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4화 (24/925)

7. 개천신화의 신성한 범 (3)

반 뼘도 되지 않는 발코니 난간 위에 적호가 서 있었다.

‘지금 적연(赤煙) 스킬을 사용 중이구나.’

적호 주변의 붉은 안개는 정체를 감추고 방어력을 올리는 스킬인 적연을 사용할 때 나오는 이펙트였다.

기숙사 외벽 감시 CCTV에 찍히지 않도록 손을 쓰고 있는 거다.

“황호에게서 전언을 받았습니다. 조의신 학생이 제안한 거래에 응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거래에 더해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비탄의 웅녀에게 속아 대죄를 지은 적호는 신역의 은광고 학생을 지키는 것도 속죄의 일부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 비호의 대상이 되어선 안 돼.’

정보 수집의 스페셜리스트인 적호가 나를 보호한답시고 중요한 정보를 감출 가능성이 있었다.

“그 교사를 처리할 때 동행하게 해 주세요.”

“무명의 초신성. 당신이 R+급 수배 에너미를 쓰러뜨렸다고 하나 상대는 은광고의 교사에다 웅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학생에게 위험한 일을 맡게 하는 건······.”

나는 아이템 카드를 하나 꺼냈다.

환몽 경매의 날, 비탄의 웅녀에게 건네받은 실패작 아이템이었다.

‘부(富)와 생명의 무게’

천신과 신인을 소멸시키겠다는 진웅팔선의 의지를 상징하는 그 아이템이었다.

즉, 내가 진웅팔선과 마주하고도 살아남았다는 증거다.

“저는 괜찮아요.”

적호가 내 손에 들린 카드를 본 순간 밤하늘에 붉은 번개가 번쩍하고 내리쳤다.

기숙사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붉은 번개를 등지고 서 있던 적호가 발코니에서 훌쩍 뛰어내려 내 앞으로 걸어왔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신역인 은광고에 소속된, 보호해야 할 대상인 학생.

웅족을 대면하고도 살아남아 자신에게 정보를 넘겨주는 플레이어.

두 가지 사실이 충돌한 탓에 적호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무뚝뚝한 얼굴이 평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교사의 이름을 알려 드릴게요. 그 교사의 재산 목록과 특별 전형 인성 면접을 담당한 학생 명단 조사를 진행해 주세요. 조사 결과에 맞춰 제가 작전을 짜죠.”

“조의신 학생······.”

“제 작전을 듣고 동행 여부를 결정해 주세요.”

적호가 내 얼굴과 내 손에 들린 ‘부(富)와 생명의 무게’ 아이템 카드를 번갈아 봤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됐다.

“그리고 한 학부모의 신상을 알고 싶은데요.”

“이번 일과 관계된 겁니까?”

“네, 조금은요.”

그 학부모의 행적을 고려했을 때 높은 확률로 관계가 있긴 할 거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 것 같지만.

“교사의 이름은 최편득. 그 학부모의 자녀 이름은 이레나. 조사가 끝나면 제 디바이스로 연락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죽 마음에 걸렸던 걸 물었다.

“혹시 검은색 좋아하세요?”

“······아뇨, 딱히.”

내 말에 굳어 있던 적호가 한순간 얼빠진 얼굴을 했다.

‘게임에 등장할 땐 항상 칙칙한 검은색 옷만 입었는데.’

오늘 차림새를 보니 꽤 패션에 신경 쓰는 것 같은데 왜 게임 속에선 그 모양이었을까.

그게 좋다던 팬도 있긴 했지만.

망겜답게 게임 폴리곤을 새로 짜고 의상 색을 고르는 게 귀찮았던 걸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적호를 배웅했다.

*    *    *

한밤중에 친 의문의 붉은 번개가 잠깐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사상자가 아무도 없었기에 누군가의 이능이 잠깐 폭주했으려니, 하고 금방 묻혔다.

수많은 은광고 괴담에 한 줄이 추가된 정도의 해프닝이 된 셈이다.

“황지호, 고맙다.”

“적호와 얘기 잘했어?”

“덕분에.”

조례 시작 전, 교실에 있는 건 맨 앞자리에서 자습 중인 한이뿐이었다.

한이는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조금 낮춰 황지호와 대화를 나눴다.

“자,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간식 가져왔어.”

“오, 이거 달토끼떡이잖아. 매년 달토끼들이 선물로 보내와서 잘 먹고 있다.”

황지호가 눈을 빛내며 포장된 떡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호족과 토족은 동맹 관계였지.’

