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4화 (14/925)

4. 플레이어의 궤적 (5)

새롭게 생긴 내 또 다른 칭호는 바로······.

적벽괴도(赤壁怪盜).

환몽 경매 사건 때 불의 벽, 붉은 벽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경매에 나온 불법 아이템들을 쓸어 간 탓이다.

그 불의 벽을 감명 깊게 본 어느 기자가 내게 저 칭호를 붙여 버렸다.

대중은 변순회 일당의 파도 파도 괴담이 넘쳐 나는 악행의 이력에 주목했기 때문에 적벽괴도는 다행히도 묻혔다.

문제는 그 후.

내가 국가 귀속 문화재들을 국립 박물관에 익명으로 투척했을 때였다.

환몽 경매의 장부에서 이름만 발견된 문화재들, 그게 다시 돌아오자 문화재청에서 언론에 알린 듯 내 행적이 기사로 떴다.

적벽괴도라는 칭호와 함께.

[환몽 게이트 깬 ‘적벽괴도(赤壁怪盜)’, 문화재 돌려줘]

[환몽 경매를 폭로한 의적 적벽괴도(赤壁怪盜)의 선행, 문화재청 ‘감사 표한다’]

그 이후로 내 칭호가 적벽괴도로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낯이 뜨거워졌다.

적벽이라니.

괴도라니······!

[칭호]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무명의 초신성, 적벽괴도(赤壁怪盜)

내 상태창을 확인하니 칭호 부분에 적벽괴도가 추가되어 있었다.

물론 조의신이 적벽괴도라는 사실은 나만이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공연히 부끄러워지고 손발과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감각은 막을 수 없었다.

*    *    *

내가 쪽팔림에 몸부림 치고 며칠이 흘렀을 때였다.

결국 변순회는 건드리면 안 될 자를 걸고 넘어졌다.

관련 기사가 포털 뉴스 사이트 메인에 떠 있었다.

[환몽 경매 참가자, ‘소홍룡 염준열, 그 자리에 있었다’, 염준열이 ‘적벽괴도’?]

[적반하장 변순회, ‘적벽괴도 소홍룡 염준열을 조사하라’, 본인은 방화, 재물 손괴, 강도, 상해, 폭행의 피해자]

염준열은 ‘홍염의 제왕 염방열’의 단 하나뿐인 아들이다.

무수한 팬들에게 사랑받는 스타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사랑을 받는 대상을 공격한다는 건 그 사랑을 흙바닥에 처박고 싸움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변순회가 그걸 이해하고 있을 리가 없겠지만.’

나는 기사의 댓글 창을 열어보았다.

염준열의 이름을 보고 기사를 읽은 팬들이 벌써 수천 개의 댓글을 달고 있었다.

[갑자기 분위기 염준열]

[나 붉은 사자 팀원 지인임ㅇㅇ. 변순회가 붉은 사자에 계속 러브콜 날리고 들이댔는데 뭔가 찝찝해서 쌩깠다 함. 이번에 적벽괴도가 불 관련 이능 쓰니까 같이 죽어 보자고 저러는 듯.]

[그날 그 시간에 준열이 에어 호텔에서 SNS으로 라이브 드래곤 쇼도 했거든?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만 10만이 넘었는뎈ㅋㅋㅋ]

[우리 홍룡이가 유명해지긴 했네. 이딴 역대급 범죄자가 달라붙는 걸 보면ㅎㅎ;]

[순회야 아프지 마······ 아프지 말고 죽어.]

염준열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와 신원이 확실한 수많은 증인들이 있었기에 변순회의 주장은 통하지 않았다.

염방열과 붉은 사자의 팀원들은 이 일을 매우 불쾌하게 여겨 직접 기자를 모아 인터뷰를 했다.

염방열은 인터뷰의 말미에 변순회가 강력한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는 코멘트를 두 번이나 반복할 정도로 화를 냈다.

붉은 사자가 대처하고 경찰이 변순회의 말을 무시하긴 했지만 염준열의 팬들의 분노는 쉽게 식지 않았다.

‘변순회는 제대로 미치고 환장하고 있겠군.’

변순회와 그 일당들의 입장에선 염준열로 분한 나를 똑똑히 봤으니 미치고 환장하고 돌아 버릴 노릇일 거다.

내가 그날 한 도발이 어지간히 변순회의 속을 뒤집어 놓은 듯 끝까지 하는 말마다 홍룡을 봤다며 염준열을 걸고 넘어졌다.

