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6화 (46/925)

14. 중간고사 (2)

4일간 진행되는 중간고사.

첫째 날.

첫날부터 1학년 0반에는 낙오자가 나왔다.

얼마 전에 우리 반 중에 낙오자가 생기는 게 싫다는 둥 멋있는 생각을 했던 것 같지만 기분 탓일 거다.

기분 탓이다.

중요한 내용이니까 두 번 생각했다.

“추가 시험자가 벌써 나왔나.”

여학생의 탈주 소식을 들은 함근형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다.

일곱 명도 많다고 하는 애다.

억지로 붙잡아 앉혀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거다.

“선생님, 안 오는 애들······ 시험은 치나요?”

“그래. 여덟 명은 사전에 원격 시험 신청을 했다.”

김유리의 질문에 함근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들 살아 있나 보네.

진급할 생각은 있는 것 같다.

시험 시작 전 해프닝이 있었지만 어쨌든 중간고사 시작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준비해라. 수업종이 울리면 바로 시험 시작한다.”

결국 김유리가 가져온 박하사탕 봉투는 우리 1학년 0반 일곱 명과 함근형이 각각 두 개씩 나눠 받게 되었다.

*    *    *

둘째 날.

은광고생들의 고통이 계속되는 와중, 학생들을 기쁘게 하는 소식이 하나 들렸다.

“야! 중간고사 기간 내내 학교 식당에서 달토끼떡 나오는 거 실화냐?”

“실화임. 어제 학교에서 밥 안 먹은 애들 다 후회함.”

“처음 먹어 봤는데 한 번 씹으니까 떡이 녹더라. 벚꽃잎새떡 존맛.”

황지호의 옥토연 후려치기의 결과물인가.

옥토연은 토윤이 언니라는 진족한테 죽지 않았나 모르겠다.

‘중간고사 기간에 달토끼떡을 내놓다니, 황지호도 센스가 좋네.’

우리 이사장이 달라졌어요.

여태까지의 이사장의 행적을 생각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그것도 수많은 떡 중 벚꽃잎새떡. 누가 골랐는지 잘 골랐다.’

벚꽃의 꽃말은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 절세미인, 정신미, 부, 교양, 번영 등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벚꽃의 또 다른 꽃말은 ‘중간고사’였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 일정상 중간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기간 동안 피었다가 귀신같이 시험 직전에 져 버려 악명이 높았다.

시험 끝나면 파릇파릇한 잎만 보이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왜 벚꽃이 안 지냐. 작년엔 잠깐 피었다 바로 졌는데.”

“은광구 아닌 지역은 다 벚꽃 졌다는데. 쟤들도 미쳤나 봐.”

“올해 시험도 총체적으로 미침. 잘린 최편득 일당 대신 새로 올라온 정교사 형, 누나들 미친 거 같아.”

“어······ 그냥 한계까지 굴리고 쥐어짜는 법을 아는 거 같더라. 아, 빡세다!”

“벚꽃, 학생, 교사 다 미쳐 가네.”

잠시 공부를 쉬고 산책로에서 멍 때리며 벚꽃을 보는 학생들의 평은 한결같았다.

“시험 일정 일찍 끝난 애들은 벚꽃 놀이 갈 수 있겠구나.”

“좋겠다. 난 마지막 날까지 꽉 찼다.”

“운 좋으면 늦게 끝나도 갈 수 있어. 계속 펴 줬으면 좋겠음.”

다른 지역은 벚꽃은 전부 지고 있는데도 은광고의 벚꽃은 지지 않았다.

문새론은 시험 기간인데도 신문부 신입생 단체 메시지 방에서 조사를 한다고 잔뜩 들떠 있었다.

낙제점 걱정할 만한 성적은 아니니 여유가 있나 보다.

[문새론] 에어보드 타고 확인할 수 있는 지역은 전부 체크해 뒀어! 시간 나는 사람은 가서 봐. 뭐 특이한 거 발견하면 연락하고!

문새론은 메시지방에 띄운 지도에 은광고 내에 핀 벚꽃이 핀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행동력 갑 문새론은 그새 학교 전체를 다 돌아다녔나 보다.

‘게임 속 은광고의 벚꽃은 금방 졌는데.’

문새론이 보내 준 지도를 보니 원인이 감이 잡혔다.

‘천익산과 가까울수록 벚꽃이 더 오래가는 거 같은데.’

신수 올무도 점점 건강을 회복하고 있고, 끊긴 지맥도 황지호의 지휘하에 천천히 복구되고 있었다.

