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첫 실습 (2)
종합 능력치는 힘, 마력, 방어력, 민첩 등의 수치를 의미한다.
스킬, 광림을 고려하지 않은 플레이어의 신체 능력을 레벨 단위로 나눈 것으로, 흔히 플레이어의 수준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게임 속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하지만 게임과 이 세계 모두 실전에선 스킬이나 광림, 아이템이 레벨보다 더 중요해. 또 전법이나 이능 간의 상성에 따라 레벨 차가 커도 뒤집을 수 있었어. 종합 능력치의 레벨만으로 플레이어의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어.’
그렇긴 하지만 전투 계열 스킬, 광림도 개인적인 단련과 종합 능력치 레벨의 상승에 따라 함께 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종합 능력치의 레벨이 정확한 전투력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해도 플레이어의 수준을 파악하는 보편적인 수치인 건 사실이다.
또, 개인차가 있으나 종합 능력치 레벨은 보통 고등학생 때부터 20대 초반 사이에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주수혁, 맹효돈은 중학교 시절부터 종합 능력치 레벨이 높긴 했지만.’
플레이어인 고등학생 기준으로 보통 1학년생 종합 능력치 레벨은 10에서 20 사이.
레벨은 점점 더디게 성장해 2학년 학생은 20에서 25, 3학년 학생은 26에서 30 사이가 평균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전국 고등학생 기준이다.
한국 제일의 명문 플레이어 특목고인 은광고에서 전국의 평균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은광고와 전국의 평균은 달라.’
한국 최고의 명문고와 전국의 평균이 똑같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모든 수험생의 수능 등급의 평균값, 중간값이 4에서 6등급 사이에 있다고 해서 최고 명문대의 합격자들의 평균 등급이 4등급 정도 되는 건 아니다.
합격자는 대부분 1등급을 받았을 것이고, 1등급 안에서도 치열하게 1점, 2점 차이로 경쟁을 치를 것이다.
은광고도 마찬가지였다.
나, 유상훈, 장남욱은 은광고 입학시험을 치른 중3 시절부터 고등학교 1학년생 평균이라는 종합 능력치 레벨 10이었다.
치유 능력 발현과 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유상희조차 종합 능력치 레벨이 30 중반이다.
‘나도 빠르게 성장했어.’
현재 내 종합 능력치 레벨은 전국의 플레이어 고교생 3학년의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그러나 백호군의 훈련을 통해 급상승 중이던 종합 능력치의 성장은 30이 넘어가니 거의 정지하다시피 했다.
상대가 신화계 호족이라고는 하지만 이 이상은 대련이 아닌 실전을 거쳐 올려야 할 거다.
‘이계에 들어가기 전에 내 능력치를 확인해야 하는데.’
조금 꺼려졌지만 공격대 파티 플레이에서 실수하기 전에 내 상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조의신’의 인물 정보를 열람합니다.〉
[이름] 조의신
[칭호]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무명의 초신성, 적벽괴도(赤壁怪盜)
[가호]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광림] (비활성화 중)
[상태] 정상
[종합 능력치] Lv.32
[스킬]
만물 사용 Lv.5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 Lv.5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 Lv.2
운명력 Lv.3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상태창은 오랜만에 여네. 종합 능력치가 중국에 갔을 때보다 1 올랐구나.’
내 시선은 한 스킬 이름에서 멈췄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 Lv.5’
유상훈과 장남욱에게 ‘리플레이’라는 이름의 악몽을 안긴 항목이었다.
나는 리플레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나서는 한 번도 상태창을 열지 않았다.
실수로 리플레이를 선택할까 봐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사실 그냥 상태창을 열기 싫어졌다.
‘그래도 언젠가 좀 더 리플레이에 대해 고찰하고, 또 써야겠지.’
손이 가지 않는 체스 피스라도 체크메이트를 위해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아직 리플레이를 사용 가능한 대상, 정확한 효과와 영향을 모르는데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조의신, 질문할 게 있나?”
함근형 선생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 나는 주변에서 볼 때는 플레이어 SAT-K가 예측한 이계 공략 정보 자료를 열람 중인 것으로 보일 거다.
희귀도가 낮을수록 이계가 단순화, 패턴화되는 덕에 위성이 낮은 희귀도의 이계 발생을 예보할 때는 경보와 함께 공략 정보를 송출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출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질문이 있으면 바로 하도록.”
함근형 선생님은 잔소리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첫 실습을 앞둬서 그런지 다소 엄격하게 말했다.
공략 정보를 전부 읽은 아이들 중 몇몇이 공원 관리자에게 짐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 아이템 카드와 카드 홀더만을 챙겨 가벼운 차림새로 왔는데, 짐이 많은 아이들도 있었다.
