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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82화 (182/925)

39. 던져진 동전 (1)

민그린은 홀로그램 하나를 띄워 놓고 패닉에 빠져 있었다.

홀로그램에 떠 있는 건 주소록 중 ‘우리 반’ 폴더.

그 안에 있는 이들 중 수련회에 참가하지 않은 한이를 제외한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았던 탓이다.

‘다들 ‘지금은 연결이 닿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는 게 이상해.’

권레나와의 화상 통화가 갑작스럽게 중단되었을 때, 민그린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부자연스럽게 연결이 끊어지긴 했지만, 권레나가 다시 걸어 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전화나 메시지가 오지 않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껴 연락을 해 보다 이 상황에 놓였다.

권레나에 이어 김유리, 김유리 다음에는 송대석을 비롯한 남자애들 그리고 함근형 담임 선생님.

심지어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석모도 청소년 수련원 사무소와 플레이어 협회의 등대에도 연락을 넣어 봤지만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았다.

‘우리 반 애들한테, 선생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민그린은 그렇게 직감했지만 경찰이나 협회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괴롭힘을 당하고 큰일에 휘말렸던 민그린은 학생의 신고에 공권력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명확한 긴급 사태라고 보기 어려우니 바로 출동하지 않을 거야. 기껏해야 관계 부서에 전달해서 확인해 보겠다는 답변을 주고 며칠 뒤에나 연락을 하겠지. 그럼 늦어!’

하물며 심야에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움직일 공권력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민그린의 말이라면 별 근거가 없더라도 당장 들어 줄 강력한 유명 인사들이 있긴 했지만, 선뜻 이 늦은 시각에 별 근거도 없이 연락을 하기 어려웠다.

‘사부님이랑 송 할아버지는 나 때문에 번거로운 일을 많이 겪으셨어. 지금도 나를 편애하네, 지연에 따라 움직이네 하는 말을 많이 듣는데 함부로 연락할 수는 없어.’

그렇게 생각했지만 민그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두 분을 움직일 만한 그럴싸한 구실이 필요해!’

그런 결론에 도달한 민그린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플레이어 위성이었다.

‘위성 기록에 뭐가 있을지도 몰라.’

플레이어 협회의 홈페이지에 접속한 민그린은 석모도와 그 근방의 위성 기록을 살폈다.

그러나 별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일부 수치가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 게 눈에 띄었으나 모두 상정 가능한 오차 범위 내에 있었다.

‘이걸로는 안 돼……!’

함근형 선생님과 송대석 그리고 반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걱정으로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도 걱정되었지만 가장 걱정하는 건 송대석이었다.

‘대석이는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 내가, 내가 보낸 건데……!’

그때, 불현듯 민그린의 머리에 송대석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좀 거슬리는 게 있었어.

—거슬리는 거?

—저번에는 석촌호수 쪽이 좀 이상했는데. 얼마 전에는, 키모폴레이아 근처가 이상했어.

그렇게 말하며 송대석은 위성 관측 자료를 보여 줬었다.

수백 줄에 달하는 관측 자료를 본 민그린은 이렇게 말했었다.

—숫자가 표준 기준을 조금 어긋나 있긴 하지만 전부 허용 범위에 있는 것 같은데…….

송대석은 어떻게 하면 민그린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다 답했다.

—수치 하나하나만 따지면 그래. 하지만 모든 수치가 허용 내라 해도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는 건 이상한 일이야.

—이상한 일?

—비유하자면…… 그래.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50%야. 어느 쪽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동전이 앞면으로 떨어지든, 뒷면으로 떨어지든 정상이지.

—그거야 그런데…….

—하지만 천 번을 던져도 앞면만 나온다고 하면 어떨까.

송대석이 독립 시행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중이라 판단한 민그린은 별 고민 없이 답했다.

—(1/2)^1000 . 거의 0에 가까운 숫자네.

—맞아. 그럼 만 번을 던졌을 때 앞면, 뒷면이 정확하게 5천 번씩 나오긴 했지만, 앞면만 5천 번이 나오다가 그 뒤로는 뒷면이 5천 번 나올 확률은?

—계산기 없이 정확한 값 차이를 말할 수 없지만, 방금 나온 값보다는 0에 가까울 것 같은데. 훨씬 더 작은 숫자가 나올 거야.

—맞아. 그래서 이상한 거야!

송대석은 홀로그램을 수십 개 띄우며 말했다.

—플레이어 협회의 위성 기록만 보면 찾기 어려울지도 몰라. 하지만 위성이 관측하는 자료 외에도 기상청, 국립 수산 과학원, 한국 천문 연구원, 국립 해양 조사원…… 아, 정부나 협회 말고도 사설 연구소나 대학원의 연구실, 국내외의 천체 관측소, 해외에서 발표되는 데이터를 종합해서 초 단위로 끊어서 살펴보면 결론이 나와.

