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40)
“저는 괜찮아요! 멀쩡한데요! 할 일이 있는데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된다.”
도시후가 함근형 선생님의 말씀에 반박했지만, 내 담임 선생님의 단호함에 막혔다.
‘전혀 멀쩡해 보이지 않은데.’
쑥 들어간 눈과 그 밑의 눈 그늘.
파랗게 질린 입술.
흠뻑 젖은 머리카락 위에 얹어진 수건.
어딜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린아, 내 뒤로 와.”
“어…….”
도시후의 범상치 않은 또라이력을 느낀 송대석.
그는 민그린이 대답하기 전에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뒤로 숨겼다.
그 와중에도 도시후는 도망치려고 함근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네.’
그래 봤자 미쳐 날뛰는 0반 선배들도 함부로 개기지 못하는 은광고의 학생부장.
그 함근형 선생님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안녕하세요, 함근형 선생님. 도시후가 무슨 짓을 했나요?”
내가 인사를 하자 도시후가 그제야 나를 인식한 듯 놀란 얼굴을 했다.
‘오늘 내가 온다는 걸 아셨을 테니 여기로 데리고 오신 거겠지. 야구장 건이나 선상 파티 건을 파악하고 계시니 나와 도시후가 아는 사이라는 걸 알고 계셨을 거야.’
강원도 쪽에 도시후를 제압할 만한 인력이 없었더라도 서울에서 지원을 불러 인계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래도 함근형 선생님은 굳이 이 홍천의 가리산까지 이놈을 끌고 왔다.
또래에다 지인인 나와 대면시킬 작정이었던 거다.
“오늘 오전, 속초해양경찰서를 경유해 설악해맞이공원의 관광안내소에서 지원 요청이 왔었다.”
함근형 선생님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설악산 입구의 해안변, 한때 내물치(內勿淄)라 불리던 설악해맞이공원.
아침부터 짧은 머리의 남고생이 멍하니 해송(海松) 아래에 앉아 있는 걸 안내소 직원이 목격했다.
‘곧 기말고사니까 머리라도 식히러 온 건가?’
직원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남고생이 겉옷만 벗고는 다짜고짜 바다에 뛰어들었다.
6월의 동해 수온은 평균 14도에서 19도 사이.
‘요새 괴상한 수행법을 쓰는 플레이어나 과격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트리머가 많은데…… 그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학생을 염려한 안내원.
그는 곧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도시후를 발견하고 기겁해 구조에 나섰다.
그리고 이는 반복되었다.
“반복이요?”
“그래. 처음에는 관광안내소 앞, 다음은 외옹치 해변, 속초 해변, 청호 해변, 등대 해변……. 사람들이 말리니 해안선을 타고 북쪽으로 이동해 다시 뛰어들었다.”
도시후는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건가.
“그냥 뛰어든 게 아니에요.”
“수영할 수 있었나? 그런데 그런 것 치곤…….”
“아뇨, 수영은 못 하는데요. 그냥 근거는 없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시후의 저러한 기행은 근거 없는 자신감 탓이었나 보다.
이쪽을 경계하며 지켜보던 송대석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되물었다.
“뭐라고?”
“이만큼 실패했으면 성공할 때도 됐잖아요.”
도시후가 정신이 나간 소리를 하고 있었다.
“진짜 이번이 마지막! 지금 지르면 뜰 수 있을 거예요. 아, 거의 된 것 같아요! 저를 바다로 보내 주세요. 이번에야말로 첫 수영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시후가 진짜 수영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놈이 도박하면 TC 그룹이고 뭐고 다 날려 먹을 거란 건 확실해졌다.
이 광기 어린 또라이력에 모두가 잠시 입을 다물었을 때.
“지가 또라이라는 걸 길게도 설명하네.”
송대석이 객관적인 사실을 읊으며 침묵을 깼다.
분위기가 싸늘해진 걸 감지한 도시후가 시무룩한 표정을 했다.
“비행 스킬이나 아이템 없이 자신의 의지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걸 투신자살이라고 하잖아. 지금 저놈이 하는 짓이 그거 아니야. 수영도 못 하는 놈이 6월 초 바다에 들어가? 몇 번이나 빠졌다 구조되는 걸 반복한다고? 꼴에 저 또라이가 플레이어라 일반 사람은 말리지도 못하잖아. 대한민국 유수의 인력이 지금 저 새끼 하나 때문에 낭비되고 있는데. 이게 또라이가 할 짓이 아니고 뭐냐.”
