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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39화 (139/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39)

“실물로 백마를 보는 건 처음인데. 그려 보고 싶다.”

민그린이 평화롭게 감상을 말했다.

에어택시가 멋대로 정차한 원인은 저 백마 세 마리와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저들은 이쪽에 적의를 보이지 않은 탓일 거다.

반면, 송대석은 생각에 잠기다 굳은 목소리를 내었다.

“백마 세 마리? 설마…….”

“대석아, 왜 그래?”

“이곳 좌표가 어떻게 되지?”

운전석 근처에 앉아 있던 내가 패널을 조작하자 내비게이션 화면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현재 에어택시가 정차한 건 홍경복 화백이 은거하고 있는 가리산 근처.

정확히 말하면 홍천군의 오음산(五音山)의 삼마치(三馬峙) 고개였다.

삼마치라는 지명을 보자 나도 떠오른 게 있었다.

‘오음산의 삼마치 고개, 세 마리의 백마…… 설마 그 전설과 관계가 있나?’

오음산 삼마치의 전설.

먼 옛날, 이 지역에 걸출한 장수 다섯이 태어나리라는 예언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다섯 장수가 태어나면 재앙을 입는다는 소문이 번져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의 지맥을 끊어 장수의 탄생을 막기로 하였다.

사람들이 몰려가 능선을 쇠 창으로 찌르고 녹인 구리를 붓자 검붉은 피가 치솟아 오르고 다섯 개의 울음소리가 며칠 울려 퍼졌다.

울음소리가 그칠 때쯤, 홀연히 나타나 이를 지켜보던 백마 세 마리도 사라졌다 한다.

그리하여 다섯 가지의 울음소리가 퍼진 이 산은 오음산(五音山), 백마 셋이 사라진 고개는 삼마치(三馬峙)라 불리게 되었다.

‘마음에 걸리는 전설이라 기억하고 있어.’

보통 계시와 예언으로 장수가 태어나리라는 건 길조로 칭해지고, 그런 이들은 역사 속에서 활약해 영웅이 된다.

그러나 다섯 장수의 탄생을 흉조로 받아들인 이들이 지맥을 끊기까지 했다.

‘그게 정말 흉조였다면 백마가 그렇게 사라지지도 않았을 텐데.’

예로부터 백마는 동서양 가리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온 심부름꾼, 영물, 길조의 상징, 신성한 동물로 취급을 받았다.

전통 혼례식에선 신랑이 태양과 벽사를 상징하는 백마를 타고 이동하기도 할 정도다.

‘마을 사람들도 뒤늦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챈 것 같긴 하지만.’

넋을 달래려는 듯 이곳에 오음산, 삼마치라는 이름을 붙인 걸 보면 지맥을 끊은 마을 사람도 깨달은 바가 있었던 거겠지.

휘이이.

바람 소리에 가까운 구슬픈 소리를 낸 백마 셋은 산속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 가버렸다.”

“……이 근처에 말 목장은 없는데. 야생에 백마가 있을 리도 없고.”

송대석이 복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이 지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나 보다.

위이잉!

백마 세 마리가 사라지자 에어택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석아, 아까 왜 그런 거야?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

“아까 에어택시가 정차한 지역은 오음산의 삼마치라고 하는데…….”

민그린이 묻자, 송대석은 오음산의 삼마치 전설에 대해 알려 줬다.

송대석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민그린이 말했다.

“그래서 여기에서 위대한 플레이어들이 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지맥이 살아난 걸지도 몰라.”

“위대한 플레이어?”

“송만석 할아버지랑 우리 사부님이 여기 출신이잖아.”

송만석과 홍경복은 오랜 친우라고 들었는데 동향 출신이었나.

민그린의 말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민그린의 말대로 지맥이 끊기더라도 완전히 죽지 않는 한 언젠가 부활할 가능성이 있어.’

그 증거로 천익산의 지맥도 살아나 우리 올무가 건강해지고 있다.

전설 속에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묘사된 오음산.

지금은 여느 산과 다를 바 없이 녹음이 무성했다.

‘아직 가설이지만, 지맥이 부활하고 그 다섯 영웅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아닐까.’

민그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사부가 전설 속 영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이 나나 보다.

“그럼 둘밖에 없네. 셋이 더 있지 않을까?”

“……이 지역 출신 중에 아주 우수한 플레이어가 하나 더 있긴 해.”

“유명한 분이셔?”

“아니, 유명하지는 않아. 언론에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해. 유명인이 되면 돈 많이 버는 줄 알고 바가지 씌운다고.”

누군지 몰라도 매우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인가 보다.

“누군데?”

“…….”

송대석은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때, 민그린도 궁금해졌는지 되물었다.

