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50화 (250/925)

46. 무대의 아래 (4)

초등학생 시절, 고립되어 있던 한이와 독고미로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계기는 학급에서의 고립과 괴롭힘 탓이었지만, 둘은 평범하게 만났더라도 친구가 되었을 거라고 확신할 만큼 이야기가 잘 통했다.

마침 독고미로의 집과 한이가 있는 은광한빛보육원은 그리 멀지 않았다.

독고미로는 한이와 가까워진 이후로 자주 은광한빛보육원을 방문해 그곳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중에는 봉사 활동자인 공청훤도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공청훤은 밴드부 사람들을 데려와 아이들 앞에서 연주와 노래를 하기도 했는데, 그의 노래를 들은 독고미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보컬 레슨 선생님보다 청훤이 오빠가 더 잘 불러요!”

“고마워요.”

“그냥 하는 소리 아니에요! 데뷔하세요! 저랑 같이 데뷔할래요? 아, 전 솔로 아이돌 하고 싶으니까 가끔 유닛으로 뭉쳐요.”

“밴드부 활동은 취미로 하고 있어요.”

독고미로의 유닛 제안은 한 방에 까였지만, 공청훤의 조언을 받아 독고미로의 노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학년이 바뀐 이후에도 학교생활은 괴로웠지만, 이번 담임은 학생들에게 무관심한 타입이었고 교사진 사이에서도 겉도는 인물이라 비교적 편했다.

무엇보다 한이와 보육원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니 학교에서 조금 외롭더라도 버틸 만했다.

문제는 한이와 친구가 되고 난 다음 학년에 터졌다.

“꿈이 아이돌이라고?”

새 담임 교사의 얼굴을 본 독고미로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상대의 눈에는 악의가 넘실거렸다.

그 해에 독고미로의 담임이 된 교사는 교육에 관한 어떤 열정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독고미로가 파악한 대로 그 교사는 그저 안정적인 수입과 사회적 지위를 위해 직업을 교사로 택한 인물이었다.

한국에서는 교직을 신성시하고 있지만, 임용 고시를 통과하기 위해선 인성과 올바른 교육관을 품는 것보다는 교과 이해도와 암기력을 키우는 게 더 중요했다.

이런 타입의 교사가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플레이어 이능을 타고 났으면 그걸 감사하게 여길 줄 알아야지, 못 돼먹었네.”

그 교사는 교사로서의 지위는 좋아했지만, 교사 노릇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기는커녕 고등학교와 교대를 다니던 시절 교육에 관한 열정과 일종의 사명감을 품은 급우와 동기를 바보 취급하고, 저와 비슷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을 모아 한 명을 찍어 음습한 수단으로 따돌릴 정도였다.

그 교사가 학창 시절 쌓아 온 그 버릇과 경험은 어딜 가지 않았다.

신체에 손상을 주는 방법으로 괴롭히는 건 책 잡히기 쉬우니 그 교사는 정신적으로 트라우마를 안겨 주는 방법을 택했다.

‘아이들을 위한’ 훈육, 교육이라는 말로 포장해서.

“얘들아, 미로가 아이돌을 하고 싶다니까 사진 찍어 주자. 아이돌 안 한다고 하면 그만 찍고.”

그 이후로 학교에서 독고미로의 인권은 없었다.

아이들은 킬킬거리며 독고미로를 찍어 댔다.

교내의 온갖 장소에서 독고미로의 모습이 촬영되어 이상한 사진과 그림에 합성되고, 그 밑에 괴상한 문구까지 붙어서 돌아다녔다.

독고미로가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학교 폭력범으로 취급하거나, 그녀가 찍히면 곤란한 짓을 하기에 저런 소리를 한다고 몰아갔다.

‘아이돌에게 학교 폭력 전과는 치명적이야……!’

독고미로는 여러 아이돌을 무너뜨린 학교 폭력 스캔들을 떠올렸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꿈을 이뤄 주기 위해 이미 많은 배려를 해 줬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독고미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한이가 저와 묶여서 찍히지 않도록 친구를 멀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기록기기가 무서워지고, 그 존재에 민감해졌다.

독고미로는 이성적으로, 또 본능적으로 기록기기의 존재와 위치, 작동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이 생겼다.

그런 능력이 생기자 독고미로는 결심했다.

‘이렇게 된 이상 당하고만 있진 않겠어. 날 학교 폭력범으로 만들 거라고? 안 하고 그런 소릴 들으니 하고 그런 소릴 들을래.’

기록기기가 없다면 무섭지 않았다.

