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화 (7/925)

3. 무명의 초신성 (2)

어제 있었던 사건으로 천하의 배은망덕한 놈이 영웅이자 스타가 되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돌아갔다.

직장인은 출근을 하고 학생은 등교를 해야 했다.

‘지금 나는 중학생이지. 등교해야 하나.’

은광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교를 포함한 특수 목적 고등학교의 입시 전형은 11월이나 12월에 시작해 빠르면 12월, 늦어도 2월에는 끝난다.

중학생의 2학기 기말고사는 12월 말에 있기 때문에 반영되는 내신은 중학교 3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뿐이다.

‘학교에 갈 필요는 없어.’

내 경우 서류 심사와 필기는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전에 합격되어 있었다.

제갈재걸의 말에 의하면 실기도 합격 처리될 예정이라 한다.

즉 은광고의 합격이 결정된 나는 등교할 필요가 없는 자유의 몸이었다.

‘예전엔 고등학교 합격이 결정이 돼도 꾸역꾸역 등교했는데.’

합격 이후에도 등교를 하지 않으면 사고 결석으로 인한 감점, 출결 여부와 상관없는 수행평가에 보복의 의미로 0점 처리 같은 페널티를 받을 수도 있긴 하다.

그래도 기말고사만 친다면 등교를 하건 말건 상관없었다.

필요한 출석 일수를 전부 채웠다면 퇴학을 당하지 않는 한 이미 합격 처리된 고등학교의 입학은 취소되지 않으니까.

취업할 때 중고교 학적부까지 살피는 기업은 거의 없고 간혹 있더라도 보통 고등학교에서 끝이었으니 불이익도 없었다.

‘할 게 많지만 한 번만 가자.’

고민 끝에 나에 관해 조사를 하기 위해 학교에 등교하기로 했다.

난방 기구라곤 싱글 사이즈의 전기장판 하나밖에 없는 달동네 단칸방을 뒤로하고 학교로 향했다.

‘메뉴를 통해 본 내 인물 정보는 내 과거와 비슷해.’

얼마 전 부모와 동생들을 잃은 것.

진수중학교에 재학 중인 것.

모두 내 진짜 과거와 같았다.

‘하지만 이 세계는 내가 있던 한국과 다르다.’

이계 충돌도 플레이어도 은광고도 전부 게임 속 이야기였지만 이 세계에는 당연한 듯이 존재했다.

한국의 역사도 조금씩 달랐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의 주소, 중학교의 주소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주소가 조금 다른 것뿐만이 아니야.’

이곳의 서울은 내가 알던 서울과 차이가 있었다.

서울특별시 지도를 봐도 구를 나누는 선 모양이 어딘가 달랐고, 낯선 지명도 있었다.

애초에 은광고등학교가 위치한 ‘서울특별시 은광구’라는 지명도 현실의 서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역사의 흐름은 내가 있던 한국과 비슷해.’

최근 100년의 역사를 살펴보니 이계 충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흐름이 같았다.

발표된 예술 작품이나 영화, 드라마, 노래도.

아주 작은 차이점이 존재하긴 했어도 거의 유사했다.

‘이 세계엔 내가 실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아무도 없지만.’

옛 세계에서 존재하던 친척도 친구도 여기엔 없었다.

표현하자면 이 세계는 내가 있던 세계에 이계 충돌을 더하고, 일반인들의 구성을 거의 바꿔 버린 일종의 평행 우주 같았다.

‘바닥이 안 보인다.’

고찰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내가 다니는 중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학교 앞에는 기자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있었다.

플레이어SAT-K의 토벌 알림에 뜬 건 ‘조’ 한 글자뿐이었는데, 내 신상은 기자 사이에 다 퍼진 것 같았다.

어제 홍규빈에게 계좌 번호를 알릴 겸 메시지를 보내 이름을 감춰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더라면, 기자들이 대놓고 기사에 내 이름을 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계 충돌이 일어난 세계에서도 기레기는 한결같구나.’

오히려 이계 충돌이라는 거대한 떡밥이 떨어진 세계니까 더 신나서 여기저기 찔러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기레기들은 교복을 입은 학생을 강제로 붙잡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단어장을 들여다보며 공부를 하며 걷는 학생에게도 다짜고짜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잡히면 귀찮으니까 도망치자.’

말려든 학생들에게 미안했지만 내가 여기에서 등장하면 더 난리가 날 거다.

한참을 돌아서 들어갈 틈을 찾다 개구멍을 발견했다.

개구멍의 크기를 보고 망설여졌지만 지금의 나는 중학생이다.

성인 남자라면 허리께에서 벽 틈에 낄 것 같은 좁은 틈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    *    *

진수중학교 3학년 8반 교실 앞.

교실에 오는 동안 학교 이곳저곳을 둘러봤는데 내가 기억하고 있던 중학교와 달랐다.

