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3화 (43/925)

13. 12지 동맹 회담 (1)

미로 정원 이동용 에어 셔틀에서 내리자마자 올무가 온몸을 던져 애교를 부려 왔다.

왕왕―!

올무는 서포터를 떼고 어설픈 발놀림으로 달렸다.

서포터가 없어서 더 신난 건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 몸을 비비기도 하고 아주 난리다.

“그래, 올무야. 잘 지냈냐.”

신수라서 그런지 보통 강아지보다 빠르게 크는 것 같다.

이젠 솜뭉치라기보다는 올무라는 이름이 어울리게 되었다.

올무를 안아 들어 귀부터 꼬리 끝까지 꼼꼼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조의신 님······! 안녕하세요!”

“의신 님 안녕하세요!”

“저······ 안녕하세요!”

은호의 후예 셋이 등장했다.

이사장 사택에서 하숙을 시작했는지 편한 차림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런데 조의신 님이라니.

“그냥 형이라고 해.”

한 손으로는 올무를 안아 들고 남은 손으로 은호의 후예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관리된 은발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게 굉장히 기분 좋다.

처음 봤을 땐 흑발이었는데 이 대저택에서는 위장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 놓고 본모습으로 있나 보다.

“네, 조의신 형!”

“의신 오빠!”

“의, 의신이 형.”

셋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보면 볼수록 내 동생들이 생각난다.

인간은 아니지만, 얘들은 아직 10대밖에 안 된······.

잠깐, 오빠?

남자애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셋 다 비슷비슷하게 생기고 머리카락이 짧아서 몰랐다.

“저, 진명(眞名)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현세에서 쓰는 저희들의 이름은······.”

당연히 진명(眞名)은 말하면 안 된다.

진족의 뜻은 진명을 가진 종족이란 뜻이었다.

진족도 진족의 후예도 제 힘, 이능을 각성할 때 자신의 진명을 알게 된다.

진명은 존재의 근원, 힘 그 자체다.

백호군이 지금 천신이 부여한 힘에 의해 생성된 진명을 분실했다고 죄인 취급받고 까이고 있을 정도다.

‘그 분실한 진명을 누가 얻기라도 하면 백호군은 꼭두각시가 되겠지.’

진명을 분실한 백호군은 신역인 은광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힘을 묶여 버렸다.

어쩌면 그것도 천신이 백호군을 신역 안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저는 은서호······.”

“은이호예요!”

“으, 은재호입니다.”

두 명은 중학생 나이인데도, 초등학생들이 자기소개 하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사람 대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게 보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부르겠습니다. 그때까지 방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디바이스 코드를 교환하고 있을 때.

적호가 은호의 후예들을 불러 모았다.

“네에!”

“네, 적호 님!”

“네······.”

적호의 말에 세 후예가 내 연락처가 입력된 디바이스 홀로그램을 보며 까르르 웃다 위층으로 뛰어갔다.

“은호 님의 후예도 조의신을 잘 따르는군요.”

“애들이 예의 바르네요. 만우절 사건 때문에 고마워하는 것 같아요.”

“그뿐인 아닌 것 같은데요.”

그뿐이 아니야?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의신에게는 신뢰가 갑니다. 그렇지 않다면 백호도 그리고 저 황호가 움직일 리가 없겠죠. 아마 다른 호족들도 비슷한 걸 느낄지도 모르겠군요.”

대체 그게 뭔 소리일까.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의문을 담아 빤히 쳐다봤다.

시선을 받은 적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떴다.

비탄의 웅녀와 똑같은 그 버릇이다.

“제가 조의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군요. 미안합니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적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내가 이 세계를 게임으로 접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숨겨진 요소가 있나?

적호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감사의 말이 늦었군요. 잠입했을 때 이성을 잃을 뻔한 저를 말려 주지 않았다면······ 신역을 더럽힌 이들을 놓쳤을 겁니다.”

뭐라 답변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끄응.

고민하고 있으니 올무가 놀아 달라며 머리를 내 가슴께에 비벼 왔다.

올무를 보며 작게 미소 지은 적호가 말했다.

“가죠. 소개해 드릴 손님이 있습니다.”

차를 내온 오토매틱 메이드와 엇갈리며 1층 응접실로 들어갔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상석에서 불만 어린 얼굴로 떡을 입에 넣는 황지호였다.

“······떡은 맛있네.”

뭐 저런 표정으로 먹고 있냐.

황지호는 종이 포장지로 감싼 부꾸미와 호박대추차를 음미하면서도 표정은 점점 썩어 갔다.