“짐이 많네요. 실습이 끝나고 어디 가시나요?”
사월세음의 질문에 김유리가 머쓱해하며 웃었다.
“통학하는 애들끼리 얘기해서 도시락을 싸 왔어! 바로 말한다는 게 타이밍을 놓쳐서…… 하하하.”
김유리는 수비대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견학만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반 아이들이 첫 공격대 실습을 나가는 게 걱정되어 긴장했나 보다.
통학생끼리 기숙사생 몫까지 도시락을 싸 오자고 제안한 건 김유리라고 하는데, 출발 직전까지 말을 하지 못하다니.
기숙사생들이 통학생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메뉴를 물었다.
“뭐 싸 왔어?”
“나는 치아바타 샌드위치랑 베이글 샌드위치! 베이글 종류는 여러 개로 해 왔어. 아, 속에 풋사과잼 넣은 것도 있어.”
한이의 질문에 김유리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맛이 나는 샌드위치도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나는지 한이의 얼굴이 기대에 차는 게 보였다.
“이 몸은 여름철 보양 디저트를 준비해 놨다. 맛도, 영양도 기대해도 좋다.”
황지호가 아이스박스를 가볍게 들어 올려 보였다.
황지호는 메뉴 선정, 요리 분야에 있어서 매우 믿음직했다.
그러나 예전에 황지호의 농간에 크게 당한 적이 있는 사월세음은 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
“맛은 괜찮은 거죠? 솔잎이나 홍삼 안 들어갔죠?”
“메뉴는 식사 직전에 밝히도록 하지. 정 궁금하면 말해 줄 수도 있지만.”
“……괜찮아요.”
“하하하하! 단 것도 있다. 어떻냐, 메뉴가 궁금한가?”
“아니.”
사월세음과 한이가 철벽을 쳤지만 뭐가 좋은지 황지호는 처웃었다.
노친네 눈에는 애들이 실습을 앞두고 긴장하고, 또 황지호를 상대로 철벽을 치는 게 좋게 보이나 보다.
“나는 아몬드 또띠아 피자 만들어 왔어.”
민그린은 또 송대석이 좋아하는 아몬드가 들어간 메뉴를 선택했다.
아이들도 슬슬 송대석의 취향을 짐작했기에 흐뭇해하는 얼굴로 민그린과 송대석을 바라봤다.
문제는 송대석이었다.
‘이번에는 빈손은 아니네.’
예전에 시험이 끝난 후 뒤풀이에서 각자 음료를 가져오기로 했었다.
송대석은 혼자 가져오지 않아 민그린에게 혼나고, 과즙 음료, 소다맛 이온 음료, 아이스 카푸치노, 진저에일, 에이드, 우유, 밀크 셰이크, 홍삼 주스, 솔잎즙이 섞인 믹스 버전의 ‘음료였던 무언가’를 마시며 혼쭐이 났다.
그 효과가 있었는지 손에 뭐가 들려 있긴 했다.
“대석이한테는 김밥을 가져와 달라고 했어. 근처에 분식집도 있으니까 직접 싸지 않더라도 사 올 수도 있고…….”
민그린의 말에 송대석이 어째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국민망겜의 고이고 썩은 석유 외에도, 그의 소꿉친구인 민그린도 송대석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대석아?”
“……어.”
“대석아, 혹시 그 안에 아무것도 안 들어 있어?”
“아니야! 집에서 챙겨 왔어!”
“뭐 가져 왔는데?”
민그린이 가방에 손을 뻗었다.
송대석은 순간 가방을 등 뒤로 숨기려 했지만, 그냥 내줬다.
송대석이 체격이 훨씬 크다 보니 그냥 도시락통을 위로 들어 올리면 민그린 손이 닿지 않을 텐데.
가방을 연 민그린이 경악했다.
“……이게 뭐야!”
송대석이 들고 온 가방 안에는 김하고 밥밖에 없었다.
그것도 포장된 도시락 김과 즉석밥이었다.
반 아이들이 ‘송대석이 또.’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목우람은 홀로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훌륭한 메뉴라고 생각합니다! 타지에서 밥 생각 날 때 돈을 모아 즉석밥 신세를 졌습니다. 귀하고 비싸서 자주 먹지 못했지만요. 김도 먹고 싶었는데 제 형편에는 꿈도 못 꿨습니다.”
“……즉석밥이 귀하고 비싸다고? 바가지 쓴 거 아니야?”
“네? 하지만 수입 과정에서 비싸지는 건 당연하다고 들었는데…….”
시중가의 100배 정도 되는 가격으로 즉석밥을 먹었다는 목우람의 슬픈 호구력이 이어졌다.
