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97화 (197/925)

41. 국경의 밖 (1)

황호의 말에 적호와 김신록, 두 부자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황호 님, 해외에 나가실 생각입니까?”

“황호…… 농담으로 한 얘기가 아니었습니까?”

“아닌데? 오랜만에 해외 공기를 쐬고 오려 한다.”

“요즘은 더 바쁘게 움직이시더니…… 해외 출장을 대비하여 그러신 거군요.”

“하하하! 그렇지.”

황지호가 내 쪽을 보며 추가로 설명해 줬다.

“조의신, 너도 알고 있겠지만, 천신께서 내린 가호로 내가 얻은 권능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는 것’, 즉, 분신을 쓰는 힘이다.”

“그렇지.”

“천신의 가호가 닿는 땅은 한반도 전역이다. 즉, 분신이 존재할 수 있는 건 한반도 안뿐이야.”

황지호의 상태창을 떠올렸다.

[설명]

개천신화에 등장하는 황호.

천신에게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는’ 권능을 받았다.

천신의 가호가 닿는 땅 위라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곳,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다.

백호를 가둔 신역의 수호를 자청하여 천신이 이를 허용했다.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지금은 천신의 진노로 사용할 수 없지만 백호군의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권능은 한반도 밖에서도 통한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황지호의 분신 스킬은 워낙 사기다 보니 그런 제한이 걸려 있나 보다.

“본신(本身)으로 해외에 갈 생각이야?”

“그래. 한반도 밖으로 나가는 건 아주 오랜만이군.”

황지호는 들떠 보였다.

5천은 넘게 먹은 노친네가 고등학생들 사이에 섞여 취재 여행 갈 생각에 설렜나 보다.

‘그동안 일은 잘해 왔으니 숨을 돌리는 것도 필요하겠지.’

황지호가 분신을 운용하던 중 부하가 와서 멍하니 있던 광경을 생각하니 대놓고 뭐라고 하기가 그랬다.

그 대신 올무에게 묻기로 했다.

“올무야, 선물은 뭐가 좋아?”

끄응? ……왕!

그 이후로 올무와 은호의 후예들, 우리 반 아이들과 지인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며 해외로 떠날 준비를 했다.

*    *    *

며칠이 지나, 신문부의 해외 취재 일정이 시작되었다.

첫날은 2학년 0반과 제갈재걸 잡지 초판본을 건 이능 태그 매치에서 따낸 숙박권을 사용할 겸, 신문부는 취재 여행 대비 사전 합숙을 치르기로 했다.

숙박권을 사용하는 곳은 국내 굴지의 에어 호텔 브랜드, 이카로스 그룹의 이카로스 서울.

백랍(白蠟)으로 만든 날개를 달았던 다이달로스의 아들의 이름에서 따온 호텔답게 VIP 플로어인 50층부터 외부 구조물은 날개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뻗은 날개는 각각 이스트 윙, 웨스트 윙, 사우스 윙, 노스 윙으로 불리었고, 스위트 룸은 전부 이 네 개의 날개에 몰려 있었다.

우리가 묵게 된 곳은 그 네 개의 날개 중 하나였다.

“올해 은광고에 입학한 1학년 신입 부원을 대표해 저 문새론이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이스트 윙, 그중에도 최상층 플로어의 중앙 프리미엄 라운지.

방학과 휴가가 몰려 있는 여름 성수기라고 하나, 태그 매치에서 승리한 대가로 최상층을 전세 낸 신문부원들은 주변 눈치 볼 것 없이 각자 편한 자세로 눕거나 앉아 문새론의 건배사를 들었다.

아이스볼과 탄산수가 담긴 올드 패션드 글라스를 든 신문부원들은 다들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이 자리에는 없지만 내일 합류하실 우리의 고문 제갈 쌤과 이번 사전 합숙의 최대 공헌자, 아니, 유일한 주역 황지호 좌를 위해 건배!”

“건배!”

여기저기에서 크리스탈 올드 패션드 글라스가 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하하하! 조의신, 잔을 들어라!”

건배사의 마지막 구절에 언급된 황지호가 바로 옆에 앉아 여유롭게 처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황지호와 건배를 하며 물었다.

“야.”

“말해 봐라.”

“정말 가도 괜찮겠어?”

이미 확정된 것 같지만 구태여 물었다.

호족의 수장이 한반도를 떠난다.

비록 분신이 남는다곤 하지만 본신이 해외에 있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아, 김유리 건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수석 주술사에게 맡겼으니까.”

“수석 주술사?”

“김유리가 이능압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결계를 유지해 줄 거다.”

김유리도 걱정되긴 하지만 그것만 걱정한 게 아닌데.

그런데 김유리에게 수석 주술사를 붙여?

