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4화 (64/925)

19. 영원의 호수 팀 마스터 내한 공연 (2)

중앙 구역 학생회관, 학생회실.

학생회 임원들은 지난 어린이날 있었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그날 잠실 야구장 갈걸. 원우가 징징거리는 게 듣기 싫어서 바쁜 척했었는데.”

학생부회장 지명수가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툴툴거렸다.

건너편에 마주 앉아 다소곳하게 주스를 마시는 학생회 서기 유상희도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원우랑 같이 있는 건 싫지만 준열이랑 상훈이 친구들도 오는 줄 알았으면 동생 데리고 나도 갔었을 거야. 상훈이도 말은 안 하지만 많이 서운해하는 거 같았어.”

“아, 상희 네 동생 친구면 그 입학시험 13조 애들 말하는 거야? 걔들은 계속 사건에 휘말리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한 명은 군사관학교 고등부로 갔지? 원우 육촌 동생 룸메라고 들은 거 같은데.”

“응, 그런 거 같아. 남욱이랑 시후도 우리 학교 왔으면 좋았을 텐데. 원우는 전학 좀 가 줬으면 좋겠고.”

“하하하하! 내 웃음벨 전학 보내지 마. 가끔, 아니, 자주 짜증 나게 구니까 ‘전학 좀’ 하고 생각할 때가 있긴 한데. 그래도 이번엔 원우 열심히 했잖아. 칭찬 좀 해 줘.”

지명수가 도원우를 놀려 먹긴 하지만, 아주 드물게 변덕스레 두 사람 사이를 살짝 밀어줄 때가 있었다.

그 뜻을 알아챈 학생회 임원들이 유상희의 눈에 띄지 않게 지명수에게 웃어 보였다.

지명수는 ‘상희가 알면 나도 수도로 처맞을지도 모르니까 닥쳐.’라는 의미를 담아 살며시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래······ 명수 말이 맞는 거 같아. 원우는 이번에 잘해 줬는데 말이 심했네. 내 동생 친구들도 전부 안 다치고 무사했으니까.”

뒤에서 오가는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상희는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쉬익―.

자동문이 열리고, 도원우와 염준열이 등장했다.

잠실 야구장 이계 공략 파티의 공격대로 활약한 두 사람이었다.

“안녕, 늦어서 미안하다. 오늘 준열이랑 같이 황명재단 분들과 얘기할 일이 있었어.”

“안녕하세요.”

도원우와 염준열이 인사를 마치자 유상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걸었다.

“기사 봤어, 원우야. 고생 많았어. 내 동생 친구들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다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상희야, 고마워! 공략하는 내내 네 생각만 했어!”

도원우는 당장이라도 유상희의 손을 잡을 기세였다.

그녀는 그런 그를 신경 쓰지도 않고 바로 몸을 돌려 염준열에게 말을 걸었다.

“준열아, 너도 고생 많았어. 스타 플레이어다운 활약이었어. 네 선배라는 게 자랑스러워. 시구하는 영상도 봤어. 야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폼이 굉장히 깔끔하더라.”

“감사합니다, 상희 누나.”

도원우는 자신보다 긴 칭찬의 말을 듣는 염준열을 보자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염준열은 우수하며 붙임성 있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후배다.

그러나 웬만한 아이돌이나 배우의 뺨을 후려갈기는 그 얼굴로 유상희에게 ‘상희 누나’라고 웃으며 말하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

결국, 도원우의 속에서 꿈틀거리던 추한 마음이 말로 표현되었다.

“상희한테 친한 척하지 마, 염준······ 억!”

빠악―!

말을 마치기 전에 유상희의 수도가 그의 등을 향해 날아왔다.

기척은 느꼈지만 유상희의 손길이라고 판단한 순간 피하지 않는 걸 선택한 도원우였다.

“후배한테 무슨 말이니? 추잡해, 원우야. 그리고 이계 공략하는 내내 에너미를 처리하면서 내 생각을 해? 그게 대체 무슨 말이니.”

“상희야, 나는 항상 네 생각을 해.”

“기분 나빠.”

“뭐! 상희야, 기분이 안 좋아? 어디 아프면 양호실로 갈까. 내가 업어 줄게.”

“지저분해.”

도원우는 유상희의 매도에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한편 이런 상황에 익숙한 염준열은 조금도 기분이 상하지 않은 표정으로 지명수와 잡담을 나눴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김유리가 작게 웃으며 안다인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선배님들은 오늘도 재밌으셔. 그치, 다인아?”

“······응.”

안다인은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듯 건성으로 대답했다.

김유리가 안다인이 보고 있는 홀로그램을 들여다봤다.