독고미로는 가면과 두꺼운 옷으로 얼굴과 체구를 숨기고 뒷골목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광일동을 시작으로 전 초등학교 주변을 쓸고 다니며 어떤 방식으로든 괴롭힘을 선동하는 것들과 덤으로 동네 불량배들도 다 박살 내고 다녔다.

그녀의 날뛰는 모습이 귀신같이 기록기기에 찍히지 않은 채로 골목대장으로서 군림했다.

‘……‘그 사건’ 때문에 한이에게는 들키고 말았지만.’

은광구의 초등학생들은 심한 괴롭힘을 저지를 생각도 못 하고 얌전하게 지냈다.

비록 교활하고 조심성 많은 교사들을 손봐 주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녀는 이전에 비하면 평온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큰 사건을 겪고 한이와는 서먹해졌지만 그래도 무사히 졸업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독고미로는 출결 관리가 허술하기로 유명한 사립중학교에 진학했다.

학비는 비싸지만, 사전에 교칙에 제시된 사유를 담은 결석계를 제출하면 쉽게 출석 인정 결석으로 처리해 주는 유연한 곳이었다.

그리고 출결이 자유로운 은광고에 진학했고, ‘플레이리스트’의 예선도 통과했다.

그러나 기록기기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카메라가 무서워.’

학교는 싫고, 카메라는 무서웠다.

그래도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면 너머의 삶을 여전히 동경했다.

힘든 시절에 독고미로에게 힘을 줬던 그 꿈을 놓을 수 없었다.

‘오늘이 은광고 2학기 개학일이지.’

한이와 반 아이들이 떠올랐다.

은광한빛보육원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한이가 용역 업체와 미친 경찰들과 엮였을 때는 걱정했다.

독고미로는 광일파출소의 기록기기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자마자 파출소를 부수러 갈 정도로 걱정했다.

다행히 그 일도 무사히 마무리된 것 같았고 한이는 반 아이들과 잘 지내는 것 같았다.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학교생활은 어떨까…….’

은광고의 1학년 0반 교실.

낡은 반지하 연습실.

독고미로는 잠시 동안 둘 사이에서 망설였다.

짧은 고민 끝에 그녀는 오늘도 연습실로 향했다.

*    *    *

은광고의 1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금과 방학 사이에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학생들의 차림새였다.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안 입고에 따라서 학교 분위기가 이렇게 다르구나.’

검은색의 신교복, 흰색의 구교복을 섞어 입은 학생들이 많아 통일성은 없긴 했다.

그래도 방학 동안 학생들이 입던 사복과 달리 하복 차림은 이들이 같은 단체에 소속되었다는 느낌을 줬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풍경이 변했으니 설레고 신나야 하는데 기분이 우울했다.

오늘 공개된 신문부 기사와 주변의 반응 탓이다.

[적벽괴도 VS Phantom Thief]

‘그 단어’가 은광고 신문부 홈페이지 1면에 보였다.

1면 전체에 ‘그 단어’의 행적과 찬양, 분석이 알차게 소개되어 있었다.

반 정도 읽었는데 오그라든 손이 펴지질 않았다.

신문부는 쓸데없이 정보력이 우수했고, 일도 열심히 잘하는 게 문제였다.

나를 우울하게 하는 건 기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염준열] 안녕하세요, 스승님! 스승님이 학교 신문 1면에 나왔어요!

[염준열] (링크)

내 착한 제자 염준열은 스승이 학교 신문 1면에 나와 기쁜 모양이었다.

그 마음이 기꺼우면서도 손발이 저릴 정도로 미묘했다.

[염준열] 분석이 구체적이라서 놀랐어요! 스승님의 환몽 경매장 탈출 예상 경로를 꼼꼼하게 분석했는데, 실제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염준열] 또 스승님의 활약상이 타임라인 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세 번이나 정독했어요! 제가 파악한 것과 다른 부분도 있는데 다음에 수업에서 뵐 때 어느 쪽이 맞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염준열은 종이 신문을 읽고 있는 홍룡 스탬프를 첨부했다.

스탬프 뒤에도 흥분한 어조의 메시지가 줄줄 이어졌다.

다행히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그래도 읽기 괴로웠다.

기사의 폐해는 현실에서도 이어졌다.

“의신아! 안녕하세요!”

등굣길, 하늘 위에서 다급한 인사가 들려와서 올려다보니 사월세음이 있었다.

사월세음은 급강하해 내 앞에 멈춰 섰다.

