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비가 그치고 (4)
외부는 이능으로 만든 초강화 유리로, 내부는 이계 금속으로 구성된 지익회관 시뮬레이터실.
이곳은 기숙사생들이 다른 학생들의 훈련 모습을 참관할 수 있도록 황명호 이사장의 지시하에 세운 최고급 설비였다.
이 훈련실은 학생 복지와 경쟁력 향상이라는 멋진 명목을 가지고 있었다.
실상은 황호가 훈련을 구경하고 싶을 때 ‘유리창이 아니면 보기 힘들어서.’라는 이유로 세워진 곳이다.
“와…… 방금 스킬 쓰는 거 봤어?”
“어, 쩐다.”
아침부터 그 돈지랄 시뮬레이터실에서 기숙사생들이 가상 에너미를 상대로 훈련을 하고 있었다.
보통 참관의 대상이 되는 건 불, 물, 바람, 땅, 전기 속성 같은 화려한 자연계 전투 스킬을 가진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가장 주목받는 학생은 신입생 ‘무명의 초신성 조의신’이었다.
“무기 몇 개는 이름도 모르겠네······ 아, 저건 알겠다. 우르미 아니냐? 고대 인도에서 쓰던 연검.”
“아까 신화비아랑 천자총통 쏘는 거 보고 터졌다. 저걸 학교에서 준 거냐.”
“아무리 봐도 레벨1 아닌 것 같은데.”
“입학 한 달도 안 됐는데 스킬 레벨 올랐다고? 미쳤네.”
기숙사생들이 초강화 유리창을 통해 조의신의 전투 자습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조의신은 무기당 2초가량을 할애해 가상 에너미를 공격한 후 곧바로 아이템 카드를 교체해 버렸다.
“아, 벌써 교체했어. 카람빗 어떻게 쓰는지 더 보고 싶었는데.”
“난 재블린 던지는 거 한 번 더 보고 싶다.”
관중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의신은 계속 무기를 교체했다.
아이템 카드는 마법같이 손끝에서 뻗어 나왔다.
빠른 카드 실체화, 무기 교체 속도, 스킬을 발동시키는 움직임 전부가 민첩하고 날카로웠다.
“조의신 무기 아이템 카드 300개 받았다 하지 않았냐? 지금 사용한 무기 300개 넘은 거 같은데.”
“개인 무기도 많나 봐.”
물론 그 개인 무기는 조의신이 변순회와 최편득의 개인 재산을 턴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아이템 카드 대체 어디서 꺼내고 있는 거냐.”
“광림 같은 걸 끼얹나?”
“광림이다에 오늘 나올 아침 메뉴 간식 걺.”
“영국 매지션 플레이어가 아이템 카드로 마술 쓸 때 대충 저런 모션을 쓰는 거 같았는데. 마술 스킬 아니야?”
“손에 카드 숨기는 마술 기술은 ‘팜’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백팜? 원핸드 팜? 무슨 기술 쓰는 거지?”
“지금 거의 400장 된 거 같은데 마술 스킬로 카드 400장 넘게 숨기는 게 가능하냐.”
조의신은 그저 전용 메뉴 스킬로 아이템창에서 아이템 카드를 선택해 그냥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전용 메뉴의 존재를 모르는 학생들의 눈에 그 일련의 동작은 미지의 대상이었다.
기숙사생들은 답 없는 논의를 이어 갔다.
그 와중 조의신은 아바레스트를 쏘는 것을 마지막으로 훈련을 마쳤다.
“아, 이제 끝났나 봐.”
“딱 500번째야.”
“그걸 세고 있었냐. 어······ 용쌤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의신의 훈련 모습에 집중하던 기숙사생들이 뒤늦게 반응했다.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던 교사, 용제건과 학생들이 인사를 나눴다.
진족의 용족임을 숨기지 않는 이 괴짜 교사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용쌤, 용쌤! 종각역 붉은 사자 팀 빌딩에서 출퇴근 하신다면서요.”
“용제건 선생님, 이제 기숙사 들어오시는 거예요?”
“아니. 오늘은 김신록 선생님하고 얘기할 게 있어서 들렀어.”
용제건의 대답에 기숙사생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아······.”
“이사 와요, 용쌤!”
“생각해 볼게.”
용제건은 학생들에게 부드럽게 답하면서도 유리 너머의 1학년생을 주시했다.
“저 학생이 무명의 초신성, 조의신······.”
무명의 초신성, 500번째 무기의 사용을 마친 조의신은 창밖의 상황을 전혀 몰랐다.
조의신은 자신의 귀에만 들렸던 시스템 알림음에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다.
