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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13화 (213/925)

42. 소원을 이룬 대가 (5)

플레이어마이스터고교, 주수혁과 안다인을 기준으로 1학년 2학기를 맞이했을 때.

개학 당일 1학년 0반의 등교생은 한이와 독고미로 둘뿐이었다.

김유리가 등교를 거부하며 1학년 0반 학생 중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없어지긴 했지만, 담임인 함근형이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던 덕에 1학년 0반이 몇 번 비춰진 적이 있었다.

함근형의 시점에서 퀘스트를 시작하기 전, 교실을 확인해 본다는 커맨드를 선택하면 한이와 독고미로를 가끔 볼 수 있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한이는 말수가 거의 없었고 독고미로는 무기력하게 엎드려 있을 때가 많았다.

그 탓에 한 줌도 안 되는 플마고 유저들 사이에도 이런저런 말이 돌았다.

[새로 나온 NPC 설명을 보니까 ‘뒷골목의 패왕’, ‘왕년의 골목대장’ 같은 설명이 있는데. 뭐임? 캐붕임?]

[과거에 그랬고 지금은 아니라는 뜻 아님?]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독고미로는 공청훤, 한이의 퇴장 이후로 등교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 독고미로의 광림과 스킬 등을 고려했을 때 그녀가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몇 개 있긴 했으나 스토리상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랬던 것과는 달리 이 세계의 독고미로는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파출소를 습격해? 제압했다고?”

“그래. 훌륭한 솜씨야. 흔적도 거의 남기지 않았어. 협회의 추적도 막기 위해 이능파도 거의 안 쓰고 완력으로만 상대를 제압한 것 같은데.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군.”

황지호가 호족 부하가 찍어 온 사진을 홀로그램으로 보여 줬다.

박살이 난 광일파출소의 정경과 야구 배트를 들고 사라지는 독고미로의 뒷모습이 인상 깊었다.

‘혹시 그날 사월세음이 말한 ‘그 구역 미친년’의 정체는 독고미로가 아닐까.’

현시점에서 확증은 없었다.

그러나 광일동이 아무리 무법지대라 해도 못 박힌 야구 배트를 휘두르고 다니는 소녀가 여러 명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내가 해야 할 수고가 하나 줄었군.”

“파출소 습격하고 네가 할 수고가 관련이 있어?”

“그래. 이번 건은 남궁 건설과 남궁 중공업 그리고 그들과 유착 관계에 있는 경찰 간부와 공무원들이 관련이 있으니까.”

사월세음의 말만 듣고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이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황지호가 언급한 집단이 용역 단체까지 끌어들여 일개 보육원을 없애려 들 법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광일동의 은광한빛보육원 주변이 재개발에 들어가는구나.”

“그래. 그럴싸한 이유와 집단을 내세워 보육원을 쫓아내려 했겠지만, 원인은 따로 있지.”

내 짐작을 들은 황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개발 정보를 입수한 높으신 분들께서 보육원을 치우고 알박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은광한빛보육원은 은광구에 논과 산밖에 없던 시절에 터를 잡아 둔 덕에 부지만큼은 넓었으니, 재개발이 시작되면 땅값으로 어마어마한 차익을 얻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왜 남궁 그룹이 이런 짓을 했을까? 아무리 돈이 된다고 해도 명색이 대한민국의 4대 그룹인데…… 저 차익을 얻자고 나서다니.’

대기업이 얽혀 있을 가능성은 생각했지만, 4대 재벌 중 하나인 남궁 그룹이 이렇게 나온다는 건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

“재개발에 이어 중요한 게 걸려 있던 것 같더군.”

“중요한 것?”

재개발 말고도 뭐가 더 있나?

“전 세계에서 가장 지력이 강력한 곳은 한국이고, 한국의 지력의 중심은 이 은광구다.”

“지력과 이번 일이 관계가 있어?”

“그래. 지력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건 진족뿐이지. 그 지력 때문에 진족들이 한반도로 몰려들어 온 거고. 인간도 지력의 영향을 받지만, 진족만큼 지력을 사용할 수 없어.”

황지호가 왜 이 시점에서 지력을 언급하는 걸까.

지력하면 떠오르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지력 터미널’.

게임 속 4대 그룹 암투 사건의 중심에 있던 사업 중 하나였다.

차마 그 이름을 바로 담지는 못하고 돌려서 말했다.

“설마…… 그 지력을 운용할 시설이 재개발과 동시에 광일동에 세워질 예정이야?”

“정답이다. 광일동에는 가칭 ‘지력 터미널’이 세워질 예정이라더군.”

4대 그룹 암투 시나리오가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명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들이 사사로이 암투를 일으킬 리가 없긴 했지만, 이 암투의 시작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은 것 같았다.

