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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25화 (12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25)

강원도 홍천군과 춘천시, 두 지역에 걸쳐 있는 가리산.

소양강의 수원이자 홍천강의 발원지인 이 산.

이 산 깊은 곳에 나무 그늘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 오두막 한 채가 있었다.

이 외진 곳을 찾아온 이가 있었다.

은광고 1학년 0반 담임, 창천명궁 함근형.

그는 복잡한 산길 속에서 한 번도 헤매지 않고 바로 오두막 앞까지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어르신, 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먹 냄새가 퍼지고,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자를 받아 서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었지만, 어느 사건을 계기로 은거에 들어간 한국화의 거장 홍경복 화백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근형이가 아닌가. 이렇게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허허허.”

“마침 출장이 길어져서 오랜만에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또 그 스키장 건인가? 우리 근형이가 고생이 많구먼. 그렇다고 이런 산골짜기까지 찾아와.”

말은 그렇지만 홍경복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그는 가장 볕이 잘 드는 자리를 함근형에게 내주며 차가버섯을 우려낸 차를 권했다.

차를 전부 마실 때까지 안부를 묻던 홍경복은 말을 잠시 멈추다, 조심스레 물었다.

“……그린이는 잘 지내고?”

“네, 최근에는 매일 등교하고 있습니다.”

“그래? 잘됐구나. 정말 잘됐어!”

홍경복이 밝게 웃음을 터뜨렸다.

“밥은 잘 먹고 다니지? 친구는 많이 사귀고 있고?”

“네. 반 아이들이 잘 챙겨 주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함근형은 반장 김유리에게서 디바이스로 전송받은 데이터를 인쇄해 온 사진들을 홍경복에게 내밀었다.

스승의 날, 직접 그린 카네이션 그림을 든 민그린이 가운데에 찍힌 단체 사진.

조례 때 교실 안에서 반 아이들과 다 같이 어울려 간식을 먹는 사진.

예전에 쓰지 않던 안경을 쓴 그녀.

모든 사진에서 민그린은 어색하게나마 웃고 있었다.

“우리 그린이 표정이 아주 좋아졌어……. 친구도 많이 사귀었구나…….”

사진을 보는 홍경복 화백의 주름진 눈에 눈물이 그득했다.

그를 보며 함근형은 자신의 제자와 후배를 떠올렸다.

‘민그린은 제인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플레이어로서도 예술가로서도 우수했지만…… 제인이와 달리 심한 일을 당했어.’

명가 출신인 권제인과 달리, 민그린은 평범한 집 출신이었다.

권제인처럼 음악을 접하기 쉬운 환경도 아니었는데, 태어나서 처음 붓질을 하는 걸 보고 재능을 꽃피운 천재인 민그린.

그 극적인 환경 탓에 그녀는 더 큰 시기심을 샀다.

그녀의 배경이 지나치게 평범한 탓에 만만해 보인 것도 그 이유였다.

그 결과, 그녀는 오랜 기간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일찍 알아챘으면 좋았을 텐데.’

민그린을 아끼는 홍경복이나 송만석 같은 이들이 그녀가 당한 일을 알았을 때.

이미 그녀의 마음에는 병이 들어 있었다.

미술계와 플레이어계의 두 거장이 적극적으로 나서 민그린을 괴롭힌 주모자들은 전부 엄벌을 받았지만, 그녀의 마음의 병을 낫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민그린은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어르신 건강부터 생각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린이가 가장 힘들어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홍경복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예끼! 근형이 자네보다 내가 오래 살 거라고 몇 번을 말했나. 허허, 내가 못 해도 백 오십까지는 살 거야. 성 형하고 한 약속인데, 암.”

건강이나 나이 얘기가 나오면 홍경복은 바로 기운을 차렸다.

함근형의 의도대로 활기를 되찾은 홍경복 화백.

그는 벽에 걸린 단체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작 나한테 그리 단단히 약속을 시킨 성 형은 ‘어둠의 시대’가 끝나기 무섭게 그리 가다니. 참…….”

