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2화 (12/925)

4. 플레이어의 궤적 (3)

염준열의 기본 전투 스킬은 화염술이다.

‘원격 점화’는 염준열이 화염술을 자기류로 해석해 진화시킨 파생 스킬이었다.

‘원격 점화’는 말 그대로 이능으로 만든 잠복 불씨를 원격으로 점화시킬 수 있었다.

순은 동전에 눈이 뒤집힌 놈들의 손을 지져 놓기에 최적화된 스킬이었다.

‘그 귀찮은 인사를 하는 동안 잠복 불씨를 심어 뒀지.’

작은 잠복 불씨들을 심어 두는 것만으로도 파티장 안에 있는 동전 크기의 순은 덩어리들을 달구는 데는 충분했다.

“으아아악!”

“아, 아아아! 내 손, 내 손이!”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울렸다.

방금까지 좋다고 움켜쥐고 있던 탓에 탐욕스러운 이들의 손바닥에 시델렌티움의 인장과 까마귀가 낙인처럼 새겨졌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 중 최상위에 랭크된다는 작열통이다.

턱시도, 드레스를 입은 이들이 그 고통을 맛보는 중이었다.

그들은 체통을 잊고 추하게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헉, 구급차, 구급차를 불러!”

“아파······ 아, 아악.”

“히익, 손이, 내 손!”

하지만 지금 이곳은 통신이 완전 봉쇄된 상태다.

그들은 고통에 신음하고 날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왜 저걸 안 놓을까.’

파티객들은 그 와중에도 너, 나 할 것 없이 손수건이나 옷으로 순은 동전을 감싸 애지중지 품에 넣고 있었다.

저 입을 틀어막는 효과밖에 없는 SR+++아이템이 어지간히 좋나 보다.

“소홍룡 염준열! 서, 설마 네 짓이냐!”

당연히 내 짓이었다.

‘나밖에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없는데.’

현재 내 원격 점화 스킬의 레벨은 10이다.

잠복 불씨를 찾아내는 것은 감지계 스킬 레벨 10이상만 가능하다.

10레벨의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라면 이런 애매한 수준의 파티에 참가할 일도 없고 경비원으로 들어올 이유도 더더욱 없다.

환몽 경매 참가자의 모든 눈을 속일 수 있는 건 이곳에선 염준열로 변한 나뿐이다.

이 세계의 진짜 염준열의 스킬은 아직 레벨 10이 아니겠지만.

“그래, 내가 했다.”

숨길 이유가 없으니 대답해 줬다.

경비원들이나 플레이어들은 고통에 내성이 있는 듯 얼굴에서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서 있었다.

그들은 한참을 망설이다 소리쳤다.

“거, 건방진 새끼!”

“살아 나갈 생각은 마라······!”

나를 노리기 위해 무기를 들고 이능을 사용할 준비를 했지만 그들은 감히 공격하지 못했다.

수적으로 우세해 결과적으로 제압이 가능하더라도 제일 먼저 달려드는 수십 명 정도는 타 죽을 각오를 해야 할 테니까.

이런 더러운 곳의 경호 임무를 받아 줄 정도의 경호 회사의 직업 정신, 이 경매에 참가한 썩어 있는 플레이어의 근성은 고작 이 정도였다.

“곧 사람들이 몰려올 거니까 변명부터 생각해 둬.”

나는 노골적으로 변순회를 약 올렸다.

이쯤 되니 주저했던 변순회도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하, 사람? 여기엔 아무도 못 와! 통신도 끊겼지. 관할 경찰서와는 얘기도 끝났다! 설령 부른다 해도 여기 있는 100명의 경비원들이 네놈을 인질로······.”

〈해당 캐릭터의 광림, ‘홍룡소환(紅龍召喚)’을 사용합니다.〉

〈해당 캐릭터의 스킬, ‘원격 점화’를 사용합니다.〉

파아아아―.

