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03화 (203/925)

41. 국경의 밖 (7)

[홍규빈] ……의신아?

예상대로 홍규빈은 일어나 있었는지 답변은 바로 왔다.

[홍규빈] 나 휴가 시작한 지 1시간도 안 됐는데……. ㅠㅠ;;;

일 시키기 위해 연락한 걸 알아챈 것 같았다.

그런데 휴가 시작한 지 1시간도 안 됐다는 건 계속 야근하다가 이제 퇴근했다는 뜻인 걸까.

‘아직 출국하지는 않았겠네. 잘 됐다.’

신문부 일정이 바뀌었으니 출국했으면 좀 까다로울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용건을 말하기도 전에 홍규빈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홍규빈] 이 시간에 연락한 걸 보니 예삿일은 아닌 것 같구나. 제갈 선생님한테 별일은 없지?

[홍규빈] 취재 여행 간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홍규빈] 지금 어디야? 일정표대로 움직였으면 중국 플레이어 양성소 쪽일 텐데. 그쪽 지부에 연락할까? 제갈 선생님은 무사하신 거지?

제갈재걸의 안부는 중요해서 두 번이나 물은 것 같았다.

걱정하는 홍규빈에게 현무가 목우람의 신분을 양도했고, 목우람의 귀국을 돕고 싶다는 요지의 말을 전했다.

[홍규빈] 현무가 인간사에 개입한 건 오랜만이구나. 그가 보호한 데다 은광고 학생이라니!

[홍규빈] 그런데 의신이네 반 아이가 왜 거기에 있지? 한 번도 등교하지 않은 아이라고 했지?

홍규빈은 잠시 의문을 품었으나, 알아서 결론을 내고 납득했다.

[홍규빈] 아, 의신이는 0반이었지. 올해 은광고 1학년 0반은 얌전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어.

은광고 0반의 위엄은 플레이어 협회에도 퍼져 있나 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스승의 날, ‘이능파 링크’로 이계 지배에 성공하는 대업을 달성해 협회를 뒤집어 놓은 2학년 0반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긴 했다.

홍규빈은 청두시로 향하는 새벽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시간에 맞춰 황지호의 부하가 마중 가기로 정한 후.

“홍규빈이라. 나쁘지 않은 인선이군.”

디바이스 화면을 껐을 때, 황지호가 불쑥 말했다.

“많이 부려 먹도록. 홍규빈이 선택한 길이다. 플레이어 사회, 특히 제갈재걸이 있는 은광고를 위한 일이라면 이 녀석도 기쁘게 받아들일 거다.”

정말로 기쁘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지만, 홍규빈이 은광고 일을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았다.

‘홍규빈이 제갈재걸 처돌이인 걸 황지호도 알고 있나?’

그러고 보니 예전에 황지호가 홍규빈과 아는 사이라며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래. 홍규빈은 좀 거슬리는 진족 놈의 가호를 받아서 몇 번 관찰한 적이 있어. 그 녀석이 플레이어가 된 계기가 재밌기도 하고.

예지 스킬을 가진 홍규빈은 귀찮게 구는 진족, 서족 수장 꾀돌이의 가호를 받았고, 황지호는 흥미를 느껴 그 홍규빈을 몇 번 관찰했다고 했었다.

홍규빈은 은광고를 졸업한 것 같으니 고등학교 시절부터 관찰한 걸까?

“홍규빈 팀장님은 은광고 출신이지? 제갈재걸 선생님의 제자라고 들었는데.”

“홍규빈은 은광고 출신이 아니다. 일반고 출신이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능을 숨겼으니까.”

홍규빈은 은광고 출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능을 숨기고 일반고를 나왔다고?

지금 황지호의 말에 걸리는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부터 물었다.

“제갈재걸 선생님은 계속 은광고에 계셨던 걸로 아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다. 제갈재걸은 은광고에서만 근무할 수 있지.”

황지호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며 눈을 빛냈다.

내가 어디까지 추리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았다.

‘홍규빈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오고, 제갈재걸은 플레이어 특목고인 은광고에서만 근무를 했어. 그리고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아. 지금까지는 제갈재걸이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처음 부임했을 때 고3인 홍규빈을 가르쳤을 가능성을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으니까…….’

추리는 금방 끝났다.

