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64화 (264/925)

48. 첫 실습 (3)

권레나의 첫 실습을 앞두고 영원의 호수 팀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권제인의 명예 교사 신분을 내세워 현장에 들어가고 아주 부자연스럽게 연주회를 시작하는 것까지, 완벽한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그런 영원의 호수 팀원들이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것엔 이유가 있었다.

“재러드. 저번에 부탁한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출발 직전, 영원의 호수의 간부 중 가장 젊은 멤버가 재러드를 불러냈다.

“레나 양이 소속한 1학년 0반에는 마스터 크래프트맨의 제자, 목우람 학생이 소속되어 있죠.”

“그 학생이 ‘세 기사의 맹세’와 관련이 있어?”

얼마 전, 세 기사의 맹세 측에서 재러드 리와 접선해 팀을 바꿀 것을 권유했다.

재러드 리는 단칼에 권유를 거절한 후, 이들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세 기사의 맹세의 정예가 한국에 입국했다는 소식에 재러드 리는 팀 서브 마스터로서의 권한과 개인적인 연줄을 총동원하여 그들의 목적을 탐색했다.

“그들은 계속 마스터 크래프트맨의 제자를 찾은 것 같습니다. 목우람 학생을 팀에 가입하라 권유하려다 실패했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습니다.”

“우람 군은 우수한 학생이구나. 그럼 기사들이 한국에 온 이유는 우람 군을 섭외하기 위해서인가?”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어떨까요.”

젊은 간부는 홀로그램을 몇 개 띄웠다.

홀로그램에는 목우람의 입국 날짜, 입원 날짜 등이 표시된 타임라인 표가 표시되어 있었다.

“세 기사의 맹세는 플레이어 협회 중국 지부의 청두 사무소와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공안을 매수해 목우람 학생의 귀국을 방해했습니다.”

“귀국을 방해했다고?”

“네. 그리고 목우람 학생은 귀국 전후로 큰 부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젊은 간부는 목우람의 입원, 퇴원 날짜를 가리키며 말했다.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근거해 말씀드리자면…….”

그는 매우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세 기사의 맹세의 정예가 한국에 온 목적은 목우람 학생을 다시 섭외하거나, 살해하기 위해서.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재러드 리는 자신이 한국말을 제대로 해석했는지 의심스러워하다가 얼굴빛이 창백하게 변했다.

‘세 기사의 맹세’를 이끄는 세 명의 팀 마스터, 그 기사들이라면 충분히 할 법한 짓이라고 판단했던 탓이다.

그러나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이를 은광고나 협회, 한국 정부에 알릴 수 없었다.

영원의 호수도, 세 기사의 맹세도 세계 10대 프로 플레이어 팀으로 꼽히는 강팀이었다.

자칫 이 ‘추측’이 공공연하게 퍼지면 두 프로 플레이어 팀의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목우람 학생은 귀국한 이후 은광고 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더군요. 주오 아일랜드에 간 적이 있긴 하지만, 학생, 교사진, 스태프 150명이 넘는 대규모의 인원에 크루저, ‘천자’와 함께 움직였으니 노릴 엄두를 못 냈을 겁니다.”

젊은 간부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추가 설명은 없었지만, 재러드 리는 어째서 간부가 자신을 붙잡았는지 알아챘다.

“……우람 군을 노린다면 오늘이 적격이겠군.”

이계 공략 공격대 실습 중에는 교사가 동행해도 부상자가 나왔고, 사고가 겹치면 사망자도 나온다.

이계 공략 중인 플레이어의 암살.

이계와 에너미라는 거대한 변수가 존재하지만, 세계 10대 프로 플레이어 팀의 정예라면 충분히 암살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수행할 능력이 있었다.

“재러드, 우람이를 노린다는 게 무슨 말이야?”

권제인이 뒤에서 불쑥 말을 걸었다.

젊은 간부가 권제인에게 간략히 상황을 설명하자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오늘 일어날 일이야? 레나가 첫 실습을 하는 곳에서?”

“확증은 없습니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직 확실히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사실이라고 해도 오늘 말고 다른 날을 노릴 수도 있어…….”

재러드 리와 젊은 간부가 말꼬리를 흐렸다.

아직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게다가 두 팀은 세 기사의 맹세 소속 재러드 리가 영원의 호수에 옮겨 온 것을 계기로 가벼운 마찰이 이어진 상황이었다.