성시완에게 받은 달토끼떡 세트는 혼자 먹을 양이 아니라 남은 떡들은 황지호 외에도 김유리, 한이와도 나눠 먹었다.

다들 떡 맛에 감탄했다.

특히 황지호는 눈을 빛내며 쉬는 시간 내내 맛을 음미했다.

아주 쓸모없는 정보지만, 5천 살 먹은 노친네가 떡을 매우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    *    *

조례가 끝나고 함근형을 찾아갔다.

어제는 그가 나를 불러낸 것과 대조되는 상황이다.

“함근형 선생님.”

1학년 건물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의신······? 표정을 보니 선도부에 들어오겠다는 건 아닌데.”

내 표정이 어떻기에.

유상훈도 그렇고 내 표정에 관해 언급되는 일이 꽤 있는 것 같다.

딱히 감정이 얼굴에 크게 드러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뭔가 생각하는 게 있는 얼굴을 하고 있구나.”

또 속을 읽혔다.

함근형의 눈치가 귀신같았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래. 알았다.”

내가 뭘 부탁할 줄 알고 바로 승낙하는 것인가.

나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내가 플레이어 생활, 교사 생활을 몇 년 했다고 생각하나. 옛날 제자 중에 조의신, 너와 비슷한 과의 녀석이 하나 있었지. 입학 실기 시험 건, 이레나 건, 방윤섭 건. 셋만 봐도 안다.”

함근형은 어딘가 먼 곳, 그리운 곳을 바라보는 눈을 하고 있었다.

내 이전의 나이를 고려해도 함근형이 연상이다.

게임에 대한 지식이면 모를까 사람을 만나 온 경험의 정도는 그가 더 클 거다.

“말해 봐라, 조의신. 내 도움이 필요한 거지?”

나는 작게 감동했다.

함근형은 게임 속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교사진 중 주수혁과 안다인을 가장 빨리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인물이었다.

‘게임에서 봤을 때는 이 정도로 말이 통하는 교사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제갈재걸도 김신록도 좋은 교사지만 게임 속에서는 일찍 죽어 버려 활약은 많지 않았다.

함근형은 비교적 오래 살아남아 교사의 입장에서 줄 수 있는 도움이라면 깊게 따지지 않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자세한 설명은 디바이스로 할게요.”

함근형과 헤어지기 전에 물었다.

“그 옛날 제자가 누구죠?”

나와 비슷한 과가 누굴까.

조금 신경이 쓰였다.

“······15년 전에 지익회 만든 놈.”

비리 이사진과 기숙사 사감을 몰아낸 그 학생회장을 말하는 건가.

함근형이 대답을 하면서 등을 돌려 버린 탓에 어떤 표정으로 그 말을 하는지는 보지 못했다.

*    *    *

적호의 조사 결과는 하루 만에 도착했다.

내가 부탁한 세 가지 자료가 전부 갖춰져 있었다.

‘최편득의 특별 전형 인성 면접 담당 학생 목록, 최편득의 재산 내역, 이레나 부모의 신상. 짧은 시간 사이에 이렇게 완벽하게 조사하다니.’

그 인성 면접 담당 학생 목록에는 합, 불합 여부도 표시되어 있었고, 합격자 네 명 중에 내가 찾는 이름들이 있었다.

합격자들의 구성은 이러했다.

부정 입학자 둘.

연막용으로 합격시킨 부정 입학자보다 열등한 학생 하나.

남은 하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맹효돈이었다.

‘이 넷 중에서 은광고에 합격할 만한 학생은 맹효돈밖에 없겠지.’

특별 전형은 청소년 스포츠 대회 예비 플레이어 부문 수상 실적으로 결정된다.

맹효돈은 주수혁과 몇 번이나 결승에서 대결한 강자였다.

하지만 현재 맹효돈은 한 번도 등교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유흥 빚을 갚기 위해 최편득이 운영하는 ‘파이트 클럽’의 싸움 노예로 팔려 갔다.

‘맹효돈을 합격시킨 이유도 현역 은광고 학생의 브랜드를 팔아먹기 위해서였어.’

어머니를 일찍 여읜 맹효돈은 있는 거라곤 아버지 하나뿐이었다.

그 아버지는 백수에 얼마 안 남은 가산을 술과 도박, 유흥으로 탕진해댔으며 맹효돈에게 욕설과 폭력을 일삼았다.

‘맹효돈은 머리는 잘 안 돌아가지만 몸 쓰는 일은 우수하고 하나뿐인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지.’

그 탓에 맹효돈은 아버지의 욕설은 흘려듣고 폭력은 그냥 당해 줬다.

