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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36화 (236/925)

44. 악천후 뒤에 (7)

플마고 게임 속, 마족(馬族)의 등장 비중은 매우 적었다.

게임 속에서도 마족(馬族)은 이계 충돌 이후 마족(魔族)과 계속 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 탓에 마족(馬族)은 스토리에 깊이 관여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했는데…….’

지력이 충만한 한반도에서 사용하는 언어상, 두 진족을 칭하는 말이 모두 ‘마족’으로 동음이의어에 해당하는 탓에 두 진족은 대립하게 되었다.

대립이라기보다는 마족(馬族)이 일방적으로 시달리다 대응한 것 같지만.

‘게임이 끝나는 순간까지 시달렸을 거야. 마족(魔族)은 무리 짓지 않고 제멋대로인 집단이니 산발적으로 습격이 일어났겠지.’

마족(馬族)의 수장, 자칭 흑마는 자기소개를 마치고 우리를 한 번씩 주시했다.

흑마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서 있는 탁거산, 그 바로 뒤에 서 있는 나, 흑마보다는 백마 셋에 눈길이 더 가는 듯한 주수혁, 여전히 엎어져 있는 방윤섭 그리고 멀리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맹효돈까지.

‘상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하는 중인 걸까? 아니, 그런 느낌은 아니야. 뭔가를 찾는 것 같은데…….’

흑마는 시선을 거두어 백마 세 마리를 바라봤다.

백마들은 ‘푸르르’ 하고 한숨 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다 말발굽을 바닥에 턱턱 쳐 댔다.

“이상하네. 분명히 이 아이들의 ‘다섯 영웅’ 중 하나가 오는 기척을 느꼈어. 그런데 없다고?”

오음산 삼마치 백마들의 다섯 영웅.

그 말을 들으니 지맥이 끊겨 태어나지 못했다는 전설의 다섯 장수가 떠올랐다.

지맥은 땅이 완전히 죽지 않는 이상 천천히 복구되니 그 다섯 장수도 다시 나타난 걸까?

예전에 백마와 마주쳤을 때, 송대석과 민그린이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홍천 출신 중에 걸출한 플레이어는 넷이 있었어.’

대영웅 무쇠팔 송만석.

민그린의 사부인 홍경복 화백.

책 수집가로 알려진 은광고의 교장.

그리고 성국언과 성시완의 할아버지인 어둠의 시대 한국 지부장.

이 넷은 홍천 출신이 확실한데 남은 하나가 걸렸다.

‘처음엔 홍천에 연고가 있고, 우수한 플레이어인 성국언과 성시완이 남은 한 명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니었지.’

홍천에 방문했을 때, 출신을 묻자 성시완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 부모님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사하셨어. 임신 당시 이능파가 감지돼서 플레이어 시설이 있는 곳으로 간 거야.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어. 내가 은광고에 들어가고 가족들은 홍천으로 돌아간 거야.”

—응, 국언이 형도! 내가 있던 이능 센터가 국언이 형이 나온 곳인데, 거기 형이 있을 때…….

‘성국언, 성시완은 홍천 밖에서 태어났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 둘은 아니야.’

그리고 흑마가 말하는 걸 보니 적어도 우리 다섯 중에는 그 영웅이 없는 것 같았다.

혼잣말하던 흑마가 입을 다물자 탁거산이 물었다.

“마족(馬族)의 수장이 감사 인사를 표할 일이 있었소?”

“어젯밤에 여기에서 어느 플레이어가 덫에 걸린 우리의 권속을 구했어.”

어젯밤이면 홍천엔 한참 태풍이 몰아쳤을 때다.

셋이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밖에 나와 야산을 싸돌아다닌 건 맞는 모양이다.

탁거산은 딱히 집히는 바가 없는 것 같았다.

방윤섭이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저놈도 아닌 거 같다.

막 도착해서 상황 파악을 못 하던 맹효돈이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아.’ 하고 말문을 열었다.

“어제 여기서 그 버섯 캐러 갔다는 사람들 찾던 중에 야생마가 덫에 걸려 있는 걸 봐서 놔줬는데, 그건가?”

“우리의 권속을 구한 건 어린 제자 쪽이었나.”

맹효돈이 구한 야생마는 마족(馬族)이 길들인 짐승이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말하는 걸 보니 맹효돈은 어젯밤 태풍 속에서 구조 활동을 한 것 같았다.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다운 행보에 훈훈한 마음이 되었다.

