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55화 (15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55)

종례를 앞둔 시각.

반 아이들은 잠시 후 있을 빅 이벤트를 기대하며 들떠 있었다.

맹효돈만 빼고.

“여기 ‘1-0’ 모양 자수 위에 붙은 게 이계 보석이지? 와…… 이능파 흘리니까 반짝거린다.”

“이계 보석은 동문 쪽 수제 액세서리점에서 따로 주문한 거야! 예산 문제 때문에 저렴한 거로 사서 출력은 약하지만.”

“홀로그램 애플리케이션 사 뒀으니까 출력은 그걸로 커버하면 돼.”

“…….”

얇은 응원 수건을 펼치며 들뜬 얼굴로 말하는 아이들 사이에, 체육복 차림의 맹효돈이 멍하니 있었다.

주인공인 맹효돈을 내버려 두고 아이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응원 수건 잘 뽑혔네요……! 의신이 체스대회 응원할 때도 이런 거 준비하면 좋았을 텐데요.”

“우린 단체로 응원하는 게 처음이기도 했고 그때는 사전 준비할 때 의신이가 없었잖아. 의신이가 좋은 의견 많이 내 줬어.”

“기념품이 될만한 물건이 남으면 좋을 것 같아서.”

2학년 0반 선배놈들이 권제인 호연관 내한 공연 당시 단체 관람 기념으로 착용했던 엠블럼을 보고 거기에서 따온 아이디어긴 하지만.

“효돈아, 응원 수건 앞면하고 뒷면 디자인을 다르게 인쇄했는데 어느 쪽이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드는 쪽을 메인으로 해서 들고 있을게.”

“몰라. 둘 다 똑같아 보이는데.”

김유리의 질문에 맹효돈이 응원 수건 앞, 뒷면을 대충 살펴보곤 툭 던졌다.

그 대답에 불만스러워하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색 배합이 다르고 여기 작게 새겨진 자수 내용도 다 달라요! 앞면은 효돈이의 중학교 시절 수상 이력이고, 뒷면은 고등학생 돼서 토벌한 에너미의 등급들과 토벌 날짜고요.”

“앞면은 네놈의 왼쪽 옆얼굴이고 뒷면은 오른쪽 옆얼굴 그림이 들어갔잖아! 우리 그린이가 신경 써서 그린 거니까 당연히 다른데 뭔 소리야.”

“대석이 말 대론데. 얼굴 자체는 대칭형이긴 한데 머리가 삐죽삐죽해서 왼쪽 오른쪽 옆얼굴 인상이 달라. 디테일을 살리느라 고생했는데…….”

“어…… 미안.”

사월세음과 두 소꿉친구의 협공에 맹효돈이 정신을 못 차렸다.

“야, 왜…… 부반장 응원하러 갈 땐 숨기고 했는데 나 때는 왜 대놓고 가냐. 그리고 이걸 대체 언제 다 준비한 건데!”

맹효돈의 질문에 반 아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답했다.

“스터디 모임 중에 효돈이가 자리 비웠을 때. 몰래 준비하는 거 참 스릴 있었지.”

“의신이 때와 다르게 신문 기사가 크게 뜰 거라고 들었어. 헤드라인에 효돈이 이름이 박혀 있는데 우리가 응원 안 간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서프라이즈로 하자는 의견도 있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절충해서 당일 시합 전에 밝히기로 한 거예요.”

“의신이는 시합 중에 응원을 봐도 침착할 것 같은데 효돈이는 놀라서 당황하다 실수할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반 아이들의 의견에 동감했다.

맹효돈은 저를 향한 악의와 시기에는 익숙해도 호의와 응원에는 낯설어했으니까.

“또 준비하다 들킬 바에는 그냥 처음부터 가는 게 나아.”

“저번에는 누구 때문에 들킬 뻔했지만요.”

사월세음과 한이의 시선이 황지호를 향했다.

“안 들켰잖아.”

황지호는 뻔뻔하게 답했다.

저 뻔뻔한 놈 뒤로 민그린이 가만히 응원 수건을 내려다보며 얘기하는 게 보였다.

“……오히려 응원 안 오는 분위기면 좀 서운해서 대련에 집중이 안 될 거야. 나 같으면.”

“그린아, 네가 대련에 나가면 항상 내가 응원하러 갈게.”

