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30화 (130/925)

31. 괴담과 그림과 단서 (6)

[성시완] 오늘 밤, 제보해 준 후배와 가 볼 생각이야. ㅎㅎㅎ

[성시완] 의신이 너도 같이 갈래?

성시완은 지금 비밀 통로의 존재를 확인하러 갈 생각인가 보다.

[나] 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성시완의 답변을 확인한 나는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    *    *

중앙 구역.

선도부회관 앞.

성시완과 처음 보는 인물이 하나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

내가 인사를 하자 상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표정이 별로네.’

어색해지려는 분위기 속, 성시완이 끼어들었다.

“의신이랑 이담이는 처음 만나지? 얘는 계이담이야. 지익회 2학년 후배고.”

성시완이 전에 말한 괴담 좋아한다는 지익회 후배가 이 ‘계이담’이라는 놈인가 보다.

말 없는 이미지와 어딘가 맞지 않는데.

성시완이 계이담에게 내 소개까지 마친 후에도,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하하! 이담이가 낯을 많이 가려.”

이 세계에서 이 정도로 말을 안 하는 놈은 처음 봤다.

‘말수가 적은 게 낫지.’

우리나라에서 희귀한 성에 속하는 계씨.

군 선임 중에 말 많고 짜증 나게 굴던 놈도 그 성씨였다.

전역 후에도 우연히 만나 귀찮게 엮일 뻔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 ‘계’새끼는 말이 많았다.

같은 성씨지만 반대되는 성정을 가지고 있다면 환영이다.

“조의신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

계이담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고개만 까닥였다.

우리가 인사를 마치자 성시완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 선도부회관으로 들어가자.”

“이 시간에 선도부회관에 들어가려면 출입 허가 코드가 필요하지 않나요?”

“이담이 학생증으로 찍고 들어갈 거니까 괜찮아.”

계이담은 지익회 후배라고 하지 않았나?

설마 지익회와 선도부에서 동시에 활동 중인 건가.

“이담이는 1학년 때는 선도부였어. 2학년 때부터 지익회로 옮겼는데, 선도부 측에서 퇴부 처리를 안 해 둔 것 같아.”

오혜지가 이끌고, 천동하와 마진승이 서포트하는 선도부에서 일을 허술하게 처리할 리가 없다.

계이담이 언제든 선도부에 돌아와도 좋다는 의미로 그렇게 해 둔 거겠지.

나쁜 일로 부 활동을 옮긴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럼 들어가자!”

성시완을 따라 선도부회관의 로비에 들어가니,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거대한 휘장이었다.

은광고 교표 옆에 ‘선도’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진 휘장.

로비에 별다른 장식품은 없어서 그런지 더 눈에 띄었다.

‘게임 속에서 본 선도부 휘장은 찢긴 상태로 불에 타고 있었는데.’

온전한 모습은 이랬구나.

“이담아, 안내해 줘.”

성시완의 말에 계이담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계단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가며 성시완이 여기에 온 경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줬다.

“사실 학생회와 선도부의 ‘비밀’ 결사라면, 현재 학생회나 선도부에서 활동 중인 아이들은 비밀을 지킬 것 같아서 고민이 많았어. 마침 후배 중에 선도부를 나온 이담이가 있어서 다행이야.”

“뭐라고 물어보셨나요?”

“하하, 사실 뭐라고 물어보면 좋을지 몰라서 괴담에 대해서 들려줬어. 그랬더니 혼자 조사해서 여길 찾아 주더라고.”

계이담은 의외로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난가 보다.

“학생회와 선도부 사이에 어떤 모임이 있는 건 확실해. 음, 일단 정확한 이름을 모르니까 임시로 ‘비밀 결사’라고 부를까. 비밀 결사는 1학년이 끝날 때쯤에 신입 부원을 받아서 활동하나 봐.”

그런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나.

‘플마고 콘크리트층 붕괴 사건 때, 학생회와 선도부 소속 3학년생은 전부 사망하고, 2학년생도 몇 명을 빼고 전멸했어. 그러니 비밀 결사가 유지될 수 없었겠지…….’

주수혁과 안다인이 비밀 결사 같은 모임에 가입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성시완의 말에서 단서를 하나씩 모아 추리해 나갈 때.

그가 말을 멈추고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 여기가 끝이야?”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던 선도부회관 지하.

계이담은 막다른 골목에 멈춰 섰다.

“…….”

아무것도 없는 벽.

성시완이 앞으로 나서 벽을 살펴보고, 두드려 보기도 했지만…….

“뭔가 더 단서가 있어야 하나……. 어떻게 하지.”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여기에 국민망겜의 고인물이 있었으니까.

나는 플마고에 등장하는 미로들의 주요 기믹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능파를 방출해 보죠.”

“응?”

탐색 중, 수상한 장소를 발견했을 때.

플레이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이능파 방출’ 커맨드를 선택하는 거다.

파앗!

내 손끝에서 흘러나온 이능파가 벽으로 흘러 들어갔을 때.