일을 공론화하는 것도 어려웠고, 권제인에게 나서 달라고 청하기도 모호했다.

“레나가 주오 아일랜드에 다녀온 후, 기념품으로 선물한 바이올린 조각 기억나?”

“그거야 당연히 기억하지! 내 몫도 있었으니까!”

“물론입니다. 레나 양은 권제인 님의 혈연답게 섬세하고 우아한 센스를 겸비하고 계시더군요.”

권제인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지만, 재러드 리와 젊은 간부는 바로 반응했다.

권제인은 계속 담담하게 말했다.

“그 선물은 레나가 우람이에게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고 했어. 우람이는 레나의 반 친구야.”

“아…….”

“그랬었군요…….”

“앞으로 은광고, 특히 레나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항이면 바로 보고해. 특히, 우람이. 우람이는 그분이 남긴 유일한 제자라는 걸 잊지 마.”

권제인이 푸른 눈으로 입을 다문 두 사람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대기 중인 팀원들은 중무장을 하고 집합하라고 해.”

팟!

권제인이 아이템 카드를 실체화했다.

실체화한 아이템은 영원의 호수 팀 마크가 새겨진 푸른 망토였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가 직접 해결하면 돼. 별일 없으면…… 내 뒤에서 반주해 줘. 레나와 반 친구들을 위해 연주하고 싶어.”

영원의 호수 팀원이 무장하고 집결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결과 그들은 늦고 말았다.

조카를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권제인이 허탈해한 것 외에는 별 이상은 없었다.

재러드 리가 이계의 난이도가 변경된 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우리도 들어갑시다! 우선 실습 참관인으로서 합류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대신…….”

“안 돼!”

영원의 호수 팀원 하나가 이계의 틈으로 뛰어들려는 걸 재러드 리가 막았다.

재러드 리의 ‘위험 감지’ 스킬에 이어 ‘이계 분석’ 스킬이 연달아 발동했다.

키이잉……!

재러드 리의 손바닥에서 이능파가 흘러나와 이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능파의 분산 과정을 통해 이계의 구조를 분석한 재러드 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계는 복합 투영 구조 진화형 이계야.”

삐이이이이익!

재러드 리의 분석에 맞춰 협회의 경보 알람이 근방에 있는 디바이스로 수신되었다.

이계의 난이도 변동 감지를 안내하고 있었다.

현재 1학년 0반, 1반, 2반 학생들이 실습 중인 이계의 난이도가 R급에서 ‘SR급 이상으로 추정’으로 바뀌어 표시되었다.

SR급 이상이라는 말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현재 SR급 수준으로 머물러 있어. 하지만 공격대 숫자가 늘어나면 더 복잡하고, 높은 난이도의 이계로 진화한다!”

“네? 그, 그럼 지금 공략 중인 애들은…….”

저명한 프로 플레이어들은 평정을 유지했지만, 김유리는 그렇지 못했다.

첫 실습에 반 아이들이 들어간 이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고 동요했다.

‘복합 투영 구조’, ‘진화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계에 대해서 아직 고1은 심화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그 내용은 대략 어떤지 알았다.

이계에 잠입한 플레이어에 따라 구조를 변경하는 ‘투영’ 타입, 또 난이도가 바뀌는 ‘진화형’.

즉, 외부에서는 함부로 개입하기 어려운 타입의 이계였다.

“우리가 들어가면 더 난이도가 높아질 수도 있어.”

“그래도 복합 투영 구조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들어가서 합류하는 게…….”

“그래. 우리라면 어렵지 않게 깰 거야. 진화형이라곤 해도 원본이 R급인 이상 잘해야 SSR---급 정도로 성장하겠지.”

김유리는 재러드 리 대신 담임인 함근형을 바라봤다.

함근형은 흉흉한 얼굴로 이계의 틈을 보다 입을 열었다.

“난이도가 올라도 바로 합류한다면, 혹은 아이들이 용제건 선생님과 있다면 문제가 없을 거다. 하지만 이번 이계는 ‘미궁형’이다.”

미궁형이란 말에 김유리는 미궁 타입의 이계 공략법에 관해 배운 수업을 떠올렸다.

미궁 타입의 경우, 기믹에 따라 강제로 분단되거나 입구가 여러 개로 나뉘기도 했다.

‘고립된 아이들이 있을지도 몰라……!’

김유리는 공격대로 들어간 이들을 떠올렸다.

‘인간이 아닌’ 두 존재는 걱정이 없었다.

