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체스 플레이어 (5)
영국계 한국인 플레이어 권제인.
세계 10대 길드이자, 영국 4대 길드 중 하나인 영원의 호수 팀 마스터이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 세계를 가진 예술가.
그런 권제인이 다소 독특한 발언을 해도 ‘푸른 바이올리니스트답다!’, ‘역시 권제인은 보통 사람과 다르구나!’라며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권제인이 호연관에서 내한 공연을 한 날.
우리 반 아이들은 놀라기만 할 뿐, 권제인의 말과 행동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게 맹점이었다.
휘이이―!
바람 소리가 조금 커져 하늘을 올려다보니, 착륙 중인 에어 스테이지형 리무진이 보였다.
엔진음 없이 멈춘 리무진 안에서 재러드 리가 나왔다.
“안녕, 의신 군. 타렴.”
“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재러드 리는 마치 더빙을 보는 듯한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재러드 리는 석촌호수 앞에서 만났을 때보다 훨씬 초췌해져 있었다.
금발에 흐르던 윤기도 사라지고, 뺨은 홀쭉하게 들어가 있었다.
“학생을 이 늦은 시각에 불러내서 미안해. 제인이가 오고 싶어 했지만,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재러드 리는 면목 없어 하는 얼굴로 말했다.
처음에는 권제인이 은광고로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었다.
정문에서 권제인을 기다리던 중에 다시 전화가 걸려 오더니, 권제인 말하길.
[팀 메이트들이 방해해. 미안해. 의신이가 와 줘. 마중을 보낼게.]
정황상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이 갔기에 알았다고 했다.
서브 팀 마스터가 마중을 나올 줄은 몰랐지만.
“팀 닥터와 다른 팀 메이트들이 말리는데도 제인이가 고집을 부려서······. 말리느라 힘들었어. 내가 의신 군을 직접 데려온다는 조건을 대니까 겨우 허락해 준 거야.”
소음 없이 조용히 목적지로 향하는 차 안.
재러드 리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이게 다 나 때문이야······.”
* *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 서서울호수.
그 근방에 위치한 영원의 호수 팀 빌딩.
외관상 호수의 정경과 어우러지는 목조 건물의 형태를 한 영원의 호수 팀 빌딩 안은, 이계 금속으로 떡칠한 요새였다.
‘영원의 호수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당연한가.’
영원의 호수는 진족의 습격으로 영국 협회가 괴멸 상태로 몰렸던 걸 봤고, 맨체스터 대이계 공략으로 대다수의 팀 메이트를 잃었다.
안전에 민감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건물 내부를 연결하는 보안 포털을 세 개 통과했을 때, 디바이스로 계속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재러드 리가 말을 걸었다.
“의신 군, 저기······ 부탁이 있는데.”
“말씀하세요.”
“제인이가 음식을 먹도록 권해 주지 않을래? 요새 통 안 먹어서. 우수한 플레이어라 버티고 있지만, 언제 쓰러질지 몰라. 회복 아이템 카드도 안 쓰려고 하고······!”
권제인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다.
“네, 그럴게요.”
“그래! 고맙다, 의신 군!”
재러드 리는 희희낙락한 얼굴로 메시지를 잔뜩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마 ‘가져올 수 있는 음식은 다 가져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나 보다.
재러드 리의 안내를 받아 네 번째 포털을 통과하니 푸른 바이올린이 양각된 문이 보였다.
이계 금속으로 된 문 앞엔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영원의 호수 팀원들이 보였다.
“이 학생이 그 조의신 학생?”
“스태프로 왔던 아이 맞네. 오랜만이다.”
“제발 제인이가 뭐 좀 먹게 유도해 줘. 부탁한다!”
호연관에 스태프로 왔던 이들도 있었다.
문에 가장 가까이 있던 인물이 문을 열어 주며 쑥 들어간 눈으로 웃었다.
“권제인 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영원의 호수 팀원은 사전에 언질을 받은 건지, 아무도 문 안으로 따라오지 않았다.
‘푸른 바이올리니스트의 방답다.’
푸른 이계 금속을 프레임으로 한 액자 안, 권제인의 역대 공연 포스터가 가득했다.
벽의 한 면은 아날로그한 인쇄 포스터, 다른 한 면은 권제인의 연주 영상이 전개되고 있는 홀로그램이 있었다.
포스터와 홀로그램 밑에 놓인 진열대에는 트로피와 상장들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연습도, 작곡도 여기에서 하나 보네.’
방 곳곳엔 수십 종류의 보면대와 그 위에 놓인 악보, 깃펜이 있었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높은 테이블 위에는 잉크병과 빈 오선지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이곳에서는, 그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울리는 중이었다.