송대석이 도시후가 했던 대사보다 몇 배는 길게 팩트로 폭력을 가하자, 도시후는 더더욱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대석아……!”
도시후의 또라이력에 압도되어 있던 민그린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송대석을 말렸지만, 이미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이후였다.
“도시후의 집이나 학교에 연락하면 일이 커질 것 같아 우선 내가 맡겠다고 이야기했다. 따로 연락할 곳은 없냐고 물었더니 입을 다물더구나.”
함근형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했다.
“지금 도시후 찾는 애가 있어서요. 연락할게요.”
내가 홀로그램을 전개하자 도시후가 어물어물하다가 물었다.
“……수혁이한테 연락하려는 거야?”
“주수혁한테는 나중에 연락할 거야.”
“……그럼 원우 형?”
말하는 꼴을 보니 도시후는 내가 장남욱에게 연락하려는 걸 알고 이러는 것 같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메시지를 작성했다.
[나] 도시후 발견함.
메시지는 곧바로 기독 처리되고 답변이 왔다.
[장남욱] 어디야?
[장남욱] 좌표 보내 줘. 바로 갈게! 아니, 지금 이쪽으로 오는 중이면 엇갈릴 수도 있잖아. 어떻게 하지, 기다려야 할까?
[장남욱] 아니야, 지금 시후는 오다가 또 딴 길로 샐지도 몰라.
[장남욱] 의신아, 우선 어디인지 알려 줘. 지금 잡으러 갈게.
메시지를 보니 장남욱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전해졌다.
나는 홍경복 화백을 보며 말했다.
“도시후 친구가 마중 오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요. 이쪽 좌표를 알려 줘도 될까요?”
“허허, 오늘 손님이 많이 오겠구나. 그린이 친구가 편한 대로 하려무나.”
‘그린이 친구’라는 단어에 송대석이 불쾌해하는 표정을 했지만, 민그린이 옆에서 빤히 바라보니 입을 다물었다.
“남욱이가 온대?”
“그래.”
도시후는 당장이라도 내 디바이스를 박살 내고 싶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뒤에서 살벌한 표정을 한 함근형 선생님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이 얼마나 든든한지 새삼 느끼며 편안한 마음으로 좌표를 전송했다.
“밖에서 이야기하지 말고 다들 들어가자꾸나.”
홍경복 화백의 말에 도시후를 포함해 전원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초여름이었지만 산속은 서늘했던 탓에 해수욕하다 온 도시후에겐 가장 볕이 잘 드는 자리와 뜨거운 대추생강차가 주어졌다.
“사전에 말도 없이 죄송합니다, 어르신.”
“허허허, 아니야. 오랜만에 복작거리는 걸 보니 아주 좋구먼.”
홍경복 화백은 도우려는 우리를 제지하고 차갑게 식힌 생강꿀차를 직접 내어 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조의신 학생이 근형이 제자에, 우리 그린이랑 대석이 반 친구라고?”
자리에 앉은 홍경복 화백이 부드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송대석은 ‘대석이 반 친구’라는 표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지만.
“네, 어르신. 제가 맡는 0반 부반장입니다.”
“허허허, 아주 똘똘하게 생겼어.”
수상해 보인다, 지능이 낮아 보인다는 말만 듣다가 저런 말을 들으니 속이 간질거렸다.
“사부님, 사실 쟤가 저한테 아이템 카드랑 AR 글래스를 선물해 줬는데요…….”
민그린은 내가 그녀에게 ‘인어의 숨결이 담긴 물방울’과 AR 글래스를 준 사건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홍경복 화백의 시선이 더 부드러워졌다.
특히 반 아이들이 전부 민그린을 위해 전용 마커를 달아 줬다는 설명을 들을 때는 눈물도 조금 글썽이기까지 했다.
“그래? 0반은 다 말썽꾸러기라고 들었는데 근형이 제자라 그런지 다 착하고 좋은 애들밖에 없구먼!”
“네! 반 애들 다 착해요!”
역시 고명한 화백들은 잘 알고 계셨다.
우리 반은 다 착한 애들밖에 없었다.
“부반장도 똘똘하고 착한 애로 아주 잘 뽑아 놨어. 허허허.”
“네! 수상하지만 좋은 부반장이에요!”
대화의 흐름이 바뀌길 기다렸지만, 화백들의 덕담이 끝나질 않았다.
어쨌건 수상하다는 말은 빠지지 않았지만, 결국 칭찬밖에 하질 않으니 미묘한 기분이었다.
