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55화 (255/925)

47. 패자 부활전 (2)

승자, 패자 두 종류로 사람을 나눈다면 독고미로는 스스로를 패배자로 분류했다.

그 패배의 증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심어진 ‘카메라 공포증’이었다.

독고미로는 아이돌 지망생인 주제에 계속 카메라의 존재를 피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카메라가 무서워 이를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초반과 달리 스태프들도 공정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독고미로가 받는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런 기회가 오기 전까지 카메라 공포증을 극복했어야 했는데. 내가 진 거야…… 다 나 때문이야!’

독고미로는 불우한 환경과 시대 탓을 하지 않았다.

꿈을 이룬 이들 중에서 평탄한 길을 걸어온 이들의 수는 드물었다.

국내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해외 영화계로 진출해 단역을 전전하다 끝내 제 꿈을 이룬 한류 스타 플레이어도 있다.

또 주변에서 인정해 주고 밀어줬다고는 하나, 바이올리니스트 권제인은 영국에서 대이계공략 도중 모든 가족을 잃었고, 홍경복 화백은 어둠의 시대에는 붓을 놓고 최전선에서 대영웅과 싸우던 의인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무너지지 않고 제 꿈을 이루었다.

‘데스 매치에 오른 분도 마찬가지야. 플레이리스트에 출연하는 플레이어 중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어.’

독고미로의 데스 매치 상대인 이계 방송 스트리머, ‘BJ국내산콩’도 역경에 지지 않고 승리를 쟁취한 인물이었다.

‘석촌호수의 비극’ 사건 당시.

그는 시청자와 게임을 하다 지는 바람에 벌칙인 ‘테마파크에서 혼자 놀기’를 수행하기 위해 남궁물산에서 운영하는 테마파크에 갔다.

그리고 석촌호수의 수중 미궁을 공략하던 상위 팀이 전멸하고 에너미가 밀려들어 오는 순간, 모노레일을 타고 시청자들과 수다를 떨던 중에 습격당했다.

중상을 입어 기절한 그는 방송 중단을 하지 못했고, 테마파크 내에서 일어난 참극을 생중계하고 말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운영 측은 해당 스트리머의 방송 채널을 폐쇄하고, 스트리머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플레이어인 주제에 대처를 못했다.’, ‘플레이어가 하라는 공략은 안 하고 방송질이나 하니까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거다.’라는 게 주요 반응이었다.

‘BJ국내산콩 님은 플레이어라곤 하지만 이능이 조금 있을 뿐이고 무력은 약한 편이었는데.’

그 스트리머는 플레이어 중에서도 무력만을 두면 최하위에 해당했다.

그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더라도 에너미를 한 마리 겨우 잡을까 말까 하는 수준의 플레이어였지만, 악플은 멈추질 않았다.

그래도 스트리머는 방송을 접지 않았다.

병상에서 일어나 사과 영상을 올린 이후 그는 새로 채널을 시작해 구독자 수 0에서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대신 영상의 주제는 일상, 자작곡 공개 위주에서 이계와 에너미로 바뀌었다.

그는 현실과 이계를 오가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에게 대처법과 생존 전략을 전했다.

몇 년에 걸쳐 그는 다시 인기 스트리머로 떠올랐다.

비록 간혹 공개하는 자작곡은 심하게 인기가 없었지만, 그가 전하는 이계 관련 컨텐츠, 최신 이계 지식은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는 농담처럼 ‘이번 오디션에는 채널 홍보하러 나왔습니다. 콩채널 구독, 좋아요, 댓글 부탁드려요!’를 외쳤지만, 그가 자작곡에 쏟는 열정은 농담이 아니었다.

‘……이길 수 있을까.’

죽음의 문턱과 악플 속에서 살아 돌아와 다시 인기 스트리머 자리에 오른 BJ.

카메라 공포증을 외면하는 중인 등교 거부자 아이돌 지망생.

이미 상대는 승자였고 자신은 패자였다.

미션 곡을 부르는 영상은 몇 번을 다시 찍어도 결과물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일까지 프로그램 공식 채널에 올릴 영상을 제출해야 하는데, VJ가 찍어 준 영상은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직접 찍겠다고 독고미로가 말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패왕을 돕고 싶어서.”

수상한 부반장으로부터 수상한 제안을 받게 되었다.

*    *    *

내 말을 들은 독고미로가 가만히 나를 봤다.

“…….”

독고미로의 손에는 어느 사이엔가 아이템 카드가 들려 있었다.