‘이거 잠실 야구장 영상인 거 같은데?’

안다인이 보고 있는 건 협회 측에서 공개한 잠실 야구장 이계 공략 영상이었다.

얼굴은 흐림 효과 처리되어 있었지만, 김유리는 영상에 나온 게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롯드를 들고 캐스팅 중인 건 의신이야. 앞에서 의신이를 지키고 있는 게 효돈이랑 수혁이. 와, 다들 잘 싸운다.’

안다인의 시선이 주수혁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수혁은 자유자재로 애검 ‘두빛나래’를 휘두르며 에너미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한 방, 한 방이 무겁지만 투박한 움직임의 맹효돈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조의신에 비해 주수혁의 화려한 쌍검 스킬은 눈에 띄었다.

안다인은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어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거겠지만.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화면 속 주수혁을 바라보는 그녀를 보며 김유리는 속으로 응원했다.

‘다인아, 파이팅.’

김유리는 짧은 응원을 마치고 안다인이 보고 있는 영상을 자신의 디바이스에도 스크랩했다.

스크랩한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돌려 보던 김유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들 굉장하다! 난 아직도 가상 에너미만 봐도 떨리는데, 나랑 얘들은 동갑인데 어떻게 이렇게 싸우지? 직접 감상 들어보고 싶다.’

반 친구 중 둘이나 기사에 떴다.

그 활약상에 대해 직접 얘기를 듣고 싶은 건 당연했다.

오늘은 티켓팅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잠실 야구장 사건에 관해 별로 얘기하지 못했지만.

‘효돈이도 의신이도 고생했으니까 내일은 맛있는 거 싸 가야지.’

안다인과 함께 영상을 보며 김유리는 내일의 계획을 세웠다.

*    *    *

10년 전 한국 미술계를 놀라게 한 신동, 민그린.

사실 민그린은 미술계와 연이 없는 집안의 출신이었다.

‘민그린이 미술을 처음 접한 게 일곱 살 때였나.’

송만석이 자신의 손자 송대석과 그의 소꿉친구인 민그린을 데리고 오랜 친우인 한국화의 거장 홍경복 화백의 자택에 방문했을 때였다.

민그린은 홍경복의 붓놀림을 홀린 듯이 바라보다 이내 큰 사고를 쳤다.

그녀는 어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홍경복의 작업실 한구석에 있던 미완성 작품, ‘이무기의 귀천’에 붓질을 해 버렸다.

송만석이 뒤늦게 알고 기겁하여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홍경복은 민그린이 완성한 ‘이무기의 귀천’을 보다 감탄을 금치 못하며 한마디 하였다.

[‘이무기의 귀천’은 이 신동의 손에 의해 완성될 운명이었다.]

홍경복은 민그린이 자신의 제자가 된다면 기꺼이 이 일의 책임을 묻지 않겠노라, 하고 말하였다.

붓을 잡은 경험도 없는 일곱 살 어린아이가 거장의 그림을 완성하고, 또 그 제자가 된 사건.

이 사건 이후, 한국 미술계와 언론은 미래의 미술계를 이끌 신동을 찾았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 신동의 역사를 시작한 ‘이무기의 귀천’은 국립 현대 한국화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으며 미술관 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민그린은 홍경복의 화실을 찾는 것도 그만두고 등교 거부자가 되어 버렸다.

‘등교 거부자가 된 건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사람이 많은 것도 거북해하는 건 몰랐어.’

민그린이 등교 거부자가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긴 했다.

그녀는 게임 내 비중도 적었고 나오더라도 송대석과 2인조로 학교 밖에서 활약했기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 흑막의 손에 당하고 말았는데······ 학교에 나온다는 묘사는 없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까 아예 안 온 건 아닌가 보네.’

다행히 교무실 근처 복도인 데다 방과 후가 되고 시간이 꽤 지나서 한산하다.

“야, 너 1학년 0반이지.”

“억!”

나를 지나쳐 가던 민그린이 화들짝 놀랐다.

민그린은 손등까지 덮은 후드 점퍼 옷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이쪽을 봤다.

“너, 너 중간고사 때 0반 교실에 있었지.”

“어, 1학년 0반 부반장 조의신이야. 잘 부탁해.”

민그린은 순식간에 교실을 탈주했는데도 안에 있던 학생들 얼굴을 기억하나 보다.

한국 미술계를 들었다 놓은 신동다운 눈썰미다.

“그래, 수고해. 안녕. 난 가 볼게!”

민그린은 마치 랩 하듯이 대사를 던지고 등을 돌렸다.

그녀는 손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발기술을 갈고닦았다.

그녀가 마음먹고 도망치면 광림이라도 쓰지 않는 한 붙잡을 수 없다.