“수호자의 권능을 사용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더니 지력 터미널이라는 단어가 나오더군.”

“너도 그 지력 터미널의 존재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래. 지력 터미널은 예전부터 논의되고 있었다. 그게 광일동에 들어올 예정인 줄은 몰랐지만. 한반도의 이계 산업에 새로운 국면을 부를 대사업이고, 들일 예산은 세종시의 데이터 센터나 이능파 네트워크 서비스, 1GG (1 Gifted Generation)의 기지국 건설 비용과 맞먹으니까.”

설명을 마친 황지호가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이번 건은 황명 그룹의 이권이나 신역 은광구의 치안 문제와도 관계가 있으니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처하겠다. 움직이기 전에는 나와 상담하도록.”

도움을 준다면야 감사히 받을 예정인데 애한테 주의라도 주는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일단 고개는 끄덕이니 황지호가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의신, 귀국하자마자 은광고로 돌아가 무엇을 하려고 했지? 너는 이번 건의 전모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데.”

빨리도 물어본다.

지금 황지호 눈에는 내가 무작정 달려드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나 보다.

나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은광고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상대는 한이를 데려가려고 했어. 어떤 식으로든 또 불러내려 하겠지. 그쪽으로 가기 전에 한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

황지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관찰했을 때, 그 아이가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

한이의 평소 성격을 고려하면 그러하다.

하지만 우수하고 냉정하고 침착한 한이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공청훤 선생님과 은광한빛보육원을 가지고 협박하면 얘기가 달라.”

“……부하를 보내서 감시할까?”

“아니, 조금 늦어도 괜찮을 거야.”

나는 디바이스의 메시지 발신 기록을 보여 주며 말했다.

“대비해 뒀으니까.”

*    *    *

은광고 거주 구역, 1학년 건물.

한이는 현재 반 아이들에 의해 기숙사 방에 반 감금된 상태였다.

—이상한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응! 절대 가면 안 돼!

어제 사건에 휘말린 이후, 사월세음과 권레나가 그렇게 말하며 기숙사 방문 앞까지 바래다줬다.

한이가 쉬도록 배려해 혼자 있도록 해 줬지만, 기척 감지 스킬을 이용해 확인해 보니 두 사람은 한이가 말없이 나가는 걸 걱정해 방문 근처에서 돌아가며 망을 보는 것 같았다.

한이는 밤새 잠을 못 이루다 해가 뜰 때쯤에 잠들었다가 오후 늦게 일어났다.

또 눈을 가린 누군가가 등장하는 꿈을 꾸는 바람에 오래 잠들었는데도 피로가 풀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우웅, 우웅…….

브레이슬릿 타입의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쉬지 않고 메시지 수신을 알리며 울렸다.

한이는 기계적으로 자동으로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레나] 밥 먹으러 가자! >_<

[레나] 한이야, 자?

[레나] 배 안 고파? ㅠ_ㅠ;;

[레나] 기숙사 방 앞까지 찾아갔는데 자는 것 같아서 세음이랑 같이 사 온 간식만 두고 갈게!

[레나] 저기…… 한이만 괜찮다면 권제인 선배님께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

[레나] 영원의 호수 팀에 국제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플레이어 분도 계시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하셨어!

[레나] 메시지 보면 생각해 보고 답장 줘! 기다릴게! >_<♡

권레나와 같이 ‘MITRON’에 들렀다 온 듯한 사월세음이 보낸 메시지도 있었다.

[사월세음] (사진)

[사월세음] (사진)

[사월세음] 내일 간식은 이거 중에 하나를 사 가려 하는데 어느 게 마음에 드세요?

[사월세음] 아, 둘 다 사 갈까요?

[사월세음] 의신이가 곧 올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왜 여기서 조의신이 나오지?

한이는 이해를 못 하고 다음 메시지를 확인했다.

다음은 민그린에게 온 메시지였다.

[그린이] 미안해.

[그린이] 나 때문이야.

[그린이] 내가 그렇게 겁만 안 먹었으면, 레나랑 세음이 발이 안 묶였을 거야.

[그린이] 정말 미안.

용역 업체의 남자들이 다 사라진 후에도 민그린은 몸을 웅크리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었다.

권레나와 사월세음이 부축해 대로로 이동하고 홍경복 화백을 통해 부른 민그린의 가족이 올 때까지 민그린은 심하게 떨었다.

‘그린이가 겨우 AR 글래스를 벗게 되었는데……!’

겁에 질린 민그린을 보고 실실 웃던 용역 업체에서 온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일 먼저 민그린에게 괜찮다고 답장을 하려 할 때.

우웅!

다시 브레이슬릿이 진동했다.