건물의 디자인도 배치도 내 기억과 일치하지 않았다.

교무실도 엿보고 왔는데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똑같은 건 교복 디자인뿐이네.’

복도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나 골라 인물 정보를 확인해 보려 했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인물 정보를 열람할 수 없습니다.〉

인물 정보는 열리지 않았다.

이 중학교는 게임 내에서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몇 명을 더 골라 시험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메뉴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드르륵.

미닫이로 된 구식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촌스러운 디자인의 교복을 입은 녀석들이 여기저기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화제는 전부 어제의 은광고 마수 습격 사건이다.

“뉴스 봄? 쩔더라.”

“인터뷰했는데 개 떨렸다. 그런데 최고 공헌자가 우리 학교 놈인 거 실화냐?”

우리 학교 놈 맞다.

그게 나니까.

“우리 학교에서 은광고 갈 성적이 되는 놈이 있었냐?”

“전교 1등이 힘을 숨김.”

“전교 1등은 플레이어 재능이 없었던 거 같은데.”

여기엔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중학교 동창도 한 명도 없었다.

문 근처에서 대화를 듣다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학생을 잡아 말을 걸었다.

“야.”

“······어? 다른 반 출입 금지다. 찾는 사람 있으면 불러 줄게.”

“나 8반인데.”

학생증을 보여 줬다.

[진수중학교 3학년 8반 조의신]

학생증을 본 상대는 깜짝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 그러네.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미안.”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 같은 멍한 눈이다.

“됐어. 물어볼게 있는데.”

“뭐?”

“우리 학교 교복 옛날부터 이렇게 촌스러웠어?”

“아니, 딱 우리 대에서 이렇게 바뀌었는데. 선배들은 멀쩡한 거 입고 다녔잖아.”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 교무실도 돌아다니며 말을 걸어 봤다.

교사들은 다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우리 학교에 은광고에 갈 정도의 인재가 있었나?’라는 반응을 주로 보였다.

‘담임도 모르는 사람이야.’

출장에서 급히 돌아온 내 담임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고 담임도 나를 모르는 듯했다.

담임이 아는 척, 친한 척을 해 왔지만 매우 어색했다.

교실과 교무실을 돌아본 결과, 나의 중학교 생활에 대한 기록은 완벽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그러고 보니 있었나?’라고 반응했다.

확인하고 싶은 건 다 확인했다.

“몸이 안 좋아서 집에서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 조퇴해도 되나요?”

담임은 보호자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덧붙이며 흔쾌히 허락했다.

교무실을 나서는 도중에도 교사들이 나에게 축하 인사와 칭찬을 한마디씩 던졌다.

그럼에도 모두 내가 누군지 기억이 애매하여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짐작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    *    *

학교를 나와 달동네 쪽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정말로 게임 속으로 들어온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난 이 고민의 답을 가진 게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조의신’의 인물 정보를 열람합니다.〉

[이름] 조의신

[칭호]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작은 영웅들 중 하나

[가호]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광림] (봉인 중)

[상태] 정상

[종합 능력치] Lv.10

[스킬]

만물 사용 Lv.1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 Lv.1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 Lv.1

운명력 Lv.3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칭호를 본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

어제 재빠르게 인터뷰를 해 버린 손민기가 ‘작은 영웅’이 되는 바람에 최고 공헌자인 내가 들러리 취급을 받고 있었다.

‘지금은 참자, 참자.’

어차피 지금은 눈에 띄면 곤란했으니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메뉴에서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 스킬을 택했다.

〈스킬 설명 상세를 열람합니다.〉

[스킬명]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

[희귀도] UR

[스킬 레벨] 1

[효과] 초상(超象)우주와 교신한다.

[설명]

범차원, 범시공간, 범우주적 존재와의 교신은 스킬 사용자의 심신에 막대한 부하를 초래한다.

교신의 결과물이 스킬 사용자의 정보 수용 가능량을 초과하는 경우 스킬은 자동 취소된다.

차원과 시간, 공간 그리고 우주를 초월하는 무언가와의 교신.

나를 이 세계로 부른 존재와 대화하면 답이 나올 거다.

‘막대한 부하’가 마음에 걸렸지만 은광고에 들어가기 전에 확인하고 싶었다.

〈스킬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을 사용합니다.〉

우웅.

뇌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감각이었다.

감각 속에서 떠오른 뇌는 조각조각 나 다른 공간으로, 다른 시간으로, 다른 차원으로 흩어졌다.

뇌에 이어 나 자신도 천천히 가루가 되어 간다.

나는 내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짜악!

손바닥과 뺨이 욱신거렸다.

덕분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나는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게 아니야.”

우우웅.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파랗게 물들며 조금 숨 쉬기 편해졌다.

