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57화 (257/925)

47. 패자 부활전 (4)

심야, 거주 구역 1학년 기숙사 건물 1층 남녀 공용 휴게실.

기숙사 소속 1학년 0반 아이들이 홀로그램 앞에 모였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데스 매치 생존자 발표를 기다리는 사이, 아이들은 초조한 건지 평소보다 빠르게 간식을 먹었다.

특히 한이가 캐러멜에 초콜릿 쉘을 입힌 초콜릿 프랄린을 해치우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플레이리스트 출연자들이 보컬 트레이너와 현역 뮤지션 멘토들과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지나가자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 좌상단에 ‘LIVE’라는 로고가 뜨고 스튜디오에서 메인 MC 최지나, 서브 MC 염준열이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어떡해, 이제 시작하나 봐!”

“와…….”

“어, 아까는 생방송이 아니었어?”

“그건 녹화한 거예요! 출연자들은 스튜디오에서 같이 보고 있었을 거고요.”

최지나와 염준열이 데스 매치의 룰을 간략히 설명하고 두 출연자의 활약상을 편집한 영상이 흘렀다.

생방송 3일 전부터 데스 매치 영상 조회수는 블라인드 처리되어 현재 정확한 조회수를 아는 건 스태프들뿐이었다.

―자정이 되면 플레이리스트 첫 데스 매치, 미션 동영상 공개를 마감합니다.

무대 중앙에는 독고미로와 BJ국내산콩 두 사람이 서 있었고, 구석에 있는 계단식 의자에 생존자들이 앉아 있었다.

독고미로와 BJ국내산콩 바로 위에는 자정까지 남은 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홀로그램으로 떠 있었다.

―홀로그램의 숫자가 0이 된 이후의 조회수는 데스 매치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럼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10 .

―9 .

―8 .

메인 MC 최지나와 보조 MC 염준열이 번갈아 가며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MC들이 숫자를 세는 음성을 배경으로, BJ국내산콩의 팬들이 남긴 댓글들과 독고미로의 무대를 보며 환호하는 은광고 학생들의 영상이 흘렀다.

마침내 ‘쿵’ 하는 효과음과 함께 숫자가 0으로 바뀌었다.

―최종 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결과가 이 태블릿에 전달되었습니다.

최지나가 PPL로 지원받은 태블릿 타입 디바이스를 확인하며 말했다.

염준열도 옆에서 태블릿을 확인하다 놀란 얼굴로 말했다.

―두 영상의 조회수 합산 결과는…… 제대로 전달된 게 맞나요? 네. 500만이 넘었습니다!

염준열의 말에 반 아이들이 술렁였다.

자막으로 뜬 합산 결과는 512만이 넘는 숫자였다.

“조회수 공개하고 있을 때 미로 영상 조회수가 얼마였지?”

“100만 조금 안 됐던 거 같은데요…….”

“98만 5천 3백 정도였어.”

한이는 거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목우람과 권레나가 그 숫자를 듣고 어두운 얼굴로 분석했다.

“두 영상의 합산 조회수가 512만 정도라면 상대를 이기기 위해 조회수가 256만은 넘어야 합니다. 조회수가 블라인드 처리된 기간, 최소 157만 4천 7백 이상 조회수가 상승했어야 합니다.”

“미로가 나온 영상 조회수는 오르는 중이었긴 한데, 며칠 전부터 스트리머의 팬들이 직접 사비로 지하철 광고랑 인터넷 배너 광고를 넣었잖아.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맹효돈은 돌머리를 굴리다 손가락을 꼽아 가며 무언가를 계산하려 시도했다.

안타깝게도 손가락은 10개밖에 없어서 512만과 98만 5천 3백, 157만 4천 7백 등의 숫자를 넣어서 계산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사이에 독고미로와 BJ국내산콩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터뷰를 했는데, 좀처럼 발표는 하지 않았다.

‘시간을 끌 생각인가 보네. CG나 자막은 이미 준비해 놨을 텐데.’

무대 위에서 최지나와 염준열이 스태프와 눈빛 교환을 하며 언제 발표를 해야 할지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생방송이다 보니 MC가 멋대로 발표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긴장 속에서 몇 분이 흘렀다.

“이제 발표하나 봐요!”

무대 위에 서 있는 두 사람 위로 홀로그램 숫자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최지나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또박또박 외쳤다.