살아난 지력이 영향을 줬는지도 몰랐다.

신기한 현상은 학교 밖에서도 일어났다.

[은서호] 조의신 형, 지금 황호 님 미로 정원에서도 계속 벚꽃 피어요. 여기 사진요!

[은이호] 신록 오빠 말로는 신수의 영향 때문이래요! 계속 피었으면 하고 신수가 바라고 있는 거라고요.

은호 삼 남매와 함께 있는 단체 메시지방에 미로 정원 중 한 구역, 벚꽃 길을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한구석에 돗자리와 도시락 통이 보이는 걸 보니 정원 앞에 꽃놀이를 나왔나 보다.

이 아이들은 지금 황명호의 대저택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엄명을 받았으니 이렇게 기분 전환을 하나 보다.

‘······그런데 신록 오빠라고?’

얘들 입장을 생각하면 그렇게 불러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그 음산한 학용품 쇼를 생각하니 위화감이 엄청나다.

후예들끼리 사이가 좋은 건 좋은 일이지만.

[은재호] 신수는 지금 자요.

살벌한 회상을 하던 중, 막내가 내게 힐링을 시전했다.

막내가 보낸 사진에는 벚꽃 나무 밑에서 웃는 얼굴로 자고 있는 올무가 찍혀 있었다.

무슨 꿈을 꾸며 자는지 행복한 얼굴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솜털 같은 몸 위로 벚꽃 잎이 몇 장 떨어져 있었다.

‘저장하자!’

사진은 두 장 각각 이름을 바꿔 저장하고 하나는 디바이스 구동 시 뜨는 시작 화면으로 설정했다.

‘올무 사진, 자주 찍어서 보내 줬으면 좋겠다.’

황지호나 백호군이 이런 기특한 짓을 할 리가 없고.

적호는 바쁘고 김신록은 좀······ 교직원 사택 건물에서 살기도 하고 바쁠 거다, 아마도.

앞으로 은호의 후예들과 더욱 친하게 지내야겠다.

올무 사진도 받았겠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자.

‘그 이벤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해 보자.’

중간고사 첫날, 부정 입학자 둘은 안다인의 멘탈을 흔들기 위해 솜뭉치를 독살한다.

중간고사 둘째 날, 시험을 마친 안다인이 죽은 솜뭉치를 발견한다.

주수혁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울고 있는 안다인과 마주친다.

평소 막강한 사교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진 그 주수혁이 어찌할 줄을 몰라 위로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사건을 조사하러 떠난다.

‘부정 입학자는 퇴학당했고, 솜뭉치는 지금 이렇게 잘 자고 있고······ 그냥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도 있겠는데.’

그래도 어떻게 전개가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게 국민망겜 썩은 물의 슬픈 습성이었다.

‘천익산 쪽으로 이어진 조금 외진 산책로. 중앙 구역이나 1학년 구역과도 떨어져 있고, ‘길도 험한 편이라서 사람이 안 오는 쪽.’이라는 묘사가 있었어.’

사월세음도 이전에 한 번 언급했던 산책로 같긴 하다.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홀로그램으로 학교 지도를 띄워 확인하던 중에 저 멀리 안다인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제대로 찾아왔나 보네.’

눈에 띄기 싫으니까 몸을 숨기자.

연비는 나쁘지만, 적절한 광림이 있었다.

중간고사 기간에 다른 큰 사건이 터질 일은 없으니 플레이어의 궤적 사용 가능 시간이 크게 줄어도 상관없을 거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사용하는 캐릭터는 은밀 행동의 최강자.

‘무색인(無色人) 전무영’이었다.

이 정도가 아니면 초인 안다인에게 걸릴 수도 있었다.

〈대상 캐릭터의 광림, '그림자 없는 시간'을 사용합니다.〉

광림이 발동되자 내 존재감은 극히 옅어졌다.

사용 중에는 사람의 눈, 기록 기기, 탐지 계열의 스킬에 내 존재가 발각되는 일은 없을 거다.

점점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하는 안다인을 따라 조용히 걸어갔다.

한참을 걷다 막다른 길에 도착했다.

막다른 길에 거대한 벚꽃 나무가 하나, 낡은 벤치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벤치에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어, 어······ 다인이?”

벤치에 앉아 있던 건 주수혁이었다.

안다인 생각이라도 하고 있던 건지 희미하게 붉어진 얼굴로 이게 꿈이냐 생시냐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보통 사람이 지으면 끝없이 멍청해 보일 얼굴마저 잘생겨 보이니 세상의 불공평함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안녕.”