내 손짓에 창을 가린 모든 벨벳 커튼들이 순식간에 타올랐다.

커튼만을 태운 불은 바로 사라졌다.

하지만 커튼이 사라진 창문 뒤로는 불기둥······ 아니, 불의 막이 건물 전체를 감싸며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니······!”

광림 홍룡소환(紅龍召喚)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염준열의 원격 점화 스킬의 범위와 위력이 모두 상승한다.

컨벤션 센터에 들어오기 전.

이 주위를 둘러보며 경비원들의 경계 범위 밖으로 잠복 불씨를 깔아 뒀었다.

“신년 맞이 파티 중인 사람들은 아직 깨어 있어. 한강 주변에 떠 있는 에어 호텔에서라면 이 불의 벽이 보일 거다. 지금 소방서로 들어간 신고 건수만 세 자리가 넘을 거야.”

변순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마 경비원용 인트라넷에서 화재 보고가 족족 올라오고 있을 거다.

컨벤션 센터를 얇은 불의 막으로 돔처럼 감쌌을 뿐이다.

‘밖에서 보면 연기와 불꽃 탓에 대형 화재에 휘말린 것처럼 보이겠지.’

거기에 이곳의 통신이 완전히 끊겨 있으니 사태가 긴급하다고 착각할 것이다.

어떤 의미로 긴급하긴 하지만.

“이 주변의 통신이 끊겼더라도 지원을 부르는 건 문제가 안 돼.”

이 세계의 배드엔딩은 단순히 흑막 하나만 쓰러뜨린다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수한 악의와 욕망, 불운, 실수, 우연, 오해 등이 겹쳐지고 얽힌 결과물이 이 세계의 배드엔딩이었다.

‘나는 광림과 스킬에만 의존하진 않을 거야.’

‘플레이어의 궤적’ 같은 강력한 광림을 얻었다 해도 언젠가 한계가 올 게 뻔했으니까.

체스에서 퀸이 아무리 강력한 피스라 한들 퀸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나는 학교를 빠지며 사용할 수 있는 피스를 늘리기 위해 이 세계에 대해 조사했다.

설정집에는 나와 있지 않은 세계관, 전통, 법체계 등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오늘, 조사 과정에서 알아낸 것 중 하나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 세계에도 소방 비상 대응 단계가 존재해.’

예상 인명 피해 두 자리 이상.

상황 종료 예상 시간 8시간 이상.

이 규모의 중형 재난은 대응 2단계로 취급한다.

관할 소방서는 대응 2단계부터 신속한 인명 구조와 상황 종료를 위해 혹은 이능에 의한 방화를 상정하여 사전에 계약을 맺은 프로 플레이어 팀들을 부르게 되어 있다.

“5분 내로 여기에 올 구조 인력은 400명 이상에, 프로 플레이어 팀은 둘 이상이야. 덤으로 올해 첫 화재 사고 취재를 하기 위해 기자들도 몰려올 거고.”

염준열의 광림에 반응하여 거대한 홍룡이 이공간의 틈을 타고 나타났다.

내 주변을 느린 속도로 돌던 홍룡이 코끝을 내 어깨에 가져다 대고 불의 숨결을 뿜었다.

하지만 용왕신의 가호, ‘나의 불이 너를 태우는 일은 없으리라’의 적용으로 나의 몸은 타기는커녕 열기조차 느끼지 못했다.

웨에에에에엥―.

수십 대의 지상, 공중 소방차가 울리는 사이렌이 파티 참가객의 울부짖는 소리와 섞여 컨벤션 센터를 뒤흔들었다.

“이제 상황 파악이 됐어?”

도발하는 말을 덧붙여도 변순회도 다른 경비원들도 조용했다.

내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자 변순회가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럼 라이브 드래곤 쇼 출장비를 받아 볼까.”

무대 위에 있는 아이템 카드가 담긴 상자들을 하나하나 손에 모았다.

