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어린이날 잠실 야구장 더비 매치 (2)
전조 현상.
이는 공략 난이도 SR급 이상의 난이도의 이계가 출현하기 전, 이능파 밀도의 상승, 미세한 지각 변동, 비정상적인 기압 변화 등이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공략 난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전조 현상을 더욱 일찍, 확실하게 관측할 수 있었다.
한반도의 경우, 한반도를 담당하는 협회 위성 플레이어SAT-K에 의해 그 전조 현상을 관측해 왔으며 협회는 이 정보를 이용해 이계에 대응해 왔다.
플레이어SAT-K의 신뢰도는 극히 높았었다.
게임 속, 1년 차 어린이날 이전까지.
‘흑막의 비장의 한 수였어.’
흑막에게는 ‘이계 부르기’라는 능력이 있었다.
리스크도 크고, 준비 시간도 오래 걸리며 필요한 힘도 크지만 전조 현상 없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이계를 불러낼 수 있었다.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니 오늘 잠실 야구장에 앉아 있는 용족과 붉은 사자 팀원을 발견해도 돌이킬 수 없었을 거야.’
게임 속 어린이날 잠실 야구장.
전조 현상 없이 갑자기 일상을 침식하며 SR++급의 두 개의 이계가 등장했다.
잠실 야구장이 갖추고 있는 결계는 R+++급이었다.
체육 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 규칙을 준수한 결계 수준이었지만, 기존에 존재하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현상에 대응하기엔 부족했다.
‘전조 현상 없는 SR급 이상의 이계 발생은 과거 영원의 호수가 맨체스터 대이계 공략에서 겪은 이후 처음이었지. 그때는 SSR급 이계가 추가적으로 전조 현상 없이 생겨서 무수한 사상자를 냈어.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케이스니까 대처하기 어려웠지.’
게다가 이 사건은 단순히 관객들이 희생당하며 끝난 사건이 아니었다.
어린이날, 주오와 TC의 더비 매치 때는 각 그룹의 차기 총수가 가족들과 함께, 응원하는 팀 측 관중석에서 경기를 끝까지 관람하는 게 관례였다.
각각 1루, 3루 테이블 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그들까지 이 사건에 휘말렸다.
‘오너 일가는 현명한 선택을 했어. 가족 전부가, 그것도 아직 어린 자식까지 데리고 SR++급의 이계화 현상 앞에서 약 2만 6천 명의 관중들과 스태프 사이에서 무사히 도망치는 건 어렵단 걸 알고 있었어. 오너 일가만 도망쳐서 살아남으면 언론의 먹이가 될 거고.’
주오 그룹과 TC 그룹의 차기 총수들은 경호 팀에게 최저 인원만 남기고, 협회의 지원이 올 때까지 두 개의 이계의 틈 앞에서 이계 외부에 생성되는 에너미를 막는 ‘수비대’ 역을 할 것을 지시했다.
지시를 내릴 당시에는 아직 이계의 틈은 두 개에 그쳤기에 한쪽은 주오 그룹의 경호 팀이, 한쪽은 TC 그룹의 경호 팀이 지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계산이었다. 각 그룹의 경호 팀장은 차기 총수들의 지시를 따르기로 한다.
‘하지만 그것도 흑막의 노림수 중 하나였지.’
경호 팀이 이동하고 약 10분 후.
세 번째 이계의 틈, SR++급의 탑이 등장하며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계의 틈에 이끌려 SR급 이상의 에너미들이 생성되었다.
전조 현상 없이 발생하는 저레어 이계 대비용 R+++결계는 순식간에 파괴되고, 농성 상태였던 잠실 야구장 관중석 안까지 함락되고 만다.
‘게임 속에선 여기부터 주수혁 단독 퀘스트가 시작되었는데.’
1루 테이블 석에는 주수혁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사촌 여동생이 와 있었다.
중앙 VIP석에 앉아 있던 그는 1루 쪽을 지키러 가고 그의 대활약으로 1루 쪽 관객은 대부분 무사했지만, 3루 쪽은 그렇지 못했다.
