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1화 (31/925)

9. 비가 그치고 (3)

수많은 기사의 헤드라인들이 이번 사건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일 눈에 띄는 기사는 은광고 현직 교사이자 유명 플레이어 ‘창천명궁 함근형’의 활약상과 그 인터뷰였다.

[명문 은광고 교사 ‘창천명궁’ 대활약, 심야 수십 마리 에너미 단독 토벌]

[20년 전 단신으로 홍천군 스키장 이계화 막은 천재 궁사 ‘창천명궁’, 이번에는 은광구 지켜]

플레이어SAT-K가 ‘의문의 오작동’을 보였을 때 가장 먼저 에너미를 감지하고 수십 마리의 마수종을 단독으로 격퇴한 플레이어로 함근형이 소개되어 있었다.

함근형의 인터뷰는 짧고 간결했다.

‘교사로서 학생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참교사 함근형다운 인터뷰라 생각하며 댓글을 확인했다.

[이런 분이 계셔서 오늘도 지옥반도 이계 천국에서 안심하고 잠듭니다.]

[함근형 선생님 플레이어 업계에서 핵유명함. 원딜계 1티어ㅇㅇ. 교사 안 했으면 최상위 팀 마스터 하셨을 분이심. 지금도 스카웃 들어오고 있을 듯?]

[에너미 습격 시간 보니까 밤 12시 좀 넘은 시각이던데ㄷㄷ 나 은광구 사는데 정말 감사하고 눈물 난다······ 잘못하면 난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겠지]

[플레이어 협회 보고 있냐? 함근형 선생님 덕분에 산 거다. 세금 받았으면 좀 잘하자!]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역시 내 담임 선생님이다.

함근형이 칭찬을 받는데 괜히 내가 기분이 좋아서 기사 스크랩을 잔뜩 했다.

물론 함근형 기사만 뜬 건 아니었다.

최편득의 이름이 떠오르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부동산 등기부 등본만 봐도 은광고 코앞에서 무너진 건물들의 소유자가 최편득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이번 건은 환몽 게이트의 파생 사건이기도 하니까. 잠잠해지던 차에 좋은 장작이 되겠지.’

기사로 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환몽 게이트에서 운 좋게 누락된 플레이어들의 참상.

은광고 코앞 교육 환경 보호 구역에서 최편득이 세운 퇴폐 업소에 대한 간략한 개요.

또 ‘의문의 붕괴’를 맞이한 건물 속에서 추잡한 차림새로 발견된 플레이어들에 대해 나와 있었다.

‘이번에 잡힌 놈들은 전원 형사 처벌을 받을 거다.’

플레이어 협회 직원들의 분노의 야근의 원인이 된 놈들이다.

홍규빈에게 얘기를 들어 보니 검경과 손을 잡고 아주 엄격하게 이번 일을 처리할 예정이라 한다.

홍규빈의 말론 대선배가 도움을 주어 협력 관계를 쉽게 맺을 수 있었다 한다.

‘무쇠팔 송만석이 도와주기로 했나 보네.’

환몽 게이트와 연루된 탓도 있지만, 송만석의 손자가 은광고에 재학 중이니까.

송만석의 눈에 은광고 앞에서 염병을 떤 것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댓글도 확인해 볼까.’

‘환몽’이라는 키워드에 알람이라도 걸어 둔 걸까.

기사 댓글은 환몽 리스트를 작성한 염준열의 팬들로 추정되는 이들로 넘쳐 났다.

[이번엔 은광고 교사도 있네? 준열이네 학교 교사네? 미쳤다, 미쳤어.]

[한국 최고 명문 은광고에 창천명궁같은 킹갓교사느님도 있는데 왜 이런 쓰레기가······ 이제라도 잡혀서 다행이다ㅋㅋㅋ;]

[염병들을 어찌나 정성스럽게 해 놓으셨는지 끝이 없네.]

[환MONGㄹㅣ스트 최신 버전 업데이트 완료했읍니다, 횐님덜. 어차피 잘려도 또 올릴 거지만 빠른 다운ㄱㄱ]

이번 사건으로 대폭 업데이트된 환몽 리스트에는 최편득 외에도 이레나의 부모도 있었다.