—무슨 결론?

—아까 말한 동전 던지기처럼 누가 조작이라도 한 것 같은 ‘이상한 점’이 보인다는 답.

위성에 미쳐 있는 송대석은 위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연관된 관측 자료를 모두 끌어모아 홀린 것처럼 읽어 대곤 했다.

민그린의 눈에 그것들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로만 보였지만, 그렇게 따지면 자신이 그리는 그림도 단순한 선과 색의 조합일 뿐일 거라는 생각에 송대석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애썼다.

송대석도 그런 민그린의 마음을 알고 그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력해 왔다.

‘찾았다.’

디바이스 메시지 이력을 거슬러 올라가자, 송대석이 제작한 웹 애플리케이션의 링크가 나왔다.

세계에 산재하는 연구소들이 발표하는 방대한 관측 자료를 송대석이 고안한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해 ‘이상한 곳’을 찾아내는 소프트웨어였다.

민그린이 통신이 끊긴 시간대와 석모도 전역을 범위로 지정하자, 데이터를 분석한 애플리케이션이 연산을 시작했다.

그 결과.

석모도의 한 지점에 붉은 점이 나타났다.

‘……석모도의 수련원이 있는 장소야!’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다.

결과를 확인한 민그린은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목표하는 곳은 대영웅 송만석이 있는 옆집.

동시에 자신의 스승인 홍경복 화백에게도 메시지를 넣었다.

민그린은 자신이 AR 글래스를 착용하지 않은 것도 잊고 달리기 시작했다.

*    *    *

[나] 지금 확인했어.

[나] 무슨 일 있어?

민그린에게 답장을 보냈지만 무반응이었다.

‘답변이 없네. 자는 걸까.’

급한 일일지도 모르니 전화하는 게 나을까.

하지만 전화를 걸기엔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게 무사한 거냐?”

적호와 김신록, 용제건과 합류한 직후.

황지호가 처참한 광경을 보며 격분했다.

“무사합니다.”

적호는 뻔뻔하게 답했다.

번민의 곰이 일으켰다는 웅족들의 자폭의 여파를 뒤집어쓴 그의 모습은 무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피.

여기저기 베인 옷.

손등, 얼굴 등의 피부에 남은 화상 자국.

어딜 봐도 멀쩡하지 않았다.

‘예견된 지옥’의 효과로 회복 아이템도 쓸 수 없어서 더욱 그랬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무사한 건가. 번민의 곰이 이 정도로 괴뢰술(傀儡術)을 늘리다니. 이 흉내꾼과 달리 나이를 헛으로 먹진 않았군. 그렇게 너를 다치게 할 정도라면.”

“이 정도면 자가치유력으로도 문제없이 회복 가능한 수준입니다.”

“문제가 없다고? 두 놈 다 하는 꼴이…….”

그 두 놈이면 적호와 용제건을 말하는 건가.

용제건도 옷이 다 탄 게 화상을 입은 것 같았지만, 그는 회복 아이템을 썼는지 상처가 매우 빠르게 수복되고 있었다.

“……조의신, 왜 관계없는 척을 하는 거냐. 네 얘기를 한 거다.”

저번에도 나와 적호가 사고 회로가 비슷하다는 요지의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계속 관계없는 척을 하기로 마음먹고 고개를 돌렸다.

황지호가 재차 잔소리를 하기 전에 다행히 적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켜야 할 대상은 무사합니다. 그러니 무사하다고 전했습니다.”

그 말대로 김신록은 무사했다.

옷에 그을음 하나 없는 게 웅족들의 자폭의 여파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적호와 용제건이 왜 저렇게 심하게 다쳤나 했더니, 김신록을 보호하다가 저렇게 됐나 보다.

“……그랬군요. 황호 님의 명령이었습니까?”

부상은 전혀 없는데 허옇게 뜬 얼굴로 유령처럼 서 있던 김신록이 말을 쏟아 냈다.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적호 님과 이 용이 저 때문에.”

“신록아.”

용제건이 김신록의 말을 끊어 버렸다.

“호족의 사정은 모르지만, 내가 황호 이사장 씨의 명령을 따를 것 같아? 이사장의 명령은 학교 업무에 한해서만 따르고 있는데.”

삐이이! 삐이!

싸해진 분위기 속.

디바이스가 정신없이 알람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위성 경보를 수신하기 시작한 디바이스가 뒤늦게 이계 경보와 공략 완료 안내문을 전송하고 있었다.

상주산 쪽의 두 개의 이계는 공략 완료되었으며, 기장섬의 이계는 공략 중이라는 안내였다.

“적호, 용제건, 웅족의 흔적을 지우고 천자(天子)로 가라. 이 흉내꾼을 감시하며 대기하도록. 김신록…… 너는 나와 함께 움직인다.”

