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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34화 (134/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34)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하교해 아무도 없는 신문부 신입생 부실.

황지호가 경악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써 봐.”

호족의 눈이 가진 능력의 일부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말한 건 황지호였는데 왜 저렇게 놀라는 건가.

의아했지만 호족의 수장이 직접 스킬을 봐줄 기회라 생각해 군말 없이 안광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킬 ‘안광’이 발동했습니다.›

우웅—

머리와 눈이 울리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변했다.

변한 풍경 속에서 황지호의 황금빛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혹시 황지호도 안광 스킬 발동 중인가?’

몇 초 마주 보자 황지호의 눈동자에서 이능파도 빛도 사라졌다.

“……진짜 ‘안광’이군.”

저 말을 들어 보니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안광 사용 중에는 사용자끼리 서로 알아볼 수 있는 듯하다.

“이상해. 너무 빠르게 습득했어. 조의신, 너는 진족과 무관한 삶을 살아왔는데 어째서…….”

“왜 그래.”

“호족의 신보가 나타나는 샘의 정수의 섭취 외에도 습득 조건이 하나 더 있어.”

“뭔데?”

나도 안광 스킬을 거두고 물었다.

황지호가 단서를 찾는 것처럼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안광의 습득 조건 중 하나는 ‘안광’의 빛을 긴 기간 받을 것.”

그런 조건이 있었나.

그 ‘긴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황지호가 왜 경악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보통 그 정도로 우리의 시선을 받는다는 건 사냥감이 되어 죽는다거나 작정하고 스킬을 전수해 주겠다는 뜻이지. 그래서 내 허락 없이 감히 정수를 입수한 자도 밤눈이 밝아지거나 시력이 향상되는 정도에 그치는 게 보통이다.”

황지호의 시선이 내 복부 쪽으로 향했다.

“키모폴레이아의 갑판 위, 어둠 속에서 상보심금파에 몸이 꿰뚫린 너를 보고 이 스킬을 전수해 줄 생각이긴 했어. 하지만 이상하군. 너무 빨라. 빨라도 3년, 아주 빠르면 네가 1학년을 마칠 때쯤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지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안광 스킬에 연 단위로 노출되었다는 건데.

‘대체 어디서? 어떻게?’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안광 스킬의 입수 경로에 짐작 가는 건 없나.”

짐작이고 뭐고 나는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 세계의 정체불명의 진족이 내내 나를 안광 스킬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해도 시간상으로 맞지 않았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은광고에 있는 진족 중 누군가는 눈치챘을 것이다.

“모르겠는데.”

“그래…….”

황지호도 내가 제대로 된 답을 할 거라 기대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네 안광 스킬 연습에 동행하도록 하지. 어떻게 연습할 생각이었지?”

“약속한 상대가 있어.”

원래 상보심금파를 다루는 훈련을 할 예정이었지만.

“물어볼게.”

“……?”

황지호는 상대가 누군지 짐작이 가지 않은 모양이다.

그는 황지호가 오건 말건 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지만, 우선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나] 황지호도 오겠다는데.

메시지는 곧바로 기독 처리되고 답변도 도착했다.

[백호군] 알았다.

오늘 훈련에는 신화계 호족이 둘이나 함께할 것 같다.

*    *    *

[김유리] 그럼 지호도 늦는 거야?

[김유리] 스터디 끝나기 직전에 공통 과목 쪽지 시험 볼 예정인데, 그거는 같이 보자!

[김유리] 쪽지 시험 1등하고 2등이 내일 저녁 메뉴 정할 거야. ㅎㅎ

[김유리] 그럼 기다릴게! ^▽^

에어보드를 타고 은련관으로 이동하며 김유리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학교에서 보인 모습도 그렇고 아이들 덕분인지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보여.’

광림 봉인술식 건과 아버지의 입원 건으로 불안해하던 김유리.

그녀는 아이들이 오랜 시간 곁에 있어 줘서 그런지 잠도 잘 자고 아직 기운차 보였다.

‘미봉책이긴 하지만…….’

여름 방학에 있을 일을 생각하고 있자니, 훈련에 대한 의욕이 더 솟았다.

“도착했군. 먼저 내려간다!”

옆에서 나란히 에어보드를 타고 이동하던 황지호가 말했다.

저놈이 조작하고 있는 에어보드는 일반 학생 지급품과 달리 수동 조작 모드가 가능한 버전이었다.

에어보드의 속력을 올리다 급강하해 착륙하는 완벽한 운전 솜씨가 눈꼴시었지만 조금 부러웠다.

