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1화 (51/925)

16. 중앙도서관 지하서고 (1)

[살짝 빗맞은 타구입니다, 네, 우익수 잡았습니다. 2루 주자, 3루 주자 태그업. 3루 주자 홈인! TC 나이츠 이번 회만 벌써 5실점입니다.]

“아 진짜! 아주 불펜이 하루를 안 빼먹고 활활 타오르네. 다 태워 먹어라! 3점을 못 지켜서 또 날려 먹어! 선발이 잘하면 불펜이 말아 먹고, 선발이 못하면 그냥 다 같이 말아 먹고!”

옥토연이 소파 위로 엎어지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렸다.

누운 자세로 분노한 마음을 담아 호두찰떡을 있는 힘껏 씹자 와드득, 와드득하는 소리가 넓은 휴게실을 울렸다.

“토족은 한가해 보이는군요.”

“아, 깜짝이야!”

불쑥 들려온 소리에 옥토연이 화들짝 놀랐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최근 자주 얼굴을 보는 적호였다.

“네가 어떻게 들어 왔어? 설마 스킬 써서 뚫고 왔어? 그거 반칙이거든! 아무리 맹우라도 상도덕이 있어야지!”

“옥토윤이 들여보내 줬습니다. 죽이지만 않으면 몇 대 쳐도 되니까 정신 차리게 하라더군요.”

“토윤 언니······.”

옥토연이 입안에 남아 있던 떡을 꿀꺽 삼켰다.

최근 동족 옥토윤은 자신을 자주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옥토윤 생각을 하니 오한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소파 위에 바르게 앉게 되었다.

“저도 토족의 영역은 그다지 오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할 말이 있으면 은광구에 사람을 보내십시오.”

“이번 건은 내가 직접 말해야 하는 거야. 난 황호랑 맺은 멍청한 계약 때문에 은광구에 못 가거든.”

“네. 그 계약은 당신이 멍청해서 맺게 된 계약이죠.”

“야!”

적호의 말은 신랄한 주제에 어조는 여전히 예의 발라서 옥토연의 속을 제대로 긁어 놨다.

“저는 바쁩니다. 본론부터 말씀하시죠.”

“나도 바쁜데! 바쁘거든?”

적호는 대꾸하지 않고 여전히 야구 생중계가 흘러나오는 대형 스크린을 쓱 바라봤다.

TC 나이츠는 수비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몸개그가 나오는 바람에 한 점 더 내주고 있었다.

이번 회에만 6실점.

옥토연은 또 바뀌는 스코어에 울컥했지만, 말없이 스크린을 껐다.

“음, 음! 입 다물고 있을까 하다가 일단 말은 해 두려고.”

파아아―.

옥토연의 손끝에서 월궁에서 관측한 한반도에 존재하는 힘의 흐름을 정리한 지도, ‘월궁계도’가 전개되었다.

온갖 기의 흐름과 빛무리의 움직임을 보던 적호가 미간을 좁혔다.

“보여? 월궁계도에 보이는 힘의 흐름들. 최근 한반도에 온 진족이 늘어난 거 같아. 주시하는 상위 존재도 늘어난 것 같고.”

“이건······.”

“눈에 익혀 둬. 월궁계도를 전개할 수 있는 건 토족의 수장뿐이니까.”

옥토연이 한마디 덧붙였다.

“뭐, 지금은 꼬리잡기가 먼저지만!”

*    *    *

은광고 교사의 연봉은 높은 편이다.

은광고의 교사들 우수한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그들은 학교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부업으로 이계 공략을 하는 것이 허락된다.

대부분의 은광고의 교사들은 플레이어카 두 대 정도는 어렵지 않게 굴릴 만큼 부유했다.

그러나 어디에나 예외는 있었다.

그 예외가 제갈재걸이었다.

“금찬아, 제갈쌤 오늘 입은 옷 작년에도 입었던 거 아님? 새 옷 입히고 싶다. 이번에 우리 회사 수석 디자이너 새로 바뀌고 나서 디자인 진짜 잘 뽑히는 중인데.”

“우리 제갈쌤은 뭘 입어도 멋있으니 상관없음······ 자주 보이는 옷들이 많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사소한 걸 기억하는 너님의 기억력이 참 훌륭하구나, 왕찬.”

“그 사소한 걸 기억 못 하는 건 금찬이 네가 멍청해서 그런 거임.”

“그렇게 똑똑해서 저번에 투명화 아이템 까먹음? 맞을래요?”

은광고의 교무부장 제갈재걸은 언제나 검소했다.

제갈재걸은 월급과 이계 공략 수익의 대부분을 기부했다.

그는 늘 TPO에 어긋나지 않는 청결하고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2학년 0반 학생들의 성에 차지 않았다.

존경하는 교사가 더 잘 입고 잘 먹고, 잘살기를 바라는 건 모든 제자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금찬아, 좀 있으면 종례 시간인데, 준비는 하고 왔지?”

“당연하지, 왕찬아. 내가 누군데. 너야말로 준비물 잘 챙겨 왔지? 학생 대표 회의 때처럼 실수하면 죽는다.”