동일한 광림은 존재하지 않고, 광림은 카피가 불가능하나 홍룡이 있었으니 염준열이 거기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 컨벤션 센터에서는 어떠한 타입의 기록 기기도 사용이 불가능했으니 기록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고.’

변순회가 대규모 이능, 디바이스 제어 도구를 사용한 덕에 정체를 감출 수 있었다.

신문에 난 적벽괴도 관련 사진이라곤 멀리서 찍은 컨벤션 홀을 감싼 붉은 벽과 그 벽이 모아져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뿐이었다.

결국 변순회의 말은 단순한 중상모략, 염준열을 진흙탕 속으로 끌고 가려는 물귀신 작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변순회는 자기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선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고 입만 열면 염준열 타령을 해댔다.

환몽 경매 일당 중엔 변순회 외에도 염준열을 봤다며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뻔뻔한 이들이 넘쳐 났다.

결국 분노가 극에 달한 염준열의 팬덤은 행동에 나섰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게 ‘환몽 리스트’였다.

염준열의 팬들이 자신들의 모든 정보력과 편집 능력을 동원해 만든 환몽 경매 일당들의 신상 리스트였다.

그들은 고소를 할 테면 해 보라며 염준열의 해외 팬들을 중심으로 온갖 커뮤니티에 환몽 리스트를 업데이트 해 버렸다.

‘이걸 다 어디서 구한 걸까.’

환몽 경매에 참가한 이들의 고화질의 인물 사진부터 저지른 악행, 증거, 신상까지.

환몽 리스트에는 현재 수사 진행 상황 등을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환몽 리스트가 공개된 이후.

조사 대상이 수백 명에 다다르다 보니 묻히고 운 좋게 넘어간 사람들도 환몽 리스트에 이름이 남아 버린 경우도 있었다.

환몽 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게거품을 물며 명예 훼손이라고 날뛰었다.

‘그래 봤자 한번 웹에 풀린 정보를 묻어 버리는 건 불가능해.’

나중에 주요 검색 포털 사이트에서 환몽 리스트는 검색 불가능한 키워드로 바뀌었다.

하지만 환몽 리스트는 자음만 입력하거나 은어로 바꾼 검색 키워드만 제대로 입력하면 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환몽 리스트의 철저한 백업과 빠른 업로드에는 염방열의 팀 붉은 사자가 은밀히 손을 내밀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결국 환몽 리스트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공공연한 비밀의 리스트가 되었다.

나는 기사와 댓글을 읽으며 광림으로 염준열로 변한 건 무덤까지 가져가야겠다고 결심했다.

*    *    *

개학을 앞두고 유상훈이 쏘는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공중호텔 스노우 앤 에어 겨울 특선 뷔페냐.

프랑스 유명 파티셰 플레이어 내한 기념 한정 디너 코스냐.

우리 셋은 메뉴와 양을 따지며 고민했다.

양을 고려하면 뷔페의 압승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플레이어 공식 행사를 대비해 테이블 매너를 숙지할 겸 디너 코스를 택하자는 게 장남욱의 의견이었다.

이 하찮은 고민은 쉽게 끝났다.

유상희가 그걸 듣고는 한심해하는 얼굴로 ‘둘 다 가라’라고 결론지어 줬기 때문이었다.

유상훈의 부모님은 나와 장남욱이 원한다면 매주 원하는 메뉴로 밥을 사 주겠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장남욱은 사관학교 고등부 기숙사에 입소했기 때문에 외출이 가능한 주말에 맞춰 토요일은 한정 디너 코스, 일요일 낮에는 호텔 뷔페를 가기로 했다.

그리고 토요일.

장남욱과는 간만에 만났다.

사관학교 교칙의 두발 규정에 따라 장남욱의 머리카락이 매우 짧아져 있었다.

“너 머리가 왜 그러냐.”

“······교칙이다.”

유상훈의 다정한 인사말에 장남욱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군인 머리네.’

나도 몇 년 전에 했던 그 헤어스타일이었다.

아직 성인이 아닌 장남욱은 군인은 아니지만 교칙은 성인이 다니는 사관학교와 그리 다르지 않으니 피해 갈 수 없었나 보다.

우리는 프렌치 레스토랑의 드레스 코드도 맞출 겸 앞으로 플레이어 공식 행사에 참가할 때 필요할 정장을 구매했다.

백화점 매장 직원이 추천해 준 기성복을 그 자리에서 수선받고 나니 예약한 시간이 되어 우리는 그대로 정장을 입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은 후.

“장남욱,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고등부 차석 합격 축하한다.”

나는 죽 말할 타이밍을 재고 있던 축하 인사를 전했다.