―플레이리스트 첫 데스 매치,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최지나에 이어 그 뒤는 염준열이 외쳤다.

―최종 영상 조회수, 347만 8711의 주인공!

3,478,711 .

숫자가 염준열의 목소리에 맞춰서 하나하나 떠올랐다.

드럼롤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스포트라이트가 갈팡질팡 두 사람 사이를 움직였다.

마침내 최지나가 입을 열었다.

―독고미로!

억지로 웃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독고미로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다.

팡파르가 한 번 울린 뒤에는 권레나와 목우람의 연주와 독고미로가 불렀던 노래가 BGM으로 깔리기 시작했다.

숨을 죽이고 있던 아이들이 환호했다.

“미로가 이겼어!”

“와! 합산 영상 조회수를 고려하면 거의 두 배 차이 같은데요!”

“어? 두 배? 512만에서 340…… 얼마를 어떻게 빼면 두 배가 되는 거지?”

“레나 님의 연주 덕입니다.”

화면에 클로즈업된 독고미로는 입을 틀어막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같이 무대에 서 있던 BJ국내산콩이 독고미로에게 다가와 한 번 포옹한 후 어깨를 도닥여 주고, 뒤에 서 있던 출연자들도 몰려와 두 사람과 악수나 포옹을 나눴다.

출연자들과 한마디씩 주고받을 때마다 독고미로의 눈에 조금씩 물기가 차올랐다.

‘플레이리스트의 출연자들은 서로 사이가 좋은 편이구나.’

보통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굉장한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출연자끼리의 갈등이 극대화되는데, 플레이리스트는 그런 게 적은 편이었다.

사회에서는 소수자에 해당하는 플레이어들이라 그런지 동지 의식이 컸다.

현재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내장산의 성자’도 크게 견제받지 않고 플레이어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였다.

오디션 응모 영상에 비해 머리가 많이 자란 랩퍼 스님, 내장산의 성자와 포옹을 마친 독고미로의 얼굴이 다시 클로즈업됐다.

―축하드립니다, 미로 양.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시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영상을 본 팬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MC들이 축하 인사와 함께 마이크를 건넸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독고미로는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두 손으로 잡았던 마이크를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론 눈물을 훔쳤다.

방송 중에 엄격한 멘토들과 시청자들에게 쓴소리를 들어도 울지 않던 독고미로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독고미로의 퍼포먼스가 좋은 평가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독고미로를 달래기 위해 출연자와 방청객들이 환호했다.

환호가 멎을 때쯤 독고미로가 표정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영상을 봐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계속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 제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고미로는 부모님, 출연자들과 멘토, 보컬 트레이너 등을 언급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미션 곡 영상을 같이 찍어 준 1학년 0반 애들…… 정말 생각지도 못했을 때 도와줘서 고맙고…….

독고미로는 말꼬리를 흐리다가 입을 열었다.

독고미로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웃었다.

아주 잠시간이지만 카메라 공포증을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학교에서 보자. 밥 살게!

마지막으로 독고미로가 한 말에 반 아이들이 몹시 기뻐했다.

고맙다는 말, 밥을 사겠다는 말보다 학교에서 보자는 말이 더 기쁜 것 같았다.

독고미로가 소감을 마치자 최종 탈락자로 선정된 BJ국내산콩이 마지막 무대를 선보였다.

탈락 후보자는 각자 마지막 무대 곡을 정할 수 있었는데, BJ국내산콩은 자작곡을 불렀다.

BJ국내산콩의 멋진 무대를 마지막으로 플레이리스트 이번 회 방송이 끝났다.

*    *    *

패밀리 레스토랑의 룸.

우리 반 아이들은 샴페인 잔에 무카페인 스파클링 음료를 채워 들었다.

“그럼, 미로의 생존을 축하하고 앞으로의 건투를 바라며 건배!”

“건배!”

김유리의 건배사가 끝나자 아이들이 잔을 부딪쳤다.

독고미로가 생방송으로 약속한 회식 자리는 생방송 다음 날에 하게 되었다.

곧 이계 공략 공격대 실습도 있고, 군사관학교 스포츠 교류전에 이어 중간고사 기간에 들어가는 데다 앞으로 독고미로의 스케줄이 빡빡해질 거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건배를 마친 우리는 독고미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에 오신다고 하셨죠? 언제부터 오실 거예요?”

“플레이리스트 촬영이 끝나면. 지금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싶어.”