‘드디어 이레나 부모가 실렸군.’

증명사진 속 이레나의 부모는 매우 점잖아 보이게 찍혀 있었다.

하지만 환몽 리스트의 비고란에는 별로 점잖지 않아 보이는 최근 근황이 적혀 있었다.

[반나체로 황명타워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후 착란 증상 보여. 기물 파손 및 영업 방해죄, 공연 음란죄로 황명타워 관리팀에게 고발당한 상태]

당일 CCTV는 강한 비바람으로 인해 옥상의 장면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고 한다.

적호가 손을 써 준 거겠지만.

‘혼을 빼놨으니 당분간 이레나를 괴롭힐 일은 없겠지.’

기사들 중에 운 좋게 멀쩡한 기록 기기를 확보한 기자가 있었는지 내 사진도 한 장 떴다.

기사 타이틀은 ‘퇴폐 업소 붕괴 속 의문의 인물, 누구인가?’.

플레이어의 궤적으로 용제건으로 변한 내가 까마귀 가면을 쓰고 붉은 번개 속에 서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체격을 감추는 옷을 입었으니까 이게 용제건이라고 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거야······ 아마도.’

불편한 걸 참고 두꺼운 옷을 입고 가면도 썼고 음성 변조도 했다.

괜찮을 거다.

‘또 이상한 칭호나 안 붙었으면 좋겠네.’

다행히 상태창으로 확인한 내 칭호는 변함없었다.

대중의 관심의 대부분이 창천명궁을 향한 덕분이었다.

역시 내 담임 선생님은 훌륭하고 위대했다.

*    *    *

월요일.

오늘도 하늘이 새파랗다.

날씨는 쾌청, 화창함 그 자체였다.

꽃샘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린 탓에 날은 좀 추웠지만.

추운 걸 감수하고 에어보드에 올라타 하늘을 주행하고 싶을 만큼 멋진 날씨였다.

기분 좋게 야외 아침 훈련을 마치고 기숙사 식당에 가 보니 학생들이 온통 함근형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학생부장쌤 대박. 학교 정문에서 에너미 잡는 장면 봤냐? 결계 부딪쳐서 스턴되자마자 바로 원샷 원킬이더라. 편집 엄청 되고 영상은 일부만 떴는데 그것만 봐도 대박.”

“이거 광림이냐? 얼굴만 무서운 줄 알았는데 광림도 개무섭다. 깝치지 말아야겠다.”

“1학년 0반 담임이지? 0반 애들 좋겠다.”

그래, 함근형이 담임이라 좋다.

아침부터 담임 부심이 차올랐다.

함근형 외에도 최편득 이야기도 큰 화제가 되었다.

플레이어 협회는 최편득에게 10억 이상의 현상금을 걸 예정이라고 밝힌 탓에 얘기가 더욱 커졌다.

“공개 파티 모집 게시판 봤냐? 예비 현상 수배범 최편득 사냥 파티 모집밖에 없더라.”

“그거 1학년 2학기 때부터 가입되지? 최편득 수업 개같이 하던데. 나도 잡으러 가고 싶다. 1학년은 파티 못 짜냐?”

“교칙 위반임. 난 아이템 카드나 기부하려고.”

은광고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이계 공략을 적극 지원한다.

은광고 학생들이 학교 홈페이지에서 이계 공략 파티를 모집하는 건 일상이었고, 드물지만 현상 수배범 사냥을 목표로 하는 파티도 존재했다.

‘게임 속에서도 은광고 게시판에서 현상범 플레이어 토벌 파티에 참가할 수 있었지.’

홀로그램을 열어 확인해 보니 이계 공략 파티는 보이지 않고 최편득 토벌 파티들이 넘쳐났다.