답은 긍정이다.

“그 망겜은 여기에 데려올 사람을 뽑는 선정 과정이었지?”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돈을 투자해대는 광고.

0에 가까운 매출액을 달리고 있는데도 10년간 유지된 운영.

유저의 의견이 조금도 반영되지 않는 게임.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이상했다.

‘초상우주가 만능의 존재라면 나를 부를 리가 없어.’

직접 이 세계의 미래를 수정하면 되니까.

또 메뉴를 사용해도 나를 제외하면, 게임에 등장한 주요 인물 외의 일반인 정보는 열람할 수 없었다.

초상우주가 만능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왜 나를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로 부른 건지 알겠어.’

〈경고, 초상(超象)우주와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의 과다한 의사소통은 적합체의 부하를 초래합니다.〉

목구멍으로 철 냄새가 울컥 차올랐다.

“한정된 간섭밖에 하지 못하는 너는 나를 다른 차원에서 부른 거야. 이 세계에서 ‘조연’의 자리를 하나 비워 두고. 정보 개변으로 나에 맞춰 과거를 짜 맞추고, 게임 같은 힘을 주고. 미래를 바꾸라고.”

말을 잇기가 힘들어 문장을 완성하기가 어렵다.

시야가 새파랗게 물들었다.

온몸이 하늘을 뚫고 우주로 떠오르다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어떤 언어도 없었지만 나는 상대가 내 모든 말에 긍정했다고 확신했다.

정신도 신체도 한계에 가까운 듯 입가를 타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경고,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의 신체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의 접속을 제한합니다.〉

시스템음이 들리고 나를 지배하던 미지의 감각이 사라졌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의 차원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스킬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의 스킬 레벨이 1에서 2로 상승합니다.〉

내 추측은 모두 정답인 듯했다.

내가 왜 이 세계에 왔는지 깨달았다.

이 게임을 잘 아니까?

최종장을 클리어해서?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만······.’

내가 여기에 온 이유.

그건 내가 이 게임의 해피엔딩을 가장 간절하게 바랐으니까.

그 해피엔딩을 위해서라면 이 게임, 이 세계를 기꺼이 리플레이할 게이머가 나였기 때문일 거다.

‘······아, 스킬 레벨이 올랐으니까 어떤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야 되는데.’

하지만 그 생각을 끝으로 눈앞이 새카맣게 변했다.

결국 메뉴를 확인하기도 전에 기절해 버렸다.

*    *    *

내가 눈을 뜬 건 3일 후였다.

그동안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은 탓에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고 머리는 핑핑 돌았다.

탈수 증상이 일어난 건지 세상이 흑백으로 보였다.

겨우 부엌으로 기어가 수돗물에 소금과 설탕을 조금 타 마시니 정신이 들었다.

‘고작 몇 초 대화한 걸로 3일이나 뻗을 줄은 몰랐네.’

이 꼴이 날 줄 알았다면 이불이라도 펴 두고 스킬을 쓸걸.

아직도 입고 있는 교복을 벗어 던졌다.

온몸이 뻐근해 옷을 벗는 데 한참 걸렸다.

편한 옷을 입고 나니 방전된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왔다.

충전기에 연결해 켜 보니 부재중 전화 기록과 미확인 메시지가 넘쳐 났다.

홍규빈, 장남욱.

주로 이 둘이 메시지 테러를 해댔다.

홍규빈은 입금을 했으니 확인해 달라, 밥을 사 줄 테니 플레이어 협회로 와서 한번 얼굴을 보자, 혹시 뭐 필요한 건 없냐, 하는 귀찮은 내용이었다.

장남욱은 전화를 안 받는데 무슨 일이 있냐, 밥은 먹고 다니는 거냐는 잔소리.

딱히 할 말이 없으니 답변을 미루기로 했다.

라면이 없나 찬장을 뒤지던 중 전화가 왔다.

스마트폰에 떠 있는 이름은 병원에서 헤어진 후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유상훈이었다.

······왜 전화했는지 짐작이 간다.

유상훈의 전화는 받아 볼까.

“여보세요?”

[난데. 장남욱이 너 연락 안 된다고 뭐라 하더라.]

“좀 바빴다. 왜 전화했냐.”

[아······ 그게.]

유상훈이 말을 흐렸다.

“손민기 때문이지?”

유상훈은 부정하지 않았다.

*    *    *

손민기는 내 생각보다 더한 놈이었다.

손민기가 유상훈에게 한 짓은 살인 미수에 폭행에 해당한다.

나와 장남욱이 피해자인가, 하고 따지면 문제가 복잡해지지만 유상훈은 확실한 피해자였다.

‘적어도 유상훈에게 사과하는 척은 할 줄 알았는데.’

사과도 없이 ‘형사 합의 해 주면 돈은 줄 테니 먹고 떨어져라.’라고 나올 줄은 몰랐다.