〈스킬 ‘만물 사용’의 레벨이 2에서 3으로 상승하였습니다.〉
* * *
오늘 아침 훈련으로 만물 사용 스킬 레벨이 올랐다.
무기의 소지만으로 레벨이 오른다면 다양한 무기를 사용한 경험이 생겼을 때 또 레벨이 오를 거라는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방윤섭과 대결했던 첫 수업에서 함근형도 그렇게 말했었고.’
현재 내 종합 능력치는 Lv.15 .
입학 당시 Lv.13에서 두 단계 오른 수치다.
게다가 만물 사용 전투 스킬 레벨은 3 .
이 정도면 ‘조의신’ 그 자체도 그럭저럭 쓸 만해졌다.
플레이어의 궤적을 쓰지 않더라도 웬만한 은광고 학생과 상대가 가능해진 셈이다.
‘훈련한 보람이 있네. 훈련 마치고 나올 때 갑자기 말 거는 사람이 많아서 고생은 했지만.’
전용 메뉴 스킬에 대해선 적당히 말을 돌렸다.
멋대로 마술이니 광림이니 추측해 준 덕에 변명할 수고는 없었다.
“어, 부반장.”
기숙사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나와 같은 층인 17층에 배정받은 맹효돈이 말을 걸어왔다.
그도 등교를 할 모양이니 이대로 함께 가면 될 것 같다.
“맹효돈, 아침밥은 먹었어?”
“먹었다. 오늘은 버터밀크 크로와상하고 모짜렐라 치즈가 맛있더라.”
아침에도 된장국과 밥을 먹을 것 같은 맹효돈의 입맛은 의외로 서양식이었나 보다.
기숙사 식당 아침은 한식, 양식 모두 준비되어서 골라 먹을 수 있으니까.
“한식은 삼색 나물이 의외로 맛있었다. 특히 도라지나물볶음. 참기름하고 깨로 무친 거.”
아, 둘 다 먹은 거구나.
맹효돈은 양식, 한식 가리지 않는 것 같다.
“어제 나온 메뉴 중에선 디저트로 나온 참마단호박죽이 맛있었다.”
“나도 그건 두 그릇 먹었는데.”
“나는 세 그릇 먹었다. 수플레 오믈렛도 따로 먹었고. 슈가파우더 안 뿌리고 먹는 게 더 맛있었어.”
맹효돈은 지난 주말부터 오늘 아침까지 먹은 메뉴를 하나하나 읊으며 맛 감평을 해댔다.
아무거나 대충 다 잘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맛을 음미하고 기억하면서 먹었나 보다.
‘메뉴 이름들을 칼같이 기억하고 있는 게 대단하네.’
맹효돈은 먹방하면 잘할 거 같다.
그렇게 신나게 메뉴에 대해서 떠들며 학교로 향했다.
“효돈아!”
이 세계의 타이틀 히어로 주수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주수혁이 맹효돈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게 보였다.
보통 저 속도로 뛰면 얼굴이 바람에 눌려서 굴욕짤이 생기는데 주수혁이 저러니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너 은광고 왔었어?”
“······그래, 주수혁. 오랜만이다.”
맹효돈 앞에 멈춘 주수혁이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두 사람은 청소년 스포츠 대회 예비 플레이어 부문 결승에서 몇 번이나 마주한 라이벌 사이였다.
그냥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보다 악수하는 게 익숙할 거다.
“찾아도 안 보여서 다른 학교 간 줄 알았어. 몇 반이야? 난 2반.”
“0반.”
“의신이랑 같은 반이네.”
주수혁은 몹시 기뻐하며 맹효돈과 내게 말을 걸었다.
주수혁의 높은 의사소통 능력으로 순식간에 우리 셋은 디바이스 코드를 교환하고 단체 메시지방까지 만들었다.
‘김유리급의 인싸력을 자랑하는 주수혁답네.’
아직 웨어러블 디바이스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맹효돈은 연락처 등록에 한참을 헤맸다.
맹효돈의 아버지는 의식주도 제대로 해결해 주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는 고물 취급받는 스마트폰조차 없었을 테니 스마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대회에서 봤을 때 집 주소라도 받아 둘걸, 하고 후회했어. 정식 플레이어가 되면 스포츠 대회는 못 나가잖아. 다시는 못 볼까 봐 걱정했어. 은광고에서 만나서 다행이다.”
정식 플레이어는 스포츠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17세 미만은 정식 플레이어가 아니니 청소년 예비 플레이어 부문이 따로 개설되어 있었지만.
“자주 연락하고 지내자. 효돈아!”