파앗―.

상자를 불꽃으로 녹여 열자 아이템 카드의 소유권이 내게로 넘어왔다.

변순회는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이 광경을 보면서도 홍룡을 곁에 데리고 걸으니 내게 접근하지 못했다.

〈‘동풍을 부르는 화각부채’를 획득하였습니다.〉

〈‘귀문(鬼門)이 보이는 렌즈’를 획득하였습니다.〉

〈‘인어의 숨결이 담긴 물방울’을 획득하였습니다.〉

〈‘고결한 기사의 녹슨 티아라’를 획득하였습니다.〉

〈‘눈 먼 신선의 선추(扇錘)’를 획득하였습니다.〉

······.

······.

······.

아이템창 목록이 한 줄, 한 줄 늘어 갔다.

수십 개의 시스템 알림음과 함께 카드들이 메뉴 속 아이템창으로 사라져 갔다.

“하하하하!”

변순회를 보며 크게 웃어 줬다.

역시 나쁜 놈 등쳐먹을 때 가장 상쾌한 기분이 든다.

‘게임 속에서도 환몽 경매를 털 때 엄청 기분 좋았지.’

게임 속 환몽 경매 이벤트에서도 다 뒤집어엎은 뒤 무대 위를 조사하면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었다.

현재 나는 게임과 달리 탑, 던전, 캐슬, 가든 같은 이계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곤란하니 귀중한 군자금이자 피스가 될 거다.

“이, 이 도둑놈아!”

“자기소개 하는 거야?”

변순회가 하는 헛소리에 친절하게 답해 줬다.

경매에 나온 것들 대부분이 이계나 이능과 연관된 아이템 카드들이었다.

‘카드화 되지 않는 것도 있네.’

카드화 하지 않는 보물들을 훑어보니 어처구니없어졌다.

변순회, 도굴에 도둑질까지 했구나.

“왜 여기에 분실 처리 된 국가 귀속 문화재들이 있어? 많이도 훔쳤네. 내가 잘 돌려 놓을게.”

이건 압수했다가 국립 박물관이나 문화재청에 투척해야겠다.

메뉴의 아이템창에 넣기 처리 하자 카드가 아닌 보물도 아이템창에 들어갔다.

이 광경을 본 변순회가 분노하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 보니 스킬이나 아이템을 써서 물건들을 챙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용 메뉴 스킬을 사용한 결과니까 틀린 발상도 아니겠지만.

변순회가 피를 토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웅족이 가만히 있을 것 같냐······!”

당연히 웅족의 존재도 고려했었다.

“웅족이 지금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이 상황이 더 재미있어 보이니까 내버려 두는 거야.”

사월세음과 헤어진 후.

연회장으로 돌아와 상태창을 전개했을 때 바로 눈에 띠었다.

무수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음’ 알림음 사이에서 보였던 진족의 상태창이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진득한 따분함이 묻어나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환몽 경매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태도를 보면 알아. 단순한 아이템 판매자이자 방관자인 거다.’

직접 그녀를 보고 이 역겨운 경매를 박살 내도 문제가 없을 거라 확신했다.

“너는 끝났어.”

변순회는 내 말을 이해한 듯 눈에 절망이 어렸다.

“으아아아!”

이지를 상실한 변순회는 다짜고짜 나에게 달려들었다.

홍룡을 움직여 숯덩이로 만들어 주려 했을 때였다.

퍽!

“흐아악!”

“꼴좋다, 돼지 새끼야!”

직접 포박을 풀고 일어난 여자 경비원이 변순회의 명치에 발차기를 날렸다.

손이 너덜너덜한 게 얌전히 묶여 있는 척하면서 관절을 꺾고 기회를 기다렸던 것 같다.

퍽퍽, 퍽!

“끄아악, 끅!”

그녀는 쓰러진 변순회의 명치와 배를 구두로 밟아댔다.