사진에는 젊은 홍경복과 예전에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장을 지냈던 인물이 찍혀 있었다.

*    *    *

평화로웠던 1학년 0반에 용이 등장한 후.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안녕하세요. 용제건 선생님이 임시 담임을 맡으시는 거군요!”

“안녕하세요.”

스테일메이트의 초보자 체스 강습에 참여 중인 사월세음과 한이.

두 사람은 용제건과 친분이 있는지 밝게 인사했다.

“어, 그때 야구장에서 본 사람…… 아니, 용족이랬지, 하여튼 그때 본 진족이네.”

“아, 용쌤이 잠실 야구장 사건 때 최대 공헌자셨지……!”

“체스 대회에서 오프닝 쇼하셨던 그분 맞지? 가까이에서 뵙는 건 처음이야.”

그럭저럭 관심을 보이는 맹효돈, 김유리, 권레나.

“진족이 당당하게 교사를 하는 건 이상한 일 같은데. 왜 다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거야? ……집에 가고 싶다.”

대놓고 낯선 용을 경계하는 민그린.

근처에 뻔뻔하게 학생 노릇을 하는 진족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면 집으로 탈주해 버릴 것 같다.

“이 녀석이 임시 담임인가. 뭐, 부려 먹을 일이 있으면 편하겠군.”

한편, 눈을 빛내며 이 이상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황지호.

마지막으로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함근형 선생님이 안 계신 동안이지만, 잘 부탁해.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고.”

용제건은 전자 칠판에 디바이스 코드를 띄우는 것으로 조례를 짧게 마쳤다.

“자, 조례는 여기에서 끝낼게.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제5체육관으로 집합해.”

하필 수업이 플레이어의 전투 연습1이었다.

용제건이 주도하는 실기 수업이라니.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1학년 전용 시뮬레이터 가동 전문 제5체육관.

처음으로 반 아이들과 팀플레이를 한 뜻 깊은 장소다.

‘좋지 않은 예감이 맞았네.’

오늘의 주제는 미궁 공략의 기본.

공략 난이도가 높은 미궁 타입의 이계를 가정한 훈련이다.

미궁 타입, 메이즈 형 이계의 경우 기믹에 따라 분단될 때도 있고, 처음부터 입구가 여러 개로 나뉘는 때도 있었다.

그때, 이계 공략 파티는 이계 내의 지형을 파악해 최대한 빨리 합류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정한다.

오늘 우리 반이 연습할 내용은 ‘입구가 나뉜 미궁 내에서의 합류’다.

“미궁 시뮬레이션의 개요는 디바이스로 보내 놨어. 두 명씩, 네 조로 나뉘어서 시작할 거야. 조별로 모여. 상담할 시간은 30분 줄게.”

그 말과 함께 용제건이 화면 두 개를 띄웠다.

하나는 제한 시간이 표시된 타이머.

다른 하나는 조 편성이 표시된 홀로그램이었다.

홀로그램에 뜬 조 편성을 보니 머리가 아팠다.

‘용제건의 악의가 느껴지는 조 편성인데.’

[A조. 조의신, 황지호.]

“하하하하, 재밌겠군!”

황지호는 벌써 들떠 있었다.

용제건이 무슨 짓을 해 올지 기대되는 모양이다.

“황지호가 또 기분 나쁘게 웃고 있어.”

“음, 우린 정 반대편 코스라 다행이다!”

B조에 배치된 한이, 권레나.

황지호가 처웃는 걸 보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효돈아, 우리는 A조가 가는 루트는 피해서 가죠!”

“……어? 어, 그러자.”

C조인 사월세음, 맹효돈.

맹효돈은, 처웃으며 몸을 푸는 황지호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린아, 의신이랑 지호네 루트는 피해서 합류 포인트로 이동하자.”

“나, 난 잘 모르니까 유리한테 맡길게.”

마지막 D조. 김유리, 민그린.