“알려 줘, 대석아. 홍천 출신 중에 또 뛰어난 플레이어가 누가 있어?”

“은광고 교장.”

그는 민그린의 질문에는 바로 대답해 줬다.

차별 대우가 아주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소꿉친구를 아끼는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태도는 매우 바람직했다.

‘그런데 은광고 교장이라고?’

지하에 비밀 서고를 만든 그 교장 말인가.

예산과 사비를 털어 고서와 희귀서를 수집하는 괴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은광고에서 오랫동안 교장을 하는 인물이 평범한 플레이어일 리가 없긴 했다.

‘대영웅 무쇠팔 송만석, 홍경복 화백, 은광고의 교장. 이곳 출신인 뛰어난 플레이어는 이 셋만 있는 게 아닐지도 몰라.’

한 명 더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성시완이 할아버지의 서재 조사를 위해 홍천으로 왔어. 즉, 성시완과 성국언의 할아버지는 홍천 출신일 가능성이 커.’

어둠의 시대의 한국 지부장.

그는 자신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진족과 계약해 한반도를 지키고 단서를 남겼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다 이 지역 출신이었다.

지부장은 일찍 죽었고, 은광고의 교장은 언론을 피하고 있고, 홍경복 화백은 이능보다는 그림 실력으로 유명하므로 플레이어로서 유명한 건 송만석뿐이었지만.

“그 외에는? 다섯 장수니까 또 누가 있지 않을까?”

“모르겠는데. 애초에 이 지역에는 플레이어가 거의 안 나와. 플레이어 비율 20%의 법칙이 여기선 안 지켜져. 5%도 안 돼.”

플레이어가 낮은 비율로 나타난다고?

그건 지맥이 끊긴 탓이 아닐까.

“여기에서 이능이 발현된 그 5% 정도의 사람들은 바로 이사를 가. 우리 집도 그랬어.”

“아…… 대석이는 유치원 시절에 이능이 발현되자마자 우리 집 옆으로 이사 왔다고 했었지.”

서울에 사는 민그린과 소꿉친구이긴 하지만, 송대석이 태어난 곳은 홍천이었구나.

성시완을 만나면 성국언과 성시완, 두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물어봐야겠다.

“백마가 우연히 나타난 건지도 모르겠지만, 사부님이랑 송만석 할아버지가 전설 속 영웅이면 멋지겠다.”

나도 그냥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알고 보니 전설 속 영웅이라면 부심이 폭발할 것 같다.

신화 속 존재인 백호군도 있긴 하지만.

‘백마가 등장했으니까 마족(馬族)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12지 동맹 중 아직 배신자인 긴꼬리일 가능성이 남은 마족(馬族)과 함부로 접촉할 수는 없었다.

삣, 위잉!

에어택시가 목적지 도착 알림 메시지를 띄우고 정차했다.

가리산 일부가 에어택시 운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했다.

“……도착했네.”

전설과 영웅에 대해 떠들던 민그린이 입을 다물었다.

여기 오면서 홍경복 화백과 메시지는 주고받았겠지만, 직접 만나는 건 오랜만이라 긴장한 것 같다.

“가자.”

“응…….”

민그린은 주저하다 후드 모자를 고쳐 쓰고 에어택시 밖으로 내렸다.

*    *    *

도시후가 종적을 감춘 지 만 하루.

아직 그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대체 어디에서 뭘 하는 거야!’

장남욱은 디바이스 홀로그램을 보며 초조한 얼굴을 했다.

도시후는 항상 위험하고 엉뚱한 장난을 자주 치는 탓에 걱정이 앞섰다.

지금이라도 플레이어 협회와 군사관학교 측에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이 앞섰다.

딩동.

그때, 도원우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원우 형] 시후랑 친하게 지내던 친척들한테 연락해 봤다. 그쪽에는 없었어.

[원우 형] 집안에 알려지면 또 시후가 힘든 일을 겪을 수도 있어서……. 우리 회사 사람들을 풀어서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아.

[원우 형] 수혁이한테는 연락했다고 했지?

물론 장남욱은 도시후와 절친한 친구 사이인 주수혁에게 연락을 했었다.

농구 시합, 야구장, 선상 파티에서 만나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주수혁.

전화해 상황을 알리자 주수혁은 다음과 같이 제안했었다.

—바다 쪽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뱃멀미도 심한 데다 수영도 못 하는 도시후가 바다에?

장남욱이 의아하게 여기자 주수혁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뱃멀미는 심한 주제에 시후는 바다를 좋아해. 선박왕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걸.

주수혁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동원해 찾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인 땅.

해안과 인접한 모든 지역을 찾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장남욱의 근심이 더 깊어지던 중.

