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생일빵과 덤 (2)
“우리 반 부반장······.”
맹효돈이 멍하니 내 학생증을 바라봤다.
무의식인지 자신의 블레이저 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빳빳하게 다린 교복이 그의 힘에 밀려 주름이 가기 시작했다.
“······부반장 새끼가 여길 왜 와. 그리고 너 사진이랑 다른 거 같은데. 개같이 삭았다.”
“당연히 변장한 거지. 야, 등교 좀 해. 우리 반 출석률 완전 바닥이야.”
잠입을 위해 플레이어의 궤적의 대상으로 삼은 건 성인 캐릭터였다.
몸집이나 가면 사이로 반쯤 보이는 얼굴이 고1로 보이지 않는 건 당연했다.
“은광고는 출석 안 해도 졸업되잖아. 왜 출석률로 그러는데.”
“우리 담임이 신경 써. 반장도 신경 쓰는 거 같고.”
“어쩌라고. 난 둘 다 얼굴도 모르는데.”
“궁금하면 와서 확인해.”
“새끼야, 안 궁금해.”
은광고의 평범한 0반 소속 학생들이 할 법한 대화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맹효돈이 갑자기 입을 다물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하여튼 안 돼. 꺼져.”
“알아. 밖으로 나가면 ‘추격대’가 붙어서 그렇지?”
맹효돈이 몸을 움찔 떨었다.
“······알고 그랬냐. 부반장 새끼, 성격 개같네.”
맹효돈의 고개는 점점 내려갔다.
나는 그를 향해 아이템 카드를 내밀었다.
“링에 오르기 직전 제일 큰 창문 깨고 밖으로 뛰어내려. 이 아이템 카드 써서 착지하고.”
내가 내민 아이템 카드는 ‘하급 바람 정령의 날개 가루’였다.
이 아이템에는 5초 동안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효과가 있었다.
높은 곳에서 착지할 때 주로 애용되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맹효돈은 아이템 카드를 받지 않았다.
“알고 있잖아. 추격대 붙는 거! 진족의 권속 새끼들이 수십 마리나 붙는다고! 빚 다 갚기 전에 못 나간다고, 못 도망간다고······.”
그의 말꼬리는 점점 흐려졌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악에 받친 패기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맹효돈.”
나는 맹효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키는 작았지만 싸움의 귀재답게 어깨는 근육으로 꽉 차 있었다.
그래도 어딘가 맥이 없어 보였다.
맹효돈은 그 주수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이계 공략에 나섰던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다.
이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맹효돈의 어깨를 팍팍 두드려 고개를 들게 만들고, 손에 아이템 카드를 억지로 쥐여 줬다.
“뛰어내린 다음 은광고 교문, 정문으로 달려.”
확신에 차 말하는 나를 보는 맹효돈의 매서운 눈이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욕도 원망도 하지 않았다.
“나만 온 게 아니야. 나 말고도······.”
내 말을 전부 들은 맹효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이템 카드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 * *
자정에 가까워지자 7층 파이트 클럽은 분주해졌다.
사람 수도 점점 늘어났고, 웨이터 복장을 한 이들이 유리잔에 담긴 샴페인을 이리저리 나르기 시작했다.
‘곧 시작하나 보는군.’
나는 그들 사이에 섞여 링 근처 소파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과일 카나페와 샴페인 한잔이 자연스럽게 놓였다.
거기에 더해 서빙을 한 바니걸 복장의 여자가 내 옆에 앉으려고 하는 걸 손을 저어 쫓아내고 링을 노려보았다.
‘미성년자를 파이트 클럽에서 싸움 노예로 쓰고, 그 앞에서 여자를 끼고 술 마시고 논다고?’
게임에선 검열이 된 듯 자세한 묘사가 나오지 않아서 잘 알지 못했었다.
환몽 경매 놈들은 고상한 척이라도 했지만 여기에는 그런 게 없었다.
파도, 파도 개같은 게 나오는데 개토피아인가.
오늘도 세상은 넓고 쓰레기들은 많았다.
‘시간이 됐다.’
자정.
날짜가 바뀌었다.
날이 바뀌자마자 여러 색을 내며 미러볼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미러볼 사이키 조명의 작동에 맞춰 EDM으로 조잡하게 리메이크된 생일 축하송이 흘렀다.
“오늘은 오너의 생일입니다, 여러분. 축배를 들 시간입니다!”
브리프에 나비넥타이만 맨 사회자 놈이 링 위로 올라오자 사람들이 환호로 맞이했다.
정신 나간 복장에 눈갱당했다.
‘아악, 내 눈!’