“대련에도 흥미가 있어?”

“당연하지.”

송대석이 염장력이 다분한 대사를 뱉어 반 아이들이 동요했다.

그 말을 들은 민그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잘 됐다. 오늘 효돈이 대련에 사람 많이 오니까 난 못 가. 대석이가 직접 보고 와서 얘기해 줘.”

눈치 봐서 내뺄 준비를 하던 송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역시 민그린은 제 소꿉친구의 성정을 잘 이해하고 잘 다룰 줄 알았다.

‘처음엔 송대석의 막 나가는 태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데. 민그린이 성장했어!’

내가 속으로 감탄하는 사이 수업종이 울렸다.

오늘의 수업종은 오케스트라부가 직접 연주한 주페의 경기병 서곡(Light Cavalry Overture).

헝가리의 경기병의 군대 생활을 표현한 곡으로 트럼펫과 호른, 트롬본의 활기찬 도입부가 인상적이었다.

모든 수업을 마무리하는 종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곡이었다.

‘오늘 이벤트를 의식한 선곡이구나.’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맹효돈도 이 수업종의 의미를 아는지, ‘방송부 놈들…….’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는 안 들리지만 늘 수업종 정보를 챙겨보는 한이도 홀로그램을 보고 피식 웃었다.

*    *    *

방과 후, 3학년 구역.

3학년 구역 시설은 1, 2학년 구역 시설에 비해 크고 견고한 게 보통이었다.

플레이어의 성장은 고등학교 재학 중에 급격히 이루어져 고3 시절에 절정을 찍는 데다, 대한민국 고3이 받는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 정서적으로도 불안했다.

그 탓에 학생들과 교직원, 인근 주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고3 전용 설비에는 더 돈과 시간을 퍼부어야 했다.

지금 우리가 온 3학년 전용 제2체육관이 그런 설비 중 하나였다.

“의신이가 처음 대관한 곳보다 더 큰 곳을 빌리게 됐네. 어쩌다 3학년 구역 체육관을 빌리게 된 거야?”

“3학년 0반 이벤트도 동시에 치르게 돼서 그래. 그놈들이 귀신같이 알고 와서 기왕 하는 거 같이 더 크게 하자고 하더라.”

스태프 명찰을 착용하고 있는 신문부 부장과 부부장이 체육관 앞에 홀로그램 포스터를 설치하며 말했다.

체육관 벽면은 오늘 이벤트에 출전하는 인물들의 이력이 빼곡하게 적힌 홀로그램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저건 황지호 짓인가.’

이벤트를 알리는 현수막을 장착하고 하늘 높이 떠 있는 애드벌룬.

그 표면에는 은광고의 교표가 새겨져 있었다.

현수막에 쓰여 있는 문구를 보던 문새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3학년 0반은 수식어가 없어서 좀 심심한데…… 음.”

임연화의 앞에는 ‘강한 담임’이라는 말이 붙었는데.

0반, 그것도 3학년이라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있긴 했지만 심심하긴 했다.

3학년 취재를 맡기로 한 3학년 신문부원들이 면목 없어 하는 얼굴들을 했다.

“0반 놈들이랑 상의를 하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되더라.”

“수련하느라 바쁘대. 쟤들 담임이랑 싸울 때는 앞에 수식어 함부로 붙이면 안 돼. 지고 나면 기사에 나오는 수식어 때문에 재수가 없어졌다고 다 우리 탓을 하거든.”

우기환 일당은 신문부에게 그런 진상을 떨었나 보다.

왜 선배들이 우주의 기운과 공중정원의 수수께끼를 풀겠다고 목을 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제갈재걸 선생님이 왜 안 오시지? 리허설 해야 하는데.”

“제갈쌤 의상 들고 간 2학년 부원도 아직 안 돌아왔어.”

오늘 이벤트들의 주관은 신문부.

심판 역을 맡을 교사는 당연히 신문부의 고문인 제갈재걸이었다.

그때였다.

“단체 사진은 찍었으니까 이제 들어가자.”

“아직 개인 사진 안 찍었는데요!”

“맞아! 오랜만에 멋있는 옷 입었으니까 기념사진 많이 찍어야 함요!”

