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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35화 (13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35)

미술계 동아리원들이 민그린을 찾아 1학년 구역으로 쳐들어온 날.

은광고 커뮤니티의 종합 게시판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송대석.

그의 머릿속에서 모순된 감정이 교차했다.

‘그린이가 학교를 가는 건 좋은 일인데, 안 갔으면 좋겠어. 학교 커뮤니티에서 악플에 시달리고 팬들인지 뭔지 모르는 놈들은 와서 겁을 주는데. 왜 계속 등교하고 그렇게 기뻐하는 얼굴로 은광고에 대해 떠드는 거야.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말리지도 못하잖아!’

등교를 하기 전 민그린의 화제는 그림에 관한 것뿐이었다.

이능으로 만든 신상 화구, 홍경복 화백의 화집 증쇄, 리모델링한 국립 현대 한국화 미술관, 민그린이 시험 삼아 그려 본 서양화 등등.

‘최근에는 은광고, 특히 1학년 0반에 관한 이야기뿐이야.’

AR 글래스를 선물해 줬다는 부반장 조의신.

솜인형, 돌멩이, 닭으로 보이게 되었는데도 끝까지 AR 글래스용 마커를 착용한 아이들.

반 아이들이 사거나 만든 간식들.

키보드 배틀 사건 때 민그린을 위해 일찍 등교한 반 아이들과 함근형 선생님.

반장 집에 놀러 가 다 같이 요리한 기념으로 찍은 사진과 송대석 몫으로 만들어 온 아몬드 쿠키.

민그린은 송대석이 1학년 0반 화제가 나오면 미묘한 감정을 내보이는 걸 알면서도 열심히 반 아이들 자랑과 칭찬을 해댔다.

‘그린이 표정만 봐도 좋은 아이들인 건 알아. 거기에다 직접 보기까지 했으니까.’

그 당시에는 머릿속에 민그린 걱정밖에 없어서 몰랐지만, 지금은 송대석도 알았다.

같은 반이라고 하지만 송대석은 초면인 주제에 몹시 무례하게 행동했었다.

그런데도 반 아이들은 웃으며 넘어가고 그 일을 문제로 삼거나 민그린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1학년 0반 아이들은 그린이나 나를 질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수해. 그린이를 배려해주기도 하고…….’

종합 게시판에는 사진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검은빛을 뿜는 롯드를 든 인물이 민그린 앞에 서서 다수를 상대하는 모습이었다.

‘마법을 쓰는 걸 보니 ‘수상하다’라고 소문난 부반장 조의신인 것 같은데.’

송대석의 생각은 지면과 플레이어 슈즈가 마찰하는 소리로 끊겼다.

파팟!

“오늘은 안 늦었어! 저녁 먹자!”

민그린은 아침에 겪은 일이 없던 일인 것처럼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다 송대석은 충동적으로 말했다.

“내일은 학교에 같이 가자.”

“응? 진짜로?”

송대석이 등교하겠다는 말에 민그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아침처럼 이상한 놈들이 들이댈 수도 있잖아. 무슨 일 있으면 네가 도망갈 시간은 벌어 줄게.”

“용쌤도 있고 반 애들도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싫어?”

민그린은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니! 완전 좋아! 같이 가자!”

송대석이 함께 등교해 준다는 게 기쁜지 민그린은 그날 헤어질 때까지 계속 웃었다.

*    *    *

어색한 얼굴로 인사하는 민그린.

그 뒤에 서 있는 송대석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키가 작은 민그린 뒤에 있어서 그런지 커다란 장승처럼 보였다.

“쟤는 그때 그놈이잖아.”

“어떡해, 쟤들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

“레나, 목소리가 너무 커요! ……그럴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만요.”

“어, 미, 미안!”

반 아이들이 갑자기 등장한 송대석을 보고 동요한 가운데, 능력자 반장 김유리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린아, 대석아! 오늘부터 같이 등교하는 거야?”

김유리는 출석률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송대석은 지금 사복을 입고 있는 거 보니까 아닌 것 같은데.’

송대석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대놓고 사복을 입고 있었다.

민그린도 하복 위에 반소매 점퍼를 걸쳐 입어 애매한 차림새이긴 했지만.

“어, 대석이는 오늘은 그냥…….”

“거기, 1학년 0반! 사복 입은 놈! 0반은 얌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복 등교자가 나와? 역시 0반은 0반이었어!”

저 멀리에서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 선도부 소속 2학년 마진승이 보였다.

“어, 아까 뛰어올 때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귀따갑네. 저 선배 목소리 왜 이렇게 커.”

