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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33화 (13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33)

다사다난했던 아침이 지나고 점심시간.

인적이 없는 천익산 방면 1학년 산책로.

나는 혼자 생각도 정리할 겸 쌓여 있는 디바이스 메시지를 확인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건 체스 대국 신청이었다.

‘작년 챔피언인 천동하가 올해 출전하지 않은 건 이렇게 대국 신청이 밀려들기 때문인가.’

느낌표가 잔뜩 붙어 있는 바람에 보기만 해도 시끄러운 메시지를 보낸 마진승.

정중하게 대국 요청을 해 오는 내 제자 염준열과 그의 친구 곽경구.

연극부 에이스 연가람을 대신해 대국 신청을 날려 온 2학년 0반의 금찬솔과 왕찬솔.

간결한 안부 인사와 함께 체스를 두자고 연락한 박승현.

‘이번 주는 어려울 것 같은데.’

아쉽지만 성국언의 괴담 조사 의뢰를 우선하기로 했다.

모든 대국 신청에 답변을 마친 후, 다음 메시지를 확인했다.

[김신록] 안녕하십니까, 조의신 군.

갑자기 이 후예가 무슨 일로 연락을 했지.

[김신록] 임시 담임으로 온 용이 사고를 치지는 않았습니까?

용제건 말로는 둘이 친구라고 했었지.

친구가 임시라곤 해도 호족의 수장의 담임이 되었으니 신경 쓰였나 보다.

용제건이나 황지호한테 직접 물을 수가 없으니 나한테 연락을 한 거고.

‘유희계 진족의 성정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용제건은 교사로서는 문제가 없어.’

용제건은 반 아이들과 잘 지낸다는 답장을 보내니 또 다른 교사가 보낸 메시지가 보였다.

[함근형] 민그린 얘기 들었다.

[함근형] 출장이 길어질 것 같으니 잘 부탁하마.

어제는 민그린을 찾아 헤매던 송대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오늘은 미술계 동아리 습격 건을 들어서 나한테 연락을 한 것 같다.

‘평소대로라면 반장이자 민그린과 같은 성별인 김유리한테 맡길 텐데.’

담임인 함근형은 김유리의 광림 봉인술식 건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다른 일을 맡기면 부담이 갈까 봐 나한테 연락했겠지.

홍천 출장 건으로 꽤 바쁜 것 같은데 제자 걱정이 끊이지 않나 보다.

[나] 네. 반 아이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 출장 힘내세요.

메시지창을 잠깐 지켜봤지만, 기독 처리가 되지 않았다.

함근형은 점심시간인데도 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차하면 황지호한테 우리 담임한테 일 작작 시키라고 따져야겠다.

다음은 장남욱과 유상훈이 있는 단체 메시지방에서 올라온 메시지였다.

[유상훈] 필요함?

[유상훈] (사진)

유상훈이 웬일로 사진을 보냈나 해서 확인해 봤더니 사람 키는 훌쩍 넘을 정도로 선물 세트가 쌓여 있었다.

유명 브랜드의 건강식품과 차 종류, 생필품 따위가 포함된 선물 세트들.

저런 걸 어디에서 받은 건지 모르겠다.

[장남욱] 명절도 아닌데 무슨 선물 세트가 이렇게 많이 와 있어!

[유상훈] 유상희 씨.

[장남욱]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상희 누나 앞으로 온 선물들이라는 뜻이구나. 상희 누나는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감사를 표하는 분들도 많겠지.

[유상훈] ㄴ

[장남욱] 내가 틀린 말을 했나 보네. 뭐지? ……아! 혹시 선물을 보내 감사를 표한 건 여러 사람이 아니라 한 명이야?

[유상훈] ㅇ

선물을 보낸 건 한 명이라고?

‘혹시 선물을 보낸 건 그놈이 아닌가…….’

유상훈이 올린 사진을 확대해 보니 선물 세트에 새겨진 황명 그룹 마크가 보였다.

선물 세트들이 전부 황명 그룹 계열사 산하 브랜드에서 출시한 걸 보니 확실해졌다.