무기를 소환해 내 머리와 CCTV를 부수고 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독고미로는 내가 입은 교복을 흘끗 보다 아이템 카드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물었다.

“왜?”

“그러니까 패왕을…….”

“본론부터 말해. 왜 돕고 싶은 건데.”

패왕은 말을 돌리는 게 싫은가 보다.

“초등학교 시절에 너한테 도움을 받은 애들이 많잖아.”

“너도 은광구에 살았어? 어디 초등학교인데.”

“아니.”

“그럼 왜.”

나는 은광고에 입학하기 전까지 은광구에 발을 들인 적이 없다.

당연히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은광구에 있는 초등학교가 아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에는 계속 은광구에 살았던 이들이 많았다.

독고미로의 활약 덕분에 비교적 순탄한 학교생활을 보낸 이들이 많을 거다.

사실 그냥 독고미로가 패왕으로서의 활동 이력이 없었더라도 도왔겠지만, 어쩐지 그런 의사를 전하면 독고미로가 납득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은광구 출신이 아니지만, 내 지인 중에는 은광구에 있는 초등학교 출신이 많아. 또 그날 네가 우리 반 아이들을 구해 줬잖아.”

독고미로는 이유를 묻는 걸 그만두고 고민하다 말했다.

“……무슨 제안인지 들어는 볼게.”

“듣는 것보다 직접 가서 보는 게 빠를 거야.”

독고미로는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    *    *

학교 정문 앞.

보통 수업이 끝나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이 주변은 한산해진다.

하교할 학생들을 전부 하교하고 늦게까지 남아서 동아리 활동이나 공부를 할 학생들은 교문에서 멀리 떨어진 건물 안에 있는 탓이다.

하지만 오늘은 정문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집단이 있었다.

임시 무대를 설치하는 1학년 0반 아이들이었다.

사월세음은 비행 스킬을 사용해 하늘에 떠서 짐을 나르고, 민그린과 송대석이 직접 제작한 무대 장식을 설치하고 있었다.

권레나는 목우람과 함께 바이올린을 조율하고 있었고, 맹효돈은 접이식 의자를 날라 무대 앞에 두고 있었다.

그 광경을 멀리서 본 독고미로가 내 멱살을 잡을 기세로 물었다.

“야, 지금 너 나한테 버스킹을 시킬 생각이야?”

“응.”

“미쳤어? 여기에 기록기기가 몇 갠데!”

“은광고 정문 앞에 있는 기록기기는 전부 꺼 둘 거야. 봐.”

독고미로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전부 꺼져 있네.”

“응, 우리 반 아이들도 다 디바이스는 쓰지 않을 거야.”

사전에 황지호에게 정문 앞에 있는 디바이스를 꺼 두도록 부탁했다.

독고미로를 돕고 싶다는 반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부탁했더니 두말없이 들어줬다.

“플레이리스트 서브 PD가 이사장님 성질 긁다가 망할 뻔한 거 몰라? 정문 앞에서 이런 짓 해도 돼?”

그 문제는 걱정 없다.

지금 무대 뒤에서 앰프에 발전기 연결하는 놈이 이사장이니까.

“허락받았어.”

“이사장님한테?”

“어.”

“진짜야? 나중에 말 나오면 네 이름 판다. 구라면 지금 말해.”

“괜찮아. 무슨 일 있으면 이사장한테 내 이름 팔아.”

그놈은 처웃으면서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으니까 문제없다.

한이 건도 있어서 독고미로에게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은광고 정문 앞에서 하는 건데?”

“학교 안에서는 네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잖아.”

“그렇다고 왜 여기에서 해? 버스킹할 거면 다른 곳도 많잖아.”

“네가 은광고 학생이라는 점을 어필해야지.”

카메라 앞에서 굳어 버리는 바람에 끼도 춤도 노래도 살리지 못하는 독고미로가 가장 주목받는 점은 ‘현역 은광고 학생’, ‘출연자 중 최연소’라는 점이었다.

정식 플레이어가 되는 건 17세이니, 17세가 최연소 출연자인데 독고미로는 거기에 더해 은광고 현역 학생이라는 메리트가 있었다.

‘플레이리스트’에 소개될 때도 은광고 학생이라는 자막이 붙고, 일부러 염준열과 자주 대화하는 장면을 넣어 선후배인 점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걸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고미로는 현재 자신이 대중한테 어필할 점이 학력밖에 없다는 상황이 분한 듯했지만 내 생각을 이해한 것 같았다.