오늘 민그린과 송대석이 등교한 교문 쪽 지도 담당은 마진승이었나 보다.

두 사람은 본의 아니게 마진승을 무시해 뛰어온 거고.

‘두 사람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구나. 마진승의 추적을 가볍게 뿌리치고 달려오다니!’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답게 송대석도 민그린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빠른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셔츠나 바지, 어느 쪽이라도 좋으니까 교복을 하나라도 입어야지! 아니면 3학년 0반 자칭 패셔니스타 선배 놈…… 님들이 그러는 것처럼 명찰이라도 달고 오든가! 생활 점수 벌점이다. 이름 대!”

마진승이 송대석을 보며 열변을 쏟아 냈지만, 송대석은 덤덤하게 받아쳤다.

“전 벌점 받을 이유가 없는데요.”

“뭐!”

“교문 지도는 등교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벌점…….”

“전 오늘 등교하지 않을 건데요.”

“……?”

송대석은 아주 당당하고 까칠하게 말했다.

“저는 잠깐 학교에 방문한 거지 등교한 게 아닙니다. 전 등교생이 아니니까 벌점 받을 이유가 없어요.”

이 말에는 마진승이 할 말을 잃었다.

반면, 송대석은 폭풍처럼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고작 교복 때문에 여기까지 쫓아 오세요? 교복 같은 거에나 신경 쓰지 말고 학생 안전 관리에나 신경 쓰세요. 어제 1학년 전용 건물 앞에서 있었던 일은 알고 계시죠? 만약 그린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면 선도부가 책임졌을 겁니까? 그린이한테 뭔 일이 있었으면 학교 건의 사항 게시판에 학생들 복지 향상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교문 지도를 폐지하고 그 시각에 학생 자치 기구는 학교 순찰이나 돌라고 글을 썼을 거예요.”

송대석의 말은 억지와 맞는 말이 적절하게 섞여 있었다.

아무리 선도부가 열심히 일했더라도 미술부 놈들이 몰래 작정하고 들이대는 건 막기 어려웠으니까.

‘민그린과 위성에 관련해선 송대석이 달변가가 됐었지. 훌륭하다.’

어쨌든 학생들을 아끼고 있는 마진승은 팩트로 처맞고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마진승은 목소리만 컸지 말싸움에 몹시 약했다.

“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다 맞는 말 아니야?”

“그렇네요. 설득력 있어요.”

“이 새끼 논리왕이네.”

“와…… 진짜 대석이랑 그린이는, 그러니까…… 어떡해!”

“하하하하!”

선배와 같은 반 아이가 눈앞에서 싸우고 있는데도 우리 반 아이들은 평화로웠다.

김유리는 ‘음, 여기서 좀 말이 심해지면 말려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긴 하지만.

“1학년이 맞는 말을 한 것 같은데. 쟤 등교한 거 아니라잖아. 그만 가자, 진승아.”

이때 선도부 배지를 단 단정한 인상의 인물이 하나 더 등장했다.

은광고 2학년 선도부, 안중지계(眼中之界) 천동하.

작년 체스 대회 챔피언이자 현재 2학년들 사이에선 염준열과 수석 다툼을 하는 천재 플레이어였다.

“윽……. 분하다!”

“분하긴 뭐가 분해. 자꾸 그런 대사를 하니까 준열이 팬들한테 까이는 거야.”

“그치만!”

“닥쳐.”

마진승이 ‘그치만’ 뒤의 대사를 뱉기 전, 천동하가 신속하게 그의 목젖을 손날로 가격했다.

번개 같은 솜씨에 마진승이 ‘컥!’하는 소리를 낸 후, 강제로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럼 다음에 등교할 땐 교복 입고 와라.”

그렇게 말한 천동하가 나를 흘끗 보다가 마진승을 질질 끌고 사라졌다.

염준열의 말로는 천동하가 나한테 체스 대국을 신청할 예정이라 했는데.

그와는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

“스터디 끝날 때쯤 마중 갈게.”

“수업도 듣고 가지……. 응? 마중 온다고?”

“수업 잘 들어.”

송대석이 민그린의 후드 위로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등을 돌려 사라졌다.

그가 말한 대로 학교에는 그저 민그린의 배웅을 위해 들렀을 뿐인가 보다.

‘어쨌든 송대석이 학교에 나오긴 나왔어. 거기에다 어제 같은 일이 있었는데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민그린을 맡기고 가? 행동을 보니 거의 넘어온 것 같은데…….’

그래도 송대석이 제대로 등교하려면 계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송대석과 선도부 선배 두 명이 사라진 후.

이 광경을 보던 1학년 0반 아이들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우리 뭔가 되게 0반 같지 않았나요?”