“아직 어리고 약한 권속이라 그대로 놔두었으면 큰 변고를 겪었을 거야. 고마워. 답례를 하고 싶은데.”

흑마가 맹효돈 앞으로 훌쩍 다가가 말했다.

맹효돈이 뒷걸음질 치며 민망해하는 얼굴을 했다.

“어…… 인사받을 만한 일은 아닌데요.”

“그래?”

흑마는 1초 정도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네?”

“인사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어…… 네.”

흑마는 강단이 있는 성격인가 보다.

어쩔 줄 모르는 맹효돈을 향해 백마도 뒤에서 말발굽을 바닥에 턱턱 쳐 대며 인사를 받으라는 리액션을 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마족(馬族)은 인간과 적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마족(馬族)은 긴 꼬리야. 아무리 마족과 싸웠다고 해도 흑막의 밑에 있을 가능성이 있어.’

흑막에게 협력하는 마족(魔族)도 있고, 협력하지 않는 마족(魔族)도 존재한다.

모든 마족(魔族)이 흑막과 손을 잡았다면, 까마귀 마왕을 상징하는 가면을 쓰고 다니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마족(魔族)과 싸웠다고 해서 배신자가 아니라고 단정 짓기 힘들었다.

“흑마의 권속이 그 험한 날 왜 야산을 헤맨 것이오?”

탁거산이 그렇게 물으며 맹효돈을 괴롭히는 건지 감사 인사를 하는 건지 모를 흑마를 제지했다.

“어제 태풍을 틈타서 마족(魔族)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바빴어.”

“쳐들어왔다는 마족(魔族)이라 함은…… 천족과 대비되는 존재를 칭하는 게 맞소?”

“응.”

태풍으로 개판이 된 와중에도 그 난리를 쳤나.

“아직 수습이 안 끝나서 바빠. 선물 보낼 주소 알려 줘.”

“어,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주소 알려 달라고.”

결국 흑마의 집요함에 꺾여 맹효돈이 은광고 기숙사 주소를 말했다.

“너 은광고 학생이야?”

“……네.”

흑마는 곰곰이 생각하다 툭 뱉었다.

“알았어.”

뭘 안 건지 모르겠지만, 흑마는 백마 세 마리를 이끌고 몸을 틀었다.

그리고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또 봐.”

설마 은광고로 직접 올 생각인 건가?

이런 불길한 생각은 나만 한 게 아닌지 맹효돈의 얼굴이 조금 굳어 있었다.

흑마가 사라진 후.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맹효돈이었다.

“……야, 너희 왜 왔냐.”

이 질문에는 나보다는 주수혁이 답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방학 끝나기 전에 다 같이 놀러 가려고. 효돈이랑 윤섭이가 연락이 안 돼서 마중 온 거야.”

“놀러 가?”

“청소년 수련회 때 사건이 터져서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했잖아. 그날 청소년 수련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 부르고 싶어.”

주수혁은 홀로그램을 하나 띄웠다.

홀로그램에는 주오 아일랜드의 안내도가 떠 있었다.

“주오 아일랜드로 1학년 0반, 1반, 2반 애들을 초대할 생각이야.”

*    *    *

플레이어 협회 위성 관리팀의 연구소.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플레이어 위성 연구소는 서류상 위성 관리팀의 한 부서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리고 보안 레벨이 상당히 높은 이 부서에 오랜만에 신규 연구원이 입성했다.

이례적인 채용 절차를 거친 신입 연구원은 무려 대영웅 무쇠팔 송만석의 손자로, 아직 17세의 고등학생이었다.

부정 채용을 의심할 만한 인선이었지만, 인사 담당자나 연구소 소속 연구원 중 불만을 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고등학생은 다른 연구원에 비해 경력과 학력만 부족할 뿐, 능력이나 보안 면에서 완벽했던 탓이었다.

거기에 그 학생, 송대석은 아직 서류상 중졸이긴 하나 은광고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협회 소속 플레이어들은 송대석의 학력과 경력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해결될 사항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경력은 쌓으면 되지! 이 연구소에서!’

‘중졸이면 어때. 솔직히 그냥 고등학교 중퇴하고 정식 연구원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송대석의 뒤에서 버티고 있는 송만석과 홍경복이 없었다면, 연구소에 영구 취직시키고 싶은 게 연구원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민그린 문제로 송대석이 며칠 동안 출근을 하지 않았을 때는 난리가 났었다.