“걱정하지 마라, 금찬. 제갈쌤 일로 내가 뭐 실수한 적 있냐?”

“작년 제갈쌤 생파 때 헹가래 올린다고 위로 던지다 0반 선배 놈들이 날린 비공정에 박을 뻔했잖아.”

그 말에 왕찬솔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헐.”

“뭐가 ‘······헐’이야. 진짜 실수한 거 아니지? 또 뭐 빼먹고 왔냐? 야, 내 눈 보고 말해. 왕찬 개놈아!”

금찬솔이 왕찬솔의 멱살을 쥐고 흔들 때.

교실 자동문이 열리고 종례를 하기 위해 제갈재걸이 들어왔다.

교실을 둘러본 그는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다 말했다.

“요 며칠간은 조용하더니······ 반장과 부반장이 싸우면 안 되지.”

“넵!”

콰쾅―!

제갈재걸의 말에 금찬솔이 왕찬솔을 저 멀리 내던지고 밝게 대답했다.

빈 책상 몇 개가 엎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왕찬솔은 완벽한 낙법을 선보이며 교실 바닥에 착지했다.

다른 2학년 0반 학생들도 이 상황에 익숙한 듯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혹시 왕찬솔이 다치지 않았나 제갈재걸이 걱정스러워하는 얼굴을 했다.

“맞다, 제갈쌤. 잠깐 거기 서 있어 봐요.”

“응?”

교탁 앞에 선 제갈재걸은 뭔가 이상하게 일이 돌아간다는 걸 느꼈다.

그 점을 지적하기 전에 금찬솔의 밝은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가자, 얘들아!”

퍼퍼펑!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일사불란하고 질서정연한 2학년 0반 학생들이 움직였다.

제갈재걸은 반사적으로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잘못 힘을 쓰면 학생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언령 스킬 발동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야는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했다.

*    *    *

은광고 2학년 구역 교무실.

교무실의 자동문이 열리자 옷 여기저기가 구깃구깃하고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제갈재걸이 등장했다.

지금은 종례가 막 끝난 시간이다.

동료 교사들은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은 갔지만 예의상 물어는 봤다.

“교무부장 선생님, 무슨 일 있었나요?”

보나 마나 2학년 0반이 뭔가 했겠지.

교무실에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교사들은 같은 생각이었다.

제갈재걸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별일 없었습니다. 조금 고생했지만 괜찮아요.”

“하하하, 그렇게 되고도 괜찮다니요. 2학년 0반 애들 며칠 동안 얌전했는데. 일주일을 가지 않네요.”

“어휴, 전 제 수업 수강생 명단에 2학년 0반 애들 이름이 보이면 울렁증이 와요.”

이 대화에 끼지 못하는 교사가 하나 있었다.

그 교사는 이를 으드득 갈며 바닥을 노려봤다.

‘저 처참한 꼴을 보라지!’

그 교사는 행여 노려보는 게 걸릴까 봐 제갈재걸 대신 애먼 바닥을 노려봤다.

그런 본인의 꼴은 처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교사는 최편득의 추종자였다.

‘최편득 님은 최고였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부를 손에 넣는다,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 위대한 최편득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게 몇 가지가 있었으니.

그중 하나는 학생의 여론이요, 하나는 이 궁상맞은 교무부장이었다.

‘뭣도 모르는 어린 연놈들이 어쩌다 명문고에 왔다고 기고만장해서 최편득 님을 무시하고 말이야. 저 호구 같은 교무부장도 말이야,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려 하고.’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이 계책으로 학생의 여론을 휘어잡고 저 교무부장을 은광고에서 잘라 내 버릴 수 있다.

‘지금 높으신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먼 곳에서 호의호식하고 계실 최편득 님도 기뻐하실 거다!’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시간을 보냈다.

최편득의 화려하게 돌아와 학교를 장악하고 황명재단을 먹고 자신이 최편득 이사장의 오른팔이 되는 터무니없는 상상까지 했을 때.

마침내 제갈재걸이 혼자가 되었다.

제갈재걸은 허공을 보며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앞으로 닥칠 제 운명도 알지 못한 채 참 태평하다고 생각하며 최편득의 추종자는 비웃음을 흘렸다.

‘교무실의 기록 기기는 전부 꺼 뒀다. 이제 실행하기만 하면 돼!’

손에는 홀로그램 재생기가 들려 있었다.

이 안에는 지금 중앙 도서관 지하 서고에 붙잡힌 인질들의 상태, 저주의 진척도 따위가 정리되어 있었다.

‘저 호구도 멍청하진 않으니 이걸 보면 인질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알겠지.’

휙!

추종자는 제갈재걸의 책상 위에 홀로그램 재생기를 던졌다.

제갈재걸이 자신을 올려다봤다.

“이게 뭡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말해.”

재생기를 손에 든 제갈재걸이 홀로그램을 전개했다.

한 장, 한 장 흘러가는 홀로그램을 주시하는 제갈재걸의 표정이 생각보다 담담했다.

‘아니, 얼굴은 저렇지만, 학생들 목숨이 달렸으니 속이 뒤집히고 있을 거다!’

저 태도는 저 호구의 허세에 불과할 것이다.

