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87화 (187/925)

39. 던져진 동전 (6)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이 세계에서는 이능과 과학이 구분되는 한계선도 불명확했다.

이능으로도 초월할 수 없는 물리법칙이 존재했고, 논리와 과학을 무시한 이능이 존재했다.

그 모호한 경계선 위에는 이능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와 진족 그리고 플레이어 위성이 있었다.

이계를 감지하고 에너미의 토벌과 플레이어의 활약상을 기록하는 플레이어 협회의 위성은 인류의 과학 기술과 어느 진족의 이능을 쏟아부어 만든 결정체였다.

플레이어 위성의 작동 원리는 각국의 플레이어 협회를 총괄하는 총본부에서도 극비로 다루어졌고, 일반 대중에 공개된 정보는 제한적이었으며 그 정보를 이해하는 자들은 극히 드물었다.

“……객원 연구원이요?”

“송대석 학생이 개발한 위성 정보 해석 웹 애플리케이션을 봤습니다. 팀 산하 연구소 소속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들이 송대석 학생이 구상한 알고리즘을 보고 당장 연구소로 모셔 와야 한다고 매달리더군요.”

민그린이 말했던 플레이어 협회가 웹 페이지 접속을 차단한 그 웹 애플리케이션을 말하는 건가.

송대석은 그저 위성을 좋아하는 우수한 플레이어, 이렇게 생각했는데 잘못된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흑막이 벌이는 일들을 대비하느라 협회의 위성 관리팀은 쉴 날이 없다.

거기에 수련회 사건의 수습도 끝나지 않았는데, 이 바쁜 시기에 팀장인 임지화가 움직인다는 건 큰 의미가 있었다.

‘설마 송대석은 위성을 통해 흑막의 수를 읽어 낼 수 있나……!’

경악한 나를 두고 임지화는 설명을 이어 갔다.

“송대석 학생은 협회 인턴십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인턴의 보안 레벨로는 접근이 제한된 정보가 많아 송대석 학생의 능력을 살리기에는 불충분해요.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위성 관리팀의 인사권을 가진 간부들은 만장일치로 송대석 학생을 객원 연구원으로 채용하는 것에 찬성했습니다.”

임지화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놀랄 만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그 놀라운 발언들을 듣고 난 후에는 부심이 차올랐다.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야, 고등학생이 연구원 할 수도 있는 거야?”

“드물긴 하지만 없는 건 아니에요! 플레이어 사회는 실적, 실력 위주니까요. 우리 학교에도 천동하 선배님이 사설 연구소에 객원 연구원으로 있다고 들었어요!”

이능이 없는 세계에서도 그렇지만, 세상에는 특정한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이 있고 이들은 나이와 학력과 상관없이 그 성과를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

이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괴물 같은 지능을 자랑하는 천동하가 그 좋은 예였다.

“대석아, 어떻게 하고 싶으냐. 네가 내키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좋다.”

임지화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 송만석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송만석의 말에 임지화의 눈에 힘이 꽉 들어간 게 보였다.

옆에 송만석만 없었으면 전력으로 송대석을 붙들고 빌 기세였다.

눈을 뜨자마자 벌어지는 일들에 실감이 안 나는 듯 입을 떡 벌리고 눈을 끔뻑거리던 송대석이 처음으로 발언했다.

“제가 만든 웹 애플리케이션을 봤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누워 있던 송대석이 민그린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말이 부축이지 체격 차 때문에 민그린이 송대석 품에 폭 안겨 있는 걸로 보였다.

“……어느 웹 애플리케이션을 말하는 건데요?”

“응?”

송대석이 의외의 말을 했다.

“위성 지표 해석 앱이요? 아니면 이계 발생 패턴 분석 앱이요? 아, 혹시 이계 변수 변환 예측 앱인가.”

듣도 보도 못한 프로그램의 이름을 듣는 임지화의 얼굴이 점점 환하게 폈다.

“하나가 아니었어? 더, 더 있는 거야?”

“아직 개발 중인 것도 있는데요. 관측값은 협회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것밖에 얻지 못해서요. 발표된 값을 바탕으로 숨겨진 정보 값을 추출하는 알고리즘을 짜긴 했는…….”

“근로 계약서에 사인부터 하자! 대석아!”

“허어, 대석이 의사부터 확인하고 진행하게!”

“무쇠팔 선배님! 좀 비켜 보세요! 대석이는 저희한테 꼭 필요한 인재라고욧!”

정중한 말투를 무너뜨리고 태블릿을 건네며 달려드는 임지화를 송만석이 가로막았다.