“사람이 있는 건 괜찮지? 저번에 우리 반 애들이랑 있을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그래도 찍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

독고미로는 예상대로 사람이 있는 건 괜찮은 것 같았다.

현대에는 어딜 가든지 기록기기가 존재하고, 사람들은 디바이스를 소유해서 언제든지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있는 장소에선 거의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거다.

“그럼 문제없어.”

“문제가 없긴. 데스 매치는 영상 조회수로 결판나는 거 몰라?”

“네가 이번 데스 매치에서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있게 해 줄게.”

독고미로는 표정으로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심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와 독고미로가 나누는 대화 소리를 듣고 우리를 발견한 건지 김유리가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미로야, 의신아! 여기야!”

마이크 스탠드를 설치하던 김유리가 손을 흔들었다.

김유리는 붙임성 있게 웃으며 독고미로 쪽으로 달려왔다.

“미로가 부를 미션 곡 있잖아. MR도 버전 별로 준비해 뒀는데 우람이는 레나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라이브 반주를 까는 걸 강력하게 추천하더라. 여러 버전으로 연습해 보자.”

“어? 어?”

독고미로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김유리의 손에 이끌려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아직 정리가 덜 끝나 산만한 무대 위, 독고미로가 마이크 앞에 섰다.

나는 아이들이 독고미로를 주목할 때를 노려 광림을 발동시켰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사용하기로 예정했던 그 캐릭터의 능력을 발동해 연습한 대로 움직였다.

“레나 님!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레나 님이라고 안 불렀으면 좋겠어.”

권레나가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목우람은 흐뭇해하는 얼굴로 웃으며 전자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목우람은 악기 장인답게 피아노 연주가 가능했는데, 권레나의 연주를 추천하며 자신도 반주하겠다고 자청했다.

“자, 잠깐. 나 아직 준비가…….”

독고미로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목우람은 연주를 시작했다.

곧 미션 곡의 도입부가 키보드 앰프를 타고 흘러나왔다.

데스 매치의 미션 곡은 작년에 음원 차트를 정복한 드라마 OST로, 댄스, 발라드, 재즈, R&B 등 다양한 버전으로 여러 가수가 부른 것으로 유명했다.

목우람과 권레나는 그중 발라드 버전을 연주하고 있었다.

독고미로는 당혹스러워했지만 곧 심호흡을 하다가 스탠딩 마이크를 꽉 움켜쥐었다.

주변에 기록기기가 없다고 느꼈고, 현재 학교 밖에 있고 또 주변에는 독고미로에게 호의를 가진 아이들만이 있는 탓일까.

그동안 ‘플레이리스트’에서 봤던 것에 비해 훨씬 표정이 자연스럽고 안정되어 보였다.

곧 전주를 지나 노래 도입부에 들어가 독고미로가 입을 열었다.

“와……!”

막 비행 스킬을 거두고 무대 근처로 온 사월세음이 탄성을 지르다 입을 막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간결한 선율만을 반주로 독고미로가 수백 번을 연습했을 그 노래가 완벽하게 불리고 있었다.

성량, 호흡, 음색, 그 안에 담긴 감정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마치 독고미로는 카메라의 존재를 느끼지 않는 무대를 기다려 왔다는 듯, 제 실력을 뽐냈다.

‘첫 번째 부르는 건 연습으로 해 두려고 했는데……!’

이 이상으로 멋진 노래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직 어설픈 바이올린 연주도, 바이올린 연주를 커버하는 피아노도, 그 중심에서 곡을 이끌어 가는 독고미로의 노래 모두가 아름답게 들렸다.

멀리서 하교를 하던 학생들이 멈춰 서서 넋을 잃고 독고미로의 무대를 볼 정도였다.

독고미로는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들뜬 건지 들뜬 얼굴로 고음을 뽑아냈다.

와아아아!

노래와 연주가 끝났을 때, 우리 반 아이들을 포함해 스무 명 되는 관객이 모여 있었다.

소박한 박수와 환호 사이에서 독고미로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멋지군.”

황지호도 박수를 보내고 그런 평가를 남길 정도였다.

“조의신, 다 찍었으면 나오도록. 정말 감쪽같군.”

황지호조차 내가 있는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파아앗!

현재 성국언의 수석 보좌관이자 경호원을 맡고 있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무색인(無色人) 전무영’의 광림 ‘그림자 없는 시간’을 해제했다.

독고미로는 ‘찍었다’는 표현과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놀란 독고미로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카메라의 녹화 모드를 정지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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