쿠구구구—

벽이 움직이고, 복도의 구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와, 의신이 데리고 오길 잘했다! 어떻게 이걸 바로 생각해 냈지!”

그건 내가 망겜의 썩은물이기 때문이다.

“…….”

밝게 말하는 성시완과 달리, 계이담은 미간을 좁히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괴담 좋아한다는 과묵한 놈은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쿠웅!

지하의 비밀 통로가 변화를 마친 듯, 소리가 멎었다.

“들어가 보자!”

성시완이 앞장서 들어간 비밀 통로.

이 통로는 학생회관과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학생회관과 선도부회관 중간쯤에 있는 지하에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호족들은 지하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만약 호족 몰래 누군가 이걸 만들었다면 대체 어떻게, 무엇을 위해 만들었을까.

‘그 대답은 성국언이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성국언의 대답을 듣기 위해선, 그가 내준 과제를 전부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 학교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앞서 걷던 성시완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숨겨진 통로를 따라 한참 걸어 들어갔을 때, 갈림길이 하나 나왔다.

“방향을 보니까, 이쪽은 학생회관으로 이어져. 반대쪽에 뭔가가 있을 거야.”

나도 성시완과 같은 의견이었다.

그의 제안대로 방향을 정해 몇십 분을 걸은 후.

우리가 다다른 곳은 사방이 이계 금속으로 뒤덮인 방이었다.

‘시뮬레이터 룸이랑 비슷한데.’

학교에서나 게임 속에서 본 것과는 조금 형태가 달랐지만.

“이거 현대 역사 박물관에서 본 적 있는데! 요새는 스마트폰에도 LCD는 안 쓰잖아. 신기하다.”

이 세계에서는 홀로그램에 밀려 보기 힘들어진 LCD, 액정 디스플레이 타입의 스크린.

그 밑에 조작 패널이 있었다.

LCD를 신나게 관찰하던 성시완이 패널을 보며 말했다.

“이거 구형 가상 시뮬레이터네. 왜 이런 게 있지?”

예상대로 여기는 시뮬레이터 룸이 맞는 것 같다.

“켜 볼까.”

성시완의 제안에 나와 계이담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성국언의 은광구 지역 사무실.

보좌진 대부분이 퇴근한 가운데, 성국언은 사무실에 남아 종이로 인쇄된 자료를 읽고 있었다.

“언제 퇴근하실 생각입니까?”

수석 보좌관 전무영이 묻자 성국언이 여전히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답했다.

“플레이어 협회 감사 자료하고 위성 점검 기록만 확인한 다음에.”

“한 시간 전에는 경기도 교육청의 재정 분석 보고서만 확인한 후 퇴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었나?”

“네. 참고로 두 시간 전에는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하핫!”

성국언은 변명 대신 호쾌하게 웃고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를 올렸다.

그가 모든 페이지를 읽고 또 다른 파일에 손을 뻗기 전.

전무영이 불쑥 물었다.

“왜 지금 시완이한테 괴담 조사를 하라고 하신 거죠? 3학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신 겁니까?”

성국언이 손을 멈추고 대답했다.

“시완이라면 혼자서도 돌파할 수 있겠지만, 그 방에 들어가려면 파트너가 있는 편이 좋잖아? 나도 네가 입학한 3학년이 될 때까지 공략하지 않았는데.”

“현재 은광고 2, 3학년 재학생 중에도 괜찮은 애들이 많습니다만.”

“그래, 많지. 하지만 그중엔 후예도 있고, 진족과 엮인 기업인이나 플레이어들을 가족으로 둔 학생들이 대부분이야.”

험악한 표정을 짓는 성국언을 보며 전무영은 말을 삼켰다.

‘여전히 진족과 후예에 대한 불신을 지우지 못하셨구나.’

성국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현재 그 괴담 속의 ‘비밀 결사’에 소속된 아이들이 어떤 신입 부원을 받을지는 통제가 안 돼.”

“그 모임에 ‘진족과 후예에 주의하라’라는 말이 돌긴 하지만, 부원의 가족이나 스승이 진족과 엮여 있는가는 확인하지 않겠죠.”

“그래. 그건 어쩔 수 없어. 그러니까 적어도 시완이와 ‘그 방’에 들어갈 파트너는 신원이 확실했으면 했어.”

그 말을 마친 성국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은광고를 노려봤다.

“의신이는 우수한 이능과 실적을 가지면서도, 배경이 깨끗한 게 마음에 들어.”

*    *    *

구형 시뮬레이터에 설정되어 있던 프로그램은 SSR---급의 하강형 타워 시뮬레이션이었다.

밑으로 내려가 최하층에서 보스를 상대하면 클리어하는 형식인 하강형 타워 타입의 이계.

고작 세 명으로 공략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아 보였지만, 성시완의 활약으로 수월하게 진행됐다.

파아아…….

성시완 뒤로 에너미 소멸 이펙트가 보였다.

그는 벌써 SR+++급 에너미 네 마리, SR---급 에너미를 둘이나 쓰러뜨렸다.

