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3화 (63/925)

19. 영원의 호수 팀 마스터 내한 공연 (1)

달토끼떡 본사 건물.

TC 나이츠 올드 유니폼, 모자, 머플러를 갖춰 입은 달토끼떡의 CEO, 옥토연이 울먹이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융단이 깔려 있다곤 하나 차고 딱딱한 바닥에 오래 앉아 있는 건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귀에 착용한 블루투스 헤드폰에서 지나치게 높은 볼륨으로 흘러나오는 경전 외우는 소리에 옥토연은 두 눈이 팽팽 도는 기분이 되었다.

“토윤 언니, 내가 잘못했어! 이, 이거 안 듣고 있으면 안 돼?”

“반성해.”

“반성했어! 했으니까, 응?”

“토연이 네 안에 가득한 번뇌, 나태, 어리석음을 털어 내고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도리, 중도의 진리를 깨달으렴.”

경전을 듣는 중에도 옥토윤의 입술을 읽으며 대화를 하던 옥토연은 포기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옥토윤은 눈앞에서 팔짱을 끼고 옥토연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토족 최고의 전사답게 살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토연이가 도망치는 솜씨가 늘었어. 만우절에 입은 부상이 낫지 않았다 해도 방심해선 안 됐는데. 좀 더 경계해야지. 나도 정진해야겠어. 앞으로 훈련량을 늘려야지.’

그것도 모르고 옥토연은 지겹게 울리는 경전 외우는 소리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월궁계도에서 계속 이상이 감지되는 중이라고 했지, 토연이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TC 나이츠의 경기도 볼 겸 놀러 갔었지. 그리고 전조 없이 SR급 이상의 이계가 등장했어.’

“토윤이 언니······ 나 배고픈데에······ 먹을 거라도 주고 벌주면 안 돼? 응? 검정약쌀인절미 먹고 싶다. 팥가루 잔뜩 넣은 거로!”

옥토연이 징징거리기 시작했지만 옥토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생각을 이어 갔다.

‘한반도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는 중인 건 확실해. 그리고 월궁계도를 읽을 수 있는 건 현재 토족 중에서도 토연이뿐이고. 내가 적이라면 토연이부터 노릴 거야.’

옥토윤은 섬뜩했던 만우절을 떠올리며 몸을 작게 떨었다.

은호의 후예가 부른 호족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토족은 전멸했을지도 모른다.

제석천이 내린 회토(懷兎)의 가호를 강하게 받은 옥토연만을 남기고 말이다.

“언니? 토윤이 언니? 듣고 있어?”

수천 년이 흘러도 아직 철이 없는 이 토족의 수장을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한숨을 작게 쉬었다.

“······알았어. 30분 쉬고 다시 벌 받아. 옷도 갈아입고 와.”

“응? 30분 쉬고 다시 또? 토윤이 언니이······.”

“싫으면 말고.”

“어? 아냐! 전혀 싫지 않아! 아, 맞다. 떡 언니 몫까지 가져올게!”

옥토연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헤드폰을 던지듯이 벗고 방 밖으로 사라졌다.

잔상이라도 남을 것 같은 빠른 움직임이었다.

일할 때도 저렇게 민첩하게 굴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바라며 옥토윤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번에 황호랑 맺은 멍청한 계약도 그렇고······ 나쁜 아이는 아닌데 왜 한결같이 멍청할까.’

벌 받는 와중에도 벌주는 사람 떡까지 챙기는 게 멍청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복잡한 기분이었다.

딩동.

옥토윤의 디바이스에 메시지 착신음이 울렸다.

메시지 발신자는 의외의 존재였다.

‘용족의 용제건······!’

언제 연락처를 교환했는지조차 잊고 살았는데.

의외라 생각하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안녕, 토윤 씨, 오랜만이야. 토연 씨가 말한 월궁계도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시간 좀 내줘.]

‘······토연이가 아니라 나한테 연락하다니.’

옥토윤이 쉽게 답변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던 중,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쾅!

“토윤이 언니, 떡 가져왔어! 검정약쌀인절미랑 수리취인절미야. 따끈따끈할 때 먹자!”

옥토윤의 속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옥토연이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떡이 가득한 접시를 내밀었다.

무릎 꿇고 경전 듣기 벌을 예정보다 30분 더 늘려 볼까, 하고 생각하며 옥토윤은 철없는 토족 수장과 마주 앉았다.

*    *    *

하고 많은 부탁 중에 티켓팅이라니.

이 세계에 와서 가장 쓰라린 패배를 안겨 준 종목이다.

차라리 SR급 에너미를 몇 마리 더 잡아 오는 게 쉬울 것 같다.

“우리 학교 호연관 콘서트홀에서 하루 공연할 거래!”

중앙 구역에 있는 호연관 콘서트홀.

