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패자 부활전 (3)
9월 정기 국회 개회와 이계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 일정이 맞물려 최근 성국언의 수면 시간이 크게 줄었다.
플레이어인 성국언이 다른 국회의원에 비해 체력이 우수하긴 했지만, 성국언은 우직하게 ‘일주일에 한 번 반드시 SR급 이상의 이계 공략에 나서 최대공헌자가 되겠다.’라는 공약을 지키고 있었다.
말이 SR급 이상이지 성국언은 SSR급의 이계 공략에도 곧잘 나섰다.
보좌진은 자잘한 부상을 달고 서류를 살피는 성국언을 볼 때마다 속이 터졌다.
“…….”
종이 서류를 넘기던 성국언의 손이 멈췄다.
성국언은 디바이스를 통해 검색을 몇 번 하다가 입을 열었다.
“광일초등학교 사건 기억해?”
“네, 의원님이 당선되고 나서 처음 조사를 지시한 사건이죠.”
“그 교사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알지?”
“크고 작은 비리에 연루된 교사들이 많다 보니 열 중에 여덟은 경고 조치만 받고 끝났죠. 남은 둘은 사건이 식을 때쯤 직위 해제가 풀린 후, 감봉 조치를 받고 다른 지역으로 발령 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무영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범죄가 처음인 게 아니라 발각된 게 처음일 뿐인데 그들은 초범 취급받았다.
이들이 교사이며 이들의 선처를 바라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많다는 이유로 그들은 솜방망이 징계를 받았다.
징계조차 받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
법의 힘으로는 그들을 심판하기 어려웠다.
“사건과 연루된 교사들이 하나 빼고 다 각기 다른 이유로 퇴직하거나 무단결근 중이야.”
성국언은 전무영에게 여러 초등학교에 요청한 인사 자료를 보여 주며 말했다.
은광구에 있는 초등학교도 있었고, 서울이 아닌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도 있었다.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사건을 다시 일으키면 고발하기 위해 성국언이 칼을 갈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눈으로 보니 놀라웠다.
‘이 바쁜 와중에도 그 교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고 계셨구나.’
성국언이 폭로한 사건을 계기로 그 교사들은 여러 곳에 흩어지고, 4년이나 흘러 그 사건은 잊혔다.
성국언 정도로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이 교사들의 공통점을 바로 집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기사를 보니 괴사건에 휘말린 교사도 있는 것 같군.”
성국언이 자료 사진으로 쓰레기 매립장 사진이 첨부된 기사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기사 내용은 우울증 증상을 보였던 교사가 실종된 후, 쓰레기 매립장 한가운데에서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우연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게 우연일 리가 없지.”
“그럼 누가 개입한 걸까요?”
“상대는 공무원이고, 숫자는 적지 않아. 이 정도로 눈에 안 띄게 단기간에 처리하려면 어지간한 프로 플레이어 팀을 동원해도 어려울 거다.”
성국언은 두통이 일어 미간을 눌렀다.
인정하기 싫지만, 후보가 하나 떠올랐다.
‘설마 진족이 개입한 건가.’
* * *
독고미로를 데뷔시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독고미로는 한이의 친구고, 신역을 지켜 온 인물 중 하나다.
황지호가 마음만 먹으면 호족과 황명 그룹을 동원해 영상 조회수를 올려 데스 매치를 패스하고, 플레이리스트에서 떨어지더라도 기획사 하나를 인수해서 독고미로를 꽂아 넣을 수 있다.
카메라 때문에 활동을 못 한다면 음원만 내는 가수로 활동하고, 음원 사재기로 음원 차트 강자로 군림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을 거야.’
독고미로는 잡아 봤자 아무 득도 되지 않는 불량배도 박살 냈다.
연고가 없는 초등학교의 가해자들을 손본 것도 그렇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패왕이 돈으로 만든 왕관을 기꺼워할 것 같지 않았다.
‘독고미로가 카메라 앞에 설 수 있게 도와줘야 해.’
적호가 추가로 조사한 자료에는 독고미로가 카메라 공포증을 얻게 된 계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질이 나빠 보이는 교사로 낚아 낸 학생들의 클라우드 사진첩을 털어 보니 독고미로의 합성 사진이 수천 장이나 있었다.
아이돌의 꿈을 버리지 않는 유망한 플레이어가 거슬린 교사를 중심으로 학생들도 가담하여 악행을 벌인 모양이었다.