장남욱은 축하받을 줄 몰랐다는 듯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고마워, 의신아.”

냅킨을 펼치고 있던 유상훈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너 차석이었냐?”

늘 말이 많았던 주제에 장남욱이 이 건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마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유상훈은 계속 몰랐겠지.’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스크랩해 둔 기사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기사에는 장남욱과 모르는 얼굴이 찍혀 있는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고등부 수석, 차석 인터뷰가 기사로 떠서 우연히 봤어. 장남욱 사진 빨 못 받네.”

“똑같은데. 평소대로 못생겼다.”

유상훈이 앞에 앉아 있는 장남욱의 실물과 사진을 비교하며 낄낄거렸다.

장남욱은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매우 굳어 있어 옆에 앉아 있는 수석의 자연스럽고 여유 넘치는 태도와 비교되었다.

“하여튼 축하해. 수석은 어떤 놈이야?”

사진으로 놀려대던 유상훈도 뒤늦게 축하 인사를 하고 장남욱이 나온 기사를 자신의 디바이스에 스크랩해 갔다.

그 모습을 장남욱이 민망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어쨌든 축하 고마워. 수석하고 2인 1실 기숙사 방 같이 쓰고 있는데······ 특이해.”

수석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장남욱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특이해?

조금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너무 자세히 캐묻는 건 예의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을 돌리기로 했다.

마침 코스 첫 메뉴가 나왔기 때문에 화제를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훈련도 시작했어?”

“어. 원래 군사관학교 고등부는 다른 곳보다 일정이 좀 빨라. 좀 힘들긴 한데 하루가 보람차.”

유상훈도 수석보다 기숙사 쪽에 더 관심을 보였다.

“기숙사 어떠냐?”

“······환기하고 청소해도 퀴퀴한 느낌이 나.”

알고 있다.

군사관학교 기숙사와는 좀 다르겠지만 생활관의 그 공기.

먼지 한 톨 안 보이게 청소하고 환기를 주구장창해도 퀴퀴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익숙해지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싫으면 은광고로 다시 와.”

유상훈은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나 보다.

“······됐어. 내가 선택한 거니까. 나중에 다른 길을 간다더라도 고등부를 졸업할 때까지는 내 선택에 책임을 질 거야.”

장남욱의 대답에 유상훈은 심통이 난 얼굴로 아뮤즈 부슈를 스푼으로 찍어댔다.

장남욱은 테이블 매너를 지키라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이 녀석들과 대화하고 있으니 마치 1월 1일의 일들이 꿈만 같았다.

나는 꿈을 꾸지 않지만.

우리들은 앞으로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예상해 보기도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플레이어계 최고의 뜨거운 감자인 환몽 게이트 얘기가 나왔다.

적벽괴도도 당연히 화제에 올랐기 때문에 나는 오그라드는 손을 펴기 위해 한참을 고생해야 했다.

‘대체 그 기자는 적벽괴도라는 이름은 왜 붙인 거야.’

그냥 괴한, 정체불명의 인물, 이 정도로만 해도 될 텐데.

앙트레가 나올 때쯤 유상훈이 내게 물었다.

“조의신, 너 몇 반이냐. 난 1반.”

반 배정은 미리 통지받는다.

나는 유상훈과 가까운 반이었다.

“나 0반.”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날아온 통지문을 봤더니 이사장과의 거래의 결과대로 0반행이 결정되어 있었다.

쨍그랑.

툭.

식기가 툭 떨어지는 소리들이 들렸다.

유상훈도, 유상훈에게 테이블 매너를 지키라고 시끄럽게 굴던 장남욱도 식기를 떨어뜨렸다.

왜 저래.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장남욱과 유상훈이 그저 경악한 얼굴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너 전과 있냐?”

“회개해라. 조의신.”

뭐래.

생각보다 제로 클래스의 악명이 높았나 보다.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남은 코스 요리를 즐겼다.

둘은 해산할 때도 0반행이 결정된 내 걱정을 했다.

*    *    *

나는 남아 있는 중학교의 수업, 졸업식 등의 모든 행사를 무시했다.

중학교 담임이 몇 번 전화를 하긴 했지만 손민기 건으로 아직 힘들다, 하고 둘러대면 바로 먹혔다.

은광고 개학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중학교의 일정에 투자할 시간은 없었다.

개학 전까지 필요한 피스를 전부 갖출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이 세계에 대해 조사하고, 필요한 아이템도 구매하고, 체력 단련도 하며 은광고 개학을 대비했다.

그리고 3월.

입학식이 되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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