주수혁이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안다인은 아주 오래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작게 인사했다.

어쩌면 두 사람이 만날지도 모른다고는 예상했는데 주수혁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타이틀 히어로와 타이틀 히로인의 운명력은 해당 스킬이 없어도 강력히 적용되나 보다.

“응, 안녕! 그러니까······.”

안다인의 인사에 좋아라 화답한 주수혁은 머뭇거렸다.

그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안다인 앞에서는 왜 저 모양이 되는 걸까.

“······여기 앉을래?”

고작 저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였나.

말투도 뻣뻣하고 표정에서도 핵긴장한 게 묻어났다.

안다인도 빨리 답변하지 못하고 조금 고민하다 답했다.

“······그래도 돼?”

“당연하지!”

안다인은 주수혁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매끄럽진 않지만 드문드문 두 사람은 별것 아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험 얘기, 벚꽃 얘기, 식당에 나온 달토끼떡······.

초등학생 남녀가 나누는 대화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풋풋한 대화였다.

이 둘이 맺어지려면 먼 것 같다.

‘아, 너무 이 자리에 오래 있었네.’

두 사람은 좀 더 이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눌 것 같았지만 나는 자리를 뜨기로 했다.

이벤트가 어떻게 변했나 지켜보려다 염장질만 실컷 당했다.

심장 근처가 간질간질한 기분이다.

‘두 사람에게도 무례한 짓을 했다······ 괜히 왔어.’

결과적으로 두 사람만의 이야기를 엿보고 엿들은 꼴이 되었다.

미안하다, 주수혁, 안다인.

그래도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을 응원하는 건 진심이다.

앞으로 두 사람이 넘어야 할 시련은 많겠지만······ 힘내라.

*    *    *

셋째 날.

시험을 마치고 온 지익회관 스터디룸 210호.

극악의 범위를 자랑한 에너미학 개론 시험이 끝났다.

같은 과목을 듣는 한이와 나는 답을 확인해 보고 있었다.

“1번에 1번.”

“나도. 2번에 5번?”

“맞아. 3번 답은 ‘환혹계 에너미와의 유사성’.”

“‘환혹계 유령종, 악마종 에너미’라고 썼는데 이것도 맞을까?”

“모르겠다. 무형종 에너미도 해당하니까.”

“아······ 그랬었지. 공청훤 선생님 엄격하시니까 오답 처리될 거야. 지엽적으로 쓴 게 실수인 것 같아.”

만점을 노리던 한이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남은 문제를 전부 비교해 자체 채점을 해 보니 한이가 나보다 1점 높게 나왔다.

미니 테스트에서 계속 선두 경쟁을 하던 나와 한이다.

아마 이 수업 1등은 한이가 될 거다.

“······너희 성적 너무 좋은 거 아니냐?”

맹효돈은 내일 수학 시험을 앞두고 초긴장 상태였다.

흥분해서 문제를 풀다 샤프 펜을 다섯 개나 박살 내는 바람에 지금 쥐고 있는 게 여섯 번째 샤프 펜이다.

“응, 둘 다 공통 과목은 만점이었지? 한이랑 의신이랑 스터디 모임 같이해서 다행이야.”

“네. 정말 많이 도움받았어요.”

이레나와 사월세음은 자신 없어 하던 과목의 시험을 무사히 마쳐 비교적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감사 인사를 받기는 아직 일렀다.

“내일 마지막 시험도 힘내자.”

맹효돈은 많이 힘냈으면 좋겠다.

*    *    *

마지막 날.

시험은 모두 끝났지만 지익회관에서 스터디 모임을 하던 1학년 0반은 다 같이 모였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오늘의 빅 이벤트, 맹효돈의 수학 시험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야, 부반장. 빨리 말해. 몇 점이냐.”

맹효돈은 한숨도 안 자고 공부를 한 탓에 얼굴이 거무죽죽했다.

그의 시험지를 가채점한 결과.

“믿을 수 없네.”

“뭐야, 뭐냐고.”

맹효돈의 점수는 말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모든 범위를 커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겨 남은 절반의 범위를 완벽하게 익히고 가는 전법이었다.

낙제점의 기준이 되는 건 40점이다.

50점을 노린다고 생각하면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의 전법은 아니었다.

그리고 맹효돈의 점수는.

“63점.”

“으아아아아! 됐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 질렀다.