끼이이익― 끽!
귀를 파괴할 기세로 소음이 쏟아졌다.
자칫하면 에너미가 내지르는 단말마로 들릴 끔찍한 소리가 이 방 가장 안쪽에서 울리고 있었다.
‘권제인이 낸 소리인가!’
소리의 근원지로 다가가니 권제인이 바이올린 연주인지, 파괴인지 모를 행위를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안녕, 의신아.”
권제인은 핏기가 전혀 없는 파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통화했을 때와 다름없는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저 얼굴로 저리 말하니 허세로 보였다.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해. 앉자.”
깃털 패브릭 소파에 앉으니, 테이블 다리가 부러지도록 상이 차려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푸딩, 젤리, 죽, 수프······.
자판기 종이컵 크기 정도 되는 유리그릇에 담긴 음식들은 전부 소화하기 편한 것들밖에 없었다.
테이블에 공간이 없어, 카트째로 가져다 둔 마실 거리도 전부 카페인리스 음료였다.
“먹어도 되나요?”
“물론이야.”
“선배님도 드세요.”
타르트 체리가 들어간 푸딩과 산딸기 주스를 내 앞으로 가져오며 말했다.
“나는, 좀.”
“혼자 먹기에는 마음이 불편해서요.”
문밖에서 노심초사하고 있을 재러드 리를 비롯한 영원의 호수 팀원을 생각하며 말했다.
권제인은 주저하다 블루베리 젤리 그릇을 택했다.
하지만 스푼은 집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권제인의 식사 건은 내 힘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할 말이 있다고 했지, 말해 봐.”
“이레나와 선배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덜컥.
권제인이 들고 있던 젤리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푸른 융단이 깔린 덕에 젤리 그릇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권제인은 힘이 빠진 자기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기만 했다.
“계속 얘기해도 될까요?”
권제인에게 간접적으로 허락을 구하기로 했다.
엄밀히 말해 나는 완전히 남, 외부인이니까.
“그래. 넌 그 아이와 반 친구고, 한 번 구하기도 했잖니.”
권제인이 푸른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권제인은 내가 이레나를 구한 것까지 알고 있었나 보다.
권제인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입을 열기로 했다.
“처음 호연관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이상했어요. 권제인 선배님도, 영원의 호수 팀원들도 어색하게 행동했으니까요.”
“어색해? 어디가?”
“첫 번째로 마음에 걸린 건 이름이에요.”
호연관 공연 당일.
스태프로 일하던 우리 반 네 명은 모두 목에 이름이 크게 쓰인 스태프 명찰을 걸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레나’라는 이름은 아주 희귀해요.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을 확인하면 ‘레나’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300명이 채 넘지 않아요.”
“그게 문제가 되니?”
“레나는 권제인 선배님 어머님의 성함이자, 앙코르로 연주할 예정이었던 곡, ‘for LENA’에 들어가는 이름이죠. 그러니 한국에선 희귀한 이름을 쓰는 그 아이를 보면, 한 번쯤 신기해하면서 얘기를 꺼내는 게 평범한 반응일 거예요. 하지만 그날 약속했던 것처럼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영원의 호수 팀 멤버들은 그날 우리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하며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뒤풀이도 같이 가자고 권해 올 정도로.
그런데도 이레나의 이름만큼은 화제로 삼지 않았다.
같은 날에 만난 청호의 제자들이 내 스태프 명찰에 적힌 ‘조의신’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바로 반응해 온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선배님도 이레나의 이름 그 자체보다는 이레나가 스태프로 있다는 사실에 놀라신 것 같았어요. 아마 이레나가 와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 들었지만, 어떻게 와 있는지는 제대로 듣지 못한 거겠죠.”
내 추리가 틀리지 않은 듯, 권제인은 가만히 나를 내려다봤다.
“두 번째로 마음에 걸린 건 이능 바이올린이에요.”
“그 아이에게 이능 바이올린을 선물한 게 마음에 걸렸니? 난 백 개에 가까운 이능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쯤 선물해도 이상하진 않을 텐데.”
“네, 권제인 선배님이 수많은 이능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는 게 단서가 됐어요.”
“무슨 말이니.”
나는 벽면에 걸린 수많은 포스터와 영상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선배님의 그 수많은 이능 바이올린은 전부 푸른색이니까요. 선배님은 푸른 바이올린만을 켜는 것으로 유명하죠.”
“아······.”
“이레나에게 선물한 이능 바이올린은 백금색이었잖아요? 이레나가 바이올린에 관심을 보이면 선물해 주려고 사전에 준비한 거겠죠. 그렇지 않으면 공연 직전에 왜 선배님이 백금색 이능 바이올린을 갖고 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워요.”
