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62화 (262/925)

48. 첫 실습 (1)

모든 플레이어 특목고의 커리큘럼에는 이계 공략 실습이 포함되어 있다.

이계 공략 실습은 플레이어 특목고의 교육 과정의 꽃이자 핵심이었지만, 학생에게 실전을 경험시키는 건 쉽지 않았다.

이계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가상 이계를 만드는 건 상시 가능했지만, 실제 이계의 발생 시기는 학교 측에서 조정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흑막이 가진 ‘이계 부르기’ 같은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실습에 적당한 난이도의 이계가 나타날 시기를 조정하는 건 어렵겠지.’

학사 일정에 이계 공략 실습을 포함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협회와 학교 측은 이계 실습의 필요성을 숙지하고 있었다.

시뮬레이터가 현실감 넘치는 이계를 재현한다고 해도 시뮬레이터를 백 번 돌려 봤자 실전을 한 번 겪어 보는 것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협회는 플레이어 특목고와 협력해 특정 기간, 특정 난이도로 발생한 이계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은광고 1학년 학생의 경우, 협회 위성 플레이어 SAT-K가 9월 이후 서울 시내에서 공략 난이도 R급 정도의 이계가 발생한 것을 감지할 시 이를 할당받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9월 초에서 중순으로 넘어가는 주말.

우리 1학년 0반은 첫 실습을 가게 되었다.

“실습을 전후로 플레이어 특목고의 자퇴율이 급증한대요.”

“우리 반에서는 탈락자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

사월세음과 권레나가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숙사 멤버들은 함께 에어 택시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실전 경험에 익숙할 맹효돈도 긴장했는지 어니언 프레첼에 체다치즈 소스를 찍어 말없이 먹고 있었다.

맞은 편에 앉은 한이는 허니 머스타드 프레첼을 한 입 베어 물다가 별로 달지 않았던 탓인지 시럽을 프레첼의 질량보다 더 무겁게 뿌려 먹었다.

크게 티는 안 나지만 한이도 실습을 앞두고 떨리는 모양이다.

‘플레이어 특목고 전체 통계를 두고 보면 실습 전후로 자퇴율이 올라가는 건 맞지만, 은광고 통계만을 두고 보면 괜찮을 텐데.’

오히려 은광고는 기말고사 후에 뜨는 최종 등수에 충격을 받고 휴학이나 자퇴를 하는 학생이 많았다.

그래도 우리 반 아이들이 이렇게 걱정하니 잘 서포트해서 첫 실습을 마치도록 도와야겠다.

실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에어 택시가 목적지인 올림픽 공원, 세계평화의 문 앞에 도착했다.

택시비는 N분의 1로 나눠 지불하기로 하고 대표로 내가 택시비를 계산하고 있을 때, 목우람이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부반장. 현재 제 통장 잔액이 부족합니다. 차비는 나중에 드려도 될까요? 오늘 실습에서 최선을 다하여 포상금을 벌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목우람이 홀로그램으로 잔액을 확인하다 면목 없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이능 바이올린 재료를 사느라 돈을 날릴 일도 없는데 어디에다 돈을 다 쓴 건가.

“괜찮아. 차비는 내가 낼게. 근로 장학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던 거 같은데, 아직 알바비 안 들어 왔어?”

“어? 알바비는 어제 정산됐는데.”

“나도.”

근로 장학 알바생인 권레나와 맹효돈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다름이 아니라, 최근에 유익한 소비를 한 바람에 잔액이 부족해졌습니다. 차비를 미리 생각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은광고 학교생활에 몹시 도움이 될 것 같은 서적을 추천받아서요.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목우람은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과사전, 교양서적 세트 전권을 구매했습니다. 은광고 학생 필독서라고 하더군요!”

“음…… 그런 게 있었나?”

“없었는데.”

“역시 제가 조금 빨리 산 모양이더군요. 초기 특별 한정판으로 부록까지 받았습니다.”

목우람은 구매 내역을 홀로그램으로 띄워 자랑이라도 하듯이 보여 줬다.

특별 한정판 독서대, 깃펜, 잉크 병, 문진 등등의 독서 용품을 부록으로 첨부하는 대신, 정가의 3배 정도 되어 보이는 하드커버 서적들의 결제 내역이었다.