저번에 말한 대로 이젠 숨기지 않고 막 나가기로 했나 보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이기도 한 김유리가 그걸 퍼뜨리고 다니거나, 호족을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김유리는 자신의 광림을 다루고 싶다더군. 상위 존재의 힘을 빌리는 건 그 녀석이 나보다 더 전문가니까.”

역시 우리 반 능력자 반장이자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그동안 마음고생도 심했을 거고, 광림의 첫 발동으로 심신이 피로할 텐데도 향상심을 보이다니.

앞으로도 부반장으로서 김유리를 잘 지지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탄산수를 마실 때였다.

“자, 주목! 갑작스럽지만 일정 변경 공지를 하겠습니다.”

“네? 이제 와서요?”

신문부의 부부장이 그렇게 말하자 동요한 부원들이 웅성거렸다.

부부장이 홀로그램을 띄운 가운데, 부장이 헛기침을 몇 번 하다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신문부의 취재 여행은 은광고에서 가장 위험한 집단에 의해 노려지고 있어.”

은광고에서 가장 위험한 집단.

이 말을 듣자 신문부원들의 얼굴에 경각심이 서렸다.

‘금찬왕찬의 2학년 0반을 말하는 거구나!’

3학년 0반도 위험한 놈들이었지만, 방학 동안 임연화의 부트 캠프에서 구를 예정인 그놈들은 꿈쩍도 못 할 거고 신문부를 노릴 이유가 없다.

그러니 굳이 듣지 않아도 그 위험한 집단은 우리 신문부의 고문, 제갈재걸의 처돌이들 2학년 0반이었다.

“해외에 체류하는 날짜나 기간은 변경하지 않을 예정이야. 하지만 처음부터 코스는 예전에 공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갈 생각이었어.”

“응! 숨기고 있어서 미안. 그래도 제갈재걸 선생님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우리가 독점해 보겠어!”

부장과 부부장은 다 계획이 있었나 보다.

신문부원들은 당황스러워하다가 부장의 계획성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역시 부장님과 부부장님은 달라!”

“이번엔 제갈 쌤이랑도 같이 단체로 기념품 사고 싶다……. 작년엔 금찬솔이 방해하는 바람에 결국 못 샀잖아.”

부원들의 환호 속에서 부장의 여행 일정 설명이 시작되었다.

지도를 보여 주며 설명하던 부장이 일본 열도를 가리키다 말했다.

“아, 참고로 일본 쪽은 이번에 못 가. 거기 국경 또 폐쇄될 각이거든.”

“헐, 또요?”

“응. 새론이네 아빠가 기자신 거 알지? 이번에 취재 여행 계획을 알고 연락을 주셨어. 지금 일본에서 취재 중이신데 그쪽 상황이 심상치 않나 봐.”

이 세계의 역사의 흐름은 내가 있던 세계와 비슷했지만, 다른 부분이 꽤 있었다.

이계 충돌 전후의 역사가 특히 그러했다.

주요 역사 사건이 일어난 시기도, 사건의 전개도 조금씩 달랐다.

“일본 쪽 뉴스 사이트를 다 돌아봤는데 눈에 띄는 게 없네요.”

“여전히 여긴 언론 통제 중인가 보네.”

“이계 충돌 터질 때 그렇게 당해 놓고 배운 게 없나.”

대한민국이 주권을 찾은 지 얼마 안 되어 한반도에서 이계 충돌이 일어났을 때.

일본의 정부와 언론은 입을 모아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아 천벌을 받았다는 등의 망언을 늘어놨지만, 결국 열도에도 이계가 발생했다.

청정 이계 지역이라고 자부하던 그들은 끊임없이 이계의 존재를 은폐하고, 에너미와 싸웠다 주장한 이들을 정신병자 취급을 하고 집단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니 플레이어의 양성도, 정부의 대책도 늦고 말았고 몇몇 지역이 이계화된 시점에도 대책이 서질 않았다.

일본 외무성 측에서 이계 충돌이 한반도에서 먼저 일어난 점을 근거로 들어서 이계 발생이 한국의 음모이며 한국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배상을 요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그렇게 주장하던 일본 정부는 무너졌다.

“아, 혹시 또 지요다구에서 이계가 발생한 거 아냐?”

“응. 그런 것 같더라.”

“진짜로? 또? 지요다구는 이제 포기하는 게 낫지 않아? 그냥 다 비워 버리고 플레이어만 상주시키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거기 황거가 있어서 못 버리잖아. 차라리 완전히 박살이 났으면 포기라도 할 텐데 어떻게 또 건물이 남는 바람에 미련을 못 버리나 봐.”

일본 도쿄도의 23개 특별구 중 하나, 지요다구.