“하하하, 월궁의 항아님께 직접 올리던 떡인데. 맛이 없을 리가 없지!”

아마 썩은 표정의 원인은 저자일 거다.

‘누구지?’

백호군 맞은편 소파 위에 낯선 여성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면피 가죽 소파의 헤드레스트를 45도로 조정해 제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한 자세로 기대 앉아 떡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익숙하다.

‘달토끼떡 CEO인 토족(兎族)이다······!’

달토끼떡 웹페이지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인간계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옥토연’.

자신이 진족이라는 사실도 비즈니스에 써먹어 상품의 고급화에 대성공한 사업가 정신이 투철한 이였다.

“얘가 은호의 후예를 구한 인간 아이지?”

“네, 옥토연.”

적호의 대답을 듣고도 여전히 한 손에 콩찰떡을 든 토족은 나를 품평하듯 위아래로 훑어봤다.

“음······ 진짜로 그냥 인간이네.”

콩찰떡을 두 입만에 다 먹고 찹쌀떡을 집어 든 토족이 계속 말했다.

떡을 진짜 좋아하나 보다.

“은호 외의 신성한 범들이 믿는 인간이라······ 응, 은호의 후예를 구한 인간이라면 믿어 볼래.”

찹쌀떡을 두 입만에 삼킨 옥토연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인간계에서 쓰는 이름은 옥토연. 호족의 맹우이자 토족의 우두머리야! 오늘, 12지 동맹 회담에서 호족과 뜻을 함께하기 위해 왔어.”

“은호의 후예를 숨기고 있던 주제에 맹우 좋아하네.”

황지호는 아직도 깊게 빡쳐 있나 보다.

옥토연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오히려 갑자기 얼굴을 손으로 감싸곤 대놓고 귀여운 척을 하며 황호를 도발했다.

강력한 어그로다.

“······그치만, 우린 황호보다는 은호랑 친한걸!”

분노를 부르는 어구, ‘그치만’이 나왔다······!

“은호가 다시 호족 우두머리 해 줬으면 좋겠다아.”

“죽인다.”

진짜 맹우가 맞나?

‘황호보다 은호와 친하다라, 토족은 은호의 후예를 몰래 감추기도 했고. 내가 모르는 옛일과 관계있을지도 모르겠네.’

황지호는 눈빛만으로도 쇠를 썰 것 같은 살기를 뿜었다.

옥토연은 그 살기를 정면으로 받고도 유쾌하게 웃어댔다.

저 정도 담력이 있으니 은호의 후예들을 호족 몰래 보호한 거구나.

“하하하, 황호가 죽이러 오면 또 제석천 님이 도와주실 거라 믿어 보지 뭐. 옛날에도 몇 번이나 죽이러 왔었지만 결국 못 죽였잖아.”

옛날엔 죽이네 마네 하는 사이었나.

옥토연이 저러는 것도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갔다.

“······제석천이 토족을 도운 건 의외였습니다.”

적호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세계의 상위 존재 중 하나인 불교의 신 제석천.

은호의 후예도 제석천이 토족을 도와 결계를 쳐 줬다고 말했었다.

“그분과 토족은 인연이 있어. 호법신 팔부신중(八部神衆)의 으뜸, 상위 존재 제석천 님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우리 토족은 전멸했겠지.”

옥토연의 얼굴에서 조금씩 장난기가 사라져 갔다.

“그치만 천신도 그렇고, 상위 존재가 현세에 개입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잖아. 너희들이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았으면 거의 다 죽거나 깊게 잠들었을 거야.”

황지호는 그 상황을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대접전을 치렀나 보다.

“정체불명의 진족과 상위 존재의 가호를 받은 에너미들. 정말 무식하게 강했었어. 우리 토족은 원래 전투에 특화된 편도 아니고. 큰일 날 뻔했어.”

게임 속에서 토족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굉장히 약해져 있었다.’라고 드러날 뿐.

‘게임 속에선 호족의 지원이 없었으니 토족은 괴멸 상태로 몰렸던 거야. 은호의 후예도 결국 전부 사망했던 거고.’

옥토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맹우라곤 하지만 여태까지 우린 은호 외의 호족은 아무래도 좋았어. 그래도 은혜를 입었으니까. 갚을게, 꼭. 은호의 후예를 지켰다는 저 인간에게도.”

그렇게 말하는 옥토연의 눈은 결연했지만 불필요한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음, 은혜는 갚을 거지만 은호 아닌 호족과 너무 친하게 지내는 건 좀.”