유희계 용족 용제건과 진족으로 추정되는 황지호, 이 둘은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또 맹효돈이나 한이도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사월세음이나 권레나처럼 R급 에너미 퇴치에도 애를 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SR급 에너미를 상대로 한다면 버티겠지만, SSR급으로 난이도가 올라 버리면 이 둘은 죽을지도 모른다.

굳은 김유리를 두고 상황은 계속 흘러갔다.

“이곳 외에도 3km 이내에 총 네 개의 이계가 발생하여 1반, 2반 학생들이 실습 중입니다. 현재 증원을 요청했습니다만, 늦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쪽 팀원을 배치할게요. 그쪽도 비슷한 상황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함근형과 권제인이 협력해 인원을 배치하고, 영원의 호수 팀원들이 푸른 망토를 휘날리며 목적지로 사라졌다.

김유리가 불안한 눈으로 이계의 틈을 바라봤다.

불안해진 김유리의 이능파에 반응한 상위 존재들이 끊임없이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근처에 호수와 강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광림을 해방할 것을 은근히 권했다.

“김유리!”

함근형이 흉흉한 얼굴로 일갈하자, 상위 존재들도 일순 입을 다물었다.

김유리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자 바로 ‘위험 감지’ 스킬이 발동되었다.

이계의 틈 사이로 에너미가 생성되고 있었다.

쿠오오오……!

실체화한 에너미들을 향해 대기 중이던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겨누었다.

김유리는 자신이 싸울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뒤로 물러났다.

이계의 틈에서 멀어질 때, 권제인이 말을 걸었다.

“반 아이들이 걱정되니?”

“……네?”

“나도 레나가 잘못될까 봐 무서워.”

권제인이 푸른 바이올린을 목 밑으로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저 안에는 용도, 호랑이도, 무명의 초신성도 있어.”

*    *    *

이 세계에서는 강한 에너미를 쓰러뜨리고, 난이도가 높은 이계를 공략할수록 성장하기 쉽다.

내가 ‘이름 없는 조연의 튜토리얼’을 공략할 당시, 무기의 숙련도를 빠르게 올렸던 것처럼.

그렇다면 강력한 플레이어나 진족이 들어간 파티에 들어가, 난이도가 높은 이계 공략을 한다면 쉽고 편하게 레벨과 숙련도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누구나 하겠지만, 이 세계의 거대한 금기 중의 하나가 속칭 ‘쩔’이라고 불리는 프리 라이딩 행위였다.

플레이어는 최소한 1인분의 몫을 할 수 있는 난이도의 이계 공략에 참가하는 게 바람직했다.

강한 플레이어가 동행하는 건 상관없지만, 혼자 남겨지더라도 제 몫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다.

‘혼자 남았어.’

이계의 공략법은 어느 정도 정립되었다고 하지만, 사고는 늘 터졌다.

특히 미궁 타입의 이계에선 이렇게 혼자 남는 경우가 간혹 터지곤 했다.

괜히 고레벨의 플레이어에게 쩔을 받겠다고 공격대에 끼었다가 입장과 동시에 혼자 남아 죽을 수도 있었다.

모든 반 아이들은 R급 이계 공략에는 문제가 없었고, 난이도가 올라 SR급 에너미가 등장해도 침착하게 대응하면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이계는 브리핑과 달리 변형되었고 반 아이들 대부분이 이계는 처음 경험해 보는 초짜다.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됐지?’

전용 메뉴를 통해 ‘주변 지도 열기’를 써 봤지만 바로 내 주변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니맵 기능은 이계에서도 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면 정보를 보여 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무명의 운명이 있으니까, 광림 제한 시간은 이전보다 넉넉할 거야.’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대상 캐릭터의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을 사용합니다.〉

천동하의 광림을 사용하자 눈이 아니라 뇌 안으로 수천, 수만 개의 카메라가 직접 이어져 영상과 정보를 들이붓는 감각이 느껴졌다.

‘건곤(乾坤)을 품은 눈’이 플로어 곳곳을 비췄다.

미궁의 너머 다음 플로어로 이어지는 공간도.

황홀한 표정으로 웃으며 맹효돈과 한이, 민그린과 대화하는 용제건도.

패닉에 빠진 송대석과 목우람을 보는 황지호도.

이들은 아마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가장 약한 둘이 따로 떨어졌어!’

외부와 통신을 시도하는 중인 사월세음과 권레나.

이 둘이 고립되어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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