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8화 (58/925)

18. 어린이날 잠실 야구장 더비 매치 (1)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에 위치한 스포츠 시설 단지, 서울 종합 운동장.

그 안에 있는 주오 드래곤즈와 TC 나이츠의 홈구장, 잠실 야구장.

“크다······!”

기숙사에서 함께 이동한 맹효돈이 감탄사를 뱉었다.

야구장에 처음 온다는 맹효돈은 도착 전부터 계속 들떠 있었다.

종합 운동장역에 가까워질수록 늘어나는 유니폼 차림의 사람들의 얼굴에 기대감과 설렘이 보였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라 가족 단위의 야구팬들이 많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더욱 밝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야구 보러 온 거냐!”

푸른 페인트라도 쏟아부은 것 같은 하늘 아래.

좌우 펜스 100m, 좌우 중앙 펜스 120m, 중앙 펜스 125m, 펜스 높이 2 .7m를 자랑하는 잠실 야구장.

한국에서 가장 홈런이 안 나올 만큼의 넓이에 수용 인원은 약 2만 6천 명.

약 15년 연속으로 매진 사례를 이어 간 어린이날 잠실 라이벌 매치다.

이 공간과 사람들을 처음 보면 압도되는 게 당연했다.

“효돈아, 의신아!”

“일찍 왔네.”

“인사드릴 분들이 많아서 좀 빨리 왔어. 점심 먹자. 배고프다.”

약속했던 장소, 제2 매표소 앞.

주수혁이 먼저 도착해서 우리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오 드래곤즈 구단 관계자 중에 주수혁과 아는 사람이 꽤 있었어.’

주수혁은 오늘 일어날 사건이 있기 전까지 자주 잠실 야구장에 방문했었다는 묘사가 있었다.

주오 드래곤즈의 구단주와 주수혁이 친근하게 인사하는 장면도 있었던 것 같다.

“가자, 맛집 안내해 줄게!”

“야구장에 맛집도 있냐.”

“응. 같이 먹어야 할 거 많아, 가자!”

주수혁은 앞서 걸으며 우리를 안내했다.

야구장에는 대형 브랜드 편의점과 커피 전문점, 각종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들어서 있었다.

그 사이에서도 개인 음식점이 존재했고,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도 점주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니 이 야구장에서도 다른 음식점과 차별화되는 맛집이 얼마든지 있었다.

“저기는 멸치 주먹밥 구이가 맛있어. 깻잎 핫바는 여기서 먹어야 해. 그리고 좀 멀지만 3루 쪽까지 가면 마늘 땅콩 닭강정 파는 데가 있는데······.”

주수혁의 완벽한 야구장 맛집 가이드를 따라 우리 셋은 여기저기를 돌며 온갖 먹거리를 섭렵했다.

‘주수혁과 맹효돈 둘 다 미식가였구나. 친구는 서로 닮나 보다.’

계속 이동을 하며 먹으니 자연스럽게 야구장 구경, 사람 구경도 되었다.

야구장 곳곳에 오늘 홈 팀인 주오 드래곤즈 선수들의 얼굴과 등 번호가 프린트된 휘장과 포스터들, 야구팬들을 위한 각종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어 심심할 일이 없었다.

“슬슬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그래.”

경기 시작까지 앞으로 한 시간.

우리는 관중석 안으로 들어갔다.

어린이 팬 대상으로 진행된 그라운드 릴레이, 캐치볼, 줄다리기 행사는 종료되었는지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는 게 보였다.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양 팀 선수단은 올드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홈 팀 주오 드래곤즈의 활약상이 흐르고 있었다.

‘자리를 못 찾고 있나?

문득 뒤에서 머뭇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딱히 살기도 없으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때.

“왁!”

누군가가 우리 셋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주수혁이나 맹효돈도 나처럼 알면서도 내버려 두던 중이었는지 별로 놀라지도 않고 돌아봤다.

“음······ 안 놀라네.”

그야 살기도 뭣도 느끼지 못했고 다 알고 있었으니 놀란 척하기도 뭐했다.

우리 셋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걸 보고 TC 나이츠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인물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자 사이로 보이는 얼굴을 잘 들여다보니 기시감이 느껴졌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사관학교 수석, 장남욱의 룸메이트인 도시후잖아!’

이전 유상훈과 함께 장남욱에게 영상통화를 걸었을 때, 장남욱을 대신하여 튀어나온 그놈이었다.

“시후야, 야구장에 오는 건 오랜만이네.”

주수혁이 도시후의 허무한 장난질에 익숙한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인사했다.

조금 의아하다.

‘오늘 이벤트에서 도시후는 등장하지 않는데. 왜 갑자기 게임 속 전개와 달라진 거지?’

