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86화 (186/925)

39. 던져진 동전 (5)

충격적인 기상을 마친 후, 올무를 품에 안고 디바이스를 켰더니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는 게 보였다.

[금찬솔] 후배님 수련회 망했다면서. 실화임?

첫 메시지부터 돌직구가 날아왔다.

망한 건 사실이긴 하지만 원래 팩트로 맞으면 더 아픈 법이다.

하필 처음 확인한 메시지방이 2학년 0반의 선배놈들이 있는 곳이라니.

[왕찬솔] 실화일걸.

[왕찬솔] 경구 옹한테 들었는데 그 양반이 구라 칠 양반이 아님.

[금찬솔] 그건 그렇네. 어쨌든 무사귀환ㅊㅋ!

[왕찬솔] ㅊㅋ!

사월세음과도 말을 텄다더니 나름 수련회에 간 후배들을 걱정해 줬나 보다.

그런데 곽경구의 호칭은 ‘옹’인가?

곽경구의 노숙한 외모를 고려하면 ‘늙은이 옹(翁)’도 어울리긴 했다.

다음으로 확인한 메시지도 우리 학교 2학년 학생이 보낸 것이었다.

[염준열] 스승님, 안녕하세요.

[염준열] 이번 주는 날씨가 계속 좋을 예정이라고 해요. 낮 기온도 예년에 비해 선선한 편이라 밖에 나가기 좋아요.

[염준열] 오늘은 스케줄이 없고 날씨도 좋으니까 스승님만 괜찮으시면 학교에서 수업받는 것도 가능해요!

[염준열] (스탬프)

태양 아래에서 주먹을 불끈 쥐는 홍룡 스탬프가 붙어 있었다.

염준열이 보낸 메시지는 하나 더 있었다.

[염준열] 수련회 얘기 들었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스승 쪽에는 평소대로 날씨에 대해서, 후배 조의신 쪽으로는 괜찮냐고 묻는 메시지들이었다.

역시 내 제자는 예의도 바르고 후배도 걱정해 주는 착한 아이였다.

양쪽에 답변을 하고 발신자 목록을 죽 확인해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 학교 사람들이네.’

수련회에 참가하지 않은 학교 사람들은 거의 메시지를 보냈다.

신문부 사람들과 박승현, 성시완, 마진승에 천동하까지.

협회와 호족의 압력으로 지금까지 대대적인 보도를 막고 있지만, 학교에서 소문이 도는 건 어쩔 수 없던 탓일 거다.

그래서 학교나 협회 관련 인물이 아닌 데도 귀신같이 알고 보낸 이 인물의 메시지는 유독 눈에 띄었다.

[장남욱] (링크)

[장남욱] (링크)

[장남욱] (링크)

…….

…….

…….

장남욱이 보낸 링크들을 전부 석모도에서 관측된 이계의 발생과 소멸, 기상 이변 현상 등을 짧게 보도한 단신이었다.

일부러 이렇게 찾아내기도 힘들었을 텐데.

[장남욱] 의신아, 상훈아. 이거 너희들이 수련회로 갔다는 곳 아니야? 무슨 일 있었어?

[유상훈] ㅇ

[장남욱] 진짜구나! 에너미와도 싸운 거야?

[유상훈] ㅇ

[장남욱] 어디 다치진 않았어?

[유상훈] ㄴ

[장남욱] 다행이다. 의신아, 너는 별일 없었어?

[유상훈] ㅇ?

대화라기보다는 그냥 일방적으로 장남욱이 떠드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유상훈이 메시지를 자음 하나로 끝내는 게 아니라 무려 문장부호도 추가한 걸 보니 내 소식이 매우 많이 궁금하긴 했나 보다.

천자(天子)에서 합류했을 때는 각자 자기 반을 챙기기 바빠 제대로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나] 나도 무사해. 걱정해 줘서 고마워.

웅족의 오른팔, 흉내꾼을 상대하며 조금 다치긴 했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유상훈] 옷에 피 묻은 거 봄.

그러나 유상훈이 아주 긴 메시지를 남기며 산통을 박살 냈다.

[장남욱] 뭐? 어쩌다가 다친 거야!

[장남욱] 의신아! 누누이 강조했지만, 네 이능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무리하면 안 돼. 사람 목숨 가는 건 한순간이야! 그런데 옷에 피가 묻을 정도였는데 무사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한참 동안 메시지창은 장남욱의 잔소리로 꽉 찼다.

유상훈은 가끔씩 ‘ㅋ’ 한 글자를 입력하며 구경질을 했다.

메시지들을 전부 확인하고 아침을 먹으러 이동했을 때는 정신적으로 기진맥진해져 있었다.

“좋은 아침이다, 조의신. 왜 지쳐 보이지? 잠자리가 별로였나?”

“아니, 그냥.”

아침 메뉴는 또 황지호가 직접 요리한 단호박 타락죽과 그릴드 수박 샐러드였다.

제철 음식으로 만든 가벼운 음식을 먹고 나니 기운이 났다.