흑막의 안배로 그날따라 서울 시내에서 발생한 이계의 수가 이상할 정도로 많았었다.
인력 파견이 지연되고, 잠실 야구장에 협회와 프로 플레이어 팀이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25분.
그 25분 사이에 TC 그룹 측에서 남긴 경호 인력 전원 사망했다.
그리 강하지 않지만 이능을 가지고 있던 차기 총수 일가가 항전 중 중상을 입었다.
결국, 그날 이계의 틈에 이끌려 생성된 에너미에 의해 네 자리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내고 말았다.
‘플레이어 관객도 몇 명 있었지만, SR급 이상의 에너미에 대응할 수 있었던 플레이어들은 주수혁과 경호 팀에서도 일부였어.’
협회와 다른 프로 플레이어 팀들의 발목을 잡은, 우연히 발생한 서울시의 이계들과 우연히 발생한 전조 현상 없는 잠실 야구장의 이계들.
거기에 흑막이 만들어 낸 우연이 겹치니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주수혁의 활약이 오히려 독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었어.’
중상을 입은 TC 그룹 관계자와 달리 주오 그룹 관계자들은 전원 무사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비논리적이며 비뚤어진 자들이 많았다.
당시 홈구장이 주오 드래곤즈였다는 점도 들어 잠실 야구장 참사가 주오 그룹에 의한 대규모 테러, 암살 시도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증거라고 돌아다니는 사진은 부상 없이 야구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주오 그룹 차기 총수 일가의 사진이었다.
‘주오 그룹이 사주한 암살, 테러설, 주수혁 사촌 여동생에 대한 악플 등에 강경하게 대응하니 뭔가가 있으니 강경하게 대응하는 거다, 저 태도가 증거다. 하고 주장하는 미친놈들도 많았지.’
차기 총수와 그 가족들의 중상으로 주식값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TC 그룹은 그 암살, 테러 소문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TC 그룹의 차기 총수가 중상을 입고, 아이템 카드와 스킬을 사용해도 후유증이 남게 되었어. 재생 시술도 여러 번 받아야 했으니까. 그 이후로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TC 그룹의 태도가 바뀌었어.’
터무니없는 소문이라 생각해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대중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TC 그룹도 그렇게 생각하니 입을 다무는 게 아니냐?’라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일이 이렇게 커지니 주오 그룹과 TC 그룹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본래 이능파를 활용한 새로운 모바일 네트워크 서비스, 1GG (1 Gifted Generation) 기술 주도권 경쟁을 두고 피 터지게 싸우던 두 그룹이다.
두 그룹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후 4대 그룹 암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덤으로 프로 야구 관중 수가 급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
문화 체육 관광부가 발표한 주요 프로 스포츠 관중 추이 중 가장 높은 숫자를 보이는 건 프로 야구의 지표다.
흑막의 한 수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의 흥행 카드를 노려 한국인의 즐거움을 하나 짓밟고, 4대 그룹 중 차기 총수 둘의 목숨까지 노렸다.
‘그 수는 내가 막았다.’
나 역시 우연을 가장해 자연스럽게 붉은 사자 팀과 용족을 이 잠실 야구장에 불러 모았다.
―삐이이이익!
알람음과 함께 홀로그램 전개가 가능한 스마트 기기에서 강제로 알림 메시지와 이계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띄웠다.
[긴급 알림 SR++급 이계 생성 안내]
현재 생성된 SR++급 이계는 둘.
하나는 1루 내야 입구 쪽에 하나.
남은 하나는 3루 내야 입구 쪽에 하나.
곧 몇 분 내로 이계의 틈 사이에서 SR급 이상의 에너미도 등장할 거다.
경기 중단을 알리는 구장 아나운스가 울려 퍼졌다.
“저번 수업 시간에 SR급 이상의 이계 발생은 전조 현상이 있다고 배운 거 같은데. 전조 현상이 있으면 그 지역은 봉쇄되지 않냐?”
“플레이어SAT-K가 감지하지 못했나 봐. 어, 지금 서울시에 발생한 이계의 틈이 한두 개가 아니야······! 전부 ‘공략 진행 중’ 표시가 있어. 협회의 지원이 좀 늦을 것 같다.”