유상훈의 가족들은 크게 분노했지만 손민기가 인터뷰로 선수를 친 탓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저와 의신이가 증언을 하면 되는 겁니까?”

장남욱도 분노를 숨기지 않으며 격하게 말했다.

유상훈이 불러서 온 한정식집의 룸 안.

유상훈은 인사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유상훈의 부모님도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건 유상훈의 누나 유상희였다.

“응. 사례금은 달라는 대로 줄게. 내가 가진 광림은 희귀해서 프로 플레이어가 되면 꽤 벌 수 있을 거야. 물론 은광고 선배로서 너희들을 여러모로 도울 수도 있고.”

머리카락을 넘기며 청초하게 웃는 모습이 병원에서 대성통곡을 하던 것과 대조되었다.

나는 유상희의 또 하나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유상희’의 인물 정보를 열람합니다.〉

[이름] 유상희

[칭호] 은광고 2학년, 학생회 서기, 아케아의 견습 사제, 치유광풍(治癒狂風)

[가호] 아케아의 호의 ‘힘을 빌려 줄게요’

[광림] (비활성화 중)

[상태] 정상

[종합 능력치] Lv.34

[스킬]

치유 마법 Lv.5

방어 결계 Lv.3

수도(手刀) Lv.3

[설명]

극히 드물게 존재하는 치유계열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치유의 여신 아케아의 가호를 받아 광림 시 아케아의 권능의 일부를 사용한다.

은광고 재학 중 종합 성적 석차 10등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우수한 인재.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

‘내가 아는 게임 속의 유상희와 전혀 달라.’

이 세계에는 에너미, 진족 외에도 ‘상위 존재’라는 것이 있었다.

상위 존재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신’이다.

상위 존재는 진족처럼 상시 존재하지는 않지만 가호, 기적, 빙의, 강림, 계시 등의 형태로 이 세계에 간섭했다.

유상희는 그 상위 존재 중 하나인 치유의 신 아케아의 가호를 받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유상희의 칭호는 ‘네메시스의 계약자’였는데.’

복수의 여신과 계약하여 자신의 수명을 대가로 마수종에 대한 공격력을 3배 이상 상승시키는 게 유상희의 광림이었다.

그래서 유상희는 게임 내 대(對)마수 최종 병기로, 마수종이 등장하는 퀘스트 추천 캐릭터였다.

‘아니······ 그러고 보니 복수귀가 되기 전의 설정도 설정집에 실려 있었어. 게임상 필요한 건 그 이후의 설정이니까 대충 읽고 넘어갔지만.’

유상희는 그 귀한 아케아의 가호를 버리고 동생을 죽인 마수종의 절멸을 위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 동생이 유상훈이었구나.’

부스스한 머리를 휘날리며 마수를 사냥하던 그녀는 졸업하기도 전에 마수에게 뜯겨 죽었다.

“사례는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재판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증언해 드리겠습니다.”

장남욱이 힘차게 말했다.

그리고 ‘너도 당연히 할 거지?’라는 기대를 실어 나를 바라봤다.

유상희의 상태 창을 끄고 생각했다.

손민기.

언론.

대중.

황명재단.

한 수, 한 수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전 안 할 겁니다.”

장남욱이 대놓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유상희는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래······ 아, 이 상멍청이를 구해 줘서 고마워. 의신이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죽었을 거야.”

“아, 뭐래. 조의신, 밥이나 먹자.”

유상훈도 정말로 내 거절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유상훈의 부모님도 그때 병원에서도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는데도 다시 내게 고맙다고 말하며 따뜻하게 웃어 줬다.

하지만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합의하세요. 오늘이나 내일 내로 하면 좋겠는데요.”

“······응?”

공기가 싸늘해졌다.

“합의한 내역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 조건도 걸죠.”

나는 매실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더 했다.

“저와 장남욱도 입을 다물게 한다는 조건도 걸어서 합의금을 올리는 게 좋겠네요.”

“뭐! 난 증언할 거다!”

장남욱이 격하게 외쳤다.

“발설 금지 위약 조항에 위약금으로는 합의금의 두 배······ 아니, 세 배 정도는 거는 게 좋겠습니다.”

유상희가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아마 나는 세 번 정도는 죽었을 것이다.

유상희의 눈에는 희미하게 살기가 어려 있었다.

“지금 돈 받고 닥치라는 거니?”

“네.”

유상희의 온화한 가면이 벗겨져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고 있었다.

백호군의 시선도 견딘 나다.

초상우주와도 대화한 나다.

이 정도의 살기에 흔들릴 리가 없었다.

“복수하는 김에 돈도 받을 수 있다면 챙겨야죠.”

합의금을 받는 것도 손민기를 무너뜨릴 한 수가 될 거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