한동안 혼돈이 이어졌다.

*    *    *

송대석과 송만석, 홍경복, 임지화 넷을 남겨 두고 병실 밖으로 나온 후.

병실 복도에 있는 아이들은 다들 얼떨떨해하면서도 송대석을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다.

“그 새끼는 그냥 위성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보네. 어쩐지 위성에 대해 말할 때마다 뭔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먹겠더라.”

“그린아, 대석이는 예전부터 위성을 연구한 거야?”

“대석이는 돌잔치 때도 플레이어 위성 모형 장난감을 잡았어!”

민그린은 송대석에게 벌어진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각종 비화를 풀었다.

사회생활이 초등학교 이후로 단절된 만큼 대부분이 아주 어렸을 시절 이야기뿐이었지만, 송대석이 위성을 좋아하고 민그린은 송대석을 아주 좋아한다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정보전에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것 같은데.’

송대석은 위성에 대한 정보라곤 일반 고등학생이 얻을 수 있는 범위밖에 알지 못한다.

그런 송대석이 위성을 직접 다루는 연구소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협회의 위성 관련 시나리오에서 둘 수 있는 수가 늘어날 거야!’

송만석과 홍경복이 중간에 버티고 있으니 송대석이 필요 이상으로 부려 먹힐 일도 없을 거고.

송대석이 인턴에 떨어지게 생겼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는데 정말 잘됐다.

“저, 혹시 대석이네 할아버지 말인데요. 소풍 때 봤던 그분 아니에요?”

“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

“함근형 선생님이랑 인사했던 고글 끼신 분 맞는 것 같아! 대석이네 할아버지셨구나.”

“소풍 때 송 할아버지 만났었어?”

“한강에 막 도착했을 때 함근형 선생님이 자전거 끌고 오신 어떤 분한테 인사했었는데…….”

여전히 AR 글래스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지 못한 민그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풍 이야기를 들었다.

소풍 이야기를 한참 하던 권레나가 품에 안은 쿠키 박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기, 대석이는 어른들하고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먼저 유리를 만나러 가지 않을래?”

“네, 가요!”

“가자. 어차피 저 새끼 멀쩡해 보이는데.”

“송 할아버지랑 사부님 계시니까 대석이는 괜찮을 거야. 나도 유리 보고 싶어!”

행선지가 결정되자 황지호가 앞서서 걸었다.

엘리베이터 바로 근처에 있던 송대석의 병실과 달리 김유리의 병실은 멀었다.

“개 머네.”

“지호가 보안 카드를 몇 번 찍는 걸 봤는데, 저, 이 층이 이렇게 넓었나요? 최상층은 다른 건물과 이어지지도 않았는데!”

“플레이어의 특성상, 특별한 병동이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문 몇 개와 긴 복도를 통과하는 동안 아이들의 불안은 점점 커졌다.

점점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니 아이들의 불안도 커져 갔다.

“이번 사건에서 이계 공략을 하며 경상자는 많이 나왔지. 하지만 전원 당일 집으로 돌아갔다. 입원한 자는 특별한 독에 당한 이들과 김유리뿐이다.”

“……유리도 그 독에 당한 거야?”

“김유리는 독에 당하지도 않았고, 부상을 입지도 않았다. 직접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

황지호는 민그린의 물음에 답하며 맹효돈과 권레나 쪽을 봤다.

그 자리에서 김유리의 광림을 목격한 두 사람은 말없이 어두운 얼굴로 복도 저편을 응시할 뿐이었다.

“김유리는 수많은 상위 존재의 힘과 연결된 광림을 갖고 있어. 계속 억누르고 있었다가 이번 사건으로 폭주했고 그 여파가 아직 남아 있다. 그간 억눌러 온 이능파의 압력, 이능압으로 고생 중이지. 이건 치료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황지호는 황금색의 문 앞에 멈춰 섰다.

병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빛의 문에는 고대어가 빼곡하게 적혀 마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황지호가 직접 결계술을 펼친 건가.’

고대어를 읽을 수는 없지만, 황지호의 결계술을 몇 번 본 덕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황지호가 결계를 펼친 건 모르겠지만, 높은 밀도의 이능력을 감지한 아이들이 긴장한 얼굴로 문을 바라봤다.

“내 뒤에서 떨어지지 마라.”

그 말을 한 직후 황지호가 카드키를 이용해 문을 열었다.

쉬익—.

문이 열리자마자 이능파의 압력이 우리를 덮쳤다.

파아앗! 파앗!