맹효돈은 디바이스 사용이 어렵다며 툴툴거리긴 했지만 멍청한 얼굴로 메시지방을 바라봤다.
맹효돈이 중학생일 때, 그에게 살갑게 대해 준 또래라곤 대회에서 만났던 주수혁 정도니까 각별하게 느낄 거다.
‘게임 시작 전부터 주수혁은 사람 여럿 구했지.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나와 주수혁이 맹효돈에게 디바이스 사용법을 알려 주며 평화롭게 1학년 교실로 향할 때, 평화가 깨졌다.
“싸우자, 조의신!”
앗, 야생의 빵셔틀 방윤섭이 튀어나왔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또 졸렬하고 소인배다운 전법을 생각하고 왔나 보다.
“이제 난 종합 능력치 레벨도 올랐다. 항마력을 올리는 아이템도 있다! 덤벼라, 조의신 개자식아아아!”
방윤섭은 여전히 졸렬한 소인배인 데다 멍청하기까지 했다.
‘그걸 지금부터 싸울 상대한테 말하면 안 되지. 멍청한 놈아.’
페어플레이 정신은 갖다 버린 건지 시작 신호 같은 것도 없었다.
그는 무작정 쌍절곤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나는 최편득에게서 털어 낸 SR 아이템 카드 중 두 장을 골라 들었다.
“야, 무명의 초신성하고 빵셔틀 싸운다!”
“빵셔틀 매치 2차전이냐? 할 거면 돈 걸고 하게 예고는 하고 해라!”
“아, 안 돼. 벌써 시작했어!”
“아놔. 개 머네. 에어보드 수동 조작되게 불법 개조해 둘걸······!”
어느새 등교 중인 학생들이 몰려와 구경하고 있다.
저 멀리서 싸움 구경을 위해 뛰어드는 놈들도 디바이스로 생중계 한답시고 홀로그램을 켜 둔 놈들도 있었다.
방윤섭이 무명의 초신성의 빵셔틀이 된 건 유명한 사실인가 보다.
‘관객이 있으니 쇼맨십을 발휘해야지.’
오늘은 날도 상쾌하고 바람도 좋다.
SR 아이템 ‘창연한 바람을 부르는 롯드’를 실체화했다.
〈스킬 ‘만물 사용’이 발동합니다.〉
시스템 음과 함께 머릿속으로 마법의 주문과 그 효과들이 흘러들어왔다.
레벨업이 된 덕분인지 사용 가능한 주문의 레퍼토리도 예상되는 위력도 증가했다.
방윤섭의 항마 아이템이 어느 수준인지 모르겠지만 캐스팅 시간이 5초 이내인 마법 중 제일 강력한 걸 써 보자.
‘막히면 두 번째 근접 무기 아이템으로 공격하면 그만이다.’
마법이 작동할 때 필요한 과정인 캐스팅은 3단계를 거친다.
마나 운용 수식의 이해.
이해에 따른 롯드의 움직임.
그에 따른 마나의 흐름 변화.
그 캐스팅을 마친 시전자가 약속된 언어로 구성된 주문을 외치면 마법이 발동한다.
“에스켄시 벤티(Escensii Venti)!”
내 주문이 끝난 것과 동시에 바람의 흐름이 바뀌었다.
솨아아아―!
“으하하하! 마법은 소용 없······ 어, 어, 뭐야!”
잔잔하게 불던 봄바람의 기세가 험악하게 변했다.
하늘 저 높이 솟은 회오리바람이 방윤섭을 향해 달려들었다.
와아아아아―!
내 롯드의 끝에서 폭풍이 등장하자 등교생들이 함성을 질렀다.
반면 재해에 휘말린 방윤섭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방윤섭의 항마 아이템이 견딜 수 있는 마법 데미지를 가볍게 초과한 듯 아이템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와직!
항마 아이템 소실 이펙트가 바람 저편에서 보인 것 같았다.
그 작은 빛이 사라지자 방윤섭은 회오리에 휘말려 높이 날아 올려졌다.
그가 점점 작게 변한다.
점점, 멀어진다.
‘어, 너무 세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방윤섭이 죽겠다.
나는 마법 주문을 거뒀다.
그러자 그가 철퍽, 하고 개구리가 뒤집어진 자세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바람이 쿠션 역을 하도록 조종했기 때문에 데미지는 크지 않겠지만 오늘도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근접 무기 아이템은 쓸 일이 없어졌네.’
그래도 기선 제압을 위해 써 볼까.
