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패자 부활전 (1)
위화감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일찍 잠들고 일어난 아침, SNS 계정의 팔로워 수가 수십 단위 정도 줄어들어 있었다.
처음엔 오류라고 생각했는데 하필 사라진 이름들이 그 교사가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그 교사는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모아 약자를 괴롭히는 일을 즐겼지만, 순수하게 호의를 베풀고 따르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뭐야, 대체 왜…….’
그 원인은 금방 판명되었다.
어젯밤 자신의 계정에 사진이 하나 올라갔다.
그 사진에는 몇 년 전, 뻔뻔하게 체험 학습비를 내지 않은 주제에 소풍에 따라와 등 뒤에 체험 학습비 청구서를 붙이고 다니게 한 아이가 찍혀 있었다.
아이의 이름도 얼굴도 나오지 않았지만 작은 등 뒤에 붙은 종이에 쓰인 청구서와 청구 내역 문구는 선명하게 보였다.
또 교사의 SNS 계정을 멋대로 팔로우한 아이들이 눈치 없이 댓글을 달고 추천을 찍었다.
[쌤 너무 고생하셨음. 오죽하면 착한 우리 쌤이 저걸 붙였겠냐고ㅋ]
[ㅋㅋㅋㅋㅋ저거 붙인 날 저 거지 새끼 울 때 짜증 났는데.]
[준비물 안 갖고 올 때마다 욕 나왔음. 그만 빌려 거지쉑ㅋㅋㅋ]
기록이 남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웹상에서 약자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눈치 없는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부정적인 내용의 댓글이었다.
[이건 좀…… 저게 무슨 자랑이라고;]
[선생님이 붙이신 거예요???]
[사진 내리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헐ㅋㅋㅋ 이걸 대놓고 올린다고? 미쳐 돌아간다. 드디어 본색 나오는 거임? 그동안 성질 어떻게 죽이고 사나 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
교사가 괴롭힘을 주동한 건 맞았다.
하지만 교사는 이런 사진을 찍은 기억도, 이걸 올린 기억도 없었다.
교사는 당장 사진을 내리고 자신의 행적이 드러난 댓글을 모두 지웠다.
밤 사이에 올라간 사진과 자신은 무관하며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문을 올렸다.
또 SNS 고객 센터에 직접 전화해 전화 상담원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쪽에서는 ‘죄송합니다, 고객님. 확인해 보겠습니다.’라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확인 결과 기술적인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원인 규명은 되지 않았지만, 실컷 화풀이했더니 기분은 풀렸다.
그렇게 수습을 해도 초반에 바로 손절한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모든 지인이 그 사진을 본 건 아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불쾌한 사건은 연달아 일어났다.
“그분 업무까지 제가 맡으라고요?”
최근 한 교사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자신과 얘기가 잘 통하는 교사로, 3학년 때 독고미로의 담임을 한 자신에 이어 4학년 때 담임을 맡은 인물이었다.
“둘이 사이가 좋았잖아. 업무 분장 때문에 다른 선생님하고도 얘기했는데 계속 선생 이름이 나오더라고.”
교무부장의 말을 듣는 교사는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판 다른 교사들도 그랬지만 음주 운전을 한 어리석은 교사에게 가장 큰 분노를 느꼈다.
‘자동차 보험도 없이 음주 운전을 해? 미쳤어. 차는 당연히 폐차고, 부순 가드레일이랑 건물값에 치료비만 해도 몇억은 나오겠네.’
자동차 보험도 들지 않고 겁도 없이 술을 마시고 차를 몰았다는데, 정작 본인은 술 마신 기억은 있어도 차를 몰았던 기억이 없다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또 음주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낸 주제에 자동차 고장을 의심하며 직접 기자와 접촉해 인터뷰하기까지 했다.
NK자동차 측에서는 사고 원인을 조사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사고를 낸 운전자가 여러 차례 음주 운전을 한 공무원임을 강조했고 대중도 그 사실에 주목했다.
‘학교에서 처신하는 거 볼 때는 멍청하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공무원 징계령 시행 규칙에 의하면 공무원은 음주 운전 2회 적발 시, 정직이나 해임 처분을 받게 된다.
3회 이상 음주 운전 이력이 있으면 무조건 해임 이상의 중징계가 확정되는데, 자신한테 전화해서 병원비를 꿔 달라며 하는 소리를 들어 보니 이번이 3회째인 듯했다.
