘방금 전까지 고시원 방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피를 토하고 있었는데······ 왜 교복을 입고 있는 거지?’

졸업 후 교복은 나눔 행사에 기부했다.

고시원 방에 교복이 있을 리가 없다.

‘팔하고 다리가 짧아진 거 같은데.’

교복을 살피다 팔다리를 쭉 뻗어 보았다.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내 몸이 아닌 듯 어딘가 어색했다.

하지만 가장 큰 위화감은 다른 곳에 있었다.

‘기침이 안 나.’

기침도 안 나고 가슴께를 묵직하게 누르던 통증이 사라져 있었다.

폐암 따위는 인식하지 못하는 건강한 몸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조의신?”

“억.”

깜짝 놀랐다.

여기에는 나 말고도 셋이 더 있었다.

“유상훈이다.”

“나, 난 손민기. 잘 부탁해.”

나에게 말을 건 녀석들이 각각 자신의 명찰을 가리켰다.

각각 디자인이 다른 교복을 입은, 세 명의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일지 모를 애들이었다.

이 애들이 내게 반말을 하는 게 이상했다.

교복을 입고 있어서 또래라고 착각한 건가?

그럴 리가······.

“혹시 졸았어? 조금 있으면 실기 시험 시작이니까 일어나.”

“실기?”

“협동성도 평가에 포함되니까 열심히 하자. 난 장남욱이다.”

다음으로 말을 건 놈은 셋 중에 혼자 안경을 쓰고 가장 키가 큰 녀석이었다.

셋의 소개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성의 없이 이름만 말한 유상훈을 따라 했다.

“조의신이다.”

전원 자기소개가 끝났다.

낯선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흔히 발생하는 어색한 분위기와 침묵이 흘렀다.

그걸 깬 건 장남욱이었다.

“준비 운동하자. 시험 중에 쥐 나면 안 되잖아.”

장남욱의 제안에 그를 포함한 셋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그 셋은 운동 신경이 매우 좋아 보였다.

굴신 운동 중에 보이는 체조 선수 같은 유연성.

제자리 뛰기를 할 때의 체공 시간.

허공에 주먹질을 할 때 들리는 바람을 가르는······ 아니, 찢는 것 같은 소리.

고작 준비 운동을 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세 명은 프로 운동선수인가?’

뭔지 몰라도 나는 망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한 번도 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

외출조차 하지 않았다.

식사는 고시원에서 제공되는 밥, 라면, 정수기 물로 해결해 왔으니까.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나는 이 녀석들과 실기 시험을 봐야 하는 듯했다.

꿈에서라도 나 때문에 시험을 말아 먹은 놈들을 봐 봤자 좋은 기분이 될 리는 없다.

일단 나는 셋을 따라 스트레칭을 했다.

‘이상해······!’

다시 위화감이 느껴졌다.

몸이 너무나도 가볍다.

마치 온몸에 달아 둔 추를 떼어 낸 기분이었다.

몸 사이즈는 줄어들어 있지만 성능은 아주 건강했을 때보다 몇 배는 좋은 것 같다.

‘진짜 꿈인가?’

생각에 빠진 나를 놔두고 셋이 떠들기 시작했다.

“실기 어려울 것 같은데······ 괜찮을까.”

“시뮬레이터 돌릴 때 눈에 띄는 실수만 안 하면 돼. 여기하고 군사관학교 실기는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거기 실기는 별로 안 어려웠어.”

불안해 보이는 손민기.

긴장한 것 같지만 침착하게 말하려 노력하는 장남욱.

비교적 태평해 보이는 유상훈.

셋은 나를 두고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이어 갔다.

“맞아. 은광고도 시뮬레이터 쓴다더라.”

유상훈이 한 말을 듣고 넘어질 뻔했다.

“은광고?”

“······너 어디 아파?”

“아니.”

폐암 말기 환자지만 지금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정신도 점점 또렷해졌다.

은광고.

모를 리가 없다.

10년을 넘게 들었던 학교 이름이니까.

은광고등학교는 국민망겜 '플레이어마이스터고교'의 무대가 되는 학교였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조의신’이 현재 위치한 차원을 인식하였습니다. ‘조의신’의 스킬,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를 사용합니다.〉

삣.