문새론이 준비한 천 페이지의 자료.
그곳에 나온 권제인의 보유 이능 바이올린의 정보를 전부 체크했을 때, 푸른색 이외의 바이올린은 보이지 않았다.
트레몬트 블루, 로열 블루, 퀸 블루, 빙 블루, 오리엔탈 블루 등등.
다양한 푸른색의 바이올린이 있었지만, 어디에도 백금색은 없었다.
권제인은 ‘푸른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명답게 푸른 몸체의 바이올린에 집착했고, 이 고집은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
권제인은 반박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재러드 리.”
“재러드?”
“팀 서브 마스터인 재러드 리 씨가 잡일꾼인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나러 와서 직접 지시를 내리고 도움을 준 게 이상했어요.”
“너희가 내 후배라서 그랬을지도 모르잖아.”
“설령 그렇다 해도, 이상한 건 더 있어요.”
나는 문새론이 보내 준 자료 중, 호연관 스태프 명단을 홀로그램으로 전개했다.
그중 마지막 페이지, 나, 사월세음, 이레나, 김유리의 이름과 ‘소속: 은광고’라는 비고가 덧붙여져 있는 게 보였다.
“이건 영원의 호수 측에 간 스태프 명단과 동일한 자료예요.”
“이게 문제가 되니?”
“네.”
“어디가?”
“재러드 리 씨는 우리의 나이를 알고 있었어요. 스태프 명단 어디에도 나이나 학년은 쓰여 있지 않은데도요.”
무명의 초신성이 은광고 신입생인 건 알려져 있으니, 내 나이를 보고 추측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스태프 명단에는 이명도 나와 있지 않았다.
내 본명과 이명을 바로 연관 짓는 사람들은 학교 관계자이거나, 사전에 누군가의 소개를 받았거나, 나를 조사한 이들뿐이다.
‘급하게 일정을 잡아 귀국한 이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긴 어려워.’
재러드 리는 그날 이렇게 말했다.
―게다가 아직 이 아이들은 어리잖아. 열일곱밖에 안 됐다고.
“이름만 보고 사전에 조사할 가능성도 생각해 봤지만, 시간이 촉박해요. 아마 이레나의 나이는 확실히 알고 있으니 재러드 리 씨가 그렇게 말한 거겠죠.”
스태프 명단이 확정된 건 전날이었다.
황지호가 마지막까지 스태프를 하네, 마네 하던 상황이었으니까.
“저는 이런 이유로 영원의 호수의 팀원들이, 특히 권제인 선배님이 이레나를 전부터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나는 레나를 알고 있었어.”
여기서부터는 추측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재러드 리 씨는 얼마 전, 환몽 게이트에 연루되어 영구 제명당한 친척 플레이어에게 10년간 300억 이상을 송금한 게 드러나 문제가 되었죠.”
권제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송금된 자금의 출처는 선배님의 사재. 하지만 선배님은 그 플레이어와 어떤 교류도 없었고, 환몽 게이트로 이득을 본 것도 없죠.”
권제인은 재러드 리를 통해서 누군가를 원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저는 선배님이 순수하게 누군가를 금전적으로 원조하려 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300억은 적은 돈이 아니다.
재러드 리가 수고를 들여 가며, 그만한 돈을 들여 원조할 상대는 가족이거나 가족만큼 소중한 상대일 거다.
‘권제인은 맨체스터 대이계 공략에서 어머니와 오빠를 잃었다고 했지만, 그 외에 아직 살아남은 가족이 있었던 게 아닐까.’
권제인은 영국계 한국인이다.
아버지는 ‘권’이라는 성을 쓰는 한국인.
어머니는 ‘Lena’라는 이름을 가진 영국인.
그리고 현대의 영국에서 흔하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이름을 손녀에게 붙이는 경우가 있다.
25년 만에 영국 왕실에서 태어난 공주도 증조할머니와 할머니로부터 따온 이름을 쓰고 있었다.
마침 권제인이 백금색의 이능 바이올린을 선물한 상대의 이름은 ‘이레나’다.
이게 우연일까.
‘거기에 재러드 리가 송금한 대상과 마찬가지로, 이레나의 부모도 환몽 게이트에 연루되고 영구 제명 플레이어가 되었어. 그들은 동일 인물이 아닐까?’
재러드 리와 같은 성인 ‘이’.
권제인의 어머니와 같은 이름인 ‘레나’.
아직 추측의 영역에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레나의 진짜 이름은, ‘권레나’가 아닌가요?”
권제인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고요히 바라봤다.
“맞아. 레나는 나한테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야.”
권제인의 푸른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져 내렸다.
“레나는 내 전사한 오빠의 딸······. 조카야.”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