‘그 질문을 꺼낼까.’
마침 여기에 있는 인물들은 전부 신뢰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게임 속에서 흑막과 대항하다 사망한 이들밖에 없었으니까.
“화백님께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그래, 말해 보아라.”
“이무기의 귀천을 그리게 된 계기에 관해 묻고 싶어요.”
“친한 형님이 부탁하셨던 일이었지. 꼭 그리고 싶은 게 있다고 갑자기 나를 불러내더구나.”
홍경복의 시선이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향했다.
젊은 시절의 무쇠팔 송만석과 홍경복 화백, 그리고 선도부회관과 학생회관 사이에 있던 비밀 통로의 홀로그램에서 본 얼굴이 있었다.
옛 한국 지부장이었다.
“이것저것 주문이 많았지. 밑그림에 들어갈 이무기의 몸체는 내 손가락을 기준으로 정확히 세 치여야 한다. 색을 입힐 때는 은주(銀朱)에 자화(紫花)를 섞어 손수 염료를 만들어야 한다…….”
홍경복 화백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가득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종이였지. 내가 한사코 싫다 해도 ‘이계 종이’에 그려 달라고 조르더구나. 결국엔 성 형 고집에 내가 꺾였지만…… 그렇게 갈 줄 알았으면 따지지 말고 빨리 그려 줄 것을.”
이계 종이?
그런 아이템도 있었나.
홍경복이 하는 말을 하나하나 새겨듣고 있을 때.
“……!”
갑자기 함근형과 홍경복 화백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봤다.
두두두…….
귀를 기울여 보니 멀리서 엔진 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여기는 에어버스와 에어택시 주행이 금지된 지역인데 무슨 소리지. 일반 지상용 이동 수단으로 오기에는 산세가 험한데.”
“엔진 소리가 너무 커. 아, 헬리콥터 소리 같아.”
송대석과 민그린도 눈치챈 것 같다.
도시후는 이 소리의 정체를 아는지 표정을 딱딱히 굳혔다.
그 표정을 보고 나도 대충 정체가 짐작이 갔다.
“나가 보죠.”
밖으로 나가 보니 오두막 근처에 떠 있는 대형 틸트로터가 보였다.
틸트로터의 프로펠러로 발생한 바람에 초목이 다 흔들리고 있었다.
“너희들은 뒤로 물러나라. 어르신, 들어가 계십시오.”
“허허,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네.”
함근형 선생님과 홍경복 화백이 우리 앞에 서서 바람을 가렸다.
두 플레이어는 비틀거리지도 않고 정면으로 풍압을 견뎌 내고 있었다.
‘두 분도 저 틸트로터의 정체를 눈치챈 것 같네.’
이계 금속으로 덮인 틸트로터의 표면엔 플레이어 군사관학교의 휘장이 크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군사관학교의 실습용 틸트로터인 듯했다.
곧 틸트로터의 문이 열리고 아이템 카드를 든 이들이 차례차례 하강하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건 빡빡머리를 한 다섯 명의 사관생도였다.
파앗! 파팟! 쉭!
이들이 아이템을 이용해 안정적으로 지면에 착지하자 틸트로터는 허공에서 몸체를 틀어 사라졌다.
두두두두두……!
멀어져가는 엔진음과 약해지는 풍압.
그 사이로 장남욱이 바람처럼 튀어나와 도시후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도시후, 이 또라이 새끼야!”
퍽!
장남욱이 욕을 하는 건 손민기 사건 이후로 처음 봤다.
도시후는 피하려 하긴 했으나 그 같잖은 도전으로 힘이 빠져 있던 탓인지 결국 처맞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보자마자 사람을 때리면……!”
퍼억!
도시후가 말을 마치기 전에 반대쪽 뺨을 주먹으로 또 처맞았다.
보는 사람도 아주 후련하게 만드는 일격이었다.
빡! 퍼억!
도시후가 비틀거리자 다른 빡빡머리들이 등장해 그를 패기 시작했다.
그들은 순서를 사전에 정해 둔 건지 장남욱에 이어 차례대로 배, 뒤통수, 등짝 등을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어쨌든 죽을 정도로 패지는 않았기에 함근형은 모르는 척 말리지 않았다.
“애들이 아주 활기차구먼. 차 다섯 잔 더 준비해야겠네. 허허.”
집 앞에서 벌어진 일방적인 난투극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홍경복 화백.
그는 한국의 거장다운 대인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