독고미로는 어린 시절 장기간 카메라 렌즈 너머의 악의를 뒤집어썼고, 그 일을 계기로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두려워하게 된 것 같았다.
‘아이돌이 되려면 카메라 너머에 악의만 있는 게 아니라 독고미로의 팬이 될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해.’
그러기 위해선 카메라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데스 매치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나 독고미로는 카메라를 두려워하는 주제에 기록기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지나치게 뛰어났다.
광일파출소에서 모든 기록기기를 피해 간 독고미로의 신기를 생각해 보면, 어지간한 은폐 기술로는 독고미로의 감각을 속일 수 없을 것이라 추측되었다.
‘그럼 어지간한 은폐 기술이 아닌, 최강의 은신 능력을 쓰면 되지.’
전무영의 ‘그림자 없는 시간’은 진족은 물론 상위 존재의 눈도 속이는 광림이었다.
그림자와 연관된 상위 존재의 안배가 없는 한 전무영의 광림은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연비가 최악이라 오래 쓸 수 없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역시 의신이는 대단해요! 전혀 몰랐어요!”
“헐, 부반장 어디에 있었냐.”
“너 여태까지 어디에 있었어? 한이는 감지했어?”
“……아니.”
민그린의 질문에 한이도 놀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우수한 기척 감지 능력을 가진 한이는 물론, 사기캐 황지호도, 또 독고미로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너…….”
독고미로가 날 보고 뭐라 말하려 했지만,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앙코르!”
“이거 그 플레이리스트 미션 곡 아니야? 다른 버전도 불러 줘!”
우리를 제외하면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은광고 관객들은 상당히 열성적이었다.
수업종 문화에 익숙한 은광고 학생은 공연에 익숙했고 호응도 잘 하는 편이었다.
“그럼 다음 버전 MR 갑니다! 레나야, 우람아! 고생했어!”
독고미로는 처음 받아 보는 낯선 이들의 성원에 얼떨떨해하다가 김유리의 진행 능력에 휘말려 다음 곡도 부르게 되었다.
나는 다시 광림을 발동해 다음 곡도, 그다음 곡도 찍었다.
누가 은광고 종합 게시판에 홍보 글을 올린 건지 에어보드를 타고 학생들이 날아와 관객들이 점점 늘어갔다.
간혹 디바이스 영상 촬영 기능을 사용해 독고미로를 찍으려 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황지호가 나서서 처리했다.
처웃으며 ‘촬영은 금지다!’라고 외치는 돌아이에게 대적할 학생은 없었다.
댄스 버전을 부를 때에는 광림의 제한 시간이 다 되어 찍지는 못했지만, 세 자리는 족히 넘는 관객들이 모여 있었다.
김유리에게 촬영 종료를 알리는 사인을 보내자 자연스레 사회 역을 맡던 김유리가 마무리를 했다.
“그럼 앙코르 곡을 마지막으로 무대를 마치겠습니다.”
처음부터 자리를 지킨 맨 앞에 있던 관객들이 바이올린과 피아노 버전을 요청했다.
“그럼 바이올린이랑 피아노 반주를 깔고…….”
“음, 그건 어려울 것 같아.”
그러나 권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 연주가 끝난 다음에 우람이가 기절할 것 같다고 양호실에 가서…….”
목우람은 어디에 갔나 했더니 기절하기 전에 자진해서 양호실에 갔나 보다.
“그 새끼 저번에도 기절하지 않았어? 왜 그러냐?”
“지병이 있는 걸까요? 짐 나를 때는 쌩쌩해 보이셨는데요.”
“무슨 기절을 예고하고 하냐. 몸이 아니라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신랄한 의견 중에 마지막으로 코멘트한 송대석이 가장 정답에 가까운 말을 했다.
결국 앙코르 곡은 발라드 버전 MR을 깔고 부르기로 했다.
버전은 다르다고 하지만 여러 번 부르니 이 곡을 몰랐던 학생들도 곡을 다 외우는 바람에 마지막 곡은 떼창이 되었다.
반 아이들도 작게 따라 불렀는데, 음을 모르는 한이만은 따라 부를 수 없었다.
그래도 한이는 끝까지 독고미로의 무대를 지켜봤다.
* * *
영상은 여러 개였지만, 반 아이들의 만장일치로 플레이리스트에 제출한 영상은 첫 영상이 되었다.