어쨌든 송대석은 김과 밥을 가져 왔고, 저걸 좋아하는 반 아이도 있긴 했다.
하지만 민그린은 매우 실망한 것 같았다.
송대석이 아무 생각이 없었을 가능성이 컸지만, 민그린 눈에는 아직도 반 아이들을 상대로 묘한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대석이는 바보, 멍청이! 협회 들어간 다음에 더 돌머리가 됐어!”
돌머리라는 말에 멍하니 있던 맹효돈이 뼈를 맞은 듯한 얼굴을 했다.
직접 그 소리를 들은 송대석은 중상을 입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오랜만에 대석이랑 외출해서 같이 김밥 먹고 싶었는데…… 내가 가져온 건 대석이 안 줄 거야!”
초등학생 수준의 선언이었지만, 민그린이 한 말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아직 이계 공략은 시작도 안 했는데 송대석은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민그린이 조금 격렬하게 반응하긴 했지만, 송대석이 그간 해 온 게 있던 탓에 다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이들이 짐을 맡기고 왔는데, 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 외에도 권레나가 있었다.
권레나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맡겼다.
‘또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왔어.’
권레나는 이제 이능 바이올린, 이능 활을 가지고 있다.
바이올린과 활은 카드화가 가능하니 굳이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을 텐데.
‘게임 속에서의 권레나는 바이올린을 배우지 않았으니까 모르겠네.’
바이올린 케이스에 집착을 한다기엔 저번과 디자인이 좀 달랐다.
주오 아일랜드에 들고 갔던 케이스는 탄소 섬유 소재였고, 이번에 가져온 가죽 소재의 케이스였으니까.
‘그렇다면 바이올린 케이스의 내용물에 뭐가 있는 걸까?’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전에 맞춰 둔 알람이 울려 이계의 입구 발생 시각이 되었다.
빛의 입자가 서서히 허공으로 떠오르고 이계 발생이 예정된 포인트 주변의 공간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끼기기이익……!
마치 어긋나 있는 톱니바퀴를 억지로 맞물리게 해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멎었을 때는 어두운 이능파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이계의 틈이 보였다.
“이계의 입구다.”
용제건이 앞장섰다.
“그럼, 첫 실습을 가 볼까.”
그 뒤를 나와 반 아이들이 따랐다.
* * *
최후미에 선 황호를 마지막으로 1학년 0반의 공격대가 이계의 틈으로 사라졌을 때였다.
올림픽공원 입구 쪽이 소란스럽더니, 영원의 호수 팀 로고가 새겨진 에어 밴이 김유리 근처에 멈춰 섰다.
밴의 문이 열리자 조금 흐트러진 차림새의 권제인이 등장했다.
“어? 권제인 선생님! 안녕하세요!”
명예 교사가 되었으니 학사 일정 중에는 ‘선생님’이라고 불러 달라는 권제인의 요청이 있었다.
지금은 실습 중이니 김유리는 권제인에게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대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안녕.”
권제인은 이계의 틈을 보고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늦었어…….”
“네? 늦었다니…….”
권제인 외에도 다들 좌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어 밴에서 내린 이들은 영원의 호수의 영어 이름, ‘Eternal Lake’의 ‘E’와 ‘L’을 따서 바이올린 모양으로 형상화한 팀 로고가 새겨진 짧은 망토를 입고 있었다.
김유리는 저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어른들이 전부 세계 10대 프로 플레이어 팀 중 하나, 영원의 호수 팀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 출전을 응원하고 싶었어. 승리와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행진곡을 연주하려 했는데.”
권제인은 아쉬워하다가, 밖에서라도 응원하며 기다려야겠다며 즉석 연주회를 준비했다.
영원의 호수 팀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악기를 세팅했다.
쿵! 콰쾅!
갑자기 재러드 리가 악보대를 떨어뜨리고 당황한 얼굴을 했다.
재러드 리의 시선 끝에 이계의 틈이 있었다.
“재러드?”
“……은광고 첫 실기가 이렇게 힘들어?”
“네?”
재러드 리가 이계의 틈을 살피다가 어색한 한국어로 물었다.
평소에는 금발 한국인 취급 받을 정도로 말을 잘했는데, 재러드 리는 당황했는지 기묘한 말투를 썼다.
“첫 실습으로 하기에는 이 이계는 공략 난이도가 높습니다.”
재러드 리의 말에 함근형이 답했다.
“R급 난이도라면 은광고 1학년생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재러드 리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다시 이계의 틈을 주시했다.
스킬을 발동시켜 다시 이계의 틈을 살피던 재러드 리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R급이 아닙니다! SR급 이상이고…… 더 난이도가 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