“응, 그렇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0반답게 군 건 송대석 하나뿐이었는데.

벌써 송대석을 ‘우리’의 범주에 넣어서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벌점 받아도 딱히 내신에는 큰 영향 없는데. 우리도 사복 등교할래?”

“함근형 선생님이랑 단체복 입고 등교하고 싶어!”

“우린 기숙사생이니까 한 번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와야겠네요.”

“아예 처음부터 밖에서 자고 오는 건 어때.”

설마 저번에 2학년 0반이 제갈재걸과 함께한 동반 사복 등교가 부러웠었나.

반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니 조만간 선도부에서 목 뒤를 잡을 일이 또 생길 것 같았다.

우리 반 아이들과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하고 싶다니 어쩔 수 없지만.

*    *    *

수업과 부 활동에 스터디 모임까지 모두 마친 심야.

은호의 후예 삼 남매들이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은서호] 오늘 오랜만에 토연이 누나를 뵈었어요!

옥토연이 황명호 대저택에 방문했나.

은광구 출입 금지 계약이 끝난 모양이다.

‘토족의 수장을 토연이 누나라고 부르는구나. 친하게 지냈었나 보네.’

후예 삼 남매는 황지호한테 ‘황호 님’이라고 부르는데.

옥토연과 친하게 지내는 꼴을 보고 티는 못 내지만 조용히 빡쳐할 황지호를 상상하니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은재호] (사진)

막내 은재호는 오늘도 말없이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석촌호수의 비극 사건으로 경쟁자가 사라져 수도권의 유원지 원 탑으로 올라선 용인시의 유명 테마파크의 기념품들 사진이었다.

‘유원지를 못 사가서 대신 기념품이라도 산 건가.’

유원지의 대표 어트랙션들을 모티브로 한 장난감 블록.

크기 별, 의상 별로 사들인 마스코트 인형들.

마스코트 캐릭터가 프린트된 방향제와 이능으로 가동하는 스노우 볼.

사진 안에는 크고 작은 기념품들이 가득했다.

[은서호] 직접 방문해야 살 수 있는 한정판 인형도 있어요. 토족 분들이 직접 가서 사 오셨어요!

후예 삼 남매가 기뻐하는 거 같아서 흐뭇한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리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누가 이런 발상을 한 거지……! 천재인가? 아, 올무가 천재라서 그런 거구나.’

사진 속의 올무가 여우 귀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올무는 올무 자체로 귀여웠지만, 갈색의 귀는 새로운 귀여움이 느껴졌다.

왜 올무는 뭘 해도 잘 어울리는 걸까.

[은이호] 처음에 신수는 이 모자 쓰는 걸 싫어했어요. 그런데 의신 오빠한테 보여 줄 거라고 하니까 허락해 줬어요!

뭐! 우리 올무가 특별히 나를 위해 싫은 걸 참고 썼다고!

디바이스 홀로그램을 끄는 내 마음은 감동으로 벅차올라 있었다.

‘열심히 해야지. 천익산은 올무가 지내던 장소니까 철저하게 조사하자. 올무를 위해서!’

어둠 속 천익산.

나는 천익산 귀문(鬼門) 괴담을 조사하기 위해 이 시각에 등산했다.

3학년 0반 반장 우기환이 알려준 샛길로 이동했더니 평소보다 빠르게 천익산 중심부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귀문에 대한 정보는 플레이어 네트워크에서도 얼마 없었어.’

귀신이 오고 가는 방위, 명계와 현계를 잇는 문이나 통로로 알려진 귀문.

이계 충돌 이후 이 세계에는 새로운 연구 소재와 사건들이 넘쳐 났다.

괴담이나 옛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귀문은 연구된 전례가 거의 없었다.

‘귀문은 기껏해야 괴담의 소재 중 하나로 취급을 받고 있어서 연구 자료가 적어. 직접 확인해 보는 게 빠를 거야.’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천익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백운봉의 전망대.

해가 진 탓에 지금 사람 눈으로는 천익산을 둘러보기는 어려웠지만, 나에게는 적절한 아이템이 있었다.

〈‘귀문(鬼門)이 보이는 렌즈’를 사용합니다.〉

파앗!

이전 환몽 경매에 얻었던 아이템을 사용하자 렌즈 너머로 천익산 곳곳에서 불빛이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저게 귀문인가. 우선 위치를 확인하고 가까이에서 관찰하자.’

귀문의 위치와 홀로그램 지도를 대조하던 중,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귀문이 있는 곳은 내가 알고 있던 장소들이었다.

‘돈족이 끊으려 했던 천익산의 지맥의 주요 포인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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