은광고 내의 동아리, 소모임이 발표회를 할 때 주로 사용되는 곳으로 외부 초청 공연 때는 그리 사용되지 않는다.

좌석 수는 1000석도 넘지 않는다.

‘왜 넓은 상인관을 내버려 두고 호연관에서 하는 거야······!’

영국의 4대 이계 공략 팀 중 하나, ‘영원의 호수’의 팀 마스터, 권제인.

영국 여왕에게 명예 훈장을 받은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바이올리니스트.

국내외로 최고의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하는 그녀의 내한 콘서트.

위 사항을 고려해 보면 치열한 티켓팅 경쟁이 벌어질 게 뻔했다.

‘2만 5천이 넘는 잠실 야구장 티켓팅도 말아먹었는데 천 석밖에 안 되는 콘서트홀 공략이 될 리 없잖아······! 아니, 포기하기엔 일러. 그사이에 연습이라도 해 볼까.’

티켓팅 시뮬레이션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다른 콘서트 공연의 티켓팅을 하며 연습을 하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

“······그래, 알았어. 언제부터 예매 시작이야?”

“고마워! 오늘 점심시간부터야!”

뭐라고?

몇 시간 남지도 않았다······!

연습할 시간조차 없을 것 같다.

포기하고 싶어졌다.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내한 공연 일정이 뜬 거지?’

영원의 호수 팀 마스터가 내한하는 건 나름 큰 이벤트인데 게임에서 본 기억이 없다.

은광고의 콘서트홀을 빌려서 하는 공연이라면 게임 내에서도 한번 언급이 될 만도 한데.

“야, 조의신. 너 어제······.”

“지호야, 도와줘!”

“응?”

잠깐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황지호가 나한테 뭔가 말을 걸려고 했으나 그 전에 이레나에게 붙잡혔다.

이레나의 열렬한 태도에 얼떨결에 황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나와 황지호 외에도 남은 1학년 0반 전원이 이레나의 티켓팅을 돕게 되었다.

“그러면 오늘 점심시간, 밥 다 같이 먹고 교실에서 티켓팅 하자! 푯값은 내가 낼게. 한 명이라도 성공하면 좋겠다······!”

이레나는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중인 그녀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공연을 보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권제인의 공연은 이레나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거고.

‘권제인이 작곡한 for LENA라는 곡이 이레나가 다시 등교할 계기가 되었으니까.’

달빛 아래에서 환하게 웃으며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하던 이레나가 떠올랐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몇 년 뒤에 또 권제인이 내한할지 알 수 없다.

‘이번만큼은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티켓팅의 세계는 냉혹했다.

우리 1학년 0반 모두가 힘을 합쳐도 역부족이었다.

“뭐야, 왜 화면에 아무것도 안 떠! 어, 꺼졌다. 뭐냐.”

첫 번째 탈락자, 맹효돈.

“어? 이상하다. 다시 로그인 화면으로 돌아왔어요. 왜 로그아웃이 되어 있는 거죠?”

사월세음도 의문의 에러와 함께 탈락했다.

“공연 일정은 하루인데 왜 날짜 선택 화면이 뜨는 거야?”

능력자 김유리도 못 하는 게 있었나 보다.

김유리도 조기 탈락했다.

“미안, 조금 빨리 들어갔나 봐. ‘지금은 예매 시간이 아닙니다.’ 메시지가 떴어.”

오랜 로딩 끝에 한이도 예매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하하하! ‘내 대기 순서 1301번째’라는데? 고작 천 석밖에 없는데 뭐라는 거야.”

“······난 3517번째야.”

황지호는 처웃었고, 이레나는 화면에 뜬 숫자를 보며 절망하고 있었다.

한편, 나는 홀로그램으로 좌석 배치도를 띄우고 있었다.

“의신이가 좌석을 고르고 있어······!”

“부반장, 힘내라!”

저번 어린이날 잠실 야구장 티켓팅 전쟁에 참여한 보람이 있었다.

이 일곱 명 중에선 내가 제일 나았다.

하지만······.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이게 뭐야!”

“1초 전까지는 비어 있는 좌석이었잖아. 왜!”

“대기 순서의 존재 의의는 뭘까. 이 안에 들어가도 고를 좌석이 없잖아!”

낯익은 메시지에 지켜보던 아이들의 절규가 이어졌다.

결국 나도 탈락했다.

헛된 희망을 품고 확인 버튼을 누르고 좌석 선택 화면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보이는 건 매진된 좌석뿐.

1학년 0반은 티켓팅 전쟁에서 전멸했다.

“얘들아······ 도와줘서 고마워.”

“도움이 못 돼서 미안.”

“아냐. 갑자기 부탁했는데 다들 도와줘서 진짜 고마워!”

이레나가 밝게 말하며 감사를 표해 왔다.