아침 분 영약을 먹는 올무를 응원하고 아이들과 산령과 어울려 게임을 하다 보니 0반 아이들과 약속한 시각에 가까워졌다.

“의신이 오빠…… 나가세요?”

“의신이 형…… 방학이잖아요. 더 놀다 가시지.”

끄응…….

현관 앞.

은호의 후예들과 올무가 섭섭한 얼굴로 배웅을 나왔다.

“조의신은 약속이 있다. 다음을 기약하도록.”

나와 함께 외출할 준비를 하던 황지호가 한마디 거들자 화살이 그쪽으로 쏟아졌다.

“황호 님과 일하러 가시는 거예요?”

“황호 님이 의신이 오빠한테도 일 많이 시켜요?”

“황호 님…….”

왕! 왕왕!

“……너희들,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황지호는 그동안 저지른 태만 탓에 본인도 바쁘고, 주변 사람도 바쁘게 굴리는 중이다.

전후 사정은 몰라도 총명하고 착한 아이들과 올무는 황지호가 주변 이들을 굴리는 걸 안타깝게 여겼나 보다.

자업자득이라 생각해 입을 다물고 황지호가 아이들을 달래는 걸 지켜봤다.

그걸 보고 있으니 아침에 쌓인 피로가 상쾌하게 풀렸다.

*    *    *

황명은광병원의 후문 앞.

반 아이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기숙사 소속인 맹효돈, 권레나, 한이가 병문안 선물로 ‘MITRON’에서 파는 쿠키 선물 세트를 두 개 들고 있는 게 보였다.

관리하기 어려운 꽃이나 과일을 피하고 유통 기한이 긴 식품을 골라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 말을 고려해 선물을 정한 것 같았다.

“저…… 의신아! 안녕하세요! 지호도 안녕하세요!”

어제는 기숙사에 머무르지 않았던 사월세음도 일찍 와 긴장한 어조로 인사했다.

아무래도 내가 ‘그 단어’의 인물이란 걸 아직 좀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얼굴이 별로 안 좋네.’

선물 세트를 힘주어 꽉 쥐고 있는 권레나.

나와 황지호를 보고 안심하는 한이.

다들 아직 입원 중인 김유리와 송대석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특히 맹효돈은 한숨도 안 잤는지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너 안 잤어?”

“……그냥.”

말하는 걸 보니 진짜 안 잤나 보다.

사건이 있던 날도 못 잔 주제에.

“도인이 안 와서…….”

설마 맹효돈은 은광고로 돌아온 이후 내내 탁거산을 기다린 건가.

‘일부러 맹효돈이 활약할 수 없는 장소에 보낸 보람이 있네.’

맹효돈을 주수혁이나 유상훈이 있는 곳에 보냈다면 이계 공략에서 대활약을 했을 거고, 송대석이 간 곳에 보냈다면 이능독으로 몸이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싸웠을 거다.

그럴싸한 실적을 남겼겠지만, 나는 맹효돈과 상극인 장소에 보냈다.

‘눈앞에서 김유리가 쓰러져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거야. 많이 분했겠지.’

반 아이들에게 정도 많이 들었을 맹효돈에게는 이제 싸울 이유가 생겼을 거다.

“미안! 좀 늦었어!”

짐을 잔뜩 싸 들고 온 민그린이 등장했다.

베개, 옷가지를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이 가득한 보스턴백을 들고 있는 게 송대석의 집에 들렀다가 온 모양이었다.

“그린아?”

“응? 왜? 빨리 들어가자.”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민그린을 바라봤다.

민그린은 AR 글래스를 쓰고 있지 않았다.

후드 모자는 쓰고 있었지만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흠.”

아이들이 그 사실을 지적하기 전에 홍경복 화백이 뒤에서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아, 안녕하세요.”

“그래, 수련회 얘기는 들었다. 고생 많았어.”

홍경복 화백이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말하자 아이들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민그린은 어색한 공기를 느끼고 변명하듯 말했다.

“플레이어 특별관 최상층 병동은 이능이 없는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된다고 들었는데, 대석이네 부모님은 이능이 없어서 사부님이랑 왔어…….”

민그린의 말을 들어 보니 홍경복 화백은 송대석과 민그린의 보호자 격으로 온 모양이었다.

전원 도착하자 황지호가 앞장섰다.

“비서를 대기시켜 놨다. 눈에 띄지 않게 의료진 전용 출입구를 쓰고 VIP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할 거야.”

“……음, 지호가 황명재단 이사장 친척이라는 게 새삼 실감이 나네!”

“맞아요…….”

“하하하하! 새삼스럽군!”

전원 권레나와 사월세음에게 동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황지호의 얼굴에 귀티는 흐르지만 하는 짓이 돌아이다 보니 위화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땡.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민그린이 가장 먼저 내렸다.

하지만 넓은 병동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바로 파악이 안 되니 달릴 수도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쪽이다.”

“빨리.”

황지호가 한 방향을 가리키자 송대석의 이름표를 발견한 듯 민그린이 빠르게 걷고 그 뒤를 홍경복 화백과 아이들이 따라갔다.