‘황지호가 보낸 게 맞구나!’

적호를 치료한 일로 황지호가 사례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비록 유상희는 거절하긴 했지만, 황지호가 아무 보답도 안 할 리가 없긴 했다.

[장남욱] 이렇게나 많은 선물을 한 사람이 보내다니…… 너무 많다 싶으면 그냥 돌려주는 게 낫지 않을까.

[유상훈] 해 봤음.

해 봤다고?

[유상훈] 그랬더니 조의신네 반 돌아이가 학생회실로 저걸 보냄.ㅡㅡ

유상훈의 말이 많아지기 시작한 걸 보니 험한 꼴을 당했나 보다.

‘우리 반 돌아이라면 황지호밖에 없는데. 선물을 황지호 이름으로 보낸 건가.’

유상희 앞에 황지호의 모습으로 나타났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유상훈] 도원우 그 미친놈이 발견하는 바람에 지랄하면서 선물 보냄.

[유상훈] 그건 미친놈의 부모님께 연락해서 겨우 돌려줌.

유상훈의 메시지를 보니 대충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황지호가 처음 유상희의 집으로 선물을 보냈다가 반품을 당하자 학생회실에 선물 폭탄을 투척했다.

그 선물들을 발견한 게 바로 도원우.

유상희가 웬 1학년 남자 후배 놈한테 선물 세례를 받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추하게 자신도 돈지랄, 선물지랄을 한 거다.

[유상훈] 개 많음. 좀 가져가라.

황지호에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선물을 돌려주는 건 포기한 것 같다.

답지 않게 말이 많아질 정도로 고생한 유상훈을 위해 나와 장남욱이 고급 세면도구 세트를 하나씩 받아 가기로 했다.

‘적호를 구해 줬으니 선물 세트 투척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답게 물욕이 없는 유상희가 받아 줄지는 의문이지만.

다음은 은호의 후예 삼 남매가 있는 메시지방이었다.

‘왜 이렇게 쌓여 있는 메시지가 많지.’

평소보다 몇 배는 메시지가 더 쌓여 있었다.

[은이호] 의신이 오빠! 신수가 특별히 오빠를 위해서 준비한 거예요!

[은서호] 직접 보러 오셨으면 했는데, 황호 님이 의신이 형은 바쁘다고 해서……. ㅠㅠ

올무가 날 위해서 뭘 준비했다고!

아직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쁨과 동시에 올무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 차올랐다.

신규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스크롤을 당겼다.

[은재호] (사진)

[은재호] (사진)

…….

…….

…….

막내 은재호가 올린 사진들은 전부 올무였다.

그것도 내가 선물한 옷을 입고 찍은 올무.

수많은 옷을 입은 올무 사진을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안 어울리는 옷이 없지. 전부 다 잘 어울리잖아!’

호랑이를 모티브로 한 동물 잠옷,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셔츠, 후드가 달린 망토, 진 소재의 점프슈트와 커버올…….

올무는 무슨 옷이든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새하얀 솜뭉치 같은 올무에겐 어떤 색이든 다 어울릴 테니 같은 디자인이라도 다른 색을 팔고 있으면 전부 사 버렸는데.

예상대로 안 어울리는 색, 디자인이 없었다.

‘옷도 잘 어울리지만 포즈를 취하는 것도 완벽해!’

옷마다 포즈와 표정을 바꿔서 촬영한 똑똑한 우리 올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웃는 얼굴도 창문 저편을 보는 옆얼굴도 전부 귀엽고 멋졌다.

생각을 정지하고 스크롤을 내리며 저장 버튼을 누르는 걸 반복할 때, 나는 중대한 문제점을 알아챘다.

‘소품을 안 샀잖아!’

모자, 스카프, 액세서리, 양말, 가방 등등.

올무의 매력을 살려 줄 아이템들을 잊고 있었다니.

옷만 선물한 나는 어리석었고, 옷만으로도 제 매력을 발산한 올무는 천재였다.

“의신아? ……왜 평소보다 지능이 떨어져 보이지. 이상하네.”