저 교사가 잘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예전에도 걸렸으면서, 이번 주에 두 번이나 음주 운전을 했다고? 버려야 할 인간이 늘었네.’
가깝다곤 하지만 그저 몇몇 학생들에 대한 평가와 태도가 자신과 일치하여 어울렸을 뿐이었다.
합심하여 비슷비슷한 교사들의 반에 독고미로 같은 아이를 넣어 정신머리를 고쳐 놓고 스트레스도 풀 때는 합이 잘 맞았지만, 의리를 지킬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 교사의 어리석은 행위 탓에 업무량이 늘어 기분만 나빠졌다.
돈에 관해선 생각해 보겠다며 답했지만, 전화를 끊은 후에는 즉시 발신자 차단 처리를 했다.
기분을 잡치는 일이 있었긴 했지만, 저보다 더 바닥에 처박힌 인간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난 저렇게 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이상한 일은 계속되었다.
요 며칠간, 타교로 전근 간 교사가 정신 이상 증세를 일으켜 정신 병원에 입원하고, 어떤 교사는 자살인지 도망인지 모를 암시를 남기고 야반도주했다.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들이었는데. 다들 머리가 저렇게 이상했었나?’
자신에게는 소소하지만 몹시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일어났다.
독고미로와 관련한 헛소문을 부추기려 했던 아이들과 모두 연락이 끊겼다.
몇몇은 서로 싸우던 중에 자연 이능파 방출 사고에 휘말려 다치는 바람에 영구적으로 청력이 상실하고 얼굴이 얽었다.
어떤 아이의 학부모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들을 교정 시설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자신에게 보냈다.
‘얘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리고 눈치 없는 아이들 몇몇이 자신의 이름을 태그해서 과거의 행적을 사진과 함께 업로드했다.
돌려서 하지 말라고 요구해도 뭔가에 홀린 것처럼 아이들은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증거와 인증과 함께 과거 썰을 풀었다.
또 이런 짓을 벌이는 아이들은 얼마 안 있어 연락이 끊겼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대부분 더 심한 따돌림을 벌이다가 걸려 학폭위에 넘어가고,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은광구 밖으로 전학을 가거나 사고에 휘말렸다.
‘꺼질 거면 조용히 꺼지든가.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다행히 자신이 벌인 행위가 워낙에 교묘했던 덕에 아슬아슬하게 민원에 걸릴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을 경험해 본 이들은 이 교사가 무슨 의도로 어떤 짓을 했는지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했다.
[역겹다ㅋ]
[헐……ㅋㅋㅋㅋ 저번에 올라온 거 찐이었나 보네ㅋㅋㅋ 믿은 내가 등신이지.]
[블락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메시지 남긴다. 넌 교육자로서의 자각을 좀 가져라.]
SNS 계정의 팔로워 수가 점점 줄고, 학부모의 전화가 빗발쳤다.
계정을 폐쇄해 보기도 했지만, 즉시 부활했다.
행정 업무와 수업이 있어 그쪽 일에만 매달려 있을 수도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왜?’라는 의문이었다.
왜 자신이 이런 불합리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교사는 자신이 한 행적이 발각되면 곤란하다는 건 알고 있으면서도, 그 행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 하나씩 정리되고 있군. 지정한 범위에 있는 자들의 반응을 살펴. 동조하거나, 찔려서 증거를 인멸하는 움직임이 있으면 같이 엮고.”
의문의 메시지를 남기고 무단으로 출근도 하지 않은 채 야반도주한 교사가 쓰레기 매립장 한복판에서 인사불성으로 발견된 어느 날.
방과 후, 교실에 남아 있던 전학생이 해괴한 소리를 하는 걸 목격했다.
“가장 악랄한 것은 이렇게 숨통을 조이고, 그간 벌인 악행에 가담한 학생을 꼬여 내는 미끼로 쓰다가 마지막에 처리하자는 게 은인의 의견이다. 뭐? 그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대충 그런 요지의 제안이 아니었나. 하하하하!”
곱상한 눈을 한 전학생은 허공에 대고 말하다 처웃고 있었다.
주변이 미쳐 돌아가니 저 짜증 나는 전학생도 미친 건가.
평소라면 엄중하게 체벌하며 스트레스를 풀었겠지만, 이상하게도 도망가야 한다고 본능이 비명을 질렀다.