퍽!

디바이스 홀로그램만 들여다보고 있던 장남욱의 머리를 누군가가 후려쳤다.

뒤를 돌아보니 기숙사 같은 층을 쓰고 있는 같은 반 생도들이 몰려와 있었다.

“밥 좀 먹어, 등신아. 기운이 있어야 도시후 그 또라이 새끼를 쥐어패지.”

“얼굴 쪽은 너한테 양보한다. 대신 나는 배빵 날릴 거다.”

“뒤통수는 내가 때릴 거임.”

앞에 삼각 김밥과 우유 팩들이 쌓여 있었다.

디바이스로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며 방에 멀뚱하게 처박혀 있던 장남욱을 위해 챙겨 온 것 같았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 먹고 힘낼게.”

“장남욱 이 새끼가 이렇게 매번 진지를 빠니까 도시후 새끼가 질려서 가출한 거 아님? 그냥 맘 편히 기다려.”

“그래, 인마. 처먹기나 해.”

타박을 받으면서도 장남욱은 꾸역꾸역 삼각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참치 마요네즈와 전주 비빔, 치즈 불닭과 고추장 멸치볶음…….

동시에 두 가지 맛이 들어간 삼각 김밥들이었지만 이상하게 맛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기운을 차려서 같은 반 생도 아이들의 걱정을 덜고, 도시후가 나타났을 때 한 대 패 주기 위해 억지로 전부 삼켰다.

*    *    *

가리산을 걷는 우리는 한참을 헤맸다.

민그린이 한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하긴 했지만, 산세가 험했고 오두막까지 가는 산길은 잡초로 뒤덮여 잘 보이지도 않았다.

“미안……. 내가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데.”

“괜찮아. 천천히 가자.”

“그래, 서두르다가 다친다. 할아버지랑 약속한 시각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잖아. 힘들면 말해. 업어 줄게. 그리고 넌 그린이한테서 좀 떨어져서 걸어.”

이 와중에도 송대석은 변함없었다.

민그린과 나를 향해 말할 때 목소리의 톤 자체부터 달랐다.

저 까칠한 놈이 소꿉친구인 민그린을 애지중지하는 걸 보니 참 보기 좋았다.

그때.

“어…….”

앞서 걷던 민그린이 무언가를 보고 우뚝 멈춰 섰다.

“사부님…….”

민그린의 시선 끝에 생활한복 차림의 노인이 보였다.

사진으로만 봤던 홍경복 화백이었다.

‘약속 시각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넘게 남아 있는데.’

홍경복 화백은 하나 남은 제자가 잘 오나 걱정돼서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사박.

잎사귀가 흔들리는 소리가 작게 들린 것과 동시에 홍경복 화백이 단숨에 민그린 앞으로 이동했다.

‘축지법이라도 쓴 건가. 보통 실력이 아니야!’

그는 오랜만에 만나는 제자와 친구들을 바라보며 사람 좋게 웃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들어가자.”

“사부님…….”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거리는 민그린.

앞서 등을 보이고 걷는 홍경복 화백.

두 사제는 대화 없이 산길을 걸어갔다.

나와 송대석은 눈치껏 입을 다물고 그 뒤를 따라갔다.

산 그늘에 가린 오두막이 보이자 홍경복 화백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근형이가 오면 좀 이르지만, 같이 점심을 들자꾸나.”

“……함근형 선생님이요?”

“그래, 근형이 일도 마무리됐다 하니 돌아갈 때 같이 가면 좋겠구나.”

함근형 선생님은 송만석과 홍경복, 양쪽 모두와 교류가 있었나 보다.

―삐이이이익!

갑자기 모두의 디바이스에서 알람이 울렸다.

협회에서 온 이계 생성 예보 알람이었다.

[SSR급 이계 생성 예보 안내]

“내일, 이 근처에 SSR급 던전이 발생할 예정이라고……?”

“허어…….”

플레이어SAT-K가 가리산에서 전조 현상을 잡아내 근방에 있는 디바이스에 경보를 보낸 모양이다.

‘전조 현상이 발생했으니 흑막과 관련된 건 아닌가…….’

파삭.

홀로그램에 뜬 메시지를 읽고 있으니 수풀 저편에서 함근형 선생님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속초 쪽에서 지원 요청이 와서 조금 늦었습니다.”

그런 함근형은 혼자가 아니었다.

“응? 옆에 있는 학생은 누구지, 근형이 자네 제자인가?”

“제 제자는 아닙니다. 이능이 너무 강력한 탓에 마침 강원도에 있던 제 쪽으로 얘기가 왔습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 보호하기 위해 데려왔습니다.”

함근형이 끌고 온 인물은 도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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