“자, 다음!”

권법과 단검술.

두 개를 조합해서 싸우는 성시완.

주요 공격 스킬은 권법이었지만, 단검술도 적재적소에 사용해 갔다.

‘언뜻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퍼억!

보호대를 착용한 성시완의 주먹이 가상 에너미의 배를 파고들었다.

휘청거리는 에너미를 지켜보던 그가 스틸레토를 손에 쥐었다.

“여기가 약점이구나!”

이능파를 머금은 가느다란 스틸레토.

큰 위력은 없었지만, 우둘투둘한 갑주 사이의 급소를 찌르니 에너미의 HP가 크게 감소했다.

끼이이익—!

가상 에너미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비명에 이능파가 묻어났다.

‘소리로도 데미지를 주는 타입인가! 성시완은 괜찮나?’

에너미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성시완은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흔들림 없이 세 개의 스틸레토를 실체화해 정확하게 급소를 찌르고 에너미가 날뛸 때마다 주먹을 날려 댔다.

성시완의 맹공에 에너미는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한 채 소멸하기 시작했다.

파아앗……!

“이 정도면 계속 내가 혼자 해도 되겠다. 그럼 밑층으로 가자!”

지익회장은 힘으로 뽑히는 게 아니지만, 성시완은 무식하게 셌다.

권법과 검술이라는 미묘해 보이는 스킬 조합도 아주 잘 써먹고 있었다.

그런데 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스틸레토를 쓰는 걸까.

잠시 고민해 보니 그럴싸한 답이 나왔다.

‘맨손 전투용 보호대를 착용하면 검이나 총 같은 무기를 다루기가 힘들어져. 그래서 가볍고 날이 좁아 휴대하기 쉬운 스틸레토를 사용하는 거구나.’

그 이후로도 좁은 공간에서의 전투가 이어져, 성시완의 단독 전투가 계속되었다.

함정이 섞인 기믹도 있었지만, 고인물의 지식을 발휘한 내가 해체하면서 별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가장 잉여로운 파티원은 계이담이었다.

해야 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학생회와 선도부는 몰래 훈련이라도 하고 있었나. 음, 시설은 후졌지만 에너미 구성은 괜찮네.”

성시완은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말했다.

혼자 공격을 전담하긴 했지만, 아직 여유가 넘쳐 보였다.

그때, 공기가 무거워졌다.

“보스 에리어에 도착한 것 같네요.”

“……그렇네. 여기서부터는 이담이, 의신이도 같이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하층의 경계인 듯한 문이 보였다.

문을 보던 성시완은 보호대를 고쳐 착용하고 남아 있는 스틸레토 개수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해. 전용 메뉴의 에너미 접근 알림 메시지가 없어.’

이계 시뮬레이션을 할 때도 보스 룸에 어느 정도 접근하면 ‘<경고, 에너미가 접근 중입니다.>’라는 알림이 떴었다.

“보스 에너미가 없는 것 같아요.”

“응? 이담아, 넌 어떻게 생각해.”

계이담이 보스 에리어의 문을 노려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구형 시뮬레이션이다 보니 에러가 난 건가. 일단 열어 보자.”

성시완이 문 위에 손을 올렸을 때.

우우웅—

기계음과 함께 문 위로 문구가 떠올랐다.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건 인간뿐.]

“응? 이게 무슨 소리야. 진족이나 후예는 안 된다는 뜻인가……. 여기 있는 셋은 다 인간이니까 문제없겠지!”

성시완이 문 위에 손을 올리자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빛으로 가득한 문 안.

희미하게 누군가의 인영이 보일 때.

“어? 저분은…….”

성시완이 놀란 얼굴로 무언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어서 들리는 시스템 메시지에 묻혀 버렸다.

‹운명력이 발동했습니다.›

파아아앗!

한순간 강렬한 빛이 시야를 가리다 사라졌을 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운명력이 발동되는 순간, 몇 번이나 던져진 이공간이었다.

다른 점이 하나 있었지만.

‘이게 뭐지?’

어두운 공간에 스크린이 하나 떠 있었다.

삣.

스크린에 전원이 들어와, 누군가가 비추어졌다.

게임 속에서 봤던 인물이었다.

‘어둠의 시대를 보낸 플레이어 협회의 한국 지부장이잖아!’

그 인물은 담담히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진족도 후예도 믿지 않는다. 진족이 배후에 있는 은광고에 내 유지를 남긴 건, 이곳이 내가 아는 가장 안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성국언과 비슷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플마고는 음성 지원이 되지 않아 게임 속에선 비교할 길이 없어서 몰랐지만, 눈을 가리고 들으면 동일 인물이라 착각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내 유지를 나의 모교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고에 남긴다.]

화면에서 옛 한국 지부장이 사라지고, 대신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이것은, 내가 남긴 단서 중 하나다.]

화면에 비추어진 건 ‘이무기의 귀천’.

민그린이 붓질을 해, 그림을 완성하기 전의 미완성 버전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