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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48화 (14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48)

송대석과 민그린이 싸워?

이건 일종의 세계관, 캐릭터성 붕괴가 아닐까.

두 사람이 서로에게 험한 말을 하는 광경은 상상도 안 간다.

의견이 충돌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꼭 나쁘다고 볼 수 없지만 싸웠다는 건…….

“저기, 많이 심각하게 싸웠나요……?”

내가 답 없는 생각에 잠긴 사이 사월세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어차피 소문이 날 것 같은데 괜히 이상하게 꼬인 이야기를 듣느니 직접 말해 주는 게 나을까. 대석아, 말해도 돼?”

김유리가 물어봤지만, 세상 다 잃은 얼굴로 쭈그려 앉아 허공을 보는 송대석은 대답이 없었다.

“아, 그냥 말해. 이 새끼가 미술부 넣어 달라고 들이대다가 까이고 저렇게 됐다.”

“미술부?”

맹효돈이 답답해하며 전모를 밝혔다.

오늘부터 부 활동을 시작한 홍경복 화백과 민그린.

당연히 송대석도 뒤를 따랐지만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을 받아 줄 수는 없다. 견학은 언제든지 환영한다.’라고 두 사제가 입을 모아 말했다 한다.

그리고 미술부 입부가 거부된 송대석이 거세게 반발하는 과정에 여러 사람과 마찰이 있었다 한다.

“하여튼, 그러다가 그 새끼가 우리 반 교실에서 할…… 화백님하고 미술부 부장 선배한테 지랄했다. 걔는 열심히 말리고. 그게 1차전이었어.”

오늘 방과 후 교실에서 일찍 이동했었는데, 내가 나가고 그런 일이 있었던 건가.

그런데 1차라는 건 2차와 3차도 있다는 건가?

“난 현악부 가느라 그건 못 봤는데…… 그런 일도 있었구나. 난 유리네 집에 왔을 때, 그린이가 자리 세팅 도우니까 일 시키지 말라고 대석이가 화내는 것밖에 못 봤어.”

“하하하, 지금 그린이가 저녁 만드는 중인데 그린이의 귀중한 손에 물 묻히지 말라고도 화냈지…….”

권레나와 김유리가 말한 게 2차전, 3차전인가 보다.

“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건 어쩐지 싸웠다기보다는 그냥…….”

‘단순한 염장질로 들리는데요?’

라고 자동 완성되려는 말을 착한 사월세음이 꾹 참는 게 보였다.

“그린이가 계속 방해하면 대석이 몫 밥은 안 만들어 줄 거라 했어. 우리가 도와준다고 했는데도 그린이가 혼자 저녁 준비하는 중이야.”

김유리의 설명이 끝나자 현재 상황을 이해했다.

지금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인 결과, 민그린이 혼자 부엌에서 분투하는 중이고 남은 아이들은 거실에서 대기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틀린 말이 아닌지 송대석이 이쪽을 흘끗 보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유리가 머뭇거리다가 물어봤다.

“있잖아…… 오해하는 거면 미안한데, 혹시 대석이랑 그린이는 사귀는 중이야……?”

“와, 와……!”

“네? 당연히 사귀는 중 아니었나요?”

아이들이 얼굴을 붉히며 반응하자, 멍하니 있던 송대석이 울컥한 얼굴로 답했다.

“나랑 그린이가 사귀든 말든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야!”

이 말을 들은 순간 방에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가지각색으로 변했다.

“뭐야, 쟤네 안 사귀는 중이었냐?”

“어떡해, 아직인가 봐!”

“사귀지는 않고 결혼한 사이, 라는 전개는 없겠죠?”

“아픈 곳을 찌른 것 같아…… 대석아, 미안.”

“……난 대답 안 했는데 왜 안 사귄다고 단정 짓는 거야!”

송대석은 얼굴을 시뻘겋게 바꾸며 항의했지만, 애들은 딱한 것을 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야 사귀는 중이었다면 송대석은 ‘나와 그린이는 사귀는 중이니까 앞으로 우리 사이에 들이대지 말고 꺼져!’라고 반응했을 테니까.