“12지 회담이 끝나면 신속하게 꺼져.”

황지호의 빡침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    *    *

엘리베이터 안.

5층의 대저택에는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 엘리베이터엔 표시되지 않는 층수로 이동하는 기믹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황지호가 벽 어딘가에 손을 올리니 엘리베이터가 층수를 표시하지 않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은호의 후예를 구한 인간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번 회담을 제안한 건 조의신입니다.”

“인간의 말에 호족이 움직였다고?”

옥토연이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12지 내부의 배반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단서를 제공한 게 그입니다. 이번 회담에서도 조의신이라면 무언가 알아낼 수 있겠죠.”

“음음. 인간 플레이어 중에서 쓸 만한 인재가 꽤 많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보네······ 12지 녀석 중에서도 인간한테 가호 내린 놈들이 꽤 있다고 들었어.”

옥토연의 말에 황지호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조의신, 가호 필요하냐?”

“아니.”

고민도 하지 않고 철벽을 쳤다.

가호를 내리는 대가로 뭘 요구할지도 모르고 무슨 가호를 내릴지도 모르는데 그걸 받겠냐.

가호는 버프 효과를 주는 대신 가호의 규모에 따라 내린 대상과 받은 대상의 정신이 일부 공유되기도 한다.

‘가호는 웬만해선 받고 싶지 않아.’

그러고 보니 내 상태창 가호 란에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로 표시되었는데······.

설마 누군가의 가호를 받은 건 아니겠지.

누가 내렸다 해도 가호를 내릴 만한 존재는 초상우주 정도밖에 없긴 하다.

“오! 다른 진족도 아니고 무려 신화계 호족이 제안하는 가호를 거절하다니. 나 같아도 거절할 거지만.”

“너한테는 가호 안 줘.”

“받을 생각도 없는데?”

황지호와 옥토연이 서로를 노려봤다.

중간에 낀 나는 닥치고 있기로 했다.

‘굉장하다.’

은광고 내에서도 돈지랄 시설이 많긴 했지만, 황명호의 이사장의 대저택을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생각했었다.

그 어마어마한 황금 담장 결계와 미로 정원.

만드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큰돈이 들 게 뻔했다.

하지만 그것들도 이 지하 시설에는 못 미칠 거다.

‘방 전체가 고대 주문의 마력과 축복의 성력으로 가득해. 심지어 전부 최상급 이계 금속으로 되어 있어······!’

황금빛의 이계 금속 사이사이에 진한 마력이 녹아든 먹으로 세밀하게 새겨진 고대어들.

고대 석학들의 지혜가 담긴 거대 마법진.

설정집에서만 봤던 것들이 여기에 실재했다.

“인간계에 이력이 남는 디바이스 회선으로 12지 동맹 회담을 열 수는 없잖아. 회담 개최자로서 이 정도의 힘은 발휘해야지.”

이 방의 시설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나를 보며 황지호가 뽐내듯 말했다.

이 정도라면 뽐낼 만했다.

“자, 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묻지. 조의신, 너는 12지를 모아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거지? 배신자를 찾아낼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방 안의 진족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집중되었다.

‘그자는 황호나 옥토연 같은 진족의 우두머리라고 했어. 게임 속 적호를 죽였던 그 진족은 오늘 회담에 등장할 거야.’

플마고 콘크리트층 붕괴 사건 이벤트.

게임 속에서 김신록은 죽고, 최편득을 놓치는 등 주인공 일행과 적호는 수많은 협력자와 단서를 잃었다.

2학기가 되어 어느 사건을 계기로 적호는 주수혁과 친해져 함께 조사를 진행했다.

그가 12지 동맹의 배신을 알아채는 건 1학년 말이었다.

적호는 악조건 속에서도 특유의 정보 수집 능력에 약간의 행운이 더해져 흑막의 정체에 다가가는 것에 성공한다.

‘비탄의 웅녀에게 속아서 지은 대죄 탓인지 게임 속에서 황지호와도 백호군과도 서먹서먹하게 지냈었지. 그래서 도움도 받지 못했어. 어째서인지 지금 이 셋은 함께 사는 것 같지만.’

워낙 위험한 정보라 학생인 주인공 일행에겐 알리지 않는다.

결국, 적호는 홀로 분투하다 죽고 만다.

‘게임 속, 다른 세계선에서 적호가 보인 헌신을 헛되게 하지 않겠어.’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모든 참가자가 최소 두 마디 이상 말하게 해. 그 정도면 충분해.”