민그린은 용제건의 시선을 피해 김유리 뒤에 숨어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흠, 개요를 보니 우리 A쪽의 난이도가 노골적으로 이상하군. 이 정도가 아니면 할 맛이 안 나긴 하지만.”

미궁의 개요를 읽던 황지호가 말했다.

황지호의 말대로 A조는 다른 조에 비해 월등히 난이도가 높았다.

배치된 에너미의 등급도 두 단계 이상 높았고, 함정도 많은 데다 길 자체도 길었다.

황지호와 개요를 보며 상의를 하다 보니 금방 30분이 지나갔다.

―3초, 2초, 1초.

0 .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용제건이 박수를 한 번 쳤다.

“개요에 나와 있는 내용이지만, 한 번 더 반복할게. 소모품 아이템은 사용 금지. 장비 아이템은 학교에서 지급한 것을 사용할 것. 이 두 가지만 지키면 뭘 해도 상관없어.”

준비를 마친 우리를 향해 용제건이 말했다.

‘뭘 해도 상관없어’라는 말을 할 때, 그가 나와 황지호 쪽을 본 건 기분 탓이 아닐 거다.

“자, 그러면 출발!”

우웅―

용제건이 시뮬레이션을 가동하자 제5체육관을 뒤덮은 검은색의 이능 금속이 다양한 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눈앞에 홀로그램이 하나 떠올랐다.

[이계 공략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준비되셨습니까? (Y/N)]

Y버튼을 누르며 용제건과 황지호의 장난질에 장단을 맞출 각오를 굳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궁 시뮬레이션은 미쳐 날뛰는 황지호에 의해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하하하하!”

“야, 이거 학교 기록에 남아도 괜찮아?”

“그 정도로 힘을 쓴 건 아닌데. 문제가 되면 기록을 조작하지, 뭐.”

황지호는 학교에서 지급한 R급 ‘초보 봉술사의 철봉’으로 SR급 덫을 파괴하고, SR+++급 마비 가스층을 분쇄하는 위엄을 보였다.

용제건의 악의가 넘치는 함정과 에너미들이 순삭 되어 갔다.

‘봉술로 가스층을 산개해 버리다니. 저게 가능한 건가…….’

이래서야 기껏 꺼내 둔 R급 화(火)속성 기본 마법 무기 ‘초보 마법사의 화염의 롯드’를 한 번도 못 써 보고 클리어하게 될 것 같다.

“넌 태호권보다 봉술을 잘하는 것 같은데.”

“태호권은 ‘그 녀석’이 ‘넌 나한테 평생 태호권으로 못 이길 거다’라고 도발해서 대충 배운 거다. 애초에 난 물리 공격은 그리 특기가 아니야. 봉술은 그럭저럭하지만.”

그 녀석?

‘청호를 말하는 건가.’

태호권의 창시자인 청호.

황지호는 청호에게 도발당해서 태호권을 배운 모양이다.

그런데 물리 공격이 특기가 아닌 놈이 이렇게 싸우나.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이 넘쳤지만,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그래서, ‘그 녀석’한테는 이겼어?”

“아니.”

그렇게 대답한 황지호가 이상한 얼굴을 했다.

자존심 상해 보이는데, 옛 친우에 대한 그리움도 섞인 묘한 표정이었다.

“……그 녀석과의 재대련을 기다리면서 수련은 하고 있다.”

그 이후로도 날뛴 황지호에 의해 5분 만에 합류 포인트에 도달한 A조.

조금 기다리다 보니 아이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뭐야, 우리가 2등이네. 너네 루트는 난이도 개 높았는데 어떻게 된 거야.”

“굉장해요! 다음에는 지지 않을 거예요!”

2등은 C조, 맹효돈과 사월세음.

“……한이야, 발목을 잡아서 미안해.”

“아니야. 네 서포트가 없었으면 아직도 미궁 속일 거야.”

3등은 B조, 한이와 권레나.

“미안해……. 처음에 에너미가 보이자마자 나도 모르게 도망쳤어. 나 때문에 너무 헤맸지.”

