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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36화 (13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36)

15년 전, 은광고 학생회장이었던 성국언.

그는 이 학교에서 무수한 전설을 남기고 학교를 바꾸었다.

가장 대표적인 걸 꼽자면 기숙사생 자치기구인 지익회 설립.

그 지익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를 지켜 왔다.

‘지익회는 퀘스트를 발주하거나 직접 멧돼지 토벌에 나서서 돈족이 천익산의 지맥을 끊는 작업을 늦췄어.’

그 지익회를 만든 성국언이 조사해 달라고 의뢰한 괴담은 두 가지.

첫 번째는 학생회와 선도부의 비밀 결사.

이 비밀 결사는 동결형 이계를 한반도에 심은 진족과 계약한 전 한국 지부장이 남긴 단서와 이어졌다.

두 번째가 지금 이 천익산의 귀문.

귀문은 돈족이 끊으려 했던 지맥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게 우연일까.’

성국언의 게임 속 행보.

괴담 조사를 의뢰할 때 보인 성국언과 전무영의 묘한 태도.

괴담의 정체.

머릿속에 하나하나 정리해 보고 결론을 내렸다.

‘그럴 리가 없어. 성국언은 뭔가 알고 있는 거야.’

비록 이 귀문 괴담의 ‘달이 없는 밤’이라는 조건은 채우지 못했지만, 성국언의 의도는 파악해 냈다.

‘다음은 달이 없는 밤을 만들어야 할 텐데. 구름이 낄 때까지 기다리거나 이능이나 아이템을 써서…….’

‘귀문이 보이는 렌즈’를 착용한 상태로 홀로그램 지도 위에 귀문의 위치를 체크 하던 중, 눈에 유난히 밝게 빛나는 지점이 들어왔다.

‘다른 지점은 다 밝기가 일정한데…… 이곳만 이상해.’

파앗!

그때, 렌즈의 사용 가능 시간이 만료되어 아이템이 공기 중에 녹아 흩어졌다.

아이템 소실 이펙트 사이로 보이는 홀로그램 지도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 마음을 굳혔다.

‘가 볼까.’

3층 높이의 전망대 위에서 뛰어내리며 광림을 발동했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파팟!

현재의 나보다 높은 종합 능력치 레벨의 캐릭터를 사용했더니 가볍게 지면에 착지했다.

사용하는 캐릭터는 성장이 완료된 버전인 김유리.

‘위험 감지’를 사용해 어두운 산길에서도 만약을 대비할 수도 있고, ‘스프린터’를 써서 속도도 낼 수 있었다.

‘김유리의 광림을 여기에서 쓰진 못하겠지만.’

광림의 성질상 산속에서 사용하기는 어려웠고, 지나치게 강력해 ‘플레이어의 궤적’의 사용 시간이 순식간에 전부 소모될 테니까.

〈해당 캐릭터의 스킬, ‘스프린터’를 사용합니다.〉

스프린터를 사용해 렌즈와 지도로 확인한 포인트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당 캐릭터의 스킬, ‘위험 감지’가 발동했습니다.〉

〈해당 캐릭터의 스킬, ‘위험 감지’가 발동했습니다.〉

…….

…….

…….

휘익! 콰쾅! 퍽!

맞으면 죽진 않아도 아플 것 같은 조약돌 세례.

수면 가스와 마비 가스가 나오는 펌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가시넝쿨을 뿜어내는 경보 벨.

스킬 효과로 인한 시스템 경고 메시지와 함정의 발동 음이 끊이질 않았다.

‘뭔 함정이 이렇게 많아! 함정의 내용물을 보니 호족이 설치한 것 같지는 않은데…….’

호족이 아닌 천익산에 함정을 배치할 만한 미친놈들.

3학년 0반 우기환과 그 일당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향하는 포인트가 그들이 목을 매는 우주의 기운과 관련이 있나 보다.

‘3학년 0반 놈들이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지금은 학교에 없나 보네.’

함정이 발동한 걸 알면 심야고 뭐고 당장 천익산으로 달려와서 나를 족쳤을 테니까.

오늘 밤은 학교 밖에서 작당질 중인가 보다.

‘여기인가.’

도착한 곳은 천단수(天壇樹)의 앞.

천단수는 천익산에서 가장 장수한 신목(神木)으로, 게임 속에서도 가장 늦게 시들었다는 묘사가 있었다.

‘게임 속에서는 단순히 단군신화의 신단수(神壇樹)를 모티브로 한 배경 설정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세계가 현실이 되었으니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천단수 근처로 다가가는 동안에는 계속 울리던 위험 감지 알림음이 없었다.