“또 친절한 분께서 추천해 주시는 신문과 잡지를 정기 구독하기로 했습니다. 3년 치를 한 번에 결제했더니 무려 10%나 할인해 주셨습니다. 사실 5년 치를 사면 추가적으로 5%를 할인받아 더 싸게 살 수 있었는데, 잔고가 부족해서 사지 못했습니다.”

역시 이놈은 호구였다!

목우람이 또 보이지 않는 사이에 호구가 되었다.

학생을 상대로 가끔 책, 잡지, 신문을 후려쳐서 파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험이 적은 학생들은 공부와 교양을 미끼로 하면 쉽게 낚이곤 했다.

“우람아…… 그러니까…….”

“……잔고가 0에 가까운데도 그 ‘친절한 분’이 이 정도로 강력하게 권했다고?”

권레나와 한이는 목우람이 낚인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헐, 뭔가 사는 것만으로도 똑똑해지는 것 같은 책들이네. ……살까?”

“좀 비싸긴 한데요, 부록인 독서 용품의 디자인이 좋네요! 이거 한정판인가요? 언제까지 팔죠? 어디에서 사셨어요?”

맹효돈과 사월세음은 반쯤 낚인 얼굴을 했다.

여기에 또 다른 호구 후보가 있었다니!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에서도 피해자가 속출할 것 같아 말리기로 했다.

“환불받자.”

“네? 하지만…….”

“평소에 책은 얼마나 읽어?”

“그게…….”

목우람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능 바이올린 장인께서는 장인 일에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는 듯했다.

왜 전 재산을 다 털어 넣어 종이 장식품을 산 건지 모르겠다.

“잘 보니 학교 도서관이랑 집에 있는 책 목록이 많네요.”

“사 놓고 안 읽을 것 같긴 하다.”

목우람을 설득하는 사이에 사월세음과 맹효돈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권레나와 한이도 목우람에게 환불을 넌지시 권해, 다행히 목우람이 환불을 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먹었다.

소지금 0원의 호구를 설득하고 나니 통학 중인 0반 아이들도 차례차례 도착했다.

“얘들아, 미로 사진 봤어?”

김유리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방송에 출연 중이고, 최근 데스 매치 영상으로 화제가 된 독고미로의 기사와 사진은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떤 사진을 말하는 거지?’

김유리는 홀로그램으로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어색한 얼굴로 웃고 손을 흔드는 독고미로가 찍혀 있었는데, 배경을 보니 방송국 주변인 듯했다.

독고미로는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꺼려 하던 탓에 늘 사진 속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이 사진은 아주 잘 찍혀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어색했지만, 빛 조절 정도나 사진의 색감 등이 독고미로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와, 여태까지 본 미로 사진 중에 가장 예쁘게 찍힌 것 같아!”

“실물에 가깝게 나왔네.”

“전문 포토그래퍼가 찍은 건가요? 기사 사진이랑 방송에 나온 프로필 사진보다 훨씬 잘 찍힌 것 같아요!”

“그려 보고 싶다…….”

김유리는 사진 한구석에 작게 반투명하게 찍힌 인장을 가리켰다.

인장은 기하학적인 미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독고미로의 ‘미로’에서 따온 것 같았다.

“미로한테 홈마가 생겼어! 이게 그 홈마스터의 인장이야.”

“홈마? 홈마스터?”

“간단히 설명하자면 연예인의 사진을 찍어서 공유하는 팬이야.”

홈마는 초고성능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직접 연예인을 찍은 사진, 속칭 ‘직찍’을 공유하는 팬을 칭했다.

데뷔 전에 홈마가 붙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계속 혹평을 듣던 독고미로에게 열혈 팬이 생긴 게 매우 기뻤다.

‘홈마라…….’

악성 개인 팬과 선량한 팬은 한 끗 차였다.

황지호를 쳐다봤더니 별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마 그 홈마에게는 별문제가 없다는 뜻일 거다.

“이분 홈페이지에 가면 사진 더 있어! 보정 전후 사진도 올렸는데, 보정 전 사진도 여태까지 찍힌 사진보다 더 괜찮은 것 같아.”

김유리는 독고미로의 사진을 보여 주며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다.

김유리의 설명에 의하면 그 홈마는 데스 매치로 공개된 영상, 속칭 ‘입덕 영상’에 치여 독고미로의 팬이 된 것 같았다.