어디선가 안내음이 들렸다.

익숙한 알림음인데, 하고 생각함과 동시에 낯익은 디자인의 윈도우가 떴다.

이 그러데이션, 디자인.

10년 동안 봐 왔으니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이건 플마고의 시스템 안내 창이잖아!’

반사적으로 메뉴 중 가장 위에 있는 항목을 바라봤다.

〈‘조의신’의 인물 정보를 열람합니다.〉

삣.

눈앞에 푸른빛의 윈도우가 전개되었다.

체육관이 어두운 탓에 꽤 눈에 띄는데도 나를 제외한 녀석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나 혼자 이 윈도우를 보고 사용하는 게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 스킬인가 보다.

[이름] 조의신

[칭호]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중3 수험생

[가호]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광림] (봉인 중)

[상태] 정상

[종합 능력치] Lv.10

게임이랑 매우 비슷하다.

창의 디자인도, 구성도 똑같다.

종합 능력치를 선택하면 HP와 MP 게이지, 힘, 마력, 방어력, 민첩 등의 수치가 자세히 뜨는 것도 똑같았다.

심지어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약칭 ‘일로실’ 버그까지도 같았다.

말이 일부지, 저 문구만 뜨고 화면 전체에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는 건 예삿일이었다.

역시 망겜답게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져도 버그가 남아 있다.

‘스킬도 있으려나.’

메뉴를 내려 스킬 란까지 내려 보았다.

[스킬]

만물 사용 Lv.1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 Lv.1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 Lv.1

운명력 Lv.3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게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와 스킬이 있다.

그중 몇 개는 빛에 휩싸이기 직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설마, 최종장 클리어 보상과 관련이 있는 걸까?’

최종장 클리어 보상을 선물함에서 열고 난 이후 환청이 들렸으니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초상(超象)우주와의 접속 완료’

‘접속한 플레이어의 적합성 심사’

‘조의신을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로 선정’

‘정보 개변과 차원 동기화 및 전이 진행’

추측하자면, 이 현상의 원인은 초상우주라는 무언가였다.

나는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가 되어 플마고의 세계로 온 것이다.

‘완벽하게는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은데.’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알 수 없었다.

고찰은 미루고 스킬 상세 설명부터 다 읽어 보기로 했다.

‘만물 사용’을 제외하면 내 스킬은 전부 모르는 것들뿐이었으니까.

〈스킬 정보를 열람합니다.〉

[스킬명] 만물 사용

[희귀도] SSR

[스킬 레벨] 1

[효과] 모든 무기와 방어구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설명]

기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재능에 가까운 스킬.

[스킬명]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

[희귀도] EX (측정 불가)

[스킬 레벨] 1

[효과] 동일한 차원에 존재하는 객체에 대해 초월적인 간섭과 정보 열람이 가능해진다.

[설명]

초상(超象)우주의 적합성 심사를 통과한 적합체 전용 스킬.

적합체의 차원 이해도, 차원 적응도에 따라 사용 범위가 증가한다.

[스킬명]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

[희귀도] UR

[스킬 레벨] 1

[효과] 초상(超象)우주와 교신한다.

[설명]

범차원, 범시공간, 범우주적 존재와의 교신은 스킬 사용자의 심신에 막대한 부하를 초래한다.

교신의 결과물이 스킬 사용자의 정보 수용 가능량을 초과하는 경우 스킬은 자동 취소된다.

[스킬명] 운명력

[희귀도] EX (측정 불가)

[스킬 레벨] 3

[효과] 초현실적인 간섭을 일으킨다.

[설명]

경험, 기대, 사상, 목표, 신념 등에 근거하여 스킬 사용자의 운명을 인도한다.

스킬 사용자가 걸어온 인생, 걸어 갈 인생에 따라 운명력은 저하되기도, 상승되기도 한다.

랜덤하게 발생한다.

규격 외 측정 불가, 미지의 등급인 EX등급이 2개.

UR등급이 1개, SSR등급이 1개.

스킬들의 희귀도만으로 따지면 여태까지 내가 키운 모든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최상위권이다.

‘스킬만 보면 EX급 캐릭터네.’

하지만 메뉴 외에는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없어 보인다.

‘이걸 어떻게 시험해 보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지금 상황에서 희미한 위화감을 느꼈다.