수업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장한 짱돌 맹효돈 선생.
침착하게 디바이스로 이계 공략 현황을 살피는 주수혁.
“이계 발생 위치를 고려하면 중앙문과 내야 출입구는 절대 가까이 가선 안 돼. 외야 쪽 출입구로 도망간다는 선택도 있어. 하지만 결계가 발동되면 모든 출입구는 폐쇄된다······! ‘수비대’가 조금이라도 실수해도 외야 출입구 쪽으로 에너미가 올 수도 있고. 2만 6천 명이 SR급 이상의 에너미를 피해 도망치는 건 어려울 거야. 그렇다면 농성전으로 가야 할 텐데. 잠실 야구장의 결계는 R+++급. SR급 이상의 에너미를 상대로 10초 이상도 못 버틸 거다!”
“원우 형, 우리도 싸울 준비 할까?”
약간 패닉 상태에 빠져 말이 많아진 장남욱.
비교적 태평해 보이는 도시후.
우리 일행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도원우가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도원우의 시선은 중앙 VIP석에서 염준열을 중심으로 앉아 있는 붉은 사자 팀원과 용족들을 향해 있었다.
‘그래, 그리고 이걸 아는 건 도원우만이 아니야.’
게임 속 전개라면 관중들, 선수들 너나 할 것 없이 패닉에 빠진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준열이가 시구한 경기에서? 이계도 눈치가 없네. 오늘 휴가 내려고 얼마나 빡세게 이계 공략 달렸는데!”
“유형 보니까 둘 다 던전이구나. 가루로 만들어 주마.”
“용족 전원 참가한다. 이의는 받지 않는다.”
경기하는 내내 관중석에 중계 화면을 돌릴 때마다 붉은 사자 팀원과 용족들이 주구장창 비춰졌다.
이 잠실 야구장에 있는 모든 이들과 화면 너머의 시청자 모두가 알고 있었다.
관객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겁에 질려 보이진 않았다.
세계 10대 플레이어 팀 중 하나인 붉은 사자의 최정예와 용족들이 자신들을 지켜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거다.
“아버지, 저도 갈게요.”
“음? 준열아, 하지만······.”
“아버지와 이계 공략을 함께할 기회는 드물잖아요. SR++급의 이계라면 제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어요. 아버지의 활약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요.”
“······그래! 준열이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아버지의 활약을 그렇게 보고 싶어 한다면!”
염방열이 염준열에게 어떻게 잡혀 사는지 알 수 있는 대화가 들렸다.
팀 마스터 염방열과 우두머리 청룡에 의해 공략에 나설 공격대와 수비대를 편성하는 중에 용제건이 한마디 했다.
“저는 경기장에 남겠습니다.”
“용제건? 넌 지금 은광고 밖이라 ‘교원 계약’의 제한도 없을 텐데, 왜 몸을 사리는 거냐.”
“불확정 요소를 대비해서요. 느낌이 안 좋습니다, 청룡.”
“······너는 예지 스킬도 없는 주제에 감이 좋은 편이지. 네놈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한해서 말이다.”
용제건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남겠다고 선언했다.
중앙 VIP석의 관중들을 비롯한 모든 관중이 붉은 사자와 용족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가운데.
약 1분 만에 팀 편성을 마친 그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간다, 붉은 사자!”
염방열의 외침에 붉은 사자 팀원들이 품에서 아이템 카드를 꺼내 실체화시켰다.
카드에서 나온 아이템은 붉은 사자의 팀 마크가 박힌 붉은 망토였다.
망토를 걸친 이들이 비행 스킬이나 광림, 이동 아이템을 사용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허공에 날아올라 이계로 향하는 붉은 사자 팀 멤버들과 용족들을 보고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가자, 준열아! 이 아버지가 멋진 모습을 보여 주마!”
“나도 준열이랑 같은 팀 하고 싶은데······.”
“청룡 님도 참고 있으니까 투정 부리지 마. 빨리 처리하고 와서 합류하자!”