홀로그램 속, 푸른 몸체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권제인의 포스터를 보며 이레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취소표······ 나올까.”

피 말리는 티켓팅에서 패배한 자들은 취소표 티켓팅, 취켓팅이라는 지옥에서 무한히 새로 고침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지옥에 떨어지게 생겼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아니, 아직 길은 남았어.’

잠실 야구장에서처럼 지인 찬스를 활용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내 시선을 느낀 듯 황지호가 이쪽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내가 뭘 부탁할지 알아챘나 보다.

망할 놈.

*    *    *

방과 후.

조례할 때 함근형에게 수업 다 끝나면 교무실에 들르라는 말을 들어 부활동은 일찍 마치고 나왔다.

문새론이 잠실 야구장 사건을 두고 집요하게 질문하고, 황지호가 한마디씩 거들면서 문답이 길어졌다.

티켓팅으로 잠깐 정신이 팔렸지만, 어제 사건의 여파가 새삼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아직 메시지를 확인 안 했네.’

잠실 야구장 사건 기사에 내 이명이 뜨는 바람에 어젯밤 메시지를 잔뜩 받은 것 같은데.

그냥 잠든 후 메시지는 방치 상태였다.

교무실로 가는 길에 쌓여 있는 미독 메시지를 읽기로 했다.

‘더 메시지가 쌓이기 전에 확인해야겠다.’

제일 처음 본 건 유상훈, 장남욱 셋이 있는 단체 메시지방.

유상훈이 아주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유상훈] (기사 링크)

[유상훈] 뭐임?

다음은 성시완이 보낸 메시지.

[성시완] SR++급 이계 공략에서 수비대를 맡았다면서. 굉장하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지?

박승현의 짧은 생존 확인.

[박승현] 괜찮음?

홍규빈의 죽는소리.

[홍규빈] 의신아, 얘기 들었다. 기록 기기에 남은 영상도 봤어. 부상자가 없어서 다행이다. 이번 사건으로 위성 관리팀이 너희를 협회로 불러서 인터뷰할 거 같다는데. 나는 바빠서 못 만날 것 같다. 하하하······ 우선 구단 관계자 측이랑 얘기하고, 토벌에 참여한 붉은 사자와 용족들, 또 너희들이 소속한 학교와 얘기해서 보도 방침을 정할 예정이야. 아마 오늘은 밤새고 내일은 그냥 평범하게 야근하겠지! 올해는 참 다사다난하구나······ ㅠㅠ

황지호의 메시지 시간차 공격.

[황지호] 너 뭐 한 거냐.

[황지호] 왜 망할 달토끼랑 용족이 여기 있어. 설마 우연이라고 발뺌할 생각은 아니겠지?

[황지호] 왜 메시지 안 읽음?

몇 개는 대답하고 몇 개는 읽고 씹기를 시전한 후 메시지창을 닫아 버렸다.

메시지를 전부 읽고 나니 딱 교무실 앞에 도착했다.

교무실 문 앞에 설치된 벨을 누르자 내 기척을 읽기라도 한 듯 함근형이 바로 문을 열어 줬다.

“잘 왔다. 효돈이와는 방금 얘기 끝났다.”

부활동을 하지 않는 맹효돈은 먼저 와서 얘기하고 갔나 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봐라.”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차례차례 설명했다.

주수혁의 권유를 받아 맹효돈과 셋이서 야구장에 가게 된 것.

여러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세 번째 이계의 등장으로 용제건을 필두로 이계 공략에 참여하게 된 것.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보에 적당히 살을 붙여 설명했다.

내가 우연을 가장해 판을 짰다는 사실만 빼고.

“조의신, 너는 사고에 자주 휘말리는구나.”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함근형이 한마디 했다.

험상궂은 얼굴에 근심이 어려 있었다.

“플레이어 중에서는 그런 사고와 자주 얽히는 이들도 있다. 그건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라.”

묻고 싶은 게 더 있는 얼굴이지만, 함근형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함근형한테는 늘 신세만 지네.’

곧 스승의 날이기도 하니까 뭐라도 하고 싶다.

부정 청탁 금지법 때문에 좋은 선물은 하기 어려운데······.

그렇게 생각하며 교무실 앞 복도를 걷던 중.

“어.”

아는 얼굴을 마주쳤다.

아니, 상대는 얼굴을 거의 가렸으니 아는 얼굴이라고 하긴 힘들다.

상대는 뿔테 안경과 교복 위에 입은 후드 점퍼의 모자로 얼굴을 거의 가린 상태였다.

이 인물과는 이 세계에선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민그린이다.’

중간고사 첫날, 1학년 0반에 있었는데 없었던 그녀.

화려한 탈주를 하며 추가 시험을 확정지었던 등교 거부자.

민그린과 조우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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