“마지막 라운드까지 못 가더라도 본선에 나간 출연자들은 특별 공연 같은 게 있어서 바쁘잖아. 중간고사는 끝나야 오겠네.”

독고미로는 앞으로 플레이리스트에 출연하는 것도, 학교에 나오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버스킹 영상이 카메라와 학교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계기가 된 것 같네.’

카메라 너머에서 독고미로의 노래에 감동하고, 그녀를 응원하는 팬들이 생겼다.

학교에는 독고미로를 돕기 위해 무대를 준비하고, 영상 조작을 의심받자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 학생증까지 공개하며 나선 은광고 학생들이 있었다.

버스킹 영상을 계기로 독고미로가 품고 있던 공포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아직 공포증을 완벽하게 극복한 것 같지는 않지만, 독고미로는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게 되었고 등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버스킹은 누가 하자고 한 거야?”

독고미로의 말에 모든 시선이 내 쪽으로 쏟아졌다.

“의신이가요.”

“부반장이.”

“쟤가.”

“의신이!”

아이들이 한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단합이 잘 된다는 사실에 기뻤지만 이렇게 대놓고 입을 모아 나를 지목하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고마워.”

패왕의 감사 인사에 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제안했을 것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지만, 독고미로는 또 고맙다는 말만 했다.

그 광경을 보고 황지호가 처웃기 시작해 기분이 착잡했다.

“하하하하!”

메인 음식 뒤에는 쿠키 앤 크림 마카롱 아이스크림이 후식으로 나왔는데, 무료로 후식 리필이 가능한 걸 알자 한이가 다섯 개를 더 주문했다.

황지호는 선심이라도 쓰듯 한이가 추가로 주문한 후식에다 메뉴판에는 실려 있지 않은 젤리빈 토핑을 더해 줬다.

한이는 분해하면서도 토핑이 된 마카롱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저쪽인가?”

황지호와 한이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송대석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언뜻 들렸다.

*    *    *

광일초등학교.

현재 전무영은 초등학교 잠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의 수석 보좌관이 돼선 지역구에 있는 초등학교에 잠입하다니!’

학창 시절 성국언의 눈에 든 이후 온갖 괴상한 일에 휘말렸지만, 이만큼 자괴감이 드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국언이 형이 가는 것보다는 낫지.’

성국언이 다룬 첫 사건.

그 사건의 관계자 중 현재 유일하게 교직을 지키고 있는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그 교사에 관해 조사한 결과, SNS에서 조금 논란이 있는 걸 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조사 결과를 본 성국언은 직접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국회의원이 초등학교 교사의 신변 조사를 직접 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전무영이 성국언을 말리고 대신 조사하기로 했다.

‘평범한 교실인데…… 한 명이 겉돌고 있군. 전학생이라고 했지.’

그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

전무영은 교실 구석 캐비닛에서 은신 스킬을 써서 몸을 감추고 있었다.

‘최악이군. 교실에선 저러고 있었나?’

조별 모임을 하기 위해 그룹을 만드는데, 너도나도 한 아이를 자기 그룹에 넣기 싫다며 싸우고 있었다.

교사는 말리거나 아이들을 달래기는커녕 은근슬쩍 부추기는 말만 하고 있었다.

‘보통 이럴 때는 교사가 중재하지 않나? 왜 지금 저 학생이 땅값이 저렴한 동네에서 사는 불쌍한 아이라고 언급하는 거지?’

출석부 마지막 페이지에서 본 곱상한 눈의 소년은 교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웃고 있었다.

문득 소년이 이쪽을 바라봤다.

보이지 않을 전무영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혹시 이능이 우수한 소년인가? 스킬로는 눈을 속이기 어려울 것 같군.’

전무영은 아깝다고 생각하면서도 광림, ‘그림자 없는 시간’을 발동했다.

빛도 소리도 없이 전무영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였다.

“……!”

갑자기 소년이 경악한 얼굴로 이쪽으로 뛰어왔다.

교사와 반 아이들이 돌발 행동을 하는 소년을 나무랐지만, 소년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로 나를 감지한 건가. 광림을 바로 쓰지 않았더라면 곤란할 뻔했어.’

전무영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이, 소년의 눈에서 황금빛이 스치다 사라졌다.

소년은 전무영이 모습을 완전히 감춘 주변에서 중얼거렸다.

“……같은 능력 같은데.”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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