새로 뜬 메시지창을 본 한이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메시지창에는 첨부 파일이 여러 개였다.

첫 번째는 자신이 용역 업체의 남자를 공격하는 영상.

두 번째는 팔에 석고 붕대를 한 남자의 사진과 진단서의 스캔본이었다.

진단서를 읽은 한이가 경악했다.

‘골절로 인한 전치 4주라고? 그 정도의 데미지를 주지는 않았는데……!’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이 갔다.

저들은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을 한이 앞에 내세워 영상을 찍고, 그 이후에 한이가 가격한 지점을 노려 뼈를 골절시켜 둔 거다.

다음 메시지에는 공청훤의 프로필, 은광한빛보육원의 홈페이지 링크가 있었다.

공청훤과 보육원은 한이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 가족 중에 폭행, 상해를 저지른 플레이어가 나온다면 평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보육원은 안 그래도 정부 지원금이 끊겼고…… 공청훤 선생님은 이제 겨우 정교사가 됐는데…….’

한이가 패닉에 빠지기 직전, 주소 하나와 함께 메시지가 왔다.

[(알 수 없음)] 오늘 오후 8시.

그 외에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한이는 이게 협박임을 직감했다.

자신이 가지 않으면 공청훤이나 보육원 쪽에 무슨 일이 생길 게 틀림없었다.

‘밖에는 애들이 있는데.’

한이는 문 쪽으로 가는 대신 발코니 쪽으로 향했다.

한이의 방은 7층이었다.

지상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지만, 한이의 운동 신경과 스킬을 고려하면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는 거리였다.

‘미안.’

한이는 속으로 사과했다.

제 걱정을 하는 친구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이건 자신의 문제였다.

그것도 가족이나 다름없는 공청훤과 은광한빛보육원 사람들이 엮여 있으니, 친구들의 도움이나 걱정을 받을 여력이 없었다.

발코니 문을 조용히 연 한이가 도약 스킬을 사용해 뛰어올랐다.

휙! 휘익!

지면과 수평으로 선 한이의 신형이 아래로 쏘아졌다.

습한 바람을 가르고 중간중간에 있는 다른 방의 발코니를 디디며 그녀는 능숙히 도약 스킬을 사용했다.

5층, 3층, 1층.

순식간에 바닥에 도착한 한이가 다시 도약 스킬을 발동해 학교 밖으로 이동하려 할 때였다.

누군가가 한이의 앞길을 막아섰다.

“창문을 통한 기숙사 건물 출입은 기숙사 규칙 위반 사항이에요. 0반 아이들은 이 규칙을 거의 지키지 않긴 하지만…… 1학년 0반 학생 중에 규칙을 어긴 이가 나온 건 처음이군요.”

상대방의 얼굴을 본 한이가 눈을 크게 떴다.

방금까지 보육원과 함께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존재였다.

“공청훤 선생님……!”

이름을 부르자 공청훤이 화답하듯 부드럽게 웃었다.

“한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교칙이나 기숙사 규칙을 어기는 건 처음 보네요.”

공청훤은 평소처럼 다정하고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래요?”

*    *    *

같은 시각, 은광고 연구동 구역 광림연구4관 은영관.

오늘 분의 학교 행정 업무를 일찍 마치고 그는 은영관으로 향했다.

‘백호 님과 ‘흉내꾼’이 마음에 걸려…….’

백호는 어제 김신록이 ‘흉내꾼’을 고문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관찰과 기록은 허락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오늘은 백호 님이 오실 예정이 없다 했으니, 그동안의 기록을 재검토하고 간단한 심문을…….’

김신록의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존재의 등장으로 중단되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한 백호가 은영관을 막 나서는 게 보였다.

“백호 님? 오늘은 오시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

백호는 입을 일자로 다물고 김신록을 말없이 주시했다.

어쩐지 서늘한 감각이 들어 김신록도 말을 멈추었다.

“황호가 예정보다 이르게 돌아왔다. 지금 너를 설득할 시간이 없다.”

백호는 영문을 모를 말을 했다.

김신록이 그게 무슨 말인지, 황호는 언제 돌아온 건지 되물으려 할 때였다.

“미안하다.”

파앗!

백호의 눈 주변이 하얀 이능파로 가득했다.

‘안광’에 사로잡힌 김신록이 딱딱하게 굳었다.

호족의 후예이기도 한 김신록은 백호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설령 저항할 수 있더라도 제 스승에게 날을 세울 수도 없었다.

“백호 님, 어째서…….”

김신록이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목 뒤에 가해진 강렬한 통증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쓰러진 김신록을 은영관 안으로 옮긴 백호가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백호는 사지가 온전한 ‘흉내꾼’과 나란히 서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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