“제갈재걸 선생님이 사설 학원 강사나 과외 강사를 하셨을 때 홍규빈 팀장님을 가르쳤구나.”

“정답이다. 제갈재걸은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의 일환으로 1 대 1 과외 강사를 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생각해 냈군.”

그거야 나도 대학 시절에는 과외 강사 아르바이트를 했으니까.

그 말은 생략하고 황지호의 말을 바탕으로 내가 추리한 바를 말했다.

“제갈재걸 선생님이 은광고에서만 근무할 수 있는 것과 홍규빈 팀장님 사이에 관계가 있는 거지?”

황지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어둠의 시대를 경험한 인간들은 제 집안의 귀한 아들이 이능술사가 되는 것을 꺼렸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변하지 않는 인간도 있지. 홍규빈의 집이 그랬어. 제갈재걸은 이능술사가 되겠다는 홍규빈의 꿈을 도왔고…… 그 결과 제갈재걸은 많은 걸 잃었지.”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본편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그것도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부터 제자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구나.

“그 과정은 조금 복잡했는데…… 내 입으로 전부 말하는 건 멋이 없군. 이후의 이야기는 홍규빈이나 제갈재걸에게 직접 묻도록. 정 궁금하면 말해 줄 수도 있지만.”

황지호의 마지막 말은 무시하고 물었다.

“너는 그 과정을 어떻게 안 거야?”

“나는 그 과정을 듣는 대가로 제갈재걸을 은광고에 취직시켰다. 그걸 책잡아서 번거롭게 구는 인간이 있긴 했지만, 이 몸의 결정을 꺾을 수는 없었지.”

이 이상의 이야기가 있다는 건가?

태만하게 살던 황지호가 잠시나마 나설 정도였다면 뭐가 있었나 보다.

“그런 일도 있으니 홍규빈에게는 특별히 은광고 상시 방문 허가를 내줬다. 제갈재걸이 은광고에 재직하는 이상, 절대로 녀석은 황명 재단에 해를 입히지 못할 테니까.”

황지호는 아무리 협회의 고위직이라도 은광고 상시 방문 허가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자랑스레 덧붙였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중요한 비화를 들려 줬으니 아무래도 좋을 말도 들어 주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현무의 야시(夜市)를 둘러 볼까.”

황지호의 제안을 수락해 호텔로 돌아가기 전, 야시(夜市)를 구경했다.

여기에서 산 물건은 출처를 밝히기 어려우니 선물을 줄 대상은 한정되었지만, 우선 그 한정된 대상을 위해 이곳에서 선물을 사기로 했다.

고민 끝에 고른 건 이능파를 불어 넣으면 플레이어 고유의 이능파 색에 맞춰서 빛을 내는 반투명한 한지로 만든 등이었다.

내가 고른 한지 등을 본 황지호가 품평한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괜찮군.”

“넌 다른 걸로 사.”

“하하하! 겹치지 않게 고르겠다.”

등을 사기로 했지만, 한참을 헤맸다.

올무와 닮은 모양의 등을 찾고 싶었지만, 강아지 형태의 등은 많아도 우리 올무의 귀여움과 천재성을 일부라도 표현해 내는 등은 찾을 수 없었다.

포기하고 단순한 모양으로 샀는데, 그사이 황지호가 내내 처웃었다.

인상이 크게 다르다고는 하나 60대 황명호가 저런 꼴을 하고 있으면 0반 아이들은 다 알아볼 것 같았다.

‘나이를 먹어도 처웃는 건 똑같네.’

황지호는 실컷 처웃었고, 나는 그사이 ‘황지호를 죽이는 방법’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고찰하였다.

현무의 영역을 빠져나와 목우람을 황지호의 부하에게 맡기고 다시 호텔로 돌아갔을 때였다.

“조의신, 까마귀 가면에 대해서 할 말은 없나?”

내 호텔 방 발코니에 선 황지호가 물었다.

이건 딱히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말했다.

“마족에게 볼일이 있어서.”

정확히는 마족 중에서도 까마귀 마왕, 방관과 침묵의 시델렌티움을 불러낼 생각이었다.

황지호는 내 손에 들린 까마귀 가면을 보며 말했다.

“호족과 마족은 교류가 없다. 교류가 있더라도 마족은 무리 짓지 않은 놈들이니 별 의미가 없겠지만.”