“하하, 나중엔 그린이가 나보다 에너미를 잘 잡아서 더 공헌 포인트를 더 모았잖아! 나야말로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마지막으로 도착한 건 D조, 민그린과 김유리였다.

두 사람이 합류 포인트에 도착하자 홀로그램이 하나 떠올랐다.

[시뮬레이션 클리어! 클리어 타임 16분 52초.]

“클리어하면 이런 화면이 뜨는구나……!”

“오, 나쁘지 않네.”

“다들 고생했어!”

곧 눈앞의 풍경이 바뀌고,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는 용제건이 나타났다.

“수고했어. 그러면 총평부터 해 볼까.”

첫 수업만 한 성적은 아니지만 은광고에서도 중간은 갈 만한 수준의 성과를 낸 1학년 0반.

나와 황지호가 들어간 A조는 아주 좋은 점수를 받긴 했지만.

이건 황지호라는 개사기 캐릭터가 쓸데없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카운트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유희계 용족이 담당한 첫 수업이 마무리되었다.

*    *    *

방과 후.

기숙사 방에 도착해 디바이스 메시지창을 확인해 보니, 최상단에 용제건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용제건] 네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힘을 숨기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조금 장난을 쳐 봤어.

[용제건] 황호 이사장 씨가 그 모습을 할 때는 어느 정도로 힘을 쓸지 알아두고 싶었고.

그걸 알아보려고 이 짓을 한 건가.

저 말을 들으니 의문이 생겼다.

[나] 황지호가 저한테 정체를 밝힌 걸 알고 계셨나요?

[용제건] 역시, 황호 이사장 씨가 너한테 정체를 밝혔구나.

당했다.

용제건이 이런 대화 기술을 쓰는 건 알았지만, 당하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이미 용제건은 전부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용제건] 그런데, 황호 이사장 씨한테 네 광림은 공개하지 않은 것 같은데. ^^

저 ‘^^’라는 이모티콘에 용제건 특유의 황홀해하는 표정이 겹쳐져 떠올랐다.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아 봤자 득이 될 게 없을 것 같아 창을 꺼 버렸다.

다음 메시지는 성시완으로부터 왔다.

[성시완] 지금 국언이 형이 괴담 조사를 두 개 맡겼잖아. 비밀 결사 건은 내가 맡아도 될까?

[성시완] 지익회 후배 중에 괴담 좋아하는 애가 있는데, 걔가 학생회랑 선도부 괴담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ㅎㅎ

성시완의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성시완] 요즘 2학년, 3학년 0반이 뭔가 하는 거 같은데, 천익산은 가끔 전파가 안 터지기도 하니까…… 천익산에 오래 있기 어려운 것도 있어.

[성시완] 천익산 귀문 괴담은 맡길게!

0반 선배 놈들은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아니, 무슨 짓을 하려는 중이 아니라, 이미 무슨 짓을 하는 중일 거다.

학생 자치 기구는 사고에 대비해야 할 게 많을 테니 어쩔 수 없다.

[나] 네. 저도 천익산 쪽을 조사하고 싶었어요.

답장을 보낸 후, 아이템 창을 확인했다.

‘마침 적절한 아이템도 있어.’

‘귀문(鬼門)이 보이는 렌즈’.

환몽 경매에서 털었던 아이템 중 하나였다.

‘지금은 달이 떠 있긴 하지만, 달이 없을 때와 비교할 때 대조군으로 둘 겸 확인해 두는 게 좋겠지.’

그렇게 나는 천익산으로 향했다.

야심한 시각.

천익산으로 향하는 산책로에는 아무도 없었다.

천익산 내의 등산로에도 아무도 없어야 정상일 텐데.

누군가 있었다.

‘저자는…….’

예전에 봤을 때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바로 감이 왔다.

워낙 깊은 인상을 준 인물인 탓이다.

‘3학년 0반 반장이잖아!’

스승의 날 이후, 정문 시계탑 앞에서 상거지 꼴을 하고 항복 선언을 하던 3학년 0반 반장.

그가 천익산 등산로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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