[최편득, 지금 잡으러 갑니다 ^오^ 현상금은 1/n 통찰계, 추적계 스킬 소지자 환영 (7/10)]

[파티 리더는 현상금 필요 없음. 대신 최편득 협회에 넘기기 전 하루 정도 개인 면담 희망. 자세한 건 디바이스로 상담요. (9/10)]

[!대현상금사냥꾼시대개막!♡100%합/법◑➫초ㅣ편득맨손사냥팟☆★주★먹으로만★팬다◐☞부담감NO☜무♡료회복아이템지원§가€입§★※누구나※♬참여§가능♬ (10/10)]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최편득 토벌 파티를 지원하는 서포트 파티입니다. 회복계, 보조계 소모품 아이템 카드 기부받아요. 풀파시 추가팟 세웁니다.(10/10)]

[최편득 토벌 서포트 팟 2 (8/10)]

교칙을 무시하고 참가 신청을 하고 싶을 만큼 유쾌한 파티다.

‘파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거라는 게 안타깝네.’

날이 갈수록 현상금은 커지겠지만 그 현상금을 획득할 사람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거다.

최편득은 은광고의 은영관 지하에서 죽을 때까지 지옥을 맛볼 테니까.

‘최편득을 제외하면 이번 건에 관련된 모든 플레이어는 검거되었으니 다른 현상 수배범은 없겠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잡혀 갔다.

은광고 환경 보호 구역에서 웅족과 협력해 에너미들을 대거 육성하고 방치한 죄가 제일 컸다.

거기에 퇴폐 업소 불법 이용에 방조죄에 마약 거래 및 투여에 인신매매에 걸려 있는 혐의들의 개수만 두 자리가 넘어갔다.

기사에 뜨진 않았지만 플레이어SAT-K 위성 신호 조작에 연루된 이들도 있으니 플레이어 협회는 죽어 나가고 있을 거다.

‘홍규빈은 3월 내내 야근해야겠구나.’

홍규빈은 능글맞은 계략가 타입이다.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지만 개고생을 하는 꼴을 보니 좀 불쌍했다.

‘안부 메시지라도 보내야지.’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도 개난장판이었으니 답이 없다.

좋은 경험은 아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열심히 해서 깨끗한 협회를 만들어라, 홍규빈.

간단한 안부 인사 메시지를 날렸다.

[나] 안녕하세요. 기사 봤습니다. 홍규빈 팀장님 고생이 많으시네요. 힘내세요.

보내고 1분도 안 됐는데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홍규빈] 고맙다, 의신아^^ 요즘 일교차 큰데 감기 조심하고. 학교에 별일은 없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 줘.

홍규빈은 평소대로 싹싹하게 칼답장을 날렸다.

방해가 될까 봐 또 답장을 날리진 않았다.

일부러 씹는 게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조련계 웅족은 적호에게 잡혔고, 황명재단 이사 셋이 잘리고, 은광고 교사 다섯이 잘렸고. 플레이어 협회도 물갈이가 될 거고.’

은광고도 협회도 점점 깨끗해지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1학년 0반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나를 기다리던 황지호를 보기 전까진.

“일을 제대로 쳤더라.”

설마 진짜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0반 쪽 출입구는 통행이 적은 편이라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이사장으로선 머리가 아파. 최편득 일로 이사 세 명과 교사 다섯을 갈아 치우게 생겼어. 학교 행정 공백이 엄청나. 최편득 일당이 장난질한 서류들도 다시 체크해야 하고. 최편득이 한중일 청소년 플레이어 교류전 추진 위원회 맡고 있던 거 알아? 그거 걔가 무산시키려 했더라. 기획 단계부터 다시 해야해.”

머리가 아프긴 개뿔.

황지호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기분이 몹시 상쾌한 나는 자비로웠다.

괜히 바쁜 척 힘든 척을 하려는 황지호에게 작은 도움을 주기로 했다.

“여태까지 최편득이 정교사 승인 심사도 담당하지 않았어? 능력 있어도 뇌물 안 먹여서 못 올라간 사람들 많을걸. 그 사람들 정교사로 올리면 일할 사람들 늘어날 거야.”

“추천하고 싶은 교사가 있나 보네.”

5천 년 산 호족답게 황지호는 눈치가 빨랐다.

‘그 교사가 최편득하고 전공이 겹쳐서 엄청 견제당했지.’

게임 속에서 우수하지만 돈도 백도 없어 정교사가 되지 못한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가 한 명 있었다.