스포츠 대회도 아버지 술값을 벌기 위해 우승 상금을 노리고 참가했던 거다.

‘맹효돈의 아버지가 도박장을 전전하던 걸 최편득이 알고 있었고, 그의 호쾌한 싸움 실력은 돈이 될 거라 생각한 거야.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군.’

이번 건을 이용해 그를 구해야겠다.

예정대로라면 추후에 2학년 때 주수혁이 파이트 클럽을 박살 내고 맹효돈을 구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주오 그룹 총수의 증손자답게 쿨하게 맹효돈의 모든 빚을 다 갚아 버리기까지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은 없어.’

다음으로 확인한 건 최편득의 재산 목록이었다.

그중 가장 먼저 체크한 건 은광구에 있는 최편득 소유의 건물 다섯 채였다.

‘이 다섯 곳 중 한 곳에 웅족이 있어. 최편득과 함께 처리해야 해.’

최편득은 천하의 개새끼였지만 무능하지 않았다.

그는 학생 대상으로는 평판이 개판이지만 행정 업무 처리 능력이 뛰어났고, 서류를 조작하는 능력 역시 환상적이었다.

‘능력으로만 따지면 환몽 게이트의 변순회보다 최편득이 몇 수 더 위야.’

최편득은 이사진들과 친하게 지내는 데다 강자에겐 약하게 굴고 제갈재걸같은 정의로운 교사에게 자신의 악의를 숨길 줄 알았다.

그는 교사들 사이에선 수업 평가는 별로지만 우수한 행정 업무처리 능력을 가진 성실한 교사로 꼽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건엔 웅족이 깊게 관여해 있었고, 그들은 비탄의 웅녀 같은 방관자가 아니었다.

‘이 건을 해결하기 위한 수는 준비됐어.’

나는 죽 생각했던 계획을 정리해 적호에게 전송했다.

적호는 답변까지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OK 사인을 보냈다.

*    *    *

[오늘은 전국에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서울·경기 지방은 저녁부터 강풍·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 호우가 예상되니 비 피해가 없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서울·경기 에어버스공사는 오전 9시부터 에어버스 운행을 중단하겠다고 고지했습니다. 내일 낮부터 비가 그치고 다소 쌀쌀한 꽃샘추위가 이어져 일교차가 매우 클 것으로······.]

쏴아아―.

금요일 아침.

내 기숙사 방 창문 밖으로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행여 나중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예보를 확인하니 비가 그치기는커녕 오늘 밤 집중 호우에 강풍, 천둥, 번개가 한 세트로 쏟아진다고 한다.

‘비 너무 오네.’

적호와 만나 최편득을 치기로 한 날인데, 비가 너무 왔다.

‘최악의 경우엔 쪽팔림을 감수하고 ‘적벽괴도’를 다시 한번 세상에 내보이려 했는데.’

비 때문에 홍룡의 위력은 반감할 거고 염준열의 컨디션도 저조해져 레벨이 떨어질 거다.

‘적벽괴도가 없어도 다른 수단은 있지만.’

우산을 챙기고 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부활동 가입 신청일 마지막 날이다.

내가 받은 부활동 권유들에 답변을 해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디바이스로 메시지를 보내서 유 씨 남매의 권유에 답변하려 했다.

하지만 유상희는 얼굴도 볼 겸 교실까지 오겠다고 했고, 유상훈은 옆 반이라 가까운 탓에 뭐라 하기도 전에 제 발로 와 버렸다.

“다른 동아리에 들어가기로 했어요. 모처럼 권해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유상희 선배님. 미안하다, 유상훈.”

결국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유상희의 학생회, 유상훈의 농구부 권유를 거절해야 했다.

“무슨 사과를 해. 농구하고 싶어지면 언제든 놀러 와라.”

유상훈은 처음부터 크게 욕심이 없었다는 태도였다.

어차피 농구를 같이하는 거라면 부활동이 아니어도 상관없을 거다.

유상희는 조금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응, 괜찮아. 오히려 이렇게 사과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저 멀리서 유상희를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나에게 장난식으로 작게 야유를 날렸다.

청초한 그녀의 얼굴을 그늘지게 한 원성의 소리다.

“그리고 상희 누나라고 불러, 의신아.”

우우우우―.

갑자기 원성이 커졌다.

이번 건은 장난식이 아닌 것 같다.

유상훈은 곰팡이를 삼킨 것처럼 어두운 표정으로 비틀거렸다.

“상희 누나래. 상희 누나······ 악!”

유상희는 유상훈의 팔에 살짝 기대는 척하면서 옆구리를 손날로 찍었다.