내 의문은 금방 풀렸다.

“친구랑 같이 왔어. 저번에 우리 학교랑 농구 했을 때 기억나? 중간고사 얼마 안 남았다고 안 오려고 해서 VIP 중앙석 티켓을 미끼로 낚았어. 덤으로 나도 같이 보러 왔고.”

“아, 혹시 저번 시합 때, 사관학교 팀에 있던 키 큰 애?”

“응, 맞아.”

은광고와 사관학교 1학년 애들 사이에 있었던 농구 시합이 원인이었나.

입학시험에서 유상훈과 장남욱이 살아남은 나비 효과가 여기까지 미쳤나 보다.

그런데 도시후와 주수혁의 대화를 들으니 어떤 예감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도시후가 낚아낸 놈이 내가 아는 놈일 거 같은데.’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고등부.

중간고사를 앞두면 성실하게 공부를 할 것 같은 인물.

하지만 야구장 VIP 중앙석 티켓에 넘어올 만한 쉬운 놈.

농구 시합에 나온 키 큰 놈.

‘장남욱밖에 없잖아!’

도시후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중앙석 쪽 펜스에 거의 달라붙듯이 서 있는 인물이 보였다.

주오 드래곤즈의 원년 우승 당시 입은 디자인과 동일한 올드 유니폼과 모자.

목에는 주오 드래곤즈 로고가 박힌 머플러가 걸려 있고 손에는 주황색 응원 막대.

완벽한 주오 드래곤즈 빠의 차림을 한 고등학생.

그 정체는 장남욱이었다.

“야, 장남욱, 거기서 뭐 해!”

큰 소리로 부르니 거의 넋을 놓고 주오 드래곤즈 선수들을 지켜보던 장남욱이 고개를 돌렸다.

나를 알아본 그가 바로 말을 걸어왔다.

“어, 의신아! 너도 왔구나.”

“그래.”

“그렇구나. 잠깐, 의신이 너 왜 모자는 안 썼냐. 야구장에서 응원하다 보면 햇빛 받기 쉬워서 모자는 필수다. 자외선 차단제도 안 발랐을 거 아니야.”

주오 드래곤즈 빠 장남욱은 여전히 잔소리꾼이었다.

그 꼴을 보던 주수혁이 도시후에게 말했다.

“무슨 일로 모자를 썼나 했다.”

“하하하, 룸메이트가 잔소리가 많아.”

도시후도 장남욱의 잔소리를 뒤집어쓰며 살고 있나 보다.

도시후 같은 타입이면 잔소리 거리가 끊이지 않긴 할 거다.

나, 주수혁, 맹효돈, 도시후, 장남욱.

우리 다섯은 서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눴다.

‘예상외다.’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결코 나쁜 방향은 아니었다.

“오, 자리도 가깝네.”

“거의 옆자리다.”

“한 테이블에 네 자리니까 좀 자리가 비네.”

“모르는 사람이랑 앉아야 하냐?”

포장해 온 음식과 음료수를 올려 두려고 자리를 잡았다.

맹효돈의 질문에 도시후가 답했다.

“아, 우리 쪽 자리는 6촌 형이 오기로 했어.”

“어, 그 형도 야구장 잘 안 오잖아.”

“여자한테 차였다고 놀아 달라고 징징거려서 올 거면 오라고 했어. 그러니까 온다더라.”

도시후의 친척이 오나.

그럼 또 TC 그룹의 관계자가 오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음료수를 마시던 중.

“원우 형, 여기예요!”

“시후야. 먼저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잖······.”

음료수를 뿜을 뻔했다.

유상희에게 열을 올리는 중인 추한 플레이어블 캐릭터.

학생회장 강철의 쐐기 도원우.

그가 얼굴을 굳히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여자한테 차이고 6촌 동생에게 놀아 달라고 징징거린 놈이 너였구나.

“원우 형?”

주수혁과 도시후가 고개를 갸웃하자 도원우가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안녕.”

도원우는 여전히 나를 보고 매우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혈육이 있고 주변에 기자들도 넘쳐 나서 그런가.

자제하고 제자리에 앉았다.

‘도원우가 TC 그룹 관계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이벤트에 등장할 줄은 몰랐는데.’

게임 속에서의 유상희는 유상훈이 사망한 후, 학업도 일상도 다 던지고 마수종 에너미가 출몰하는 이계들의 공략에 전념한다.

도원우가 태평하게 데이트 신청할 처지가 아니니 결국 게임 속 전개가 지금처럼 바뀌고 만 건가.

‘······점점 예상 밖으로 흘러가는데.’