옛날 방식, 수우미양가로 따지면 ‘양’에 해당하는 점수다.

맹효돈은 아마 수학 과목 선택한 학생 중에서는 꼴찌할 거다.

그래도 그 처절했던 공부기를 생각하면 기적과 다름없었다.

돌머리 맹효돈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인간 승리를 이루어 낸 짱돌 맹효돈 선생이시다.

“공부한 범위는 거의 다 맞춰서 44점 따고, 객관식 찍은 게 19점이나 나왔어. 잘했다, 맹효돈.”

수학의 신이 맹효돈에게 힘을 실어 준 것 같다.

“드디어 중간고사가 끝난 기분이야.”

“네, 효돈이가 무사히 통과해서 다행이에요!”

“효돈아, 얘들아 진짜, 진짜 고생했어.”

긴장한 얼굴로 가채점 과정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숙사 스터디 모임 참가자, 전원 낙제점 없음.

김유리와 황지호는 걱정할 일이 없으니 사실상 1학년 0반은 무사통과다.

그 탈주자는 예외로 치자. 잊어버릴 거다.

“건배해요!”

사월세음이 음료수 병을 들고 밝게 외쳤다.

시험 기간 동안 잘못 먹으면 속이 불편해진다는 이유로 봉인했던 탄산음료였다.

이제 시험은 끝났으니 봉인 해제다.

종이컵에 탄산음료를 따라 우리는 가볍게 건배했다.

다들 시험 때문에 지쳐 있어 거창한 파티는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간소한 시험 마무리 파티를 마치고 해산했다.

스터디 룸을 떠나는 게 어쩐지 조금 아쉬웠다.

*    *    *

중간고사가 끝나고, 시험 뒤풀이도 끝났다.

시험은 끝났지만, 내게는 거대한 시련이 남아 있었다.

중간고사보다 더 고통스럽고 정신력을 손상시킬 일이다.

‘차라리 시험을 한 번 더 보는 게 낫겠다.’

행여 황지호가 추적하고 찾아올까 봐 학교에서 지급한 디바이스는 빼고 왔다.

그놈은 신역의 수호자라 마음먹고 힘을 개방하면 은광구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 실시간으로 체크가 가능하지만.

‘그걸 페널티 없이 쓸 수 있는 거라면 만우절 날에 굳이 내 디바이스를 추적하지 않았겠지.’

그러니 괜찮을 거다.

아마도.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다.

학교에서 지급한 디바이스는 빼고 왔지만 메시지 기능을 연동시켜 둔 덕에 새 메시지 확인이 가능했다.

메시지 발신자는 김유리였다.

[김유리] 의신아, 내일 1/4분기 학생 대표 회의에 대비해서 학급 운영 자료 보내 놨으니까 한번 읽어 줘!

중간고사가 끝나면 1/4분기 학생 대표 회의가 열린다.

각 학급의 반장, 부반장.

학교 4대 학생 기구, 학생회, 선도부, 지익회, 총동아리회.

100명이 넘어가는 학생들이 참가하는 학생 대표 회의다.

일 잘하는 김유리가 벌써 꼼꼼하게 자료를 준비했나 보다.

‘이번 일을 정리하고 읽어야지.’

할 수 있다.

나는 참을 수 있다.

자기 암시, 자기 세뇌를 반복했다.

“안녕하세요.”

기록 기기가 없는 폐쇄 구역.

구교사의 교실.

내가 불러낸 그 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 까마귀 가면, 본 적 있습니다. 은광구 교육 환경 보호 구역 정화도 당신이 한 거군요.”

은광구에서 발생한 사건은 전부 조사했나 보다.

아주 작게 실리고 금방 묻힌 기사에 실린 사진이었는데.

“가면 뒤로 보이는 얼굴, 체격. 모두 저와 흡사하군요. 굳이 따지면 저보다 조금 연상인 것 같지만. 당신이 보낸 초대장에 있던 그을린 자국, 홍룡이 남기는 기운이 느껴져서 설마 했는데, 정말 당신이었군요······.”

결국 염준열이 그 단어를 뱉어 버렸다.

“적벽괴도!”

나와 버렸다.

적벽괴도.

각오는 했지만 염준열한테 들으니 속이 꼬이는 기분이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내게 수치심을 줬어!

플레이어의 궤적으로 환몽 경매 때 쓴 염준열 버전으로 변신해 있는 나.

필사적으로 평정을 가장했다.

“그래, 내가······ 적벽, 괴도다······!”

내 집, 내 기숙사방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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