추종자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지금부터 지정하는 장소로 눈에 띄지 않게 와라, 위선자 새끼야. ‘네’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여기 있는 연놈들은 다 죽는다. 물론 허튼짓을 해도 말이야.”

제갈재걸은 상위 존재 토트에게 저주에 가까운 가호를 받은 몸이다.

거짓을 고할 수 없으니 지금 ‘네’라고 말하는 순간 제갈재걸의 행동에 제한이 걸린다.

“······네. 당신이 지정하는 장소로 가겠습니다. 학생들에게 손대지 마세요.”

이겼다!

추종자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웃음이 퍼져나갔다.

*    *    *

은광고 교장의 취미는 고서, 희귀서 수집이다.

교장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월급과 사재를 다 털어서 전 세계의 책을 사들이고, 그걸 은광고 도서관에 기부하는 괴짜였다.

학교 도서관 예산에 교장의 재산이 더해지니 은광고에 책이 마를 일이 없었다.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교장은 책을 모았다.

그는 이계에서 발견된 책, 과거부터 존재했으나 진족이나 상위 존재의 힘이 닿은 책 중 위험한 책들도 많다는 걸 깨닫는다.

이능, 마력, 성력 따위를 머금은 책들.

그러나 이능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그 책들을 보존하기 위해 교장은 출입 금지 서고를 만들었다.

그의 매니악한 취미와 배려의 결정체가 바로 이곳, 은광고 중앙 구역 중앙 도서관 지하 서고였다.

그 거대한 서고의 한가운데, 다섯 명의 학생들이 육망성 마법진 안에서 벌벌 떨며 주저앉아 있었다.

헛것이 보이고 들리는지 무언가를 중얼거리거나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땅에 처박고 있었다.

“왔구나, 제갈재걸!”

육망성의 검붉은 마법진.

각 꼭짓점에는 후드를 뒤집어쓴 여섯 명의 교사가 있었다.

“학생들은 무사합니까?”

어두운 서고 저편, 제갈재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놈이 우리 말을 따르면 무사할 거다.”

“저주의 씨앗 입수는 힘들었지만 애쓴 보람이 있군.”

“최편득 님께 그렇게 잘난 척하던 엘리트 연놈들도 결국 이 꼴이구나!”

학생들이 걸린 저주는 ‘양심의 얼룩’이었다.

이 학생들은 미니 테스트 결과상 계속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살면서 1, 2등을 놓쳐 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 은광고에서 겪는 쓰디쓴 실패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추종자들의 유혹, 중간고사 시험 문제 유출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시험 문제를 건네받은 이곳, 중앙 도서관 지하 서고에서 학생들 모르게 은밀히 저주의 씨앗이 심어졌다.

그들의 양심의 가책이 커질수록 얼룩은 눈을 장악했고, 그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청각도 지배해 갔다.

“여기서 선언해라. 네가 이 머저리들이 짊어진 다섯 개의 저주와 우리가 부여하는 여섯 개의 저주를 모두 짊어지겠노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어린 학생들의 미래는 끝이다!”

제갈재걸이 이능을 발휘해 모든 교사들을 제압하고 학생들을 구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추종자들의 말대로 학생들의 미래는 없었다.

이 추종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성적 조작에 손을 뻗었다.

저주 해제 과정에서 이 사실이 드러날 게 뻔했다.

이들은 더는 은광고에 있을 수 없을 거고,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 가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살려 주세요.”

“제발······!”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이번 한 번만, 한 번만 살려 주세요!”

수많은 날을 저주에 시달린 학생들이 아우성을 쳤다.

남아 있는 건 공포와 생존 본능 정도밖에 없는 학생들에게 이성적인 생각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하지만 이 중에는 안다인 덕에 저주의 진행이 느렸던 학생도 있었다.

그 학생은 다른 학생들과 달리 아직 이지가 남아 있었다.

그 학생은 떠올렸다.

안다인이 존경하는 교사 중에 제갈재걸이 있었다는 걸.

“······안 돼요, 제갈재걸 선생님. 그러지 마세요!”

그 말에 여섯 명의 추종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섯 명의 교사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해 주는 학생이 있다면 이 호구 같은 교사는 더욱 학생을 위하는 선택을 할 거라는 걸.

하지만······.

“그래. 난 안 그럴 거야.”

추종자들의 웃음이 멎었다.

제갈재걸의 옷을 입고 있는 자는 어느 사이엔가 체격도 목소리도 변해 있었다.

목소리는 음성 변조기를 착용한 듯했지만, 체격은 어떻게 바꾼 것인지 알 수 없어 경악했다.

‘설마 변신 계열 이능이나 아이템을 썼나!’

그 짧은 사이에 어떻게 대처한 건가!

혹시 이전부터 알고 있었나?

아니다.

제갈재걸이라면 학생이 위험에 처한 걸 안 순간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아무리 죄를 지은 학생이라도, 학생이 고통받는 사이 이렇게 함정을 파고 기다릴 인물이 아니었다.

“너, 너는 누구냐······!”

제갈재걸이라고 생각했던 그자.

어둠 속에서 나타난 그는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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