올무의 패션쇼를 감상하는 내 앞에 용제건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시죠?”

“어, 정상으로 돌아왔구나.”

의아해하는 얼굴을 하는 용제건을 무시하고 홀로그램 창을 껐다.

대체 어떻게 나를 찾아냈는지 알 수 없지만, 유능한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던 용제건에겐 쉬운 일이었을 거다.

“황호 이사장 씨의 어린 분신과 ‘눈’에 관해 이야기를 마쳤는데.”

아침에 이야기했던 그건가.

조례가 끝나고 나와 황지호, 용제건 셋이서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서족의 수장이 경고한 은광구를 지켜보는 무언가의 ‘눈’.

은광고 안이나 황명 빌딩 안은 괜찮지만, 그 외 인근 지역은 무언가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는 게 꾀돌이의 의견이었다.

공간에 민감한 용제건 역시 시선을 느꼈다고 언급해 안색을 바꾼 황지호가 용제건을 바로 이사장실로 소환해 자초지종을 들었다.

나는 나중에 얘기를 전해 달라고 하고 수업을 들으러 갔지만.

“황호 이사장 씨는 나나 꾀돌이 씨만큼 공간이나 시선에 민감하지 않아. 알아채지 못해도 이상한 건 아닌데 분해하더라. 그동안 의욕이 없던 모습과 비교됐어.”

그 ‘눈’이라는 건 꾀돌이나 용제건만이 느낄 정도로 감지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용제건의 말이 계속되었다.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지만, 한반도에는 12지 동맹이 존재하고 내부의 배신자가 호족을 노리고 있어. 이미 몇 번 공격당한 상태지. 이런 상황에서 신역이 감시당한다는 건 민감한 문제야. 그런데 황호 이사장 씨가 나를 불러 이야기를 듣다니, 이상한 일 아닐까. 용족이 배신자일지도 모르잖아.”

용제건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황호 이사장 씨의 말로는 네가 용족은 배신자가 아니라고 확언해 줬다고 하던데.”

황지호는 그런 말까지 했나.

‘교원 계약’이라는 제약을 걸어 두긴 했지만, 여전히 진족인 용제건을 은광고에 둘 정도다.

생각보다 용제건을 더 신뢰하고 있는 모양이다.

김신록과 용제건이 친구 사이라서 그런 걸까.

“그 말을 듣고 확신했어. 태만했던 황호 이사장 씨를 바꾸고 호족을 움직인 것도 너라는 걸.”

용제건이 특유의 황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황지호가 힌트를 많이 던진 탓도 있긴 하다.

그래도 너무 빨리 알아챈 것 아닌가.

“준열이한테 디바이스 코드를 알려 줬더구나. ‘적벽괴도’로서.”

이건 대체 어떻게 안 건가.

“……아직 안 알려 줬는데요.”

“알려 줄 예정인가 보구나.”

불시에 ‘그 단어’가 들린 바람에 정신이 아득해졌다곤 하지만, 또 용제건의 대화 기술에 걸려들고 말았다.

“어떻게 아셨죠?”

“준열이가 갑자기 디바이스를 새로 사서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본인은 기분 전환으로 샀다고 하긴 했지만.”

염준열은 스승과 연락할 용도의 디바이스를 하나 산 모양이다.

내 제자가 저렇게까지 나와 연락하고 싶다니 다음에 만날 때는 디바이스 연락처를 줘야겠다.

*    *    *

방과 후, 신문부실.

황명호 이사장 버전의 분신은 어디에서 굴리고 있는 건지 10대 버전으로 용제건과 대화하겠다며 사라진 후 수업을 전부 땡땡이쳤던 황지호.

신문부실에 그가 앉아 있었다.

“부 활동은 나왔네.”

“황명호 이사장으로서 교내에서 일하는 중이니까. 머리도 식힐 겸 나는 노는 중이다.”

지금은 황명호 이사장이 교내에 돌아온 듯하다.

‘그 정체불명의 ‘눈’에 대한 대책이 떠오르는 대로 황지호나 용제건과 이야기해 볼까.’