혐오 광경, 혐짤을 보여 주기 전에 사전 예고를 하는 게 강호의 도리인 것을.
예고도 없이 무슨 짓인가.
나는 입을 틀어막고 머릿속에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망했다, 생각이 안 나,’
방금 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이템 카드를 움켜쥐고 있던 맹효돈 정수리밖에 안 떠올랐다.
심호흡을 하는 동안 링 위에는 대형 홀로그램이 전개되었다.
‘최편득이다······!’
화면 속 최편득은 생일 케이크를 모티브로 한 가면을 쓰고 사회자 못지않은 추잡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생일 축하 노래 떼창이 끝나자 사회자가 다시 진행을 시작했다.
“신년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습니다만 우리들은 이렇게 모든 화를 피하고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게 다 오너 덕분인 거 아시죠?”
여기 있는 놈들 다수가 환몽 경매에 연루되어 있었다.
한 번에 수백 명이 잡힌 사건이었다.
당연히 최편득처럼 빠져나간 놈들도 걸렸지만 관대한 처분을 받은 놈들도 있었을 거다.
‘이번은 그렇게 안 될 거야.’
종업원 중에서도 일부를 제외하면 여기에 있는 건 전부 플레이어들뿐이다.
적어도 전원 플레이어 영구 제명을 시켜 줄 거고 이미 영구 제명 당한 놈들은 형사 처벌을 받게 해 주리라.
“오너 생일 기념 대전이 있겠습니다! 진족의 권속과 맨손으로 맞서 싸우는 소년 플레이어와의 대전!”
링 저편에 맹효돈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반대편에 보이는 건······.
내가 입학시험에서 쓰러뜨린 리노세론과 비슷하게 생긴 마수였다.
“청 코너는, 오너가 특별히 섭외한 웅족의 애완 마수! 애완계 마수종 리노세론 109호! 그 은광고 실기 시험을 덮친 놈보다 몇 배는 강화한 에너미라 합니다!”
뭐라고.
여기에 있는 놈들 전부 은광고 실기 시험 습격 사건의 흑막인 웅족과 여기 오너랑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도 이러고 있는 건가.
설마 이걸 자랑처럼 떠들어대고 있을 줄은 몰랐다.
“홍 코너는 그간 파이트 클럽을 사랑해 주신 여러분들이 다 아는 그놈입니다! 팔이 잘릴 뻔하고도 살아남은 초강자! 배를 꿰뚫리고도 끝까지 링 위에 서 있던 뚝심의 소유자, 양다리가 마수에 짓이겨져도 결국 살아남은 그 미친놈!”
고작 고1이 된 놈한테 그 꼴이 되도록 싸움질을 시켰구나.
미친놈은 맹효돈이 아니라 여기 있는 놈들이었다.
“홍 코너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은광고의 엘리트 플레이어. 맹효돈!”
스포트라이트가 맹효돈을 비추었다.
그는 링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창문을 향해 뛰어가지도 않았다.
맹효돈은 눈부신 조명 아래에서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설마 이제 와서 망설이는 건가.
관중 속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맹효돈을 바라봤다.
‘뭐 하는 거냐. 빨리 뛰어내려!’
만약 여기서 맹효돈이 도망치지 않으면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오늘 작전을 미뤄야 할지도 모른다.
최편득과 그가 운영하는 모든 업소들의 VIP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이는 날은 흔치 않다.
‘한번 계획을 미루면 반년은 기다려야 할 텐데······!’
그때.
고개를 번쩍 든 맹효돈이 크게 외쳤다.
마이크를 쥐고 떠드는 사회자의 목소리보다도 더 크고 우렁찬 소리가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왔다.
“난 간다, 새끼들아!”
맹효돈이 짐승처럼 전면 유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실내인데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와장창!
“꺄아아아아!”
“뭐, 뭐야!”
“으아악!”
맹효돈이 호쾌하게 선팅된 강화 유리를 깨부수고 뛰어내리자 비바람이 실내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피하지 못하고 유리 조각과 비를 뒤집어쓴 관객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잘했다, 맹효돈!’
씨익 웃으며 자리에 일어섰다.
그의 용기에 보답해 나도 움직여야 할 때다.
천천히 링을 향해 걸어갔다.
화면 너머 푸들거리며 떠는 최편득과 조금씩 가까워졌다.
“어디서 감히······ 잡아! 먹이고 재워 준 은혜도 모르고 말이야! 당장 추격대를 보내! 오늘 쇼는 마수에게 팔다리를 뜯어 먹히는 고교생 쇼다!”
“오너, 지금 출발시켰습니다!”
