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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45화 (14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45)

점심시간.

1학년 0반에 정식으로 부담임이 생기고 아홉 번째 출석자가 생긴 기념적인 날.

거기에 더불어 은광고에 새로 정교사 자리에 부임한 플레이어 대선배로 인해 학교가 떠들썩했다.

조례가 끝나기 무섭게 문새론이 홍경복 화백과 탁 도인을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해 점심시간에 기사를 뽑아냈다.

[후계 양성에 나선 은거 고수들, 은광고에 집결하다]

이 헤드라인은 미묘하게 틀린 점이 있었다.

‘은광고가 아닌 1학년 0반에 집결했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 같은데.’

조례를 마치고 여전히 북적거리는 교단을 본 맹효돈이 이런 발언을 했었다.

—“부담임인 용까지는 그렇다 쳐도, 왜 저 할배…… 아니, 신규 교원 소개를 우리 반 교실에서 하냐.”

맹효돈의 물음은 지당했다.

교실 밖으로 나서기 전 그 말을 들은 함근형 선생님이 답하길.

—“1학년 0반 교실에서 인사를 하고 싶다고 어르신들께서 요청하셨다. 아직 정정하신 어르신들이니 ‘할배’라는 표현은 자제하도록.”

답변을 들은 맹효돈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두 할배들에게 죄송하다 했다.

‘……할배라 부르기 미묘하긴 해.’

부담임과 학생에 5천이 넘은 이가 있으니 100세도 안 된 두 어르신은 아직 젊은 편이니까.

하여튼 이 정정한 교사들께서는 1학년 0반에 있는 제자와 예비 제자를 위해 은광고에 온 게 확실했다.

그중 한 분은 제자를 위해 오늘 범죄자가 될 뻔했고, 남은 한 분은 그 예비 제자에게 사이비 취급받는 중이지만.

‘짧은 시간 사이에 자세히 인터뷰했네.’

기사를 확인해 보니, 홍경복 화백이 교원 자격을 취득한 과정에 답한 게 눈에 띄었다.

[제자들을 떠나보낸 후, 교육이 무엇인지, 스승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다. 교육 대학원을 다니며 새로 배움의 기회를 얻어 식견을 넓히고……]

‘민그린 사건을 계기로 교사가 되기로 하신 거구나.’

게임 속에서나 올해 스승의 날 전까지는 민그린이 등교하지 않았으니 쓸 기회가 이제야 생긴 거겠지.

기사를 스크랩했을 때, 새 기사가 하나 더 올라왔다.

[미술부와 동양화 소모임 극적 화해]

기사 내용은 홍경복 화백이 미술부 고문을 맡고, 동시에 동양화 소모임도 같이 봐주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민그린도 동아리 활동을 시작할 것 같은데…….’

조례가 끝난 후, 홍경복 화백이 나를 불러내 전용 마커의 구매처와 사용법을 물었다.

민그린이 사람을 만날 기회를 늘려 주기 위해 자신들이 맡은 동아리 소속원들에게 전용 마커를 배부할 듯했다.

‘동아리 활동은 민그린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야. 홍경복 화백님이 곁에 있으면 허튼짓을 할 놈도 없을 거고, 비싼 화구도 학교 측에서 지원해 줄 거고…….’

무엇보다 사람을 만날 기회가 늘어난다.

그것도 그녀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을.

미술계 동아리 소속원 놈들은 조금 맛이 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민그린의 광팬이니까.

‘AR 글래스를 벗고 나한테 그림을 그려 줄 날이 머지않았구나.’

이 기사도 스크랩하며 댓글을 확인해 봤다.

[이제야 쟤들 싸우는 꼴 안 보겠네.]

[미술계 동아리 애들 오늘 울었음ㅋㅋㅋ]

[겨우 울고 끝남? 우리 동아리에 홍경복 화백급 고문이 오면 온갖 추한 짓 다 할 수 있음.]

[↑그래서 안 오는 듯.]

[나 같아도 움. 나 현악부 소속인데 교사로 권제인 선배님 온다? 울면서 정문에서 총동아리회관까지 삼보일배로 이동한닼ㅋㅋㅋ]

푸른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이 나오자 댓글의 흐름이 급변했다.

[↑댓글 캡처함! ㅋㅋㅋㅋㅋ 이렇게 말이 씨가 되고 은광고를 울면서 삼보일배로 이동해야 하는 멍충이가 하나 생기게 되는데…….]

[권제인 선배님 은광고에서 명예 교사직 제안했을 때도 거절했음요.]

[권제인 선배님 제자 안 받기로 유명함ㅇㅇ.]

[알못아ㅋㅋㅋㅋ 그런 일은 절대 안 일어남ㅋㅋㅋㅋ! 제자도 안 받는데 교사는 무슨; ㅉㅉ]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권제인이 직접 이능 바이올린과 활까지 준 유일한 제자가 1학년 0반에 있다.

‘……권제인이 명예 교사직을 제안받았다고? 실적을 고려하면 이상하진 않긴 해.’