문틈에서 눈을 떼려 할 때, 전학생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전학생은 처음부터 교사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던 것처럼 보란 듯이 씨익 웃었다.
마주친 눈이 어쩐지 맹수의 눈처럼 보였다.
“내 친우와 그 벗을 갈라놓고 굴욕을 준 이를 쉬이 끝낼 수 없지.”
초등학생이 저런 대사를 하면 그저 가소롭고 웃겨야 할 텐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뒤로 붉은 안개가 언뜻 보이다 사라진 것도 같았다.
* * *
방과 후, 하굣길.
수가 적긴 하지만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해 춘추복을 입기 시작한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나는 홀로그램을 보며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홀로그램에는 그간 적호가 조사한 독고미로의 숨겨진 활약상이 담겨 있었다.
독고미로는 광일동을 시작으로 은광구를 종횡무진하며 엇나간 초등학생들을 제압한 모양이었다.
은광구 초등학생들은 ‘패왕한테 이른다!’라는 말을 가장 무서워했다고 한다.
‘혼자서, 그것도 학교를 마친 뒤에만 활동할 수 있으니 한계가 있었을 거야. 그런데 이 정도로 움직이다니 초인인가?’
독고미로는 방과 후에 금품을 갈취하거나 불러내어 폭력을 행사하는 초등학생을 다 박살 냈다.
독고미로가 그리 날뛰니 억울한 사연을 가진 초등학생들이 독고미로를 의지하고 불량배 소문을 모아 고자질을 한 덕에 점점 일이 수월해진 듯했다.
“의신아, 안녕.”
교문을 통과할 때 누가 말을 걸었다.
선도부장 오혜지였다.
선도부가 등교 지도는 자주 해도 하교 지도는 거의 안 할 텐데.
“안녕하세요.”
“그래, 그 사건 이후로 선도부에서 등하교 지도를 강화하기로 했어. 저번에 방송국 놈들이 쳐들어온 이후로 별일 없었어?”
아, 그 사건 때문에 선도부가 나서게 됐구나.
0반이라고는 하지만 1학년끼리 외부인이 일으킨 사건에 대처해야 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았다.
“네, 괜찮아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냐. 이제 수험 준비하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오혜지는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혜지는 하복을 입고 있었는데, 손목에는 여전히 주수겸이 사 줬다는 샌드핑크색의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시계를 보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울린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수겸은 매우 상식적이고 정당한 대응을 했지만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좋은 평가를 내릴 수가 없었다.
“언니분과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결국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고마워. 내가 직접 연락하면 걸릴 테니까…… 필요할 때는 부탁할게.”
오혜지는 오혜정을 생각하며 기운을 낸 것 같지만 예전 같은 활기는 느낄 수 없었다.
수험 때문인지, 실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수겸이 다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 * *
은광고 근처의 스터디 룸 카페.
예약한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는데 독고미로가 먼저 와 있었다.
“……안녕, 무슨 일로 불렀어?”
독고미로는 조금 굳어 있었다.
룸 별로 각각 CCTV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게 걸렸나 보다.
‘저 CCTV는 음성 녹음이 안 되는 구형 타입이야. 정말로 ‘찍히는 것’에 약하구나.’
독고미로의 표정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처음 만나자고 하자 독고미로는 꺼려 했는데, 정문에서 있었던 사건에 관해 언급하니 바로 응했다.
독고미로는 저번 사건에 반 아이들이 휘말렸다는 생각에 미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 같았다.
“미션 영상은 찍었어?”
“……아직. VJ님께 도움받아서 몇 번 찍긴 했는데…….”
독고미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내 입 모양이 찍히지 않게 CCTV를 등진 상태에서 말했다.
“내가 돕게 해 줘.”
“응?”
“넌 카메라 앞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잖아.”
이 말에 독고미로의 얼굴에 즉각 경계심이 서렸다.
지금 나는 아주 수상할 거다.
초면이나 다름없는 독고미로를 갑자기 불러낸 것도, 카메라를 언급한 것도, 또 표정도 수상할 거다.
나를 응시하는 독고미로의 눈에 희미한 패기가 어른거렸다.
“왜 몇 번 만나 보지도 않은 나를 돕겠다고 하는 거야?”
나는 홀로그램을 하나 띄웠다.
홀로그램에는 ‘광일파출소 습격 사건’에 관한 기사가 담겨 있었다.
“패왕을 돕고 싶어서.”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