그 탓에 프로젝트가 몇 개 지연되었는데, 오늘 그 밀렸던 일정 조정에 성공하여 드디어 송대석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존재와 마주하게 되었다.

“협회의 위성 프로젝트에 진족이 관여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그 진족이 합류한 건 얼마 안 됐어. 극비 사항이기도 했고. 무쇠팔 선배님께도 말하면 안 돼!”

위성 관리팀의 팀장, 임지화가 계속 말을 이었다.

“기술 제휴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서 그동안 다들 고생했어. 위성 기술은 이능과 과학의 경계에 놓여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원은 과학 기술적인 측면에서 위성을 다루고 있으니까. 이능을 활용한 부분은 다소 약했지.”

송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성 관련 연구원의 대다수가 위성 공학 논문을 낸 박사 출신인 플레이어들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어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진족이 선보인 기술은 완전한 이능…… 아니, 허구나 공상의 영역이었거든. 연구원들 중에 그 진족의 기술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발동하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어.”

이능을 넘어선 허구나 공상의 영역을 위성 기술에 접목한다고?

그 생각에 들뜬 얼굴을 한 송대석을 본 임지화가 밝게 웃었다.

‘다른 연구원들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질린 얼굴을 했는데…….’

임지화가 처음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연구원들은 두 존재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상상도 안 간다면서 울먹였다.

그런데 송대석은 이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듣자 아이 같은 얼굴을 하며 신나 있었다.

“대석이는 플레이어 위성을 통섭적인 관점으로 분석하고 있잖아? 그 진족과 직접 이야기해서 그 통찰력을 발휘해 줬으면 해.”

“전 말을 잘하지 못하는데요.”

“괜찮아. 좀 특이한 진족이긴 한데, 뭐…… 인간에게 적대적인 것 같진 않고 말도 많으니까 그냥 할 말이 없으면 듣기만 해.”

임지화와 송대석이 몇 차례의 보안 절차를 마친 후.

겉으로 봤을 때, 벽으로 막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복도 끝에 멈춰 섰다.

송대석은 이 벽 너머에 그 진족이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송대석의 예상대로 임지화가 벽의 한 지점에 손바닥을 올리자 벽이 점차 투명해지며 건너편이 보였다.

그리고.

“허어어엉, 으어어어엉!”

서럽게 꺼이꺼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진 벽 너머의 바닥 위 누군가가 주저앉아서 울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울고 있는 누군가를 달래고 있었다.

“진정해. 그 아이들은 다 무사하잖아.”

“흐으윽, 끄흡,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흐어어엉!”

한쪽이 아무리 달래도 붉은 눈을 한 여자는 바닥을 치며 펑펑 울었다.

‘……임지화 팀장님이 말씀하신 진족인가?’

잘 보니 울고 있는 여자도, 달래는 여자도 전부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실컷 울고 난 붉은 눈의 진족이 훌쩍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진짜 죽은 줄 알았다고! 착한 애들이 미친 호랑이 저택으로 가기 무섭게 못된 걸 배웠어! 시체놀이? 미친 거 아니야? 토윤 언니, 그냥 우리가 데려오면 안 돼? 응? 언니이……!”

“……토연아, 그 아이들은 호족의 후예야.”

토연과 토윤이라고 서로를 칭한 두 진족들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뭔지 몰라도 두 진족은 미친 호랑이 저택에서 억울하고 분한 일을 겪은 것 같았다.

토연이라고 불린 진족이 한참을 구시렁거리다가 임지화와 송대석의 존재를 알아챘다.

“……아, 쟤가 은인이랑 같은 반인 애야? 와, 쟤 송만석 젊은 시절이랑 똑같은데!”

송대석은 할아버지와 닮았다는 말보다 ‘은인’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옥토윤이 옥토연의 등짝을 후려쳐 입을 다물게 했지만, 이미 송대석의 머릿속은 ‘은인’이라는 단어로 꽉 찼다.

‘은인이랑 같은 반? 0반을 말하는 게 맞나? 은인이 누구야. ……최근에 어디에선가 들어 본 말인데.’

기억이 분명하지 않은 걸 보니 청소년 수련회 때 일인 것 같았다.

송대석은 이능독에 감염된 직후의 기억들이 애매했다.

희미한 기억을 헤집어 보던 중에 문득 어떤 말이 떠올랐다.

—무사한가, 나의 은인이 부탁한 일을 처리하느라 조금 늦었다.

같은 반의 돌아이 황지호.

그놈은 갑자기 나타나서 그런 말을 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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