그는 10년이 넘게 고아원의 자원봉사 활동을 다니는 호인에다 스펙도 훌륭한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그 교사는 은광고에 애정이 있어 변변찮은 월급을 받고 최편득의 텃세를 견디며 재직했다.

그는 한국에서 몇 안 되는 태호권의 계승자이기도 했다.

“이름은 공청훤이다.”

1학년 0반 소속인 한이의 은인, 은사인 공청훤.

그는 게임 속에서는 정교사가 되지 못한 채로 죽었다.

이 세계에서는 그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다.

‘공청훤도 한이도 좋아할 거야.’

우리 반에 경사가 이어질 것 같다.

한이의 기뻐할 얼굴을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최편득이 담당하던 에너미학 개론의 교사는 곧 공청훤으로 바뀔 것이다.

공청훤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황지호와 함께 1학년 0반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김유리가 나와 황지호를 보자 환성을 지르며 다가왔다.

“의신아, 지호야!”

또 무슨 일이 있나?

김유리는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밝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김유리가 몸으로 조금 가리고 있던 교실 안을 보여 줬다.

“우리 반 출석률 완전 올랐어!”

교실에는 맹효돈과 이레나가 있었다.

“봐! 우리 반 이제 여섯 명이야.”

김유리는 감격한 목소리였다.

교실을 넓게 쓴다고 좋아하던 김유리였지만 급우가 넷밖에 없다고 쓸쓸해하기도 했었다.

김유리는 출석률에도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레나야, 앞으로도 계속 등교해 줘!”

“······응!”

주말 동안 이레나의 부모의 정신 공격이 사라진 탓인지 그녀는 조금 밝아진 모습이었다.

회복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와서 다행이다.

이레나와 맹효돈이 함께 첫 등교했으니 관심도 반으로 나누어져 이레나도 부담이 덜할 거다.

‘마음을 완전히 닫았던 안다인과도 친구가 된 김유리니까, 이레나와도 잘 지내 줄 거야.’

김유리의 주도하에 한이와 이레나도 서로 어색해하면서도 통성명을 하고 있었다.

게임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 사교성, 인싸력 만렙이던 김유리답다.

셋은 금방 친해질 것 같았다.

한편, 맹효돈은 자신보다 한 뼘 정도 키가 큰 김유리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쟤가 반장······.”

파이트 클럽에선 안 궁금하다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출석률 신경 쓴다던 반장이 누구였는지 궁금했나 보다.

맹효돈의 시선을 느낀 김유리가 맹효돈에게 다가와서 밝게 인사했다.

“효돈아, 잘 왔어! 앞으로 1년 동안 잘 부탁해.”

“어, 어······.”

맹효돈은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김유리에게 민망해하는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남중을 나온 데다 그 남중에서도 죽 붕 떠 있던 그다.

낯선 이성 또래가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건 순수 배양 남고생 맹효돈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일 거다.

맹효돈은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정신없이 시선을 돌리다 교실 전자 칠판 위 정중앙을 쳐다봤다.

1학년 0반의 급훈.

‘정시 등교’

맹효돈의 표정만 봐도 ‘이게 웬 개소리냐’라고 생각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뭐야 이 급훈은. 부반장이 지었냐.”

아닌데.

하지만 내가 대답하기 전.

맹효돈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급훈 등신 같네. 누가 지은 거냐?”

“내가 지었다.”

맹효돈의 말에 대답한 건 막 교실에 도착한 함근형이었다.

함근형은 오늘 맹효돈의 첫 등교다 보니 걱정되어서 조금 일찍 온 듯했다.

함근형을 본 맹효돈이 얼어붙었다.

그런 맹효돈을 내버려 두고 수업종이 무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빠―이빠이빠이야―!]

방송부와 오늘 수업종 담당인 밴드부가 약을 빨았는지 하필 선곡된 게 ‘소명’의 ‘빠이빠이야’였다.

이 곡은 이별을 노래하는 한국 트로트 곡으로 보통 ‘잘 꺼져라’라는 의미를 담아 사용되기도 했었다.