신목의 바로 근처는 훼손하기가 뭐해 3학년 0반 놈들도 손대지 않은 모양이었다.

천단수가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갔을 때.

파아아…….

천단수가 희끄무레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은은한 빛무리가 잎이 무성한 천단수 사이를 맴돌았다.

이윽고 빛무리가 뭉쳐 인간 같은 형체가 되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뭔가 나한테 전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은데.’

빛무리가 손짓과 발짓을 해 댔지만, 당연히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고민에 잠긴 것 같던 빛무리가 천단수에 손을 올리는 시늉을 하다 내 앞으로 다가오길 반복했다.

‘손을 올리라는 건가?’

위험 감지 스킬도 경보를 울리지 않으니 손을 뻗어 보기로 했다.

손바닥을 들어 천단수의 기둥에 손을 올리자, 신목과 맞닿은 피부 사이로 온기가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수피(樹皮)의 온도는 이렇게 높지 않을 텐데.’

파아앗!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사고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천단수를 은은하게 감돌던 빛무리는 폭발할 기세로 광량을 올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이능파다……!’

하늘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기라도 하듯 빛과 이능파를 뿜던 천단수가 잠잠해질 때.

강렬한 이능파의 잔해 사이로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스킬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의 레벨이 1에서 2로 상승하였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들어 보는 단어가 들렸다.

‘여기서 초상우주라고? 설마 3학년 0반이 쫓아다니던 우주의 기운이 정말로…….’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스킬 ‘운명력’이 발동했습니다.〉

파팟!

운명력 발동 메시지와 함께 스킬 창이 떠올랐다.

운명력이 가끔 내게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때가 많긴 했지만, 대놓고 스킬창이 떠오른 적은 없었는데.

파아아……

동시에 빛무리가 스킬창에 있는 스킬 하나를 가리켰다.

‘……어떻게 하지.’

빛무리가 가리키는 스킬은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

운명력은 지금 내가 초상우주와 교신하길 바라는 모양이다.

‘처음 초상우주와 교신했을 때 3일 동안 기절했는데.’

훈련을 통해 종합 능력치도 강화된 상태고, 교신의 스킬 레벨도 상승했으니 3일보다는 기절하는 시간이 단축될 것 같지만.

산속에서 기절하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곧 기절할 테니 데리러 와 달라’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뭐라고 설명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사전에 말하지 않아도 여기로 달려올 놈들이 있었다.

‘곧 3학년 0반 놈들도 와 줄 테니, 괜찮을 거야.’

기절한 후배를 발견하면 양호실에 던져 놓을 거다.

깨어나면 한동안 괴롭히겠지만.

각오를 굳히고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을 사용합니다.〉

우웅—.

뇌가 허공으로 내던져지는 감각이 엄습했다.

뇌가 조각나는 듯한 역겨운 부유감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처음 교신할 때 어떻게 했더라.

그래.

퍽!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내 볼을 후려쳤다.

뺨과 주먹이 얼얼해지는 감각과 함께 제정신을 차렸다.

“나한테 뭔가를 시킬 생각이지. 빨리 말해.”

우우웅—!

머릿속이 울리는 감각과 함께 몸속의 이능파가 요동쳤다.

초상우주가 내 속을 헤집기라도 하는 것 같은 감각이다.

이능파가 멋대로 움직이다 눈에 몰리기 시작했다.

안광 스킬을 사용할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안광 스킬에 뭐가 있는 거야?”

숨이 턱턱 막히는 와중에도 머릿속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안광 스킬은 단순히 시력을 향상시키고 시야에 포착되는 객체를 정지시키는 효과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아닌 모양이다.

앞으로 안광 스킬에 대해서도 고찰해 봐야겠다.

“그거 말고는, 또 없어?”

숨이 턱턱 막히는 와중에도 물었다.

그러자 시야의 일부가 푸르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늘이나 멀리 보이는 은광고는 멀쩡한데, 천익산의 풍경만이 푸르게 변해 있었다.

“천익산을 잘 지켜보라는 뜻이지? 또?”

아무 변화가 없었다.

초상우주의 메시지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그러면 교신을 끊어야 할 텐데, 기회가 되면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경고, 초상(超象)우주와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의 과다한 의사소통은 적합체의 부하를 초래합니다.〉

메시지를 무시하고 하나 더 물어봤다.

“이전 세계에 있는 내 후배, 천성헌. 걔는 잘 지내?”

초상우주는 답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물어보려 했지만, 그 전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경고,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의 신체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의 접속을 제한합니다.〉

좀 더 빨리 물어볼걸.

후회했지만 미지의 감각은 사라지고 시야가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    *    *

황명호 대저택.