추가 시험 기간이 지나면 또 언제 만날지 모른다.

일단 불러 세웠다.

“잠깐.”

“······아 또 왜!”

“등교 좀 해 줘. 우리 반 출석률 너무 낮아.”

“······안 돼. 사람 너무 많아!”

민그린은 1초의 주저도 없이 거절했다.

그녀가 와도 여덟 명밖에 안 되는데 그래도 안 되나 보다.

‘민그린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건 소꿉친구인 송대석과 그림. 두 가지뿐이야.’

민그린은 홍경복에게 그림을 배우는 걸 중단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걸 그만두지는 않았다.

민그린은 자신의 방에 처박혀 혼자 지겹게 그리고, 또 그리는 중이다.

‘그 작품들이 빛을 못 보고 있는 게 아까운데.’

민그린과 송대석은 중학교는 검정고시로 교육 과정을 끝냈다.

두 집안은 어떻게든 그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고등학교에 가지 않으면 그림이고 뭐고 없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쓸데없이 우수했었지.’

송대석과 민그린은 은광고가 자율 등교라는 정보를 입수해 은광고에 응시했다.

그 결과 둘은 우수한 성적으로 한국 최고 명문고에 합격해 버렸다.

그리고 현재, 유유자적 등교 거부자 라이프를 보내게 되어 양가의 부모들의 목 뒤를 잡게 만들고 있다.

‘잠깐이나마 민그린을 등교하게 만든 함근형이 대단한 것 같은데. 함근형은 송만석과 아는 사이인 것 같으니 뭔가 있는 건가.’

어쨌든 지금은 송대석이라는 카드를 쓸 수는 없다.

그러면 남은 하나, 그림을 이용하면 된다.

“앞으로 등교하면 이거 줄게.”

나는 아이템창에서 카드를 한 장 꺼냈다.

‘인어의 숨결이 담긴 물방울’

환몽 경매에 나왔던 SR---급 아이템이었다.

‘그냥 사용하면 가벼운 축복 효과가 있는 아이템이지만. 이 아이템을 도료로 사용하거나 물감에 섞으면 색이 바래지 않는다는 설명이 있었어.’

민그린이 원한다면야 더 좋은 도료와 아이템을 갖다 바칠 이들이 차고 넘칠 거다.

그러나 현재, 그녀는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방구석 폐인으로 사는 중이다.

지금은 1학년 1학기라 이계 공략이 허용되지도 않고 애초에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극히 혐오하고 있으니 민그린이 돈이나 아이템을 구할 구석은 없다.

“아, 안 돼. ······어쨌든 안 돼.”

민그린은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이 아이템 하나만으론 그녀의 등교 거부를 완벽하게 끝내는 건 어렵나 보다.

아쉽지만 조건을 크게 낮춰 보자.

“그러면 스승의 날에만이라도 등교해 줘.”

하루만이라도 출석률을 50%로 만들어 함근형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그냥 등교한다는 조건에서 고작 하루로 줄어들었으니, 흔들릴 거야.’

예상대로 민그린은 크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으······ 어쩌지······ 1학년 0반 애들 너무 많은데.”

민그린의 ‘많다’라는 기준이 이상하다.

바로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으니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홀로그램에 내 디바이스 코드를 입력해 민그린에게 보여 줬다.

“스승의 날이 되기 전까지 답변해 줘. 자, 내 디바이스 코드.”

“어, 음, 알았어.”

“그럼 스승의 날에 볼 수 있으면 그때 보자.”

고민에 빠진 민그린을 두고 돌아섰다.

그녀라면 한 번 홀로그램을 본 것만으로도 코드를 완벽하게 외웠을 거다.

*    *    *

저녁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내 기숙사 방.

어린이날 잠실 야구장 사건이 무사히 끝나고 내게는 큰 숙제가 남았다.

홀로그램에 타이핑한 글을 몇 번이나 지웠다가 재입력했다가를 반복하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랑 한 약속이니까 지켜야지.’

아무리 낯이 간지럽더라도 할 건 해야 했다.

아주 짧은 문구를 정하는 데 한참 걸리고 말았다.

‘그러면 초대장을 써 볼까.’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대상 캐릭터의 광림, ‘홍룡소환’을 사용합니다.〉

시스템 음이 들리고, 곧 아공간의 틈 사이에서 홍룡이 나타났다.

파아아―.

하얀 종이 위.

홍룡의 불꽃으로 섬세하게 그을음을 남겨 한 글자씩 새겨 갔다.

[폐쇄 구역, 이전에 만난 교실로 부활동이 끝나면 와.

앞으로 적벽괴도라 부르지 말고.]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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