그때, 신입생 전용 부실 문이 열리고 문새론이 등장했다.

“얍! 0반은 바람 잘 날이 없구나. 오늘 민그린 화백님을 둔 쟁탈전에 대해선 잘 들었어!”

그렇게 말하는 문새론은 입이 근질근질한 표정이었다.

“그 건은 임시 담임인 용제건이 개입해서 마무리되지 않았나. 뭔가 더 있나 보군.”

“응, 응! 이 사건은 어떤 의미론 환몽 게이트의 연장선이니까.”

여기서 환몽 게이트가 나와?

황지호와 내가 입을 다물자 문새론이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건은 이전에 홍경복 화백의 은거 선언에서 시작되긴 했어.”

문새론은 그새 조사를 마친 듯 홀로그램을 띄웠다.

홀로그램에는 홍경복과 그 제자, 환몽 게이트에 연루된 이들의 관계도가 복잡하게 떠 있었다.

‘몇몇 이름은 환몽 리스트에서 본 것 같은데.’

미술계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던 본인의 제자들을 전부 박살 내고 은거한 홍경복.

그 제자들이 사실 여러 비리도 저지르고 있어 미술계는 제대로 털렸다.

그리고 빈자리를 차지한 게 환몽 게이트 일당이었다고 한다.

“미술품이 횡령과 탈세, 비자금 만들기, 검은돈 세탁에 자주 이용되는 건 알지?”

“그래. 미술품의 가치는 주관적이고 유동적이니까 증여세나 상속세를 피하는 수단으로 쓰이곤 하지.”

“응! 미술품에 관해선 조세 정책에 허점이 많아. 그래서 그런지 환몽 게이트와 미술계 인사들과 손을 잡고 미술품의 가치를 조작하면서 장난질을 많이 쳤더라.”

“왜 이게 지금 민그린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알겠군.”

나와 비슷한 결론에 달한 듯, 황지호가 담담히 말했다.

“은광고 소속 미술 교사들 대다수가 환몽 게이트로 인해 잘려 나갔어. 인원 충원에 애를 먹고 있지.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플레이어이자 미술에 소양이 있고 환몽 게이트와 연루되지 않으면서 교사 자격증도 가진 이들은 드무니까.”

“정답이야! 그 탓에 지금 미술계 동아리들의 고문들이 다 사라졌어. 계약직 교사였던 한 분이 남긴 했는데…… 그분은 지금 과로로 죽어 가고 있고. 하하하.”

유상희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을 괴롭혔던 미술계 동아리의 갈등 원인이 그 하나 남은 고문의 쟁탈전인가.

“고문이 환몽 게이트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스승을 잃은 미술계 동아리 소속원들은 초조한 나머지 민그린 화백에게 가르침을 청하려 했나 봐. 뭐, 사정은 이해가 가. 갑자기 들이댄 미술계 동아리 애들이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문새론의 설명을 전부 들은 황지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의 태만의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게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닐 거다.

“자, 이거 봐.”

“뭐냐.”

황지호의 기분을 바꿔 줄 겸 점심시간에 은호의 후예 삼 남매에게 받은 올무의 패션쇼 사진들을 보여 줬다.

사진을 본 황지호가 어처구니없어하는 얼굴을 했다.

“……조의신. 네 뜻은 갸륵하지만, 어제 실시간으로 전부 봤으니 보여 주지 않아도 된다.”

“실물로 보는 거와 사진으로 보는 건 또 달라.”

“넌 정말 신수에 관련되면 지능이…….”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얼굴을 한 황지호.

그래도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 한결 나아져 있었다.

역시 올무의 사진의 효과는 굉장했다.

곧 다른 아이들이 등장해 함께 부 활동을 마친 후.

“아, 나 오늘도 스터디 모임 늦는다.”

“왜.”

“스킬 연습하려고.”

“스킬?”

“네가 준 영약 덕인지 안광 스킬을 얻었어. 연습해 두고 싶어.”

옆을 걸어가던 황지호가 우뚝 멈춰서 내 눈을 들여다봤다.

“……안광 스킬을 얻었다고?”

황지호는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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