들리는 대사는 그리 멋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붉은 점이 되어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은 몹시 든든했다.
‘앞으로 발생할 이계는 하나 더 남았다. 하지만 주오와 TC의 경비 팀은 전원 경기장에 대기 중, 은광고와 사관학교의 엘리트 플레이어가 여섯. 그리고 용제건도 있다. 전력상 문제는 없어.’
용제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조용해진 중앙 VIP석에서 주변을 둘러보다 우리 쪽을 보고 한 번 손을 흔들었다.
용제건을 알아본 나와 도원우, 주수혁이 목례를 했을 때, 용제건은 몸을 돌려 한 지점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만나네, 토연 씨.”
용제건이 지금 뭐라고 말했지?
토연 씨?
설마 옥토연을 말하는 건가.
“왁, 어, 어떻게 안 거야!”
목소리를 들어 보니 옥토연이 맞다.
TC 나이츠 모자를 눌러쓰고, 머플러로 얼굴을 둘둘 말아서 알아보지 못했다.
‘왜 여기 있는 거지?’
게임과 달리 토족은 멸족 위기를 면해 여기에 있어도 이상한 건 아니긴 하지만, 지금 토족의 수장은 바빠야 정상 아닌가?
적호는 그렇게 바쁜데.
용족의 수장이 하는 꼴을 보면 수장은 의외로 한가하게 사는 건가.
“전에 은광구에서 본 적이 있잖아. 난 ‘공간’에 예민해서. 같은 공간에 아는 기척이 있으면 눈이 가.”
“음음, 여차하면 은인을 데리고 튀려고 했는데.”
공간술을 사용하는 용제건다운 반응이다.
그런데 옥토연이 말하는 은인이라면 내 얘기를 하는 거 같은데.
은호의 후예를 구한 일로 은혜를 갚느니 마느니, 하고 있었으니까.
“왜 여기 있어?”
“그, 그야 난 TC 나이츠 팬이니까. 우린 TC 나이츠 공식 스폰서이기도 하거든?”
옥토연이 보란 듯이 입고 있는 TC 나이츠 유니폼에 붙어 있는 스폰서 패치를 보여 줬다.
달토끼떡······ TC 나이츠의 스폰서였구나.
얘기하는 걸 보니 달토끼떡 CEO인 진족, 토족의 수장이 TC 나이츠 팬인가 보다.
‘하필 팬이 되어도 매년 꼴찌 경쟁을 달리는 망팀의 팬이 되다니!’
국민망겜의 썩은 물로서 응원한다, 옥토연!
“토윤 씨가 허락할 리 없잖아. 이렇게 혼자 움직이게 내버려 둘 리가 없는데.”
“아, 월궁계도에 좀 이상한 게 보여서 몰래 와 봤어! 됐냐?”
월궁계도?
처음 들어 본 명사지만 짐작 가는 게 있었다.
황지호가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달토끼들이 월궁의 기술을 사용해 한반도를 관측했다고.
‘설마 옥토연에게 ‘이계 부르기’를 꿰뚫을 기술이 있나.’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다.
“처음 보는 힘의 움직임이었어. 전조 현상과 닮긴 했는데, 뭔가 좀 다르고 기분 나빴어. 그래서 살짝 와 본 거야!”
“전조 현상과 닮긴 했지만 다르다? 지금 발생한 이계는 두 개인데. 두 개 다 비슷했어?”
“음음, 이건 뭐라 말해야 하나.”
옥토연이 빨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말했다.
“비슷하긴 한데, 두 개가 아니었어. ‘세 개’ 모두 비슷했어!”
―삐이이이익!
다시 울리는 경보 알람.
SR++급의 이계 생성을 다시 알리고 있었다.
‘확실하군.’
전조 현상 없이 나타난 세 번째 이계.
옥토연은 사전에 알고 있었다.
‘토족에게는 흑막의 ‘이계 부르기’를 꿰뚫는 기술이 있어.’
앞으로 둘 수 있는 수가 더 늘어났다.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아, 부반장 또 개 수상하게 웃네.”
또 수상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