용제건의 지도 덕인지 비행 스킬을 사용하는 게 한결 능숙해진 모습이었다.

“의신이는 신문부였죠?”

사월세음은 홀로그램을 띄워 두고 있었다.

그 홀로그램에는 예의 그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저…… 인쇄판 신문은 아직 안 나왔나요? 적벽괴도 님의 기사는 늘 스크랩해서 벽에 장식하고 있거든요! 가능하면 한 세 부, 네 부 정도 얻을 수 있을까요?”

사월세음은 사월 일족의 저택에 있는 그의 방뿐만이 아니라 기숙사 방에도 벽을 ‘그 단어’로 도배했나!

기숙사 같은 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흉사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꼭 그게 필요해?”

“네! 아, 종이 신문으로 발행되지 않으면 직접 출력해서 인쇄본을 얻을 생각이에요.”

생글생글 웃는 사월세음의 얼굴에 악의라곤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인쇄 예정 날짜와 배부 장소까지 알려 주었다.

나는 기쁘지 않았지만, 사월세음은 기뻐했다.

내 고통보다 우리 반 아이의 행복에 신경을 기울이기 위해 노력하며 교실로 향했다.

*    *    *

조례를 시작하는 함근형 선생님의 목소리는 흉흉한 얼굴과 달리 온화했다.

반 아이들이 아주 많이 등교한 덕일 거다.

“2학기 첫 조례구나. 잘 왔다.”

1학년 0반의 총원 16명 중 10명이 등교했다.

1학기 개학부터 등교한 나, 황지호, 김유리, 한이.

3월 말에 등교를 시작한 권레나와 맹효돈.

4월 1일에 첫 등교를 한 사월세음.

기말고사 전에 합류한 민그린과 송대석.

그리고 방학 중에 구출된 목우람.

이렇게 열 명이 되니까 우리 반도 반다워졌다.

‘남은 여섯 명은 뭐 하는 중일까.’

독고미로는 여전히 연습 중일 거다.

그렇다면 이제 등교 거부자는 다섯 명이 남은 셈이었다.

“……전달 사항은 여기까지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반장, 부반장 혹은 나한테 연락하도록. 급훈을 잘 지켜 주길 바란다. 이상이다.”

함근형 선생님이 조례를 마치자 목우람이 급훈이 쓰여 있는 판넬을 가리켰다.

1학년 0반의 급훈.

‘정시 등교’

기존의 등교자는 자주 봐서 익숙해졌지만 목우람의 눈에 저 급훈은 좀 이상한 모양이었다.

“급훈이란 일종의 교육 목표이자 추구해야 할 가치와 덕목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시 등교가 이 반의 최고 가치입니까?”

목우람은 여전히 한국어를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모를 말투를 썼다.

급훈의 등신스러움을 지적했다가 혼쭐이 난 경험이 있는 맹효돈이 목우람을 외면했다.

목우람의 질문에 답한 건 권레나였다.

“응! 빨리 반 애들 다 등교했으면 좋겠다.”

“그렇습니까! 훌륭한 급훈이로군요.”

권레나의 말에 목우람이 빠른 수긍을 했다.

목우람은 딱히 의도하지 않았지만, 음악에 관한 과목을 택했기에 권레나와 선택 과목이 거의 겹치게 된 덕에 금방 말을 트게 되었다.

목우람은 호구였지만 공부는 잘 했으니 공부를 따라가는 데에 애를 먹는 권레나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한편, 큰일 난 놈도 있었다.

“아, 무슨 첫날부터 수학이야.”

시간표를 본 맹효돈이 토하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재 등교하는 학생 중에서 수학을 택한 건 맹효돈뿐이었다.

‘그 중학교 선생님은 맹효돈이 수학을 택하지 않아도 제자로 대해 줄 텐데.’

김유리와 내가 반장과 부반장으로서 맹효돈을 말려 봤지만 저놈은 결국 또 수학을 택했다.

수학을 제외하면 다 머리보다 몸을 쓰는 과목뿐이라 공부 부담이 적긴 하겠지만, 수학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컸다.

“공청훤 선생님이 올린 수업 자료 봤어?”

“어. 이번에도 분량이 많은 것 같던데.”

또 나와 한이는 공청훤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공청훤은 에너미학 심화 과정도 맡게 되어 수업 시수가 예전보다 늘어난 것 같았다.

문제는 이놈이었다.

“하하하! 어떤 수업인지 기대되는군.”

한이가 무표정으로 황지호를 쳐다봤다.

황지호도 공청훤의 수업을 듣기로 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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