나는 두 번째로 준비한 아이템 카드인 SR급 ‘재야 고수의 강철 쌍절곤’을 실체화해 달인처럼 휙휙 돌리며 방윤섭을 향해 걸어갔다.
레벨 3 수준의 쌍절곤 스킬의 손놀림이었다.
그걸 알아본 방윤섭이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진해라, 방윤섭.”
“미친. 너 레벨 1이었잖아!”
“레벨업 했어.”
방윤섭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너 이대로 가다간 쌍절곤으로도 나한테 질 거야.”
“에이씨······.”
방윤섭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 바닥에 드러누웠다.
“오늘도 눈 호강했네.”
“마법 진짜 쩐다. 나도 배우고 싶어.”
“빵셔틀 매치 보고 기초 마나 운용론 수식편 인터넷 강의로 들어 봤는데 개어려워. 그냥 다른 전투 스킬 배우는 게 낫다.”
“무명의 초신성, 구경 잘했다!”
“빵셔틀, 다음엔 좀 잘해 봐라.”
짧고 강렬했던 싸움이 끝나자 관객이었던 등교생들은 한마디씩 하고 다시 교실로 향했다.
맹효돈과 주수혁은 옆에 남아 방윤섭을 향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윤섭이 체간 단련 더 해야겠다.”
“쟤 무게 중심 이동할 때 뭔가 좀 어설퍼 보이던데.”
부관참시, 확인 사살, 팩트 폭력이 계속되었다.
엎어져 있던 방윤섭이 울컥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차마 수석인 주수혁에게 까불 생각이 들지 않는 듯 맹효돈에게 삿대질해대며 화풀이를 했다.
“넌 뭐야! 완전 땅에 붙어 다니는 새끼네. 중학생이냐?”
맹효돈의 약점은 평균 이하의 키와 체구다.
수많은 대회 참가와 반복된 에너미와의 싸움으로 단단한 근육을 갖고 있긴 하지만.
저 체구로 주수혁과 라이벌 취급받은 맹효돈은 진정한 싸움의 귀재였다.
‘한창 자라야 할 시기에 맹효돈은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어.’
함근형의 말론 맹효돈은 현재 비타민 부족, 영양실조, 회복 아이템 남용으로 인한 중독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플레이어가 아니었다면 장기 입원을 해야 할 정도라 한다.
‘아직 맹효돈은 10대이기도 하고 튼튼한 체질이니 지금부터 식생활을 개선하고 회복 아이템 사용을 자제하고, 재활 훈련을 하면 괜찮다고 들었지. 나도 옆에서 도와줘야겠다.’
내가 짧게 생각에 빠진 동안, 맹효돈과 주수혁이 방윤섭의 말에 얼굴을 굳히며 답했다.
“너 나한테 시비 거는 거냐.”
“윤섭아, 효돈이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주수혁이 방윤섭을 나무라자 그가 화들짝 놀랐다.
맹효돈의 명찰을 확인한 방윤섭이 경악한 얼굴로 말했다.
“효돈이? 너 맹효돈이냐?”
게임 속 은광고에서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다.
방윤섭은 1학년 말에 빙의계 악마종으로 에너미화 되는 바람에 주수혁의 손에 죽고 맹효돈은 2학년이 되어서야 싸움 노예에서 벗어나 등교를 시작하니까.
“기억났다. 중학교 때 태권 쌍절곤 대회에서 봤는데. 너 나한테 예선에서 깨지고 울었던 새끼지.”
두 사람은 중학생 때 만났었나 보다.
방윤섭의 얼굴색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방윤섭은 맹효돈이 중학생 시절 온갖 대회를 휩쓸고 다닌 시절 예선에서 광탈한 피해자였구나.
방윤섭도 은광고에 올 만한 실력자였지만 맹효돈에겐 어림도 없었나 보다.
“싸울 거면 받아 준다.”
맹효돈이 엎어져 있는 방윤섭에게 다가갔다.
방윤섭은 맹효돈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너 담배도 피우냐? 냄새나, 등신아.”
방윤섭 앞에 멈춰 선 맹효돈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담배라고?
나는 지갑에서 5만 원권 지폐를 한 장 꺼내 방윤섭에게 내밀었다.
그는 내밀어진 지폐를 보고 쌍욕을 뱉었다.
“빵 사 와.”
“에이씨.”
“서문 앞에 있는 수제 빵집에서 케이크 사 와라. 프로마쥬 블랑 무스 케이크로. 포크는 일곱 개 챙겨 와.”
은광고 서문 앞에는 파티셰 플레이어가 경영하는 유명한 수제 케이크 전문점이 있었다.