하나뿐인 제자, 조카가 은광고에 다니고 있는 지금 제안하면 어떨까.

팀 마스터인 권제인이 교내에 상주하는 건 어렵겠지만, 가끔 와서 권레나가 학교생활하는 것도 보고 친구도 보면 좋지 않을까.

은광고의 전력이 상승하기도 하고.

‘조만간 울면서 삼보일배로 이동하는 놈이 하나 생기겠네.’

시계를 확인하니 점심시간이 시작된 지 어느 정도 지나 있었다.

이쯤 되면 전국의 고등학생 대부분이 점심 식사를 마쳤을 거다.

‘그럼 그걸 확인해 볼까…….’

나는 메시지창을 열어 주소록에 등록된 고등학생 두 명을 소환했다.

[조의신님이 유상훈님과 도시후님을 초대했습니다.]

[나] 야.

기독 표시가 하나 떴다.

[유상훈] ?

[나] 장남욱한테 무슨 일 있어? 연락이 안 되는데.

[유상훈] ㅇㅇ

물음표를 찍으며 ‘왜 불렀냐?’라고 의사 표현을 하던 유상훈도 장남욱 소식이 궁금했는지 ㅇㅇ를 찍고 기다렸다.

우리가 남긴 메시지는 곧 기독 표시로 바뀌었다.

[도시후] 아…… 좀 있다가 연락하면 받을 거야. 디바이스도 돌려받은 것 같으니까.

장남욱은 디바이스를 압수당했던 건가.

그 성실하고 꼬장꼬장한 놈이 메시지를 안 읽고 씹었던 이유가 그거였나 보다.

[나] 무슨 일 있었어?

[유상훈] ㅡㅡ?

도시후는 주저하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도시후] 남욱이가 많이 혼났어.

그 이후로 상황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이들이 군사관학교로 복귀했을 때, 훈육장교가 연병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훈육장교면 대위 이상이잖아.’

사관생도의 훈육을 담당하는 훈육요원.

훈육요원은 크게 훈육관과 훈육장교로 나뉘고, 훈육관을 담당하는 건 소령, 훈육장교를 맡는 건 대위였다.

[도시후] 나랑 사이가 별로 안 좋던 애가 있었는데, 걔가 나를 찔렀어.

입교 전부터 고된 기초군사훈련을 함께 견뎌 낸 사관학교 생도들.

그들은 단합이 잘 되는 편이었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도시후가 모난 놈은 아니지만 잘난 놈이니 열등감을 폭발시키는 종자에게 당한 거겠지. 그래도 이 정도 일은 조용히 넘어갈 법도 한데…….’

하지만 수석 도시후를 엿 먹이기 위해 찌른 놈은 찌를 대상을 아주 잘 고른 모양이었다.

역대 군사관생도 중 가장 우수한 기수로 꼽히는 장남욱의 기수는 아직 한 번도 기합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기를 꺾어 두기 위해 기합 줄 기회만 엿보던 훈육장교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 훈육장교가 사실관계를 확인할 때,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장남욱이 사고를 쳤다.

—‘제가 진로 상담 문제로 시후를 압박했습니다. 그 결과 시후가 스트레스로 무단 외출을 하게 됐습니다. 동기 중에 무단 외출자가 나오면 기수장인 제 평가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여…….’

장남욱은 아주 뻔뻔하게 그럴싸한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말하던 타이밍도, 말투도 그렇고 악역 그 자체였다는 장남욱.

결국, 다른 사관생도들이 다 보는 앞에서 기수장인 장남욱이 단독으로 기합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가 책임질 테니 괜찮을 거라고 한 건 이런 거였나!’

이놈은 손민기 사건 때 끝까지 증언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렇고, 에너미는 무서워하면서 사람과 사회는 안 무섭나 보다.

[도시후] 그러다 징계실로 끌려가게 됐어…….

실컷 공개 기합을 받은 장남욱은 이능 사용 봉인구를 착용하고 징계실로 끌려갔다 한다.

지나치게 큰 벌에 도시후를 비롯한 같은 기수의 생도들이 반발하고 사실을 밝히려 했지만, 지금 항의한 이들을 군기교육대로 보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월요일이 되도록 장남욱이 징계실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이번 사건을 훈육장교에게 찌른 놈의 이름이 생도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돌며 대련 신청이 폭주하는 등 초긴장 상태가 이어지던 중.

[도시후] 화백님이 도와주셨어.

[유상훈] ?

월요일 첫 수업이 시작하기 전, 너덜너덜한 상태의 장남욱이 등장했다고 한다.

별 세 개를 달고 있는 장성과 그와 같은 계급인 플레이어 군사관학교장과 함께.

‘대한민국의 플레이어군 중장의 수는 다섯 명이 안 되는데…… 그중 둘이 같이 왔다고?’

대위가 아무리 각을 잡고 사관생도생을 족치려 해 봤자 중장이 직접 ‘애 너무 잡지 마라’라고 넌지시 한마디 던지면 알아서 길 수밖에 없을 거다.