눈앞에서 금빛과 물빛의 이능파가 터져 나갔다.

빛과 빛의 충돌이 멎자, 황지호가 혀를 찼다.

“여전히 김유리를 둘러싼 상위 존재가 귀찮게 구나 보군. 여기에 있는 이들 중 그녀를 해할 이는 아무도 없거늘.”

황지호가 펼친 결계가 푸른색의 이능파를 모두 산개시켰을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어두운 병실 저편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세요?”

김유리의 목소리였다.

“반장!”

맹효돈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뛰쳐나갔지만 사월세음에 의해 제지되었다.

“지호가 앞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반장은 저 새끼가 펼친 결계 안에 있는 게 아니잖아!”

“안심해라, 김유리를 귀찮게 구는 저들은 김유리만은 해치지 않는다.”

곧 우리의 움직임을 감지한 자동 조명의 전원이 켜졌다.

이불을 감싸 안고 이쪽을 보는 김유리는 황지호의 말대로 상처 하나 없었다.

“얘들아, 병문안 온 거야?”

우리의 모습을 확인한 김유리가 밝게 웃었다.

김유리는 짧은 시간 사이 조금 야윈 것 같았지만, 기운이 넘쳐 보였다.

*    *    *

그 소년은 헤매고 있었다.

그는 스승이 남겨 준 재산을 모두 여비로 탕진하며 음악과 예술의 신이 깃들고 그 숨결을 남겼다고 이름난 도시들을 빠짐없이 방문하며 방황하고 떠돌고 있었다.

파리, 그리스, 바르셀로나, 시드니, 피렌체, 상파울로, 비엔나…….

고대와 현대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한 번씩은 거쳐 갔다는 도시와 시설을 모두 방문한 소년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어디에도 없어.’

고작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서도 예술의 위대함과 기쁨을 발견해 내던 소년은 무저갱이나 다름없는 절망의 구렁텅이 한복판에 있었다.

‘내가 찾는 존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모든 음악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던 그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거지꼴로 다 쓰러져 가는 슬럼가의 처마 밑에 주저앉은 소년은 스승이 남긴 말을 떠올렸다.

[네가 삶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상위 존재의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힘으로 인간의 수명을 초월한 스승은 주름진 손으로 소년의 머리를 곧잘 쓰다듬곤 했었다.

[그러나 언젠가 네게도 삶의 의미가 생길 거다. 나도 그녀의 연주를 듣는 순간, 이 길었던 삶에 무한한 감사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그 ‘감사’를 느낄 순간은 오지 않았다.

스승에게 삶의 의미를 주었다는 그녀의 연주조차, 소년에게는 그리 큰 감흥을 주지 않았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

소년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소년의 디바이스에 알람이 도착해 있었다.

최근 일주일 내에 업로드된 영상 중, 연주 관련 태그가 붙어 있고 조회수가 일정 수준을 넘었을 때 들려오는 알람이었다.

‘……또 봐 봤자 실망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소년은 알람을 확인해 영상을 열었다.

영상에는 입학했지만, 한 번도 등교해 본 적이 없는 학교의 이름이 해시태그로 붙어 있었다.

‘은광고? 또 그 수업종 중에서 그럴싸한 연주를 한 동아리가 나왔나?’

소년은 아무런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몇 번 봤던 은광고의 동아리실이 아닌 다른 장면이 나왔다.

바다를 배경으로 누군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정상의 바이올린의 음색이 해일이 내뿜는 굉음 사이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푸른 바이올리니스트…….’

스승의 뮤즈였다.

소년은 한숨을 쉬었다.

푸른 바이올리니스트 권제인은 아름다운 연주를 선보였지만, 그뿐이었다.

소년은 권제인의 연주에서 스승이 찬탄하는 그 감동을 느낀 적이 없었다.

실망한 소년이 연주를 듣다 말고 동영상을 중단하려 했을 때였다.

‘어?’

권제인의 연주에 섞여 낯선 음색이 들렸다.

서툴고 뻣뻣한 바이올린의 음색이었다.

조심스럽고 어색하고 딱딱한 음이 권제인의 완벽한 기교에 섞여 있었다.

‘아름답다.’

푸른 바이올리니스트 권제인에 비해 한없이 미숙한 음색인데, 그 어설픈 음이 이어질 때마다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름다워!’

그 설익은 연주를 듣는 순간 그는 자신의 생의 의미를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어설프게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에 화음을 넣는 소녀의 바이올린의 음색이 소년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나의 뮤즈……!”

은광고 1학년 0반 소속, 목우람.

그의 귀국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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