내 말에 황지호가 오늘 처음으로 웃었다.

매일 교실에서 처웃던 게 일상이던 놈인데 오늘은 웃음이 좀 짜긴 했다.

“하하하! 조의신이 이번에 어떤 수를 놓을지 지켜볼까. 달토끼, 마법진 안으로 들어와라.”

“음음, 황호 옆에 가는 건 싫은데.”

“싫으면 꺼져.”

“하하하, 농담이야.”

황지호의 웃음은 옥토연의 어그로 앞에 금방 멎었다.

옥토연이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자 황지호가 손가락을 한 번 튀겼다.

파아아―.

마법진이 그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다.

황지호의 의지에 따라 힘과 문양이 움직였다.

원형의 마법진이 12등분 되어 각각 나눠진 영역 위로 글씨가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子(쥐), 丑(소), 寅(호랑이), 卯(토끼), 辰(용), 巳(뱀), 午(말), 未(양), 申(원숭이), 酉(닭), 戌(개), 亥(돼지).

황지호는 寅(호랑이)의 영역에.

옥토연은 황지호의 옆 卯(토끼)의 영역에 섰다.

“준비는 끝났다. 12지 회담 전용 마력 회로를 가동한다.”

황지호의 머리카락과 눈이 황금색으로 바뀌었다.

“와아, 몇 번을 봐도 정말 저 힘만큼은 취향이야. 힘은.”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옥토연의 말이 들렸다.

황지호의 이마에 힘줄이 솟는 게 보였다.

파아아앗―!

황지호의 동공이 맹수처럼 변한 것과 동시에 12개의 영역에 불이 전부 들어왔다.

비어 있는 10개의 자리에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림자 그리고 황지호와 옥토연 앞에 이능으로 구체화된 단어들이 나타났다.

서족(鼠族), 子[꾀돌이 쥐]

우족(牛族), 丑[우직한 소]

호족(虎族), 寅[호랑이님]

토족(兎族), 卯[망할 달토끼]

용족(龍族), 辰[만렙 청룡]

사족(蛇族), 巳[탈피ing]

마족(馬族), 午[예민한 흑마]

양족(羊族), 未[양Zzz]

원족(猿族), 申[우주최강 제천대성]

계족(鷄族), 酉[계룡산 구구탁예설락]

견족(犬族), 戌[개같다고 말하는 놈이 제일 개같음]

돈족(豚族), 亥[나는나는저팔계]

대화명이 왜 저래!

이계 충돌이 처음 일어나 가장 강력한 지력을 가진 한반도.

그 한반도의 터줏대감 진족들의 수장들의 대다수가 초등학생 같은 대화명을 달고 있었다.

“잠깐, 내 대화명은 왜 이 모양이야! 아놔, 여기 마법진 주도권은 황호가 쥐고 있어서 바뀌질 않네! 다른 애들은 각자 자기가 대화명 붙인 거지? 그런데 얘들도 왜 이래. 안 본 사이에 다들 맛탱이가 많이 갔네! 노망인가? 어쨌든 황호, 난 좀 귀여운 걸로 바꿔 줘!”

황지호는 징징거리는 옥토연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그가 말하는 순간, 그가 서 있는 寅영역이 빛을 내었다.

寅[호랑이님] “12지 동맹, 모든 우두머리의 출석을 확인했다. 회담을 진행한다.”

황지호의 말은 완벽하게 자막이 붙어 마법진 위로 떠올랐다.

곧 다른 영역에서도 음성과 자막이 떠올랐다.

子[꾀돌이 쥐] “그 의욕 없던 황호가 우리를 부르다니. 무슨 일일까.”

巳[탈피ing] “은광고 요새 사건이 많던데? 그거 때문이냐? 내가 가호 내린 등신 같은 놈이랑, 모시는 상위 존재님 따님이 아끼는 사제도 은광고다. 걔네한테 뭔 일 있으면 황호부터 족친다.”

辰[만렙 청룡] “내 자랑스러운 동족과 후예가 은광고에 있다. 은광고에 위험이 있을 리가 없어.”

사족과 용족이 말하는 대상이 전부 아는 이들 같은데.

기분 탓은 아닐 거다.

午[예민한 흑마] “나 바쁜데, 빨리 끝내. 마족(魔族) 놈들 또 쳐들어왔어.”