불쌍한 유상훈을 구해 주기로 했다.

집에 가면 처맞겠지만.

“상희, 누나. 비도 오는데 늦지 않게 지상 버스 타셔야죠. 들어가 보세요.”

“······응! 의신아. 다음에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고등학생에게 형, 누나거리는 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 학교를 나보다 먼저 다닌 선배라고 생각하면 나이 같은 건 신경 쓰이지 않으니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건 괜찮았다.

‘미묘하다······.’

어쨌든 유상희는 만족한 얼굴로 사라졌다.

유상훈은 내 수고도 모른 채 ‘상희 누나래’라고 중얼거리곤 나를 곰팡이 핀 식빵을 보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래, 집에 가서 유상희한테 잘 처맞아라.’

유 씨 남매를 보내고 1학년 0반 교실에 들어가니 아직 조례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오늘도 등교한 건 1학년 0반의 급훈 ‘정시 등교’가 무색한 인원수 네 명뿐이었다.

워낙 인원수가 적은 탓에 제법 친해진 우리들은 부활동을 주제로 잡담을 나눴다.

“나는 다인이가 같이하자고 해서 학생회. 여중 다닐 때에도 같이 학생회 소속이었어.”

중학교 시절 안다인이 학생회장, 김유리는 학생부회장이었다고 한다.

학생회 활동 경험도 있겠다, 김유리는 안다인과 함께 학생회에 들어가기로 했나 보다.

‘학생회에는 유상희, 김유리, 안다인이 있는 건가.’

그럼 주수혁은 게임에서처럼 선도부에 들어가게 될 것 같다.

선도부가 안다인을 놓쳤으니 주수혁은 절대 놔주지 않을 거다.

“한이는 태호권 소모임에 들어갔지?”

“응. 첫날에 정했어.”

김유리의 물음에 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예상한 대로였다.

문제는 남은 한 명, 황지호였다.

나는 이 흐름을 이용해 그가 어디로 갈 건지 캐 보기로 했다.

“황지호, 넌 어디 갈 거냐.”

“정하기 귀찮으니까 조의신 네가 가는 대로 가련다.”

따라올 생각이냐.

나는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얼굴을 했지만 황지호는 내 표정이 몹시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부활동에서도 잘 부탁한다.”

망했다.

여기서 어디로 들어갈지 숨겨 봤자 이사장 권한으로 부활동 가입 서류 같은 건 언제든 확인 가능할 거다.

게다가 동아리 가입 기간인 이번 주가 지나도 부활동 고문과 부활동의 임원들이 찬성하면 중도 가입이 인정되기도 하고.

황지호와 같은 부활동에 들어가는 건 확정일 것 같다.

“······그래.”

하지만 그와 같이 움직이면 어딘가는 이용할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지호가 눈을 빛내며 물어 왔다.

“그래서 넌 어디 갈 거냐? 조의신.”

내가 제안을 받은 곳은 학생회, 농구부, 선도부, 지익회 총 네 곳이다.

난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신문부.”

내 대답에 황지호도 김유리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 부활동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사이 수업종이 울렸다.

‘오늘 첫 수업종은 라벨의 Jeux d'eau, 물의 유희구나.’

피아노 건반 위에서 물의 요정이 춤을 추는 듯한 멜로디였다.

이 곡을 들으며 창밖에 비가 내리는 걸 보니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비는 빨리 그쳤으면 좋겠는데······.’

은광고를 다니고 처음으로 비가 내린 날이다.

방송부에서 첫 비 특집 수업종을 준비했는지 온통 비와 물과 관련된 선곡들뿐이었다.

‘학교는 평화롭구나.’

시간이 갈수록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다.

*    *    *

23시.

적호와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밖은 에어보드, 에어셔틀 이용 금지 권고가 떨어지고, 에어 호텔도 호텔 부지에 상륙할 정도로 심한 비바람에 천둥, 번개까지 치고 있었다.

‘딱 시간대로 도착했네.’

적호는 시간에 맞춰 칼같이 내 발코니 앞에 등장했다.

적호는 적연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우산도 우비도 없었지만 조금도 젖어 있지 않았다.

“조의신 학생, 정말로 동행할 생각입니까?”

내 작전을 듣고 동의했으면서도 아직 망설이나 보다.

1시간 뒤에는 작전을 결행할 X-Day, 최편득의 생일이다.

그의 생일 파티를 이용해 적호에게 점수를 따야겠다.

“네. 그에게 어울리는 생일 선물······ 아니, 생일빵을 주고 싶어요.”

거기에 챙겨야 할 ‘덤’도 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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