옥토연이 자고 가겠다고 버티는 걸 쫓아낸 후.

은호의 후예들도 롤러코스터와 대관람차 모양의 블록을 조립하다 지쳐 잠들었다.

잠든 후예를 방으로 옮긴 호족 셋은 거실에서 티 타임을 가졌다.

“겨우 조용해졌군요.”

“서호나 이호가 말리지 않았으면 당장 저 망할 달토끼를 내쳤을 텐데.”

황호는 달토끼떡 여름 한정 상품인 계피와 꿀 팥소가 잔뜩 들어간 기주떡을 먹으며 말했다.

옥토연을 극히 혐오하면서도 그녀가 들고 온 달토끼떡 선물은 늘 남김없이 먹는 게 참으로 황호다웠다.

“그 모습을 할 때는 거의 교복 차림이군요. 안 불편합니까?”

“이게 편해.”

은광고의 교복은 비교적 실용적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럴 리가.

적호가 황호의 대답을 무시하며 말했다.

“학교생활이 즐거운 모양이군요.”

“돼지 감시나 잘해. 저강렵이 돌아오면 바로 철수하고 나한테 알려라.”

“네. 그러겠습니다.”

그때, 신수를 품에 안고 말없이 수정과를 마시던 백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호? ……이게 뭐지?”

백호에 이어 황호도 이상을 눈치챘다.

희미하지만 천익산 쪽에서 기묘한 힘의 흐름이 느껴졌다.

왕! 왕왕!

백호의 품에 안겨 있는 신수도 천익산 쪽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가보는 게 좋겠군. 적호, 너는 여기에서 대기해라.”

“알겠습니다.”

곧 백호와 황호, 그리고 신수는 천익산을 향해 도약했다.

이동 중에 천익산에서 느껴졌던 기묘한 기운은 사라졌으나, 그들은 원인 조사를 위해 힘이 느껴진 기점을 향했다.

그리고 신목, 천단수 앞에 쓰러져 있는 학생을 하나 발견했다.

*    *    *

눈을 뜨자 이곳은 이세계였다.

새하얀 시트 사이로 보이는 솜뭉치 같은 몸체.

올무가 내 코앞에서 몸을 말고 잠들어 있었다.

깨어난 직후라 정신이 가물가물했지만 확신했다.

“내가 천국에 온 거구나……!”

손을 뻗어 올무를 쓰다듬으려 할 때, 어처구니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난 직후라 그런지 지능 하락 현상이 더 심하군.”

황지호의 목소리였다.

왜 저놈이 올무가 있는 천국에 있는지 고민하다 정신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는 중앙 구역 제1양호실에 있는 객실인 것 같았다.

홀로그램 시계를 보니 금요일 오후.

교신 스킬을 사용하고 약 15시간이 지나 있었다.

‘수업 시간은 다 지나갔네.’

오늘은 공청훤 선생님의 에너미학개론 수업도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또 수업을 빠지고 말았다.

“검사 결과 미주신경선 실신으로 판명되었다. 실신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건 과로라고 하는데.”

황호는 홀로그램 차트를 확인하며 불쾌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인으로 추정되는 건 하나 더 있어.”

“뭔데.”

황지호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내 뒤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보니 백호군이 보였다.

그 백호군의 손에는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잡혀 있었다.

‘처음 천단수 근처에 갔을 때 보였던 그거 같은데.’

뭔지 몰라도 천익산에서 끌고 온 모양이다.

“이 녀석은 천익산의 ‘산령(山靈)’이다.”

“산령? 산신령할 때 말하는 그거 말하는 거야?”

“그래. 대부분의 산령에게는 산신…… 상위 존재로 승격될 만한 신격은 없지만.”

개천 신화에서 열린 하늘 사이로 천신이 내려왔다고 묘사된 건 ‘산’이다.

한반도에는 산악을 숭배하는 사상이 존재했고, 산령에게 작호를 내린 왕조도 존재할 정도다.

그런 산령이 천익산에도 깃들어 있다니.

“천신이 천익산을 떠나신 지 오래되어 산령이 깃들 때가 됐긴 했어. 신역의 산에 산령이 머무는 건 당연한 일이고 환영할 일이지만, 감히 우리의 은인에게 화를 입히다니.”

황지호의 말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버둥거리는 게 보였다.

내가 기절한 건 산령 탓이 아닌데.

“무슨 소리야. 산령한테 화를 입은 기억이 없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는 건가. 산령은 선한 존재만 있는 게 아니야. 인간을 꾀어내어 기를 취하는 산령도 존재해. 이놈처럼.”

황지호는 내가 심야에 산령에게 홀려 변을 당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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