금찬솔과 왕찬솔의 씩씩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2학년 0반의 제갈재걸 처돌이들이 새 양복을 빼입은 제갈재걸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심판이 입을 옷치고는 튀긴 하지만, 잘 어울리네.’

이번 이벤트를 맞이해 신문부 명의로 제갈재걸의 심판용 복장을 신문부의 비품으로써 조달했다.

제갈재걸은 처음에 새로 옷을 조달하는 걸 거부했지만, 시험에 지친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신문부 부장이 열변을 토하니 넘어갔다.

“야, 너희들 뭐해! 사진은 끝나고 찍어.”

“뭔 소리임? 사진은 끝나고 또 따로 찍을 건데?”

“맞아! 제갈쌤이랑 뒤풀이도 갈 거임.”

“무슨 소리야, 뒤풀이는 신문부끼리 가야지!”

“제갈쌤은 우리 담임 선생님인데?”

“맞아. 게다가…….”

그때 왕찬솔이 앞으로 튀어나와 교복 셔츠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나는 스폰서입니다’라고 매직으로 대충 적은 티셔츠가 나왔다.

“나를 찬양해라!”

“스폰서님 찬양해!”

“제갈쌤은 우리 담임 선생님인 데다, 이번 이벤트는 부반장네 ‘느루’에서 스폰서를 하니까 우리 2학년 0반의 승리다!”

대체 무슨 승리인지 모르겠지만, 신문부 부장은 진한 패배감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뒤풀이는 다 같이 가자꾸나. 사진도 나중에 찍고.”

“……네!”

“네!”

제갈재걸이 한마디를 하자 즉시에 사태가 수습되었다.

약간의 해프닝 끝에 리허설이 시작되고 무사히 관객 입장까지 마친 후.

불이 꺼진 3학년 전용 제2체육관 정중앙에 마련된 팔각형 형태의 옥타곤 스테이지.

그 위로 제갈재걸이 올라가자 스포트라이트가 하나 켜졌다.

‘2학년 0반 놈들이 왜 기념사진에 목을 매는지 알겠네.’

청렴하고 청빈한 플레이어인 제갈재걸이 저런 버건디 슈트가 어울릴까 걱정도 했는데, 기우였다.

화려한 색의 정장을 입고 스테이지에 선 제갈재걸은 옷을 멋지게 소화해 내고 있었다.

“……그럼 이벤트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제갈재걸이 그렇게 외치자 체육관의 외벽이 일제히 투명하게 변화했다.

거대한 애드벌룬과 현수막이 보이는 하늘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시야가 폭죽으로 가득 채워졌다.

펑! 퍼펑!

“세상에…… CG가 아니라 진짜 폭죽이야!”

“무슨 이런 이벤트에 폭죽을 터뜨려!”

“와, 여러분의 학교 운영비가 터지고 있습니다!”

“황명재단의 직원들이 뼈 빠지게 번 돈이 그냥 하늘에서 터지고 있습니다!”

“대체 저게 다 얼마야……. 어차피 우린 돈 안 내고 학교 다니니까 상관없지만.”

관객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옆에서 스태프 명찰을 단 황지호가 흡족해하는 얼굴로 폭죽을 바라보고 있었다.

폭죽이 멎고 나자 제갈재걸이 대전자 소개를 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건 강한 담임 임연화였다.

“무슨 종목이든 괜찮아. 덤벼!”

학교 로고가 새겨진 교직원용 체육복을 입은 임연화가 호기롭게 외쳤다.

아직 3학년 0반 놈들은 옥타곤 스테이지 위로 올라오지 않은 상태였다.

“종목을 공개하겠습니다.”

[대결 종목: 1 대 1 씨름]

거대한 홀로그램이 떠오르고 제갈재걸이 간결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떤 종류의 이능도,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도 금지입니다. 이능파가 감지되면 반칙패 처리하겠습니다. 임연화 선생님은 3학년 0반 전원을 한 명씩 상대하게 됩니다.”

제갈재걸의 설명에 관객석이 술렁였다.

저 규칙에 따르면 순수하게 신체적 힘으로 임연화가 3학년 0반을 전원 제압해야 하는 셈이었다.

제갈재걸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무대 위로 체육복 위에 샅바를 착용한 3학년 0반 놈들이 나타났다.