‘독고미로의 팬, 그것도 카메라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경험이 많은 팬이라면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에 잠겨 있으니, 황지호가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또 수상한 표정을 짓고 있군. 생각이 있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니 황지호도 대충 내 뜻을 짐작한 것 같았다.

역시 오래 산 노친네답게 눈치가 빠르다.

더 얘기하려 했지만, 기척이 느껴져 대화를 중단했다.

바로 뒤에 송대석이 있었다.

“왜?”

최근 송대석이 반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일이 늘었다.

주오 아일랜드에 갔던 날부터 그랬는데, 처음엔 일반인의 행동 양식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런 건가 싶었지만 내 생각이 틀린 것 같았다.

‘나랑 한이, 황지호 셋을 주로 관찰하고 있어. 정확히 말하면 황지호가 나나 한이한테 말을 걸 때 그래.’

황지호가 청소년 수련회 때 인간답지 않은 힘을 보여서 그런가?

하지만 은광고에는 괴인, 괴짜가 많다 보니 인간인데도 진족을 후려치는 능력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또 송대석의 친할아버지, 대영웅 무쇠팔 송만석이 그 능력자들의 대표 주자다.

송대석이 그것만으로 황지호를 이상하게 여길 것 같진 않았다.

‘그냥 황지호가 돌아이 같아서 그런가? 그러면 한이랑 나는 왜…….’

의문이 깊어졌다.

“대석아?”

민그린이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최근 아이들과 잘 어울리던 송대석이 또 시비를 건 게 아닌가 걱정한 듯했다.

민그린이 옆에 있으니 송대석이 먼저 한발 물러났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 텐데.

송대석에게 다시 말을 걸기 전에 누군가가 등장했다.

“반 아이들끼리 사이가 좋구나.”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황홀한 표정을 지은 용제건이 등장했다.

옆에서 김신록이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평소보다 뻣뻣해 보이는 게 용제건이 또 속을 긁은 게 분명했다.

“용쌤, 김신록 선생님! 안녕하세요! 1반도 이 근처에서 실습하나요?”

“응, 공략 난이도는 낮지만 이계가 동시에 여러 개가 등장한다고 예보가 떠서.”

김신록은 아이들에게 붙임성 있게 인사했는데, 용제건은 그걸 보고 웃겨 죽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신록이 본성을 감추고 아이들을 대하는 게 볼 때마다 새로운 것 같았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부디 사고가 없도록 주의해 주세요.”

“조심할게. 너도 조심해, 김신록 선생님.”

부자연스럽게 덧붙인 ‘김신록 선생님’이라는 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김신록은 훽 고개를 돌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동했다.

우리 반 아이 중에선 용제건과 가장 친한 편인 사월세음이 물었다.

“……혹시 김신록 선생님이랑 싸우셨어요?”

“하하하하!”

갑자기 황지호가 처웃기 시작해 분위기가 개판이 되었다.

조카 같은 존재인 김신록이 친구와 격 없이 지내고 싸우는 게 노친네 눈에는 보기 좋았나 보다.

개판인 분위기는 함근형 선생님이 도착한 후에야 겨우 수습이 되었다.

*    *    *

이계 발생까지 앞으로 30분.

함근형 선생님이 홀로그램을 띄우고 브리핑을 했다.

홀로그램이 가리키는 곳은 올림픽 공원 몽촌해자 음악분수 주변.

우리가 지금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번 공격대 실습에는 용제건 선생님이 동반한다. 김유리는 오늘은 수비대로 빠질 것.”

김유리는 아쉬워하는 얼굴을 했지만 곧 수긍했다.

서울 한복판인 이곳에서는 바다가 바로 보이진 않았지만, 88호수와 석촌호수, 한강이 너무 가까웠다.

김유리의 광림은 바다의 광기를 부른다.

호수나 강을 대상으로 하면 위력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김유리는 아직 광림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학교 밖이라 용제건은 교원 계약의 영향을 받지 않아. 만반의 상태인 용제건만 있어도 수습은 어렵지는 않겠지만, 김유리가 폭주하면 실습은 엉망이 되겠지.’

1학년 0반의 첫 실습.

인솔자는 용제건.

참가자는 나, 황지호, 한이, 권레나, 맹효돈, 사월세음, 민그린, 송대석, 목우람.

총 10명이 공격대로 참가하게 되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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