지요다구에는 일본의 군주가 머무는 황거, 내각 총리대신 관저, 국회의사당, 최고재판소, 경시청 등 일본의 상징,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모두 모여 있었다.

이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본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의 심장이라 불러도 될 법한 그 지요다구에 대규모의 이계가 발생했고 국무대신을 비롯한 수많은 관료가 사망했다.

사망한 국무대신 중에는 한국에 배상을 요구하던 외무대신은 물론이고 정부 수반인 내각 총리대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열다섯 명이던 국무대신 중 살아남은 건 세 명뿐.

그 셋 중 가장 젊었던 문부과학대신이 총리의 권한 대행을 맡고 이후 최연소 총리직에 올라 이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플레이어 협회 총본부와 교섭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태를 수습하여 일본의 상황은 나아졌다.

그러나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그는 이계의 에너미가 아닌 정적에 의해 제거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일본의 이계 정책은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수시로 국경을 막고 언론을 통제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한중일 플레이어 교류전이 제대로 진행이 될지 의문이네요.”

“요새 일본에서 띄워 주는 플레이어 있잖아. 화족 출신만 간다는 여학교에 올해 입학한 애. 걔 때문에라도 무조건 올걸. 한국과 중국을 제패한 세계 제일의 천재! 이 문구 넣고 싶어서 안달 난 것 같던데.”

“아, TV에서 몇 번 봤다.”

“경력 보니까 다인이한테 밀릴 거 같음요.”

우리 신문부원들은 그 이후로 대폭 변경된 일정을 확인하고, 한중일 플레이어 교류전에서 주목할 만한 플레이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스트 윙 이용객 전용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즐기고 나니 금방 밤이 깊었다.

‘응?’

만찬 후 야경을 보며 티타임을 갖자는 부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라운지로 걷는 중, 창밖에 이상한 그림자가 보였다.

마치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듯한 그림자였다.

“수상한 부반장님, 왜 그러심?”

“아니, 밖에 뭐가 있던 것 같아서.”

“아무것도 없는데.”

문새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공에 떠 있는 에어 호텔의 밖의 고도를 따지면 지상 건물 기준 100층 이상이다.

밖에 누가 있는 게 이상하긴 했다.

‘이걸 말하면 괴담을 무서워하는 문새론이 괜히 겁을 먹겠지.’

마음에 좀 걸리긴 했지만, ‘새 그림자 같은 거였나 봐.’라고 말하며 화제를 돌렸다.

중앙 라운지에선 먼저 자리 잡은 황지호가 크게 처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경을 즐기며 떠들썩한 티타임을 마친 후.

“그럼 다들 내일 보자! 무슨 일 있으면 나나 부부장한테 연락하고.”

“2학년은 오늘 밤샐 예정임다. 밤샘 게임 달릴 건데 잠 안 오면 내 방 오셈요!”

“올, 저도 가도 돼요?”

“와라! 대신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켠 김에 왕까지 달린다!”

“그냥 수다 떨려면 쟤네 방 말고 우리 방으로 와.”

“그냥 수다가 아니라 호러 라디오 스테이션 컨셉으로 밤새도록 은광고 괴담 풀 예정이람서요. 거긴 못 감요.”

플로어를 다 빌릴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부원들은 무리 짓기 시작했다.

“조의신, 너는 어떻게 할 거지?”

“문새론이 밤샘 괴담에 대항해서 밤샘 개그썰을 풀 예정이라는데. 거기 갈까 아니면 그냥 잘까 고민 중이야.”

나와 룸메이트인 황지호가 물었다.

방 배정을 할 때, 황지호는 룸메이트로 나를 지정했다.

한 층을 다 빌렸으니 방은 넉넉했지만, 황지호가 배정받은 프레지덴셜 스위트 룸은 침실과 욕실, 화장실이 각각 두 개씩 있는 데다 응접실과 다이닝 룸까지 따로 분리되어 지나치게 넓었던 탓이다.

“흠, 그럼 굳이 방을 나눌 필요가 없지 않나?”

황지호의 제안으로 우여곡절 끝에 신문부는 프레지덴셜 스위트 룸의 응접실에 다 모여서 밤을 샜다.

응접실 한구석에서는 폐인처럼 게임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번갈아 가며 괴담과 유머를 하나씩 풀고, 계획을 짜느라 지쳤는지 부장과 부부장은 소파에 기대어서 잠들고.

여행 전부터 진을 뺀 신문부원들은 조찬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는 대부분 잠들어 있었다.

딩동.

[염준열] 스승님, 안녕하세요.

아침을 알린 건 염준열의 메시지였다.

평소대로 일기 예보를 해 주려는 모양이다.

나는 오늘 출국하니까 한국의 기상 정보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염준열은 다른 화제를 꺼냈다.

[염준열] 어젯밤부터 계속 고민하던 게 있어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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