‘다음에 빌려달라고 해 볼까.’

고민하는 사이 자동 모드가 적용된 내 에어보드도 얌전히 땅 위에 착륙했다.

에어보드를 접자 조경 구역 호수길의 안개 저편에서 백호군이 나타났다.

“네가 조의신의 훈련을 돕는 줄은 몰랐는데. 왜 한마디도 안 한 거지? 백호.”

황지호를 흘끗 보기만 할 뿐, 백호군은 답하지 않고 벽사(辟邪)의 결계 너머를 향해 걸었다.

“답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건가. 하긴 나도 네게 말하지 않는 것도 많지만. 그 사고뭉치 후예가 네게 친 장난질을 사전에 알려 주지 않은 것. 보아하니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둔 것 같구나. 하하하!”

“…….”

백호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대화가 성립되고 있었다.

어쩐지 말 많은 장남욱과 자음 몇 개만 찍는 유상훈의 메시지방이 떠올라 두 사람이 친구라는 게 실감이 났다.

두 신화계 호족의 기묘한 대화는 서방칠수(西方七宿)가 천장에 떠 있는 수련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이곳은 여전하군. 인왕산에 있는 백호 7수는 네 힘이 오래 닿지 않은 탓인지 흐려져 버렸는데.”

이 수련장의 별 하늘은 백호군의 힘과 이어져 있었나 보다.

백호군은 천장을 한 번 바라보고 백아를 뽑아 들었다.

바로 수련을 시작할 생각인 모양이다.

“오늘은 이 스킬도 같이 시험해 보고 싶어.”

백호군의 맹공이 시작되기 전, 안광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백호군의 반응을 기대하는 듯, 벽에 기대 있던 황지호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스킬 ‘안광’이 발동했습니다.›

우웅.

내 안광 스킬이 발동하는 것과 동시에, 백호군의 눈가에 새하얀 이능파가 감돌다 사라졌다.

잠시 생각에 잠겨 보이던 백호군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넌 적응이 빠르군.”

백호군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재미가 없는지 황지호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황지호가 눈을 반짝였다.

“흠.”

저놈이 저러니 불길하다.

백호군의 주변에 갑자기 새하얀 이능파가 넘실거렸다.

“일시적으로 내 힘을 불어넣은 권속, 영호(影虎)다.”

백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이능파가 호랑이의 형상을 이뤘다.

혼(魂)도 의사도 없는 그림자 권속.

백호가 자신의 영역에 있을 때 한정적으로 꺼낼 수 있는 권속이었다.

‘저걸 훈련에 사용할 생각인가……!’

게임 속에서 봤던 영호(影虎)의 위력은 대충 알고 있었다.

온순하게 백호군 발치에 누워 있는 희끄무레한 그림자는 한입에 사람 팔 정도는 가뿐히 뜯어낼 수 있었다.

“조의신, 안광으로 영호를 붙잡고 나를 상대하며 상보심금파를 써라.”

적어도 따로 훈련할 줄 알았는데.

백호군이 과제의 난이도를 더 올려 버렸다.

‘……백아를 받아 쳐 내는 것도 힘든데!’

내 고생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황지호가 저 뒤에서 눈에서 빔을 뿜을 기세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상보심금파를 쥐자 백호군과 영호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훈련을 마친 후, 김유리의 집.

저녁 식사 전 집으로 돌아간 민그린을 제외한 반 아이들이 거실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어서 와! 우리 막 쪽지 시험 보려 했던 중이야.”

“응? 의신이는 좀 피곤해 보이네.”

권레나의 말대로 나는 몹시 피곤했다.

백호군과 그의 권속 영호는 가차 없이 나를 공격했고, 오늘 입은 데미지가 커서 회복 아이템을 써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늦게라도 스터디 모임에 온다고 약속했으니까 여기까지 왔다.

‘덕분에 안광 스킬 사용할 때 생기는 눈의 울림도 익숙해졌고, 상보심금파의 숙련도도 크게 오르긴 했는데…….’

백호군은 아주 진지하고 엄격하게 훈련에 임했다.

훈련을 마치고 계속 지켜보던 황지호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우리 사고뭉치나 신수와 훈련할 때보다 더 혹독하게 구는군.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훈련에 진지하게 임한 건 기쁜 일이지만 어쨌든 몸은 지쳤다.