도원우가 추한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나쁜 일은 아니다.

곧 구장 아나운스가 시작되었다.

국민의례 후.

시구 시간이 되었다.

“오늘 시구는 누구야? 이름이 안 떠 있던데. 설마 못 정한 거야?”

“나도 못 들었어. 사정이 있나 봐.”

주수혁이 이 시간까지 모를 정도면 정말 철저하게 이름을 가렸나 보다.

시구 시간이 되어도 마운드로 향하는 건 주오 드래곤즈의 마스코트 캐릭터 용용이의 인형 옷을 입은 사람들뿐이었다.

“설마 용용이가 시구하냐?”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긴 한데······.”

“매년 용족이 하지 않나? 우리 애들이 용족 실제로 보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관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때, 마운드 위에 올라간 용용이가 인형 탈을 벗었다.

그 인형 탈 밑에 나타난 건 용족의 후예인 염준열이었다.

와아아아아―!

구장 아나운서의 뒤늦은 소개와 함께 염준열의 얼굴이 전광판에 클로즈업되었다.

관객들이 환성을 질렀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염준열을 바로 알아보고 크게 소리를 높였다.

“어, 염준열 선배님이다!”

“그때 우리 반 앞에 있던 사람이잖아!”

우리 일행도 동요했다.

그사이 VIP 중앙석 곳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모자를 깊게 눌러쓴 이들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무기인지 망원 렌즈인지 모를 거대한 부속품이 붙은 카메라들을 꺼내 들었다.

순식간에 관중석에 삼각대들이 설치되었다.

“준열이 유니폼 입은 거 봐!”

“누구 아들인지 잘났구나. 내 아들이다!”

“미쳤다. 저 촌스러운 옛날 유니폼이 빛이 난다!”

염준열이 왔으면 당연히 염방열과 용족들도 왔을 텐데 어디 있나 했다.

눈에 안 띄게 변장하고 와서 직접 사진 찍을 준비나 하고 있었나 보다.

그것도 디바이스 카메라가 아니라 전문가용 카메라까지 지참하고서 말이다.

“어, 저 사람들······ 붉은 사자랑 용족들 아니야?”

“응? 어······ 홍룡도 있으니까 있어도 이상하진 않은데······ 이상하다.”

한편, 관중석을 향해 여유 있게 손을 들어 보이며 염준열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는 포수에게 사인까지 보내며 웃었다.

그리고 염준열은 자세를 잡았다.

파앙―!

관중석까지 소리가 들린 것 같은 강속구였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포수가 쥔 미트 안으로 꽂히는 공의 제구력도 훌륭했다.

와인드업, 스트라이드, 초기 후기 코킹, 가속 단계, 볼 릴리즈에 팔로스로우까지. 투구 동작에도 흠잡을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이 한 구를 위해 얼마나 연습한 거야······!’

나도 관중들도 선수들도 놀라고 감탄했다.

염준열은 그 완벽한 피칭에 만족한 듯 환하게 웃으며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완벽하다. 준열아!”

“어떡해, 눈물 나올 거 같아.”

“내가 이끄는 용족의 후예라면 당연하다. 당연한 거다! 우리 준열이가 대단한 건 당연해!”

염방열과 붉은 사자의 팀원들, 용족들이 아우성을 쳤다.

‘······말투나 내용상 용족 수장으로 추정되는 진족도 있는 거 같은데.’

설마 용족 수장인 청룡도 왔나.

12지 회담에서는 위엄이 넘치던 용족의 수장도 염준열 앞에선 그냥 팔불출이구나.

호들갑을 떠는 그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예상대로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건이 터질 때까지 나도 마음먹고 야구 경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준비는 완벽해. 예상외의 인물들도 와서 내가 계획한 전력 이상이야. 시간이 될 때까지 야구나 보자.’

만년 2등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오 드래곤즈.

전 시즌 최하위를 달리는, 저질 야구로 악명 높은 TC 나이츠.

그러나 그 TC 나이츠도 주오 드래곤즈를 만날 때면, 특히 어린이날 잠실 시리즈를 치를 때는 경기력이 올라 명승부를 보여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거대한 노래방 중 하나답다!’

양 팀의 팬들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팀 응원가와 선수별 응원가가 경기장을 채웠다.

가끔 어설프게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한 회, 한 회 치열하게 이어지는 경기를 즐겼다.

*    *    *

스코어는 3 대 3 .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5회가 끝난 시점.

그라운드 정비를 하는 클리닝 타임이 시작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추첨 이벤트를 진행할 때였다.

―삐이이이익!

경기장에 있는 수만 개의 스마트 기기에서 일제히 경보 알람이 울렸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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