변순회는 그녀와 달리 참을성이 없는 듯 돼지 멱따는 비명을 계속 질러댔다.

“너 같이 더러운 돼지 새끼가 되느니 쥐새끼가 되고 만다!”

그녀가 변순회를 패는 사이에 나는 홍룡을 부려 사월세음의 새장 자물쇠를 녹여 버렸다.

찰캉―.

문이 열리자 사월세음은 풀려 있던 족쇄를 집어 던지고 사월세민에게 비척비척 다가갔다.

얼굴이 피멍으로 가득한 사월세민은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삼촌······.”

사월세음은 사월세민 옆에 주저앉아 조심스럽게 반쯤 일으켜 세웠다.

“삼촌······ 제가 잘못했어요······ 학교 같은 거 안 갈게요······ 죽지 마요······.”

사월세음이 참회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리자 사월세민이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이 가물가물한 와중에도 사월세음을 발견하자 사월세민의 눈에 이지가 돌아왔다.

사월세민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듯 눈을 깜빡이다 환하게 웃었다.

“······세음아, 무사해서, 다행이다.”

사월세민이 부러지지 않은 팔로 사월세음을 작게 두드렸다.

그 말에 사월세음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미소 지었다.

그런 둘을 뒤로 사이렌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 끝난 것 같네.’

아이템도 챙겼으니 볼일은 없다.

기다리면 지원이 오겠지만 내 모습을 보이는 건 문제가 된다.

사월세음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안 돼.’

사월세음은 이 나라의 마지막 왕조, 그 왕조의 왕이 세상에 풀어 준 전령의 후계자다.

언젠가 대중 앞에 드러날 날도 올 것이다.

‘아직 너무 어려.’

거기에 이렇게 약해져 있는 사월세음을 사람들 앞에 내보일 순 없었다.

“도망치죠.”

와장창!

내 명령에 따라 홍룡이 유리창을 부수었다.

나는 사월세음, 사월세민, 이름 모를 경비원의 이마 위에 손가락을 찍어 홍룡의 불꽃에 휘말리지 않도록 간이 가호를 남겼다.

다른 사람에게 가호를 남기면 광림 가능 시간이 조금 빠르게 줄어들지만 여기에 이들을 내버려 두고 나 혼자 탈출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제 가호를 10분간 나눠 드리겠습니다. 따라 타세요.”

내가 염준열로서 광림이 가능한 시간은 앞으로 약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서두르기로 했다.

내가 올라타자 셋은 서로를 부축하며 따라 탔다.

나는 위장용, 보호용으로 나를 포함한 넷을 불꽃으로 감싼 후 홍룡을 밤하늘 위로 비상시켰다.

파아아앗―!

동시에 컨벤션 센터를 감싼 불의 벽을 모두 해제하였다.

밖에서 보면 불의 벽이 하나로 합쳐져 하늘 위로 승천한 것처럼 보일 거다.

구름 위까지 올라가자 불꽃의 틈 사이로 여느 때보다 환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너희 집 어디야.”

“아, 서대문구 연희동······.”

사월세음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의심받지 않는 건 기쁘지만 왕의 전령의 후계자가 본거지를 쉽게 밝혀도 되는 건가.

‘대충 연희동이라는 건 게임으로 알고 있긴 했는데.’

내 유도에 따라 홍룡은 금세 사월세음이 말한 곳에 도착했다.

연희동 궁동 근린공원 한구석에 은폐된 저택의 입구가 있었다.

“구해 줘서 고맙다! 염준열 맞지?”

“저 염준열 아닙니다.”

진짜 염준열은 지금쯤 ‘붉은 사자’와 그 동맹 팀들, S급이라 해도 좋을 정계 인사와 재계 거물들과 함께 에어 호텔에서 파티 중이다.

일부러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졌고 환몽 경매 일당이 수작을 부려도 통하지 않을 인물을 골랐다.