酉[계룡산 구구탁예설락] “걔들 또 그래? 한국어로 마족(馬族)이랑 동음이의어인 게 아니꼬우면 한반도에서 좀 꺼졌으면;;”

申[우주최강 제천대성] “말대가리는 그냥 이름을 바꾸든가 한반도를 떠라.”

午[예민한 흑마] “둘 다 싫어.”

子[꾀돌이 쥐] “한반도는 이계 충돌 이후 세계에서 가장 지력(地力)이 충만하잖아. 한국에서 지명도가 극하위인 진족조차 힘을 발휘하기 좋으니 떠나기 싫겠지.”

卯[망할 달토끼] “대화명 어떻게 바꾸는지 아시는 분. 달토끼 종합 떡 세트 1년분 쏜다.”

아무 말 대잔치 중.

회담은 무슨, 생난장판이 따로 없다.

이 모래알 같은 동맹이 100년 동안 잘도 안 무너지고 버텼구나.

丑[우직한 소] “망할 달토끼, 잘 어울리시니까 그냥 모르는 척 하겠습니다.^_^”

巳[탈피ing] “소의 말에 동의.”

戌[개같다고 말하는 놈이 제일 개같음] “동의2 . ”

子[꾀돌이 쥐] “위 세 진족, 어차피 대화명 바꾸는 법 모른다에 한 표. 지금 달토끼는 신성한 범의 마법진 영역에 있잖아.”

丑[우직한 소] “들켰네요^_^”

卯[망할 달토끼] “ㅗㅠㅠㅗ”

이모티콘까지 쓴다.

이모티콘은 음성화되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진족의 우두머리다운 위엄과 마력이 절절하게 담긴 음성들과 문자들인데 저러고 있다.

물리적, 정신적 경계를 초월한 완벽한 보완을 자랑하는 고대 마법진 통신으로 기껏 말한다는 게······!

완벽한 재능 낭비. 이능 낭비. 돈지랄이다.

亥[나는나는저팔계] “크흠, 진행 좀 하지. 내가 말이야, 좀 바쁜 사람인데 말이야.”

辰[만렙 청룡] “이 몸도 바쁘시다.”

戌[개같다고 말하는 놈이 제일 개같음] “돼지와 용의 말에 동의.”

未[양Zzz] “음······ 저기, 있잖아. 한마디 해도 돼?”

丑[우직한 소] “하세요^_^”

午[예민한 흑마] “짧게 해.”

申[우주최강 제천대성] “짧게 ㄱ”

이걸로 모든 12지의 발언은 최소 한 번 이상했다.

아무래도 내 추측이 맞은 것 같다.

‘게임 속 적호를 죽인 범인, 그 꼬리를 잡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양족의 우두머리의 말은 회담 분위기를 급변시켰다.

未[양Zzz] “여기에 악몽을 끌고 온 자가 있어. 회담을 잇는 마력 회로 너머로 악몽의 기운이 느껴진다.”

양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침묵이 가라앉았다.

상황을 주시하던 황지호, 옥토연과 적호도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申[우주최강 제천대성] “??? 악몽?? 자수해서 광명 찾자.”

酉[계룡산 구구탁예설락] “하, 악몽? 혹시 악몽의 신 인섬니움 말하는 거야? 언제 현계 했대.”

子[꾀돌이 쥐] “······인간계에 가장 개입 권한이 큰 그 상위 존재가? 20년? 15년 전부터 얌전하게 살던 거 같은데.”

丑[우직한 소] “네? 악몽이요?^_^;”

辰[만렙 청룡] “한반도에 악몽이 있다고?”

午[예민한 흑마] “빨리 거짓말이라고 말해.”

악몽?

그게 대체 뭐기에 이 진족들이 동요하는 거지?

未[양Zzz] “잠과 꿈, 그 상징의 화신인 내가 악몽을 두고 거짓을 고할 리가.”

양족의 말은 계속되었다.

未[양Zzz] “우리가 서로에게 지켜야 할 것은 ‘불가침’의 약속뿐. 하지만 100년을 함께한 12지 동맹의 일각으로서 경고하지. 지금 이 12지 동맹에 참석한 자, 혹은 마법진 주변에 있는 자는 ‘악몽’ 그 자체다. 악몽에 삼켜지지 않게 경계하도록.”

양족은 멋지게 경고의 말을 남기고 잠시 말을 쉬었다.

진족의 우두머리들의 침묵 속.

양족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未[양Zzz] “어차피 내 옆에는 악몽이 없으니 상관없지만. 나만 아니면 돼!”

그 멋짐은 10초를 가지 않았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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