미식가 맹효돈에게 외부 음식을 먹여 주고 싶었다.
그는 언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외출 금지 상태니까.
“아오, 3학년 매점보다 더 멀잖아!”
“싫어?”
“조의신, 이 에너미 같은 새끼야!”
“이번에 먹을 거에 장난치면 손톱 다 빠진다.”
그사이 옆에서 주수혁이 맹효돈에게 약속의 불집게 빵셔틀 매치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었다.
“수업 시작하기 전까지 갔다 와. 방윤섭.”
죽어라 자전거를 밀며 사라지는 그를 배웅했다.
맹효돈은 우수한 후각을 가졌나 보다.
방윤섭을 족칠 때 맹효돈의 후각을 활용하면 편할 것 같다.
“야, 맹효돈. 쟤가 담배 피우는 거 발견할 때마다 빵 살게.”
“뭐, 진짜냐? 할래.”
“의신아, 나도 할래!”
“그래. 잘 부탁해.”
방윤섭과 같은 반인 주수혁이 협력해 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방금 만든 세 명이 들어간 단체 메시지방은 훌륭한 정보 공유의 장이 될 것 같다.
방윤섭은 게임 속 근접 공격계의 1티어, 주수혁과 맹효돈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잘 가라, 방윤섭. 금방 금연하겠구나.’
방윤섭이 사 온 케이크는 주수혁과 1학년 0반 여섯 명이 함께 잘 나눠 먹었다.
크림치즈 무스와 블루베리 콩피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냈다.
숨겨진 미식가 맹효돈과 단맛 애호가 한이의 극찬 속에 케이크 파티가 끝났다.
* * *
방과 후 부활동 시간.
신문부가 가진 몇 개의 부실 중에서도 신입생 전용 부실.
나와 황지호를 포함한 여덟 명의 신문부 신입 부원이 각자의 디바이스의 홀로그램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에게 내려진 첫 과제는 학교에 있던 사건 하나를 기사로 쓰기다.
“좋겠다. 날로 먹어서.”
황지호는 내 옆에서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응, 좋아. 날로 먹어서.”
내가 기사로 택한 건 나와 방윤섭의 빵셔틀 매치 2차전이다.
방윤섭 덕에 날로 먹었다.
황지호 외에도 다른 여섯 명은 기삿거리가 없어 고통받고 있었다.
“빵셔틀 매치 2차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1학년 2반 소속, 게임 속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던 문새론은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픽션 속에서 흔히 등장하는 신문부 소속 정보통 캐릭터가 문새론이었다.
3학년 때까지 살아남아 신문부 부장이 될 예정인 캐릭터이기도 했다.
“또 내기 총대 메려고? 그때 선곡 좋더라.”
“황지호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지? 빅 매치에서 내기와 BGM이 빠지면 안 되지!”
“그래. 가능하면 폭죽도 쏘고 싶어.”
“뭘 아네, 황지호.”
문새론은 그 빵셔틀 매치 1차전 때 내기 어플리케이션을 가동해 총대를 멘 녀석이기도 했다.
‘문새론하고 황지호는 죽이 맞는 모양이네.’
잠깐 빵셔틀 매치에 관해 얘기가 나왔으나 다시 화제는 눈앞에 놓인 기사 쓰기 과제로 바뀌었다.
통성명을 한 신문부 신입생 부원들이 나와 황지호에게 농담조로 말을 걸었다.
“곧 만우절이니까 기삿거리가 넘칠 거라 들었다. 0반 선배들이 올해도 한 건 해 줄 것 같대.”
“둘이 1학년 0반이지? 사고 칠 거면 기사 하나는 양보해라.”
“올해 1학년 0반은 역대급 얌전함으로 유명하니까 별일 없지 않을까?”
워낙 얌전해서 역대급으로 학교를 나오지 않는 게 문제다.
3월이 끝나고 4월이 되도록 등교한 건 16명 중 6명뿐이다.
‘곧 4월 1일 만우절이네······.’
만우절은 게임 속에서도 주요 이벤트가 벌어지는 날이다.
“0반이 만우절에 매년 사고를 쳐 주는 게 관례라는데.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냐, 조의신?”
“안 돼.”
“왜?”
황지호의 물음에 간략히 답했다.
“바빠서.”
내 얼굴을 응시하던 황지호가 묘하게 눈을 빛내는 것 같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나는 만우절을 아주 바쁘고 알차게 보낼 예정이었다.
‘사람도 구하고 최편득이 남긴 쓰레기도 처리하면 아주 보람차겠지.’
0반다운 면모를 보여 주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정말로 보람찬 만우절이 될 거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