최편득은 실종되고, 비리 이사와 교사진들이 대거 검거되었으니 그들을 위한 선곡일 거다.

‘기사가 뜬 건 일요일인데 그새 녹음을 한 건가.’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베이스로 편곡한 파워풀한 반주를 깔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보컬이 한이 절절하게 서린 두성을 내질렀다.

‘쓸데없이 고퀄이네.’

부활동은 오늘부터 시작하니까 수업종을 제작한 건 2, 3학년들이다.

수업종은 원곡을 완전히 무시하고 무한하게 ‘빠이빠이야’라는 가사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은광고 선배들이 쌓인 게 많은가 보구나.’

맹효돈의 발언.

함근형이 등장한 타이밍.

수업종 선곡.

1학년 0반은 등신 같은 분위기 속의 총체적 난국이었다.

정확히 1분에 맞춰서 녹음을 했는지 수업종은 페이드 아웃되지 않고 ‘빠이빠이빠이야아악!’ 하고 샤우팅과 함께 끝났다.

저벅저벅.

수업종이 완전히 끝나자 죽 교실 문 앞에 서 있던 함근형이 교탁으로 이동했다.

굳어 있던 맹효돈은 함근형의 움직임에 반응해 허겁지겁 자리에 앉았다.

쾅!

맹효돈이 많이 쪽팔렸는지 책상 위로 얼굴을 박았다.

초강화 세라믹 소재의 책상 상판과 맹효돈의 돌머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평범한 나무 책상이었다면 두 동강이 났을 거다.

“학교 비품은 살살 다루자, 맹효돈.”

“······네.”

책상 위로 고개를 처박고 있는 맹효돈의 귀가 시뻘겋다.

“등신 같은 급훈 앞으로 잘 지키고.”

“······네.”

함근형이 웃으며 막타를 쳤다.

맹효돈의 정신력은 0이 되어 하얗게 불탔다.

“하하하하!”

결국 맹효돈을 제외한 교실에 있던 1학년 0반 모두가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이레나도 눈꼬리에 눈물을 조금 달고 있을 정도로 웃고 있었다.

맹효돈이 좀 진정된 후엔 조례를 이용해 1학년 0반 여섯 명이 자기소개를 마쳤다.

맹효돈과 이레나의 첫 등교는 매우 순조롭게 끝났다.

*    *    *

방과 후.

첫 부활동이 시작되었다.

중앙 구역, 총동아리 회관에 위치한 부실 앞.

‘신문부’

내 옆에서 팻말을 올려다보며 황지호가 말했다.

“신문부는 상상도 못했다. 안 어울리는데.”

나는 신문을 자주 읽는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독자로 있고 싶었지 기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나와 신문부는 어울리지 않는데.’

나는 황지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부실 안으로 들어갔다.

황지호는 눈을 반짝이며 내 뒤를 따라왔다.

이 부활동을 선택한 건 오직 한 사람을 위해서다.

‘아니, 이 사람을 살리면 은광고 전체를 위한 일이 될 테니까 딱히 한 사람을 위한 건 아니야.’

신문부실에는 신입생과 선배를 포함해 스무 명 정도가 있었다.

신입생이 앉을 자리엔 이름표가 붙어 있어 금방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조의신, 우리 자리 여기야.”

“그래.”

나와 황지호가 자리에 앉았다.

소형 전자 칠판 앞에 서 있던 신문부의 고문 교사가 칠판 위에 적힌 디바이스 코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문인 제갈재걸이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렴. 그럼 신입생들, 자기소개부터 할까.”

신문부의 고문은 교무부장 제갈재걸이었다.

게임 속에서 스토리 초반, 학생을 대신해 저주를 맞고 퇴장하여 1년에 걸쳐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는 그 정의로운 교사였다.

나는 제갈재걸의 죽음을 막으려면 이 부활동에 참가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안녕하세요, 1학년 0반 조의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갈재걸의 죽음을 막기 위한 포석은 깔았다.

최편득은 은광고에서 사라졌다.

적호를 통해 최편득이 특별 전형으로 들여온 부정 입학자의 명단도 확보했다.

이제 다음 수를 놓을 때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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