디바이스를 가동한 사회자의 말과 함께 깨진 창밖 너머로 수십 마리의 에너미가 날뛰기 시작한 게 보였다.
그 에너미의 정체는 진족의 권속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은광고 입학시험 때 감독관이었던 김신록을 반쯤 죽여 놓고 중학생 앞에 애완계 마수종을 풀어놓은 범인, ‘조련계 웅족’의 권속들일 거다.
‘됐다.’
이걸로 이 빌딩을 지키는 추격대는 떼어 내었다.
작전은 차근차근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조의신, 당신의 지시를 전부 이행했습니다. 이쪽은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어링에서 적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듣고 링 위로 뛰어올랐다.
최편득과 이래저래 말을 하던 사회자가 나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소, 손님? 여기는 올라오시면 안 되는데······.”
가면 뒤로 밝게 웃으며 추한 복장의 최편득을 바라봤다.
눈은 썩을 것 같았지만 곧 신나게 생일빵을 갈길 생각에 상쾌한 기분이다.
“오너, 생일 축하······하지는 않는데, 생일빵은 맞자.”
나의 행동과 나의 말은 너무나 이상했다.
그 덕에 방금 일어난 맹효돈 탈출 사건도 내가 뒤에 있음을 짐작했나 보다.
입을 헤, 하고 벌리고 있던 최편득이 큰 소리를 냈다.
“이, 이, 이게 겁도 없이 말이야. 내가 누군 줄 알고!”
“누구긴. 최편득이지.”
최편득의 이름을 말하자 플로어 전체가 술렁였다.
벌써 전투태세를 갖추는 이들도 있었다.
“가, 감히 오너의 이름을 말하다니!”
“저런!”
추잡한 행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 익명성이다.
그리고 내가 높으신 분들과 연이 닿아 있는 하늘 같은 오너의 익명성을 깨버렸다.
여기에 있는 놈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고작 이름 하나 불렀다고 최편득 본인과 그 추종자들이 게거품을 물었다.
전투태세를 갖추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부에서 싸움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니 이 와중에도 머뭇거리며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게임 속에서 주수혁이 날뛰기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었지.’
홀로그램 속 최편득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위층에 있는 거 다 안다. 최편득아.”
“또또, 감히, 감히 이름을 불러. 여기가 어디라고! 내가 누군데! 어허, 이런 뭣도 모르는 놈이. 그래, 와 봐라!”
흥분한 최편득이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와 봐라’라는 말은 일견 허술해 보였지만 나름 계산이 깔린 발언이다.
‘VIP룸은 적호의 적연으로도 뚫기 어려울 만큼 보안이 철저해. 탈출 포털도 준비되어 있을 거고. 위층은 최편득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장소다.’
물론 나는 함정으로 가득한 위층에 갈 생각은 없었다.
“최편득아, 이거 불법 건축물이잖아.”
부동산 등기부 등본을 열람해 보니 이 건물은 단순 상가로 플레이어 수용 건물이 아니었다.
이 세계의 건축법은 내가 알고 있던 한국과 조금 달랐다.
이 세계에서는 플레이어의 이능을 견디기 위해 플레이어 수용 건물은 더 엄격한 심사와 높은 설계 강도가 요구되었다.
그 덕에 공사 단가도 공사 기간도 일반 건물의 네다섯 배에 해당했다.
‘그래도 플레이어의 이능이 워낙 강력하니 박살 날 때는 박살 나지만.’
그 엄격한 심사를 거치고 철저한 설계와 감독하에 세워진 은광고의 체육관도 학생들의 대련에 박살 나는 게 예삿일이다.
‘거기에 최편득은 이 단순 상가 건물을 불법 개조까지 했어.’
적호가 구한 건물 설계도와 실제 건물을 비교해 보니 최편득이 중간에 돈을 또 떼먹기 위해 날림 공사에 불법 증축을 한 게 확인되었다.
그러니 이 퇴폐 업소로 가득한 건물이 버틸 수 있는 무게, 하중 설계의 한계점은 극히 낮았다.
“불법 건축물에 부실 공사를 해 놓은 주제에 한 마리당 1톤이 넘어가는 에너미를 수십 마리나 데려다 놓고 고층에서 날뛰게 해? 미쳤구나.”
벽에 보이는 실금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미 조금씩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거다.
안전 불감증이 이래서 무섭다.
‘본인들은 플레이어이니 건물이 무너져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나.’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곧 무슨 짓을 할지 짐작한 듯 최편득이 입을 벙긋거렸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최편득, 생일빵 받아라!”
손을 높게 올리며 손가락을 튕기자 건물 전체에 붉은 벼락이 관통하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