황지호는 내켜 하는 기분은 아닌 것 같았지만, 더 추궁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체스 대회와 이번에 느꼈던 그 불가사의한 힘의 정체는 내 힘으로 밝혀 주마.”

대신 픽션 속 악당이나 할 것 같은 대사를 남기고 발코니 밖으로 사라졌다.

*    *    *

아침.

조식 시간이 가까워져 라운지로 나가 보니, ‘신문부의 승리’라고 쓰인 거대한 홀로그램이 보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신문부가 2학년 0반한테 이긴 것 같긴 한데…… 진짜 이긴 게 맞나?’

승리자인 신문부원들 대부분이 라운지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자고 있고, 제갈재걸은 신문부원들에게 담요를 덮어 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에 반해 패배자인 2학년 0반은 쌩쌩하게 제갈재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었나요?”

말을 걸자 금찬솔과 왕찬솔은 기다렸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우리 2학년 0반과의 사투에 모든 힘을 쏟아 낸 신문부는 거짓말처럼 잠들었다!”

신문부원들이 열심히 2학년 0반과의 승부에 임해 승리했다는 건 알겠는데, 대체 왜 0반 선배놈들은 저렇게 멀쩡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의문을 알아챈 듯 금찬왕찬 콤비가 첨언했다.

“신문부는 우리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사실에 정신이 팔려 이번 여행의 본질을 놓친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제갈재걸 쌤과 신나게 노는 거야. 신문부와의 승부는 부차적인 문제지.”

그 뒤로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사전에 2학년 0반은 신문부의 여행 기획을 철저히 분석한 모양이었다.

신문부 2학년 선배가 준비한 대전 게임의 타이틀도 사전에 알고 있던 그들은 작전을 세웠다고 한다.

헤드기어를 착용하는 대전 게임은 다소 체력을 소모했고, 이미 밤을 한 번 세운 신문부의 게임 폐인들을 상대로 2학년 0반은 승리 대신 체력 안배, 버티기에 주력했다.

구경만 한다던 문새론을 비롯한 신문부원들도 게임판에 끼어들어 대난투를 벌인 결과.

신문부는 승리했지만 지쳐 잠들었고 2학년 0반은 졌지만 잘 싸웠기에 저리 쌩쌩했다.

“어리석은 승리, 현명한 패배. 추악한 승리, 아름다운 패배인 셈이지!”

“무명의 초신성과 1학년 0반 돌아이 황 씨는 걸리지 않은 것 같지만. 뭐, 너희 둘은 제갈 쌤 잡지 초판도 넘겨 줬으니 봐줄게.”

“아침 시간 동안 제갈 쌤은 우리 차지야! 게임엔 졌으니까 내일 호텔비도 우리가 내긴 할 거지만.”

상처뿐인 승리를 한 신문부원들을 뒤로하고 2학년 0반 선배놈들이 힘차게 말했다.

“제갈 쌤! 아침 먹으러 가요!”

“신문부 애들이 이렇게 잘 자는데 깨우는 것도 좀 미안하잖아요.”

미안하긴 개뿔.

연극부 에이스 연가람의 얼굴만 보면 정말 미안해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전후 사정을 아는 입장에선 매우 미묘했다.

“저희가 게임도 졌으니까 아침 식사 테이크아웃해 올게요. 여기 룸서비스는 별로라서요.”

“아, 신문부원 애들이 뭐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데. 제갈 쌤도 같이 골라 주세요!”

제갈재걸과 호텔 밖으로 나가 아침 쇼핑까지 즐길 생각인가 보다.

결국 2학년 0반 선배놈들과 제갈재걸 그리고 나와 황지호가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외출하게 되었다.

호텔 1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였다.

“억!”

“질척거리는 첫 제자!”

“진짜 구질구질하네. 여기까지 대체 어떻게 왔대!”

금찬솔과 왕찬솔이 정색하며 홍규빈을 봤다.

한편, 홍규빈도 질색한 얼굴로 누군가와 서 있었다.

‘저건 그때 본…….’

몇 번 마주친 적은 없지만, 일단은 구면인 이가 홍규빈 옆에 서 있었다.

그때, 황지호가 금찬왕찬 콤비보다 더 정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꾀돌이…….”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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