그리고······.

‘오늘 일은 염준열을 위한 거기도 하니까.’

환몽 경매 일당에서 딱 한 명,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 의사당 입성에 성공하는 인물이 있다.

그 국회의원이 염준열이 죽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여러분들은 그 자리에 없었고, 아무것도 보지 않은 걸로 해 주세요. 경비원님도 당분간 집에 돌아가지 마시고 이곳에서 몸을 숨기세요.”

“뭐? 하지만 그 돼지 새끼들이······!”

“법의 심판은 받게 될 겁니다. 남은 증거물들, 현장에 들어갈 구조 요원, 프로 플레이어들의 증언과 언론사 취재, 손에 찍혀 있는 낙인. 증거와 증인은 많습니다. 여러분이 나서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포석도 깔아 놨다.

포석에 더해 변순회를 잔뜩 도발해 놨다.

‘변순회는 건드려서는 안 될 자에게 시비를 걸 거다.’

내 설명을 들은 경비원은 그렇구나, 하고 시원하게 납득한 얼굴로 끄덕였다.

사월세음은 처음부터 나설 생각이 없었는지 너무 울어 지친 몸을 추스르며 가만히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간신히 눈을 뜨고 있는 사월세민은 그저 감사하다고, 꺼져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고맙습니다. 언젠가 꼭 보답하게 해 주세요.”

홍룡을 부려 떠나려는 내게 사월세음이 말했다.

보답이라.

오늘 일로 배드엔딩 복선을 몇 개 지워 냈다.

거기에 변순회를 털어 챙긴 아이템 카드들 가격만 해도 십억은 가볍게 넘어가는데 딱히······.

내 대답을 기다리는 사월세음에게 말했다.

“보답은 안 해도 돼. 대신 은광고 그만두는 거 다시 생각해 봐.”

게임 속에서 구출된 사월세음은 짧은 시간이나마 학교생활을 하게 된다.

사월세음은 처음 접하는 바깥 세계가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수업 중에 교사들이 가끔 던지던 농담.

쉬는 시간에 다른 학생들과 나눴던 잡담.

그날의 학생 식당 메뉴 따위.

정말 별것 없는 내용을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스토리에 등장할 때마다 새처럼 재잘거리곤 했었다.

왕이 떠나보낸 전령의 후계자인 사월세음은 잘 웃고, 작은 일에 쉽게 기뻐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이번 일로 다시 새장 속에 갇힌 꼴이 되길 원치 않았다.

“올 생각이면 교무부장 제갈재걸 선생님하고만 얘기해. 그분은 믿어도 돼.”

나는 제갈재걸의 디바이스 코드를 알려 주며 말했다.

믿을 만한 교사는 몇 명 더 있지만 지금 내가 연락처를 확보한 건 제갈재걸밖에 없었다.

‘광림 가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디바이스 코드를 부르고 곧바로 홍룡에 올라탔다.

나를 올려다보는 사월세음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남겼다.

“학교에서 보자.”

*    *    *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종양 같은 존재가 있다.

양성 종양 같은 타입의 경우 거슬리긴 하지만 지나치게 비대해지지 않는 한 내버려 둬도 무해하다.

문제는 악성 종양, 암 같은 타입이다.

그 암은 내버려 둘수록 스토리를 침식하고 캐릭터를 병들게 해 죽게 한다.

‘지금 그 암 덩어리를 제거하면 나중에 생각지 못한 다른 암이 생길지도 몰라!’

······라는 발상도 존재할 거다.

그러니까 내버려 두자?

자살행위다.

이 세계에는 어떤 수고를 들여서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암세포같은 요소가 있었다.

나는 그 제거법을 얻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하려 한다.

“예정대로 도착하였구나, 인간의 아이.”

웅족의 최대 전력으로 꼽히는 진웅팔선(眞熊八仙).

그중 하나인 비탄의 웅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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