아이들의 짠한 눈빛에 송대석은 더욱 화가 나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들은 그린이랑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주제에 왜 친한 척을 하는 건데! 우리 사이에 끼어들려고 하지 마, 너희들이 아무리 들이대 봤자 그린이는 내…….”

“송대석, 이 바보 멍청이 돌머리야!”

민그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송대석이 반응하고, ‘돌머리’라는 단어에 찔리는 게 많은지 맹효돈도 순간 움찔거렸다.

“바보 멍청이 돌머리 해삼 말미잘! 왜 맨날 우리 반 아이들이랑 선배님들한테 화내? 우리 반 애들한테 큰소리 내지 마! 송 할아버지한테 다 이를 거야!”

요즘은 초등학생도 잘 안 쓰는 수준의 비방이 날아왔다.

그러나 민그린과 마찬가지로 대인 관계와 사람 간의 교류가 초등학생 수준에 멈춰 있던 송대석은 충격을 크게 받은 듯 입을 떡 벌렸다.

“아, 그린아. 이번 건은 내가 대석이한테 실수한 거야. ……무례한 질문을 했어.”

“……뭐라고 했는데?”

“음…… 아, 저녁 준비 끝났어? 이제 먹자! 반찬은 집에서 만든 거 가져온 거야?”

김유리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수습했다.

한편, 여러 가지 의미로 멘탈을 얻어맞은 송대석은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 탓에 식탁에서 원하는 자리도 못 잡아 민그린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게 되어 고통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송대석의 수난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석이랑 따로따로 갈래. 앞으로 등교도 하교도 따로 할 거야.”

스터디가 끝나고 해산할 때, 민그린이 폭탄선언을 했다.

“내가 나가고 10분 있다가 출발해. 따라오면 내일 대석이랑 하루 내내 말 안 할 거야.”

“……그린아!”

송대석이 붙잡았지만, 민그린은 무정하게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스킬을 사용해 달리는 그녀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송대석은 당황하면서도 디바이스로 10분짜리 타이머를 가동했다.

“저 새끼 좀 불쌍하네.”

“하하하하!”

맹효돈이 코멘트를 날리고 황지호가 처웃었지만, 송대석은 그저 민그린이 사라진 방향과 타이머에 찍힌 숫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    *    *

기숙사에서 잠들기 전, 은호의 후예들이 보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내용물은 사진.

두 팀으로 나뉘어서 게임을 하는 모습이었다.

‘셋이니까 둘로 팀을 나누기 곤란했을 텐데.’

사진을 잘 보니 첫째 은서호 옆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잘 보니 무선 컨트롤러를 쥐고 있기까지 했다.

‘……천익산의 산령이잖아!’

사진 밑으로 메시지가 추가로 날아왔다.

[은서호] 형이 사 주신 게임기로 산령이랑 게임 했어요. 사진은 백호 님이 찍어 주셨어요!

[은이호] 산령 게임 너무 잘해요……. 계속 졌어요. ㅠㅠ

산령이 백호군에게 끌려간 후 어떻게 됐나 신경 쓰였는데, 저택에 눌러앉아 애들과 게임이나 하고 있었나 보다.

‘산령을 많이 경계했는데 후예와 놀게 하다니……. 후예와 진족에게는 산령이 해를 못 끼치나?’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으면 아마 접근도 시키지 않았을 거다.

백호군이 사진을 찍어 준 걸 보니 옆에서 지켜보고는 있는 것 같지만.

‘산령과 천익산, 안광, 천단수, 초상우주……. 이것도 조사해 봐야 하는데.’

그렇게 머릿속에서 정보를 정리하다 평소처럼 꿈 없이 잠들었다.

*    *    *

다음 날.

송대석이 민그린 몰래 뒤를 따라 등교하다 걸리는 바람에 둘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송대석이 몇 번 말을 걸려고 했지만 민그린이 철저하게 입을 다무는 바람에 결국 그는 풀 죽은 채로 교실 한구석에 찌그러졌다.

김유리가 솔선수범해 나서서 송대석에게 말을 걸긴 했지만, ‘어’, ‘아니’, ‘몰라’라는 단어만을 사용해 맥없이 반응했다.