회상하니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그런데 올무도 훈련을 받나. 어떤 훈련을 하지, 어떻게 싸우지. 영상으로 찍어 달라고 하면 찍어 줄까. 아니면 직접 참관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허락해 줄까.’

잡생각을 끝낸 건 알람 소리였다.

삐삐삣!

제한 시간의 끝을 알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쪽지 시험용 애플리케이션 화면이 꺼졌다.

“자, 그럼 바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참고로 쪽지 시험 앱이 예측한 은광고 기준 이번 쪽지 시험 평균은 70점!”

현재 1학년 0반 스터디 파티의 파티장을 담당 중인 김유리가 홀로그램을 띄웠다.

[조의신 - 100점]

[한이 - 100점]

[김유리 - 95점]

[사월세음 - 86점]

[민그린 - 85점]

[이레나 - 59점]

[황지호 - 40점]

[맹효돈 - 29점]

애들 성적이 나열된 걸 보면 중간고사 석차와 비슷하게 나왔다.

맹효돈이 지금 낙제점인 걸 제외하면.

짱돌 선생은 이번 기말고사 때도 고생하셔야 할 것 같다.

“아, 부반장 저 새끼는 공부 안 하는 거 같은데 100점이네.”

“나도 100점 노리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린이도 원격으로 참가했군요! 시간이 안 맞을까 봐 걱정했는데.”

아이들이 홀로그램을 보며 감상을 이어 갔다.

“지호는 저번에도 모든 시험에 40점을 받아서 낙제점은 완벽하게 면했었지.”

“일부러 저러기도 힘들겠다.”

“하하하하!”

황지호는 그 힘든 짓을 일부러 하는 중이다.

낙제는 면하면서도 은광고 학생들의 훌륭한 발판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럼 메뉴 선택권은 한이랑 의신이한테 있네! 뭐 먹고 싶어?”

“나는 오늘 지각했으니까 선택권은 한이한테 넘길게.”

내 말에 한이가 기뻐하며 달달한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내일 저녁은 코코넛 밀크 카레와 허니 갈릭 토르티야로 결정되었다.

내일은 제시간에 와서 저녁도 함께 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스터디 모임을 마쳤다.

*    *    *

다음 날 아침.

어젯밤 성시완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며 일찍 등굣길에 나섰다.

[성시완] 지금 우리 할아버지의 은광고 재학 시절을 조사 중이야.

[성시완] 이것저것 하신 게 많아서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ㅎㅎㅎ;

성시완은 현재 비밀 통로의 보스 룸에서 발견한 단서를 조사 중이었다.

‘할아버지가 등장한 탓에 의욕이 더 나는가 보다.’

그런데 그 전 한국 지부장이 은광고 재학 시절에 이것저것 한 게 많다고?

은광고에 전설을 남긴 국언무쌍 성국언, 그의 할아버지라면 그럴 것 같긴 하다.

[성시완] 아, 할아버지 서재에 있는 자료는 주말에 귀가해서 확인할 예정인데 너도 올래?

[성시완] 이담이는 온다는데, 너도 시간이 되면 와!ㅎㅎ

생각해 보겠다는 답변을 쓰며 걷는 중에 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야.”

옆을 보니 맹효돈이 서 있었다.

평소보다 한 시간은 일찍 나왔는데 마주치다니.

“일찍 나왔네.”

“어제 이상한 놈들 왔었잖아. 그래서 그냥 좀.”

맹효돈이 내색은 안 했지만, 어제 민그린이 습격당한 게 신경 쓰였나 보다.

아침으로 나온 빌베리 시리얼과 껍질째로 구운 임연수어 구이에 대해서 떠들며 1학년 건물로 향할 때.

“안녕하세요! 다들 오셨네요!”

“와, 다들 일찍 왔어.”

“안녕.”

약속한 것도 아닌데 반 아이들이 전부 일찍 등교했었다.

민그린과 황지호를 제외하면 나와 맹효돈이 제일 늦게 도착해 있었다.

“용쌤이 맡으셨긴 했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일찍 왔는데. 다들 같은 생각이었나 봐!”

김유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 반 아이들은 다 착했다.

1학년 건물 근처에 아직 미술계 동아리 놈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 같이 잡담을 하며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곧 황지호도 도착해 함께 기다리고 있으니 등교하는 다른 반 1학년 학생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그늘을 골라 걸으며 눈에 띄지 않게 여기까지 온 민그린도 있었다.

“어, 다들 일찍 왔네…….”

민그린에게 인사하려던 아이들이 멈칫했다.

그녀의 뒤, 사복 차림의 송대석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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