게임으로 들어온 것이 맞는다면 이상한 게 있다.

플마고 세계에 들어왔는데 왜 나는 은광고 교복이 아닌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실기 시험이라고 했는데 은광고 실기 시험이라고 하면······.’

나는 10년의 게임력을 되돌아봤다.

중학교 교복.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아이들.

은광고 입시 실기 시험.

어두운 체육관.

여기까지 생각하니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우리 몇 조였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걸 무시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눈치 없이 대화를 끊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지금 당장 확인해야 했다.

워낙 오래전의 이벤트라 떠올리는 게 늦어졌다.

13조는 아니길.

13조가 아니라면 쉽게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

장남욱이 뿔테 안경을 쓱 밀어 올리며 말했다.

“13조.”

망했다.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체육관 문을 잡는 순간 스파크가 튀며 삑, 하고 경고음이 들렸다.

〈경고, N+급 결계 ‘수험용 장외판정 결계’에 접촉하였습니다. 2회 이상 접촉 시 상태이상 효과가 중복하여 발생합니다. 현재 접촉 횟수 1회.〉

시스템 창을 본 나는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벌써 시작되었어······!’

N+급 결계는 같은 희귀도 N+ 이상의 무기나 스킬 혹은 그에 준하는 능력치 레벨이 있어야 해제 가능하다.

게다가 이 결계는 조금 특별해서 더 높은 희귀도를 가진 무기로도 돌파할 수 없었다.

우리 넷은 여기에 갇혀 버렸다.

“뭐야, 결계가 벌써 있어.”

“닿아도 데미지는 없지만 페널티가 심하니까 웬만하면 피하라고 하더라. 과외 선생님한테 들었다.”

셋은 아무 위기감도 느끼지 못하고 잡담이나 하고 있었다.

어쨌든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나는 아이템창을 열었다.

〈보유 아이템 목록을 열람합니다.〉

[보유 아이템]

학생증 1

수험증 1

수험생 서약서 사본 1

······.

······.

······.

다행히 아이템창 목록 마지막 줄에 내가 원하는 아이템이 있었다.

원하는 아이템을 찾았을 때.

시스템 경고 메시지가 들렸다.

〈경고, 에너미가 접근 중입니다.〉

“너희들, 여기 들어오기 전에 받은 그거 꺼내.”

뜬금없는 내 말은 당연히 무시되었다.

“그거 감독관 허락 없이 막 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교복도 개촌스러운 놈이 진지 먹어 봤자 안 멋있다.”

시스템 알람음이 점점 커졌다.

곧 녀석이 올 거다.

“에너미가 올 거야. 시간 없어. 아이템 박스 꺼내!”

약 100년 전, 이계 충돌로 등장한 ‘에너미’에 이능으로 그에 대항한 존재가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던전, 타워, 캐슬, 가든, 메이즈 등으로 구분되는 이계에서는 특별한 효과를 갖는 아이템이 등장했다.

그 이계에서 획득한 아이템.

혹은 이능으로 제작한 아이템.

플레이어는 그 아이템들을 카드화 하고 카드를 실체화하는 능력이 있었다.

은광고는 학생들이 그 능력을 갖추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실기 시험에서 수험생들에게 아이템 카드가 들어 있는 박스를 제공했다.

‘여기에 걸어 보는 수밖에 없어.’

그게 실기 시험장에 들어오기 전 지급받은 ‘수험용 랜덤 아이템 박스’였다.

나는 손 위에 놓인 검은 상자를 살펴보았다.

랜덤 박스 중 검은 상자는 최하급 레어도에 속한다.

나같이 고이다 못해 썩어서 석유가 된 급의 폐인 플레이어라면 아이템창에 넣지도 않고 버리거나 분해할 수준의 박스다.

‘지금 에너미에 대항할 수단은 이것뿐이야.’

답이 없는 잡템이 나오더라도 게임 삭제 후 재설치, 처음부터 플레이하는 테크닉은 사용할 수 없다.

즉 리셋 마라톤, 속칭 리세마라는 불가능하다.

한 방에 좋은 아이템을 뽑아야 했다.

〈수험용 랜덤 아이템 박스를 사용합니다.〉

상자가 열리고 아이템 카드가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