장남욱을 구출해 온 3스타 둘.

그들은 홍경복 화백에게 얘기를 들었다며 1학년 사관생도들에게 스승의 날 매스 게임도 잘 봤다고 덕담을 몇 마디 던진 후 사라졌다고 한다.

‘사관생도들한테 말을 열심히 거시더니…… 화백님이 신경 써 주셨구나.’

나도 개인적으로 화백님께 감사하다 인사를 해 둬야겠다.

도시후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유상훈] 사과는 했냐?

유상훈이 문장을 친 건 오랜만에 봤다……!

결과적으로 도시후의 폭주에 장남욱이 죽어난 셈이니 유상훈이 저렇게 반응할 법했다.

[도시후] 아직…… 지금 의무실에서 쉬는 중이야.

[유상훈] ㅡㅡ

[도시후] ㅠㅠ…….

저렇게까지 자신을 감싼 장남욱을 보고 도시후도 느낀 게 있겠지.

저러고도 도시후 저놈이 장남욱이 제 응원 안 해 준다고 징징거리면 내가 패 주러 갈 거다.

*    *    *

방과 후, 신문부실.

홍경복 화백과 탁 도인과 관련해 후속 기사를 내느라 분주한 와중.

“두 거장이 우리 학교에 올 줄이야.”

기분이 좋아 보이는 황지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 원인이 너라고 생각하는데.”

“뭐래.”

게임 속에서는 없던 전개니까 내가 한 행동들의 결과물이긴 할 거다.

두 사람이 움직인 직접적인 이유는 민그린과 맹효돈 때문일 테니, 발뺌해도 문제없을 거다.

황지호도 내가 그렇게 답변할 줄 알았다는 듯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문제없이 잘라 냈다. 재생 시술을 받을 금전적인 여유도, 신용도 없다는 건 확인해 뒀어. 정보 조작도 완벽해. 이 건은 ‘사고’로 기록될 거다.”

그 악플러의 손을 잘랐구나.

황지호가 어느 인간의 손을 자르고 흔적도 모두 지웠다는 말에 두렵거나 찝찝한 감정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잘했어.”

내 사고 방식도 인간의 기준에서 벗어나게 된 걸까.

후련하고 고마운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고맙다.”

내 반응을 지켜보던 황지호가 놀란 얼굴을 했다.

고맙다고 할 줄은 몰랐나 보다.

이번 건은 호족과 황지호의 이득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오로지 그의 호의에 의해 이루어진 거니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게 당연한 건데.

한 방 먹은 얼굴을 한 황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아, 나 오늘 스터디 모임 늦는다.”

“왜?”

“약속이 있어서.”

본격적인 기말고사 준비 기간에 들어가기 전, 체스 대국 요청 건을 전부 처리할 생각이었다.

‘백호군과의 대국도 대비해야지.’

백호군과 황지호의 체스 기보.

그 기보로 확인한 백호군의 체스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루 이틀 둔 솜씨가 아니야. 대국하기 전까지 감을 살릴 필요가 있어.’

백호군과의 수련 덕에 상보심금파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좋은 대국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덤으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청한 대국 요청도 응해 줄 수 있으니 일거양획의 한 수였다.

그렇게 부 활동을 마치고 대국 상대를 만나러 체스 소모임의 부실로 이동했다.

조금 일찍 온 건지 아직 체스 소모임 부원들이 몇 명 보였다.

“어, 의신이가 여기에는 웬일이에요?”

“안녕.”

체스판을 정리하고 있는 사월세음과 한이가 보였다.

두 사람은 스테일메이트에서 하는 초보자 체스 강습을 여전히 성실히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대국을 하러 왔다고 밝히자 두 사람이 관심을 표현했다.

“아하, 스테일메이트에서는 사전에 예약해 두면 대국할 장소와 체스를 빌려준다고 했었죠.”

“관전해도 돼?”

“저도 보고 싶어요! 스터디 모임엔 좀 늦는다고 연락해 둘까요?”

“그래, 대국 끝나면 같이 가자.”

체스 소모임 부실에 마련된 대국실로 이동해 상대를 기다렸다.

오늘의 대국 상대는 학생회 소속 2학년 곽경구였다.

“늦었지. 미안하다.”

곽경구는 학생회 업무가 많았는지 약속한 시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관전자가 있는데 괜찮아?”

“네, 괜찮아요. 이쪽도 관전자가 있어서…….”

그의 뒤로 아주 잘 알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내 제자 염준열이었다.

그는 내일 대국할 예정이었는데 향상심 높은 내 제자가 나를 연구하기 위해 관전하러 왔나 보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사월세음이 염준열 쪽으로 와 밝게 인사했다.

“염준열 선배님,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염준열의 얼굴이 사월세음을 보고 살짝 굳었다.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많이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고인물인 내가 이렇게 가까운 위치에서 저 변화를 놓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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