송대석은 민그린이 이렇게 자신을 대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민그린이 송대석한테 진심으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은데.’

어제 민그린이 준비한 메뉴에는 송대석이 좋아하는 아몬드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

아몬드 흑미 필라프, 아몬드와 호두 강정…….

애호박 샐러드에도 얇게 썰어 구운 아몬드 슬라이스가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오늘 아침, 소란을 피워서 미안하다고 들고 온 간식도 아몬드 쿠키였다.

‘송대석도 자기 세계를 갖는 게 좋지 않을까. 민그린도 그런 생각을 하고 저러는 것 같은데.’

방과 후, 폐쇄 구역의 구교사 교실.

디바이스로 협회 웹페이지에 들어가 인턴 모집 공고를 확인하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드르륵—.

구교사의 낡은 미닫이문이 열렸다.

“스승님, 안녕하세요,”

염준열은 밝고 예의 바르게 응했지만,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잠을 못 잤는지 눈에 실핏줄이 서 있었다.

“저, 오늘 수업은…….”

“오늘은 수업하려고 부른 거 아니야.”

나는 홀로그램으로 새로 개통한 디바이스 코드를 띄웠다.

코드의 나열을 보던 염준열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디바이스에 내 코드를 입력하며 환히 웃던 염준열이 점점 힘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정말 뭐가 있는 모양이다.

“무슨 일 있어?”

“네?”

“네가 체스를 둔 걸 봤어.”

나는 코드 옆에 홀로그램을 하나 더 끼웠다.

어제 나와 염준열이 둔 체스 기보였다.

기보를 본 염준열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 기보가 종합 게시판에 올라왔었죠. 스승님도 보셨구나……. 이런 한심한 경기를…….”

“꾸중하려고 부른 게 아니야. 걱정돼서 온 거야.”

“스승님이 제 걱정을……!”

염준열은 미소를 짓다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러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기다려 줬더니 심호흡을 하던 염준열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저한테는 스승님이 걱정할 만한 가치가 없어요.”

제자로 받은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요.”

염준열은 나를 찾던 과정을 설명했다.

폐기된 자료에서 ‘사월세음’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그를 찾아가서 대화를 나눈 것도.

그 대화를 통해 나를 찾으면 사월세음의 말을 전하기로 한 것도.

“스승님이 내 주신 과제를 해결해서 제자가 되고, 또 제자가 되고 나니 수업을 듣는 게 즐거워서 세음이가 한 부탁을 완전히 잊고 있었어요.”

뭐야, 겨우 그런 것 갖고 이렇게 풀이 죽었나.

제자로 받는 과정에서 여러 일이 있었으니까 잊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수는 누구나 해. 괜찮아.”

“하지만 그 이후에 제가 한 생각은 실수가 아니에요!”

그 이후에 한 생각?

“스승님께서 주신 전서구 아이템으로 바로 알려서 연락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아이템을 쓰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염준열의 손에 아이템 카드가 한 장 들려 있었다.

SR---급 소모형 아이템, ‘메시지 없는 전서구’.

일회성 소모품이니까 아깝다고 여길 수도 있는 건데.

그는 죄책감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아깝다는 생각만 한 것도 아니에요. 세음이의 이력은 스승님도 알고 계시죠?”

염준열은 사월세음에 관해 조사했었나 보다.

용족의 정보력을 동원하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을 거다.

“이 땅의 마지막 왕조의 전령, 그 후계자인 세음이는 매우 희귀한 존재예요. 저보다도요. 용족의 후예는 드물지만 몇 분 더 계시고, 진족의 후예까지 범위를 넓히면 훨씬 많죠. 하지만 세음이는 딱 한 명밖에 없어요. 앞으로 다시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래, 그 아이는 희귀한 재능을 갖고 있어. 그런데 그게 왜?”

내가 이해하지 못하자 염준열이 더 괴로워하는 얼굴을 했다.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세음이도 스승님께 가르침을 청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는 스승님이 더 가르칠 만한 게 많을지도 모르고…… 제자 자리를 빼앗길 것 같고 그게 싫어서…… 또, 이런 생각들을 하는 제가 너무나 추하고 한심해서…….”

염준열은 점점 말을 더듬다가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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