다른 영상에 비해 관객도 적고 무대 정비도 덜 되었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 라이브 반주를 깔고 노래를 부르는 독고미로의 목소리가 유독 청량했던 탓이다.
영상을 제출한 다음 날, 플레이리스트는 데스 매치에 오른 두 사람의 영상 링크를 바로 공개했다.
직접 편곡한 미션 곡을 평소 인터넷 방송을 하는 본인 방에서 부른 BJ국내산콩.
은광고 앞에서 반 아이들과 길거리 공연을 한 독고미로.
두 영상 모두 화제가 되었지만, 독고미로는 기사가 날 정도로 크게 반향을 일으켰다.
[본인이 부른 거 맞음? 너무 잘 불렀는데;;]
[진짜 잘 불렀다…….]
[조작했네. 요새 오토튠 성능 왜 이렇게 좋냐ㅋㅋㅋㅋㅋ]
[목소리는 독고미로인데 노래는 독고미로가 아닌데?]
[처음 심사도 춤빨로 통과한 거 같은데 갑자기 발라드로 한 거부터 좀ㅋㅋㅋㅋ너무 티난다ㅋ]
그 반향은 초반에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일어났다.
독고미로가 갑자기 실력을 발휘하니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학력 덕에 버틴다는 독고미로가 저런 실력을 발휘하니 어쩔 수 없었다.
조작임을 밝혀 보겠다고 영상에서 음원을 추출해 직접 음향 분석을 한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직접 찍은 영상은 어설프긴 했지만, 진짜였다.
그리고 그 진짜 라이브를 본 증인들이 속속 나타났다.
[그때 직접 공연 본 후기입니다.]
[독고미로 라이브 쩔더라……. (인증 O)]
[은광고 학생인데 독고미로 버스킹 본 썰 품]
[영상은 어떤 돌아이가 못 찍게 했는데 녹음은 했다. 내가 내 디바이스로 녹음한 파일 올림.]
[나도 그 자리에서 녹음함ㅎㅎ 미로 솔로 버전 녹음만 돌길래 떼창 버전도 올림.]
그날 그 자리에서 독고미로의 노래를 들은 은광고 학생들이 차례차례 학생증, 교복 인증과 함께 후기를 올렸다.
한 명도 아니고 은광고 학생 수십 명이 올리는 후기와 인증의 위력은 강력했다.
‘저만 한 수의 은광고 학생들에게 환각을 보여 주거나, 돈이나 아이템으로 매수하려면 세계 10대 프로 플레이어 팀이 출동해야 한다.’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결과적으론 처음의 조작 논란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요소 중 하나가 되어 영상 조회수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내장산의 성자의 영상 조회수가 밀리겠네.’
플레이리스트 영상 클립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자랑하는 건 ‘내장산의 성자’와 심사 위원의 프리스타일 랩 배틀이었다.
그러나 데스 매치의 영상 조회수 상승세가 심상치 않았다.
독고미로의 노래가 훌륭했던 덕도 있었지만, 노래 외에도 주목받는 요소가 많았다.
반 친구가 탈락 위기에 놓이자 반 친구들이 학교 앞에서 독고미로 몰래 버스킹을 준비했다는 서사와 연주가 그런 요소였다.
[여기서 바이올린 켜는 애, 그 권제인 ‘바다의 벽’ 영상에 나온 애 같은데?]
[이거 이능 바이올린이잖앜ㅋㅋㅋㅋ 맞네!]
[얼굴은 안 나왔는데 바이올린 색, 키 똑같은 듯.]
영상 속에서 목우람은 피아노를 치는 마디가 굵직한 손가락만 나왔고, 권레나는 백금색의 바이올린과 교복을 입은 뒷모습만 찍혀 있었다.
반 아이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게 신경 썼지만, 알아볼 사람은 알아보는 것 같았다.
“괜찮아. 어차피 수련회 때 새론이가 찍은 영상에 나온 사람이 1학년 0반, 1반, 2반 중 하나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 그중에서 현악부는 나밖에 없으니까 어차피 금방 나왔을 거야.”
권레나는 다행히 유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영상이 올라가고 얼마 안 돼서 권레나의 가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권제인] 의신아, 레나가 나온 영상의 원본을 구하고 싶은데.
권레나도 권제인 영상의 원본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나?
두 사람은 역시 피가 이어진 가족다웠다.
그리고 데스 매치 결과가 발표되는 생방송 날이 되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