“늦게라도 합류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네. 나중에 보자, 신록아. 의신이도.”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그렇게 말하고 해산했다.

적호와 김신록은 끝까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    *    *

통신이 재개되자 곧 상황이 수습되기 시작했다.

여력이 남은 교사진과 학생들은 에너미 토벌과 이계 공략에 참가했다.

협회의 지원이 도착했을 땐 이미 석모도에서 에너미의 반응이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의신아, 지호야! 무사해서 다행이다!”

“야, 사월세음은 왜 업혀 있어! 어디 다친 건 아니지?”

반 아이들과 합류한 건 천자(天子) 위였다.

수습을 맡게 된 함근형 선생님과 도중에 참가한 명예 교사 둘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은 곧바로 귀갓길에 오르게 되었다.

0반에 배정된 선실의 침대 위에 사월세음을 눕히며 말했다.

“그냥 자는 중이야. 다른 애들은?”

“유리는 의무실에서 자는 중이야. 외상은 없지만 이능파 상태는 정밀 검사를 해 봐야 알 것 같다는데…… 대석이는…….”

권레나가 말꼬리를 흐렸다.

부상을 입고 이능독을 뒤집어썼으니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을 거다.

이능독 그 자체만으로는 죽음에 이르지는 않겠지만, 해독제가 없으니 유상희의 광림을 빌려야 빠른 완치가 가능할 거다.

‘결국, 변수를 다 통제하지는 못했어…….’

사망자는 없었지만, 다친 사람들이 나왔다.

이계 공략 과정에서 자잘한 부상을 입은 학생들.

나비령과의 가호를 끊어 내기 위해 폭주하고 탈진한 김유리.

이능독에 당한 2반 여학생들과 노영미, 송대석.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다가 변명하듯 생각했다.

‘흑막이 불러온 이계의 난이도도 게임 속보다 훨씬 높았어. 그래서 주수혁이 생각보다 고전하고, 청소년 지도사들의 일탈로 황지호가 늦고…….’

그렇게 변명을 늘어놔도 다친 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나?

완벽하게 보호할 수는 없었나?

그 생각을 하니 마치 체스를 둘 때처럼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 같이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한때는 어떻게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 부반장이 그때 정신 차리고 있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응! 그때 부르러 와 줘서 고마워, 효돈아.”

잠든 사월세음의 침대 옆에 앉아 있던 권레나와 맹효돈이 목소리를 낮춰 대화를 하는 게 들렸다.

“그렇다는데?”

내 옆에 서 있던 황지호가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결코 네 책임이 아니야. 이번 건의 실패 원인을 본다면, 패착은 나일 거다. 제시간에 내가 그 장소에 갔다면 부상자의 수는 한자리로 줄었겠지.”

저 오만한 노친네가 제 탓을 하다니.

참으로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사월세음이 뒤척거리다 눈을 떴다.

“응? 여기는 어디죠? ……저, 저기! 의신이는!”

“여기에 있어.”

비몽사몽인 사월세음이 말실수를 하기 전에 바로 대답했다.

사월세음은 내 옷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내가 다쳤던 걸 알아채 펑펑 울어서 달래는 데 고생했다.

권레나가 함께 사월세음에게 말을 걸어 주지 않았더라면 은광구에 도착한 후에도 계속 눈물을 그치지 못했을 것 같았다.

맹효돈도 가끔 툭툭 말을 걸긴 했지만, 평소보다 자주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그럼 다들 일단 기숙사로 돌아가는 거야?”

“아, 저는 삼촌이 오신다고 했어요.”

우리는 은광구 소재의 황명 재단 병원에서 전원 검진을 받은 후, 귀가 허락을 받았다.

우리 반에서는 김유리와 송대석을 제외하고 전원 집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병문안은 당분간 안 되겠지?”

“기자들도 개 많이 몰려와서 안 되지 않냐? 적어도 며칠은 지나야 할 것 같은데.”

“그린이는 아직 연락이 안 됐는데, 한이는 바로 이쪽으로 오고 싶어 하더라. 다 같이 병문안 가고 싶다.”

착한 우리 반 아이들은 벌써 면회 갈 생각부터 하는가 보다.

황지호를 족쳐서라도 최대한 빨리 병문안이 가능해지도록 해야겠다.

“내가 알아볼게. 면회가 가능해지면 같이 오자.”

“응!”

“그래.”

그렇게 권레나, 맹효돈 두 사람과 기숙사로 돌아가려 했지만.

은광고 교문을 통과하기 직전, 황지호가 붙잡았다.

“조의신, 넌 우리 집에 들렀다가 가라.”

지금?

정리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이틀 연속 밤을 지새운 데다 광림을 써서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다.

내일 가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신수가 보여 줄 게 있다는데.”

“갈게.”

바로 마음을 바꿨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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