송대석이 입원한 병실은 엘리베이터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의 1인실이었다.

만약의 일을 대비해 의료진이 가장 자주 오가는 장소에 배치된 병실이었다.

쉬익—.

문을 열자 송대석이 보였다.

송대석은 전극과 바늘이 몸 여기저기에 연결된 상태였다.

EKG 모니터로는 산소포화도와 심전도를 체크하고, 이능파 감지기로 이능의 안정도를 확인하고, 인퓨전 펌프에 연결되어 약물을 주입받는 송대석은 누가 봐도 중환자였다.

툭.

“대석아……!”

가장 앞에 서 있던 민그린이 들고 있던 짐을 떨어뜨리고 송대석을 향해 달려갔다.

함부로 건드리면 뭐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지 양손을 명치께에 모아서 움켜쥐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눈을 감은 송대석을 내려다봤다.

“송대석 상태는 안정됐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수치상 정상이야. 유상희가 광림으로 아케아의 권능을 빌려 전부 치료했어. 저건 어디까지나 안전장치다.”

유상희에게 또 신세를 지고 말았다.

인원수가 많아서 광림으로 전원 치료해야 했으면 꽤 힘들었을 텐데.

“그럼 지금은 그냥 자는 중인 거지?”

“다행이네요…….”

“새끼, 사람 놀라게 하고 있어.”

다들 안심한 얼굴을 하고 민그린을 대신해 송대석의 짐을 정리했다.

병실이 넓었던 탓에 많은 인원이 오고 가도 여유가 있었다.

캐비닛에 짐을 모두 넣었을 때였다.

“잠깐.”

한이가 기척을 느낀 듯 송대석 쪽을 보며 말했다.

한이가 감지한 대로 송대석의 눈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대석아!”

민그린이 송대석의 이름을 부르자 눈을 몇 번 깜빡이던 그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린아?”

“대석아,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미안…… 미안해…….”

“……그린아! 왜 울어!”

아무것도 못 하고 송대석만 보던 민그린이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송대석이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아 당황스러운 중에 민그린이 울기까지 하니 더 패닉 상태에 놓인 것 같았다.

“대석아, 나도 그린이도 많이 걱정했단다.”

“어, 화백님?”

홍경복 화백이 천천히 상황을 설명해 주니 점점 송대석도 민그린도 안정되었다.

링거의 관과 이어지지 않은 손을 뻗어 민그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한참 달래던 중.

둘만의 세계에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서 있던 우리를 둘러보던 송대석의 시선이 내 쪽에서 멈췄다.

나를 보니 뭔가 떠오른 것 같았다.

“……나 얼마나 잤어?”

“그건 왜?”

송대석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벽에 장식된 디지털 시계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디지털 시계에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날짜와 요일도 표시되고 있었다.

“야, 오늘 퇴원 되냐? 최대한 빨리.”

“안 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민그린에 이어 황지호와 홍경복도 난색을 표했다.

“외상은 전부 치료됐지만, 체력과 정신력이 상당히 소모된 상태다. 이틀 정도 더 입원해서 상태를 보고 바로 퇴원하더라도 사흘 정도는 정양할 것을 권하고 싶군.”

“대석아, 이능파 상태가 상당히 불안정하구나. 만석이가 집에 있긴 하지만, 행여 폭주라도 하면 네 가족이 다친다.”

송대석이 왜 저러는 거지?

그의 태도를 관찰하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설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이 면접일이야?”

“…….”

송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플레이어 협회 인턴 면접일이었던 거다.

‘내가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송대석을 거기로 보내면 안 됐는데.

후회해도 이미 늦어 버렸다.

협회에 연락해서 인턴 면접일을 미뤄 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아니,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대영웅의 손주에게 그런 편의를 봐줬다는 게 드러나면 스캔들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조의신?”

“의신아? 왜 그래요?”

황지호와 사월세음이 우뚝 굳은 내게 뭐라 말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최선의 수를 떠올리려고 애쓸 때였다.

쉬익—.

갑자기 자동문이 열렸다.

자동문 사이로 등장한 건 두 명.

대영웅 무쇠팔 송만석과 위성 관리팀의 팀장 임지화였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송대석의 할아버지가 온다는 말은 듣긴 했는데.”

인상을 쓰는 황지호를 보니 임지화가 오는 것까지는 몰랐나 보다.

“죄송합니다. 오늘 면회가 가능한 것 같아서 무쇠팔 선배님께 부탁해 이 자리에 동행했습니다.”

“협회 소속 아이 같은데 그리 급한 일인가? 대석이는 아직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네. 나중에 다시 오게.”

홍경복 화백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지화는 정중한 목소리로 응수하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송대석 학생의 상태는 알고 있지만, 보안 심사 일정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결정해야 할 사항입니다. 그래서 팀장인 제가 직접 온 겁니다.”

임지화는 병상에 누워 있는 송대석을 보며 말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송대석 학생을 플레이어 협회 위성 관리팀이 운영하는 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으로 초빙하고 싶습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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