‘기말고사 때 공부도 안 하고 신문부의 인터뷰도 거절하고 뒤에서 몸이나 키웠나!’

그들은 숨어서 벌크업을 했는지 전원 어딘가 우락부락해진 인상이었다.

“양 측의 요구 조건을 확인하겠습니다. 3학년 0반이 승리할 시, 방학 동안 임연화 선생님은 0반의 우주의 기운에 대항하는 노동력으로서 성실하게 일할 것.”

정신 나간 조건이었다.

제갈재걸은 대본을 읽으면서도 당황한 눈치였지만, 침착하게 다음 줄도 읽어 내렸다.

“임연화 선생님이 승리할 시, 3학년 0반은 방학 동안 전원 담임이 직접 주관하는 부트 캠프…… 네? 아니, 보충수업에 전원 참가할 것. 맞습니까?”

그 말에 스테이지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진심인가 보다.

“임연화 선생님,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제갈재걸이 샅바를 건네며 말했다.

임연화는 샅바를 받아 들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외쳤다.

“콜!”

그 얼굴에 제갈재걸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어쩐지 철저하게 불리한 조건인 임연화가 아니라 3학년 0반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시합은 일방적이었다.

“야, 황지호.”

“뭐지.”

“……임연화 선생님은 인간이야?”

“그래, 인간이다. 몇 번이나 재확인해 봤어.”

임연화는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3학년 0반 놈들에게서 호쾌하게 승리를 따내며 포효했다.

“이래 갖곤 재미가 없네. 둘씩 덤벼!”

임연화가 즉시에 제안했고, 3학년 0반 놈들은 굴욕감에 떨면서도 승률을 올리기 위해 바로 응했다.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탈인간급이야…… 진족 중에서도 고릴라족이나 그런 게 아닐까?”

“하도 진족 취급을 많이 당해서 연구하다 보니 진족 관련 과목을 전공하셨대.”

신문부원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임연화 선생님이 정말 인간이 맞긴 한가 보다.

우리가 떠드는 와중에 임연화가 왼쪽 오른쪽 양손에 한쪽씩 0반 놈들의 샅바를 잡아 허공에 내던지는 게 보였다.

“0반 담임은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서. 함근형, 제갈재걸, 임연화. 너도 잘 알겠지만 전부 강한 플레이어로 뽑아 뒀지. 그리고 내 눈으로 확인해 봤지만, 셋 다 인간이야.”

황지호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임연화를 관찰하며 그렇게 말했다.

“우리 학교 교직원들을 전부 체크해 봤어?”

“아니. 이 몸은 바쁘시다. 500이 넘는 교직원을 전부 만나 볼 시간은 없어. 보통은 서류상으로 체크하고 끝이지.”

그 바쁜 놈이 옆에서 씨름 구경이나 하고 있나.

“아. 그러고 보니…… 저 셋과도 비견될 만한 실력을 갖춘 교사 중에서 아직 실제로 만나보지 못한 교사가 있군.”

“누구?”

“공청훤.”

공청훤 선생님이 아직 이놈에게 걸리진 않았구나.

그리고 곧 대결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0반의 반장과 부반장의 협공도 무색하게 끝나고, 그들은 모래판 위에 맥없이 뻗고 말았다.

“임연화 선생님의 승리!”

“아자아아아!”

제갈재걸이 선언하자 임연화가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그 밑의 모래판과 링 밖에선 3학년 0반 놈들이 엎어져 있었다.

분한 얼굴로 엉엉 우는 놈들이 대다수였다.

링을 한 바퀴 돌며 관객의 환호에 응해 승리의 세리머니를 마친 임연화가 처참한 상태의 반 아이들을 바라봤다.

갑자기 임연화가 제갈재걸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아 들어 말했다.

“울지 마, 얘들아.”

그 목소리는 정이 넘치는 평범한 교사 그 자체라 위화감이 엄청났지만, 마음 어딘가를 찡하게 울리는 진심이 묻어났다.

“선생님…….”

임연화의 다독이는 목소리에 그들이 더 울상을 지었다.

그녀는 자애롭게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울면 근손실 온다. 거기서 더 약해지면 어쩌려고 그래.”

그 말에 눈물이 쏙 들어갔는